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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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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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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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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DUMMY

“당황스럽군······. 내 입으로 귀한 손님이라 말하긴 했지만 정말 귀하신 분일 줄이야?”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확실히 당황스러운 상황이 아닌가. 왜 그리 얼굴을 꽁꽁 숨기고 있나 했더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용 사냥꾼이라더니, 진짜였군. 얼굴 보니 알겠어. 하지만, 하지만 이건······.”


테레모는 여전히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지 말끝을 흐렸다. 반대로 샬릭은 태연했다. 투구가 벗겨지자 죽일 듯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었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유로운 태도였다.


“말하는 걸 보니 내 얼굴을 봤군?”


그러면 안 됐던 걸까? 하기야 보여주기 싫으니까 고집스럽게 투구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건 단순히 미추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샬릭이 자신의 얼굴을 투구로 가리고 있던 건 남들에게 정체를 들켜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은 본의 아니게 샬릭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럼 저 무시무시한 용 사냥꾼이 자신을 가만히 둘까?


만약 싸움이라도 벌어진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일곱 제국공 중 한 명이자 강력한 시체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용 사냥꾼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있다.


“아무래도 그러면 안 됐던 모양인데, 그럼 그걸 빌미로 드잡이질이라도 할 셈인지?”


북부인의 막 나가는 성격을 생각하면 있을 법한 일이다. 테레모가 조심스럽게 체내의 마력을 끌어올리는 가운데 샬릭이 말했다.


“그러길 원하나?”


“글쎄······.”


솔직히 원하지 않는다. 가진 게 많을수록 잃을 것도 많은 법인데 이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손해가 막심할 것 같다.


그러나 제국공의 입장에서 저자세로 나가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말끝을 흐리고 있자니 샬릭이 웃으며 말했다.


“괜히 겁먹긴? 안 그럴 테니 걱정할 필요 없어. 얼굴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그것 좀 본 게 뭔 대수라고.”


테레모는 남몰래 안도했다. 혹여나 싸우자고 할까 봐 약간 걱정하고 있었는데.


샬릭이 웃었다.


“내가 싸울 마음이 없어 보이니 안심한 모양이군? 먼저 시답잖은 이유로 싸움 걸었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끝내려는 모습이 참 뻔뻔스러워. 솔직히 그냥 죽이고 끝내는 게 깔끔하긴 한데 그러면 저 친구들까지 죽여야 하니 참는 거야.”


샬릭의 손가락이 향한 곳에는 부랑자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테레모가 다급히 말했다.


“이들은 내 뒤에 있던 터라 투구가 벗겨진 것도 못 봤을 텐데.”


“참 다행인 일이지. 내 잘생긴 얼굴을 봤다면 눈이 멀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좀 생기긴 했어도 그 정돈 아니었던 것 같은데.”


“댁은 시체 마법사라 그래. 산 사람이었으면 분명 눈이 멀어서 바닥을 기었을걸.”


과장이 심하군. 테레모가 남몰래 혀를 차는 사이 샬릭이 말했다.


“사실 저 친구들까지 죽일 이유는 없지. 내가 안 죽이더라도 댁이 죽였을 것 아닌가?”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오해야.”


“그러니까 뭔 오해?”


테레모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내가 이들을 시체 병사로 만들려고 했던 건 맞아. 그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당장 죽여서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닐세.”


“그럼 이 친구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릴 셈이었나? 참 대단한 인격자시군?”


샬릭은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놀랍게도 테레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고 했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뭔지 아나? 내가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여 군세를 늘린다는 거야. 그럴 리가? 내가 왜 그런 짓을 하나?”


“그럼 안 그런다고?”


“생각해보게. 내가 정말 군세를 늘리려 했다면 그냥 전쟁이나 한 번 했겠지. 차라리 그게 더 빨리, 더 많이 군세를 늘릴 방법이니까.”


들어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테레모의 능력을 생각하면 전쟁을 할 때마다 불사의 군세가 배로 늘어날 테니까.


“내가 정말 이들을 죽여서 시체 병사로 만들 셈이었다면 벌써 하지 않았겠나? 이 짓거리에 무슨 남 동의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왜 시간을 끌겠어?”


“그건······.”


샬릭이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다. 테레모 정도의 실력자라면 상대가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시체 병사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테레모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말이요, 바빠. 그것도 아주 바쁘지. 재미 삼아 남 죽여서 시체 병사로 만들고 놀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이 도시가 어찌 돌아가는지 아나?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봐주지 않으면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어.”


테레모의 말에 따르면 도시의 노동자 중 대부분은 시체 병사인데 그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며 때때로 수리하는 것 전부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당장 지금도 노동 중에 부서진 시체 병사들을 되살리는 중이었다고도 덧붙였다.


샬릭이 이 도시의 구조에 대해 잘은 몰라도 시체 병사 숫자가 수천에 달할 텐데 그걸 전부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일 것 같진 않다.


“그럼 저 친구들은 왜 여기로 불렀지?”


“장벽 도시가 아무나 입성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겠지. 살기 힘든 세상 아닌가. 아무리 큰 도시라도 아무나 전부 받아들일 여력은 없네. 그리고 여기 있는 이들은 솔직히 빈말로도 쓸모가 있진 않아.”


그건 샬릭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테레모가 이들을 도시 안으로 불러들인 걸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내가 이들을 도시 안에 받아들였던 건 자네를 보고 부린 변덕이었어. 수백 명이 몰려온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수십 명의 부랑자니 그 정도야 받아줄 여력은 있었거든. 그런데 이들도 도시 안에 들어온 이상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죽어서 쓸모를 보이라고 했나?”


“그랬지. 그런데 지금 당장 죽으라고 했던 건 아니야. 부랑자 수십 명 받아들였다고 당장 도시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가혹한 짓을 할 이유가 있나? 난 그저 거래를 제안했던 것뿐일세. 너희들을 도시 안에 받아들여 줄 테니 대신 죽은 뒤에 나를 위해 봉사하라고.”


샬릭이 보기에 부랑자 무리가 당장 내일 죽어버릴 것 같진 않다. 못해도 십 년은 넘게 살다 죽을 텐데 그럼 그들은 그때까지 테레모에게 아무런 쓸모도 없는 짐 덩어리가 되는 셈이다.


테레모도 그걸 알 텐데 그런 제안을 한 것을 보면 정말 재미 삼아 남 죽이는데 취미가 없는 모양이다.


그럼 괜한 오해를 했나? 샬릭이 쩝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내가 미안한 짓을 했군. 그런데 그쪽이 더 미안한 짓을 했으니 사과는 안 하겠다.”


당당해도 너무 당당하군. 테레모는 어이가 없었지만 자신 역시 잘못한 게 있었으니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의 앙금은 여기서 털어내는 건가?”


“정확히 말해서 내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주는 거지. 감사히 여기도록.”


테레모는 뭔가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저놈과 더 말해봤자 정상적인 대화가 될 것 같지 않다.


“할 말 많아 보이는 얼굴인데. 할 말 있으면 해.”


“······아니, 됐네.”


“그럼 내 할 말 하지. 괜히 입 놀리고 다니지 마.”


뭘? 테레모는 그리 물으려다가 샬릭이 하는 말의 뜻을 깨달았다.


“그러지. 원한다면 마법의 맹세라도 할까?”


“아니, 그럴 것까지야. 그리고 난 마법사가 하는 맹세는 안 믿어. 그놈들 믿을 바엔 차라리 지나가는 개를 믿지.”


마법사 혐오까지 있군. 테레모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가 물었다.


“그런데 귀한 분께서 왜 방랑하고 있으신가?”


“내가 누구지?”


그 짧은 새에 치매라도 왔나? 테레모가 불퉁한 목소리로 답했다.


“용 사냥꾼 아니신가.”


“그래, 용 사냥꾼이지. 그럼 용 사냥꾼이 뭘 하고 다니겠나?”


“용 사냥? 그거라면 북부에서 하면 될 텐데?”


“내가 거기서 용 사냥을 하면 싫어할 사람이 있어서.”


진심으로 하는 소리일까? 용이라는 건 북부 외에도 있긴 하지만 구태여 용 사냥을 하려고 대륙을 떠돌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테레모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상대는 북부인 아닌가.


“그런 거라면 내가 도움을 좀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용이 있는 곳에 대한 정보 말이네.”


“알려주면 고맙지.”


“그래, 그럼······.”


테레모는 자신이 알고 있는 용에 대한 정보를 말했다. 샬릭은 가만히 듣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됐다. 칭찬해주지. 머리라도 쓰다듬어줄까?”


“사양하지. 그럼 곧장 떠날 셈인가? 용 사냥을 하러?”


“왜, 여기 더 남아 있길 바라나? 할 일 다 했으니 떠나야지. 발라트 이 친구, 이제 막 시체 기사가 됐으니까 따돌리지 말고 잘 돌봐주고······.”


샬릭이 정말 떠나려는 듯 몸을 돌릴 때였다. 줄곧 가만히 있던 발라트가 움직이더니 그의 손에 뭔가를 쥐여줬다. 이게 뭔가 하고 봤더니 반지였다.


“시체 기사가 멋대로 행동하다니? 성기사 출신이라 그런가? 흥미롭군. 신앙심이 주인에 대한 복종심보다 우위에 있다는 건가······.”


테레모가 중얼거렸지만 무시했다. 샬릭이 발라트를 향해 물었다.


“청혼하는 거냐? 나도 알아, 내가 멋있는 거. 그래도 이건 아니지.”


“···누가 봐도 청혼하는 건 아닌 듯한데. 그 반지를 어딘가에 가져다줬으면 하는 게 아닌가?”


테레모의 추측에 샬릭이 말했다.


“어디로? 자기 약혼녀한테?”


“왜 자꾸 결혼에 집착하지? 어쩌면 자기 고향일지도 모르지. 그도 아니면 자기가 있던 신전이거나.”


가만히 반지를 보니 뭔가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러면 일단 가까운 칼록의 신전으로 가볼까. 마침 가는 길에 칼록의 신전이 하나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가지고는 있으마. 나 없다고 울지 말고 잘 있어, 인마. 테레모,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보자고.”


난 그러기 싫은데. 테레모가 중얼거리는 사이에 샬릭은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불쑥 들어왔을 때처럼 힘껏 문을 여닫고 방을 나갔다.


드디어 불청객이 사라진 테레모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혹여나 또 돌아오지 않을까 잠깐 기다리고 있자니 그런 일은 없었다.


이제야 하던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겠군. 그가 부랑자 무리를 향해 고개를 돌릴 때였다. 짙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불사공(不死公) 전하.”


그것은 제국공으로서 테레모의 직함이다. 그는 자신을 부른 자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창백한 젊은 마법사.


그는 테레모의 제자이며 장차 시체 마법사가 될 자이다.


“왜 그러지?”


“왜 놈을 그냥 보내셨습니까? 태도가 아주 불손하기 그지없더군요. 놈이 제법 강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봤자 고작 혼자 아닙니까? 못 죽일 상대는 아니었을 텐데요.”


이 멍청한 놈. 내가 이런 것도 제자라고 들였나? 놈을 보고도 느끼는 게 없다니. 테레모는 크게 호통치려다가 참았다.


제자가 저리 멍청한 소리나 지껄이는 건 너무 젊어서였다. 샬릭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바로 알아차릴 자는 이 땅에 몇 없다. 옛 제국 출신인 자신만큼 오래 산 존재가 아니고서야······.


“그래, 못 죽일 상대는 아니지. 만약 싸웠다면 불사의 군세가 칠 할쯤 날아갔을 테고 나도 죽음을 각오해야 할 테지만, 그래도 저놈을 죽였으니 싸게 친 셈 아니냐?”


순간 제자는 당황했다. 저 북부인 하나 죽이는데 그만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그는 스승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테레모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저놈과 얽히려 하지 마라. 알겠느냐?”


“전하, 하지만 어째서······.”


테레모가 답했다.


“놈은 용 사냥꾼이고, 그 누구보다 용을 잘 죽이는 자다. 용조차 죽이는데 그럼 사람은? 내 장담하는데 사람은 벌레 죽이듯 죽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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