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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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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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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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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DUMMY

샬릭이 나직이 말했다.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얼굴 보면 뭔 생각하는지 알아.”


“내 얼굴은 투구로 가려져 있는데 대체 뭘 보고? 혹여나 보지 않아도 아는 신통력이라도 있으신가.”


테레모가 한숨을 내뱉었다.


“꼭 봐야만 아는 건 아니지. 자네는 지금 내가 이 불쌍한 자들을 죽여 시체 병사로 되살리려는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지 않나?”


“아니라고 할 셈인가?”


“아니라고 할 셈이네, 믿기 힘들겠지만. 구구절절한 설명이 될 테지만 좀 들어주겠나? 난 이들을 죽여서 시체 병사로 되살릴 생각이 없어. 정확히 말하면 좀 다르긴 한데······.”


“미안하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 없어.”


테레모가 눈덩이에서 스산한 빛이 번쩍였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다니? 무슨 설명을 해도 자신은 듣지 않을 것이니 의미 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할 셈인가?


바보 같은 짓이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숨겨진 진실을 외면하려 들다니, 어리석은 필멸자나 보일 법한 행동에 테레모는 탄식했다.


설령 자신이 샬릭을 속이려 드는 것이라 해도 놈은 얌전히 설명을 들어야 했다.


당연한 일 아닌가? 자신은 세상에 일곱뿐인 제국공이요, 장벽 도시를 지배하는 강력한 시체 마법사인데 어찌 감히 그 말을 무시할 수 있겠나?


저 북부인 놈은 자신이 용 사냥꾼입네 주장하고 있지만 그게 실은 허세 가득한 칭호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용 사냥꾼이라니, 용이 바보도 아니고 북부인 손에 죽을 리가 있나.


“샬릭, 자넨 다른 북부인보다 좀 더 똑똑한 줄 알았는데 결국 그들과 똑같군. 감히 날 의심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날 죽이기라도 하려고?”


테레모의 몸에서 죽음의 기운이 일렁였다. 전력을 끌어낸 게 아님에도 근처에 있던 부랑자 무리가 켁켁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네. 정말이야.”


“동감이야. 나도 고용주를 죽이긴 싫거든.”


건방진······. 테레모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실로 건방지다. 북부인은 대개 주제를 모르고 설치다 명을 재촉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았지만 도가 지나칠 정도다.


테레모는 정말 애석하다는 듯 말했다.


“자네가 자꾸 이러면 나도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해.”


“그러니까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니까. 그리고 오해라면 댁이 하는 것 같은데.”


“무슨 오해?”


샬릭이 어깨를 으쓱였다.


“댁은 내가 무슨 정의의 용사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을 구하려 들까 걱정하고 있잖나. 그게 오해라고. 내가 왜 저들을 구해야 하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생각지 못한 대답에 테레모가 잠깐 말을 더듬었다.


“···그럼 이들이 그냥 죽게 두겠다고? 물론 내가 그런 일을 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건 그냥 가겠다는 건가?”


“그냥 가면 안 되나?”


“······안 되지 않나?”


되물은 테레모는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왜 내가 가지 말라고 붙잡고 있지? 가겠다면 그냥 가게 두면 되는데.


샬릭이 말했다.


“사람은 말이야, 어디서든 죽어. 지금도 어디선가 죽고 있지. 그러니 사람 좀 죽는다고 호들갑 떨 필요 없어. 애초에 저 친구들은 원래라면 황무지를 떠돌다가 죽었어야 할 운명 아닌가? 그런데 여기 들어와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죽게 됐으니 그 정도면 호상이야.”


호상이 그럴 때 쓰는 말인가? 테레모는 샬릭의 말이 긍정적인 건지, 아니면 지나치게 냉소적인 건지 헷갈렸다.


어느 쪽이든 샬릭은 자신과 적대할 의지가 없음이 분명했다. 팔짱을 낀 채로 삐딱하게 몸을 기울이고 있는 것만 봐도 그러하다.


테레모는 잠깐 생각하다가 곧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자네 말대로 내가 오해했군. 그래, 그럼 그냥 가겠다는 말이지? 그래 주면 정말 고맙겠군. 그 전에 우리끼리 셈할 게 있지? 보아하니 발라트를 죽이고 그 영혼을 더럽힌 모양이야. 그럼 나도 그에 대한 보수를 지급해야지.”


테레모가 뼈만 남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이 일그러지며 입구가 나타났다. 그는 그 안에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냈고 마법으로 샬릭에게 날려 보냈다.


샬릭이 그걸 받아보니 상당히 묵직했다. 안을 열어보지 않아도 액수가 제법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국공 정도 되니 확실히 통이 크군. 일개 영주 따위와는 과연 달라. 혹시나 다음에도 또 시킬 일 있으면 부르라고.”


“그러지. 그런데 그 전에······.”


샬릭은 몸을 돌려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그가 문을 열려고 하자 찰칵 소리가 나며 문이 잠겼다.


문을 열려고 한다면 힘으로 열 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은 건 테레모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확실히 해야 할 게 좀 있을 것 같군.”


샬릭이 문고리를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찰칵찰칵 소리가 울렸다.


“이러지 말지 그래.”


“아니, 해야겠어. 자넨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별 관심 없다고 했지. 그런데 그게 그냥 여기서 살아나가기 위한 거짓말이면 어쩌나? 만약 자네가 여길 나가서 나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내면? 제국공 테르모 베르쟈가 불사의 군세를 늘리며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문을 내면 어쩌냐는 말이야.”


샬릭은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제국공이나 되는 존재가 그런 소문을 신경 쓰고 있나? 애초에 모든 제국공은 전쟁광이다. 경쟁자가 모두 없어져야 자신이 제위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요즘 전쟁 준비를 하지 않는 제국공이 어디 있다고 저런 소문을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


샬릭이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거군.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이 두려우니 날 죽여서 입을 막겠다?”


“그냥 보내줄까 생각도 했는데 그게 제일 깔끔할 것 같아서.”


“후회할 텐데.”


샬릭이 칼자루 위에 손을 올렸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테레모가 코웃음을 쳤다.


확실히 저놈은 북부인답게 강하다. 그러나 결국 진짜 용 사냥꾼은 아니지 않나? 설령 진짜 용이 덤벼드는 게 아닌 이상 제국공을 이길 수는 없다.


테레모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어둠 속에서 시체 기사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그 숫자가 열다섯.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이만한 숫자를 혼자서 상대할 수는 없다.


“이번 일은 참 애석하게 생각해. 그러게 왜 여기 들어왔나? 내 설명은 왜 안 들으려 하고? 자네가 자초한 일일세.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진 말고.”


테레모가 시체 기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중엔 아까 막 시체 기사가 된 발라트도 있었는데 어째선지 그는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체 기사가 감히 주인의 명령을 무시하다니? 처음 있는 일에 테레모가 중얼거렸다.


“저놈은 왜 안 움직이지?”


“나한테 칼 맞아 뒈졌는데, 바보도 아니고 또 덤비겠나.”


샬릭이 이죽거리더니 재빠르게 칼을 뽑았다. 그걸 신호로 전투가 시작됐다. 시체 기사들이 소리 없는 함성을 내지르며 샬릭에게 달려들었다.


보통 되살아난 시체라고 하면 움직임이 어색하다고 생각하는데 테레모의 시체 기사들은 달랐다. 그들은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음에도 생전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그건 테레모의 사령술이 극한에 달한 덕분이었다. 시체 기사가 되면 비정상적인 근력을 낼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힘과 기술이 더해진 공격은 상당히 위협적일 터였다.


“좀 하는데.”


그러나 샬릭은 여유가 넘쳤다. 그는 시체 기사의 공격을 가만히 보다가 빈틈을 노려 칼을 내질렀고 그것만으로 적 하나를 쓰러트렸다.


본래 칼에 심장을 찌르면 무슨 생물이든 일격에 죽는다. 그러나 시체 기사는 주인이 쓰러지기 전까지 무한정 부활하므로 바닥에 쓰러져도 곧장 다시 일어났다.


테레모는 이번에도 그러리라 여겼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샬릭의 칼에 찔린 시체 기사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순간 시체 기사의 몸에서 불사의 축복이 사라진 게 느껴졌다. 그럴 수가 있나? 성기사의 공격에 당한 게 아니고서야 대체 어찌?


테레모가 당황한 사이에 샬릭은 종횡무진으로 날뛰며 시체 기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이건 확실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샬릭은 뛰어난 전사이니 기사 열다섯을 상대로 이기는 건 가능할 테지만 시체 기사 열다섯을 상대로는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시체 기사는 아무리 쓰러트려도 무한정 다시 일어나니까. 사람은 거친 운동을 하면 지치는 법이고, 지치면 결국 쓰러지는 법이다.


그런데 저놈은 지치지도 않나? 열다섯이나 되는 적을 상대로 무거운 갑주를 입고 날뛰는데도 전혀 지쳐 보이지 않는다.


“이게 무슨······.”


테레모는 당황했으나 아직 놀랄 만한 일은 더 남아 있었다. 샬릭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따금 불길이 번쩍이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불길에 당한 시체 기사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고 불사의 축복까지 사라졌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정화의 불? 하지만 그건······.’


옛날부터 사람들은 불을 신성시 여겼다. 그 뜨거운 열기와 빛에 부정한 것을 태우고 악을 몰아내는 힘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뭔가를 신앙하면 정말 그러한 힘이 생기는 법이라 불은 정화의 능력을 얻었다. 물론 모든 불이 그런 건 아니고 일부 특수한 불만이 그런 힘을 가졌는데 소위 말하는 정화의 불이다.


테레모가 알기로 정화의 힘을 가진 불은 칼록의 성기사가 제 몸을 태웠을 때나 마법사의 기적 외엔 없다. 하나 더 있긴 하지만 그건······.


‘······그건 용의 불인데.’


설마 저 북부인이 용은 아닐 것 아닌가.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정이다. 차라리 샬릭이 정말 용을 죽인 용 사냥꾼이고, 그 심장을 먹어 용의 힘을 흡수했다는 게 더 말이 되는 소리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샬릭은 시체 기사 열셋을 쓰러트렸고 이제 남은 건 고작 둘에 불과했다.


그리고 테레모가 보기에 남은 시체 기사 둘은 샬릭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할 게 분명했다. 지금이라도 끼어들어야 하나? 하지만 그건 너무 체통 없는 짓이다. 제국공쯤 되면 자기 체면을 우선해야 할 때가 있다.


테레모는 초조함을 느끼면서도 얌전히 싸움을 지켜봤다. 시체 기사 하나가 또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저놈도 곧 죽겠군. 시체 기사 하나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자원이 들어가는데 영영 써먹지 못하게 됐으니 속이 쓰리다 못해 따끔거린다.


테레모가 한숨을 내뱉으며 손끝에 마력을 모았다. 조금 추하긴 해도 여기서 끝을 내야지. 그는 시체 기사와 싸우고 있는 샬릭을 향해 죽음의 기운을 쏘아냈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날아간 검붉은 번개는 시체 기사의 투구를 관통해 샬릭의 머리를 노렸다. 놈에게 투시 능력이라도 있는 게 아니면 이걸 반응할 수는 없으리라.


테레모는 이대로 샬릭이 죽길 바랐다. 그러나 기대는 항상 배신하는 법.


그저 팅 소리가 나는 걸 보면 샬릭이 죽기는커녕 고작 투구나 좀 건드린 모양이다. 과연 테레모의 생각대로 샬릭은 죽지 않았다. 죽음의 기운에 머리를 맞고 투구가 벗겨지긴 했지만 고작 그런 걸로는······.


“······너, 아니, 당신?”


투구가 벗겨진 샬릭의 얼굴을 본 테레모의 두 눈이 커졌다. 물론 이미 육신이 다 썩어 문드러진 탓에 그럴 순 없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정말 그랬을 것이다.


“봤나?”


샬릭은 잠깐 손으로 제 얼굴을 더듬다가 바닥에 떨어진 투구를 집었다. 툭툭 털어서 다시 머리에 쓰고선 말했다.


“봤느냐고.”


기세가 영 심상치 않다.


테레모는 가만히 생각했다. 그냥 간다고 할 때 보내줄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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