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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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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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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DUMMY

* * *


하늘이 흐려지는 듯하더니 곧 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무실에서 책을 보고 있던 시장은 고개를 돌려 창문을 쳐다봤다. 내리는 빗줄기가 제법 굵직했다.


“금방 그치진 않겠군.”


메이어스 경은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요. 근래 날이 가물었으니 잘된 일입니다. 비가 오니 더위도 좀 가시겠군요.”


“그래도 너무 내리진 말아야 할 텐데.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뭔가 문제가 생긴단 말이야.”


시장은 그 말을 하면서 다시금 창문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가 순간 빛이 번쩍하며 밝아졌다. 몇 초 뒤에 꽈르릉 소리가 뒤따랐는데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릴 만한 박력이 있었다.


확실히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날씨였다. 메이어스 경은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무 일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길 기원했다.


그러나 문제는 꼭 이런 날에 생긴다. 적어도 시장이 보고 있는 소설에선 그랬다.


“비가 오니 방이 어둡군. 초를 켜야······.”


시장이 촛대에 불을 밝히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꽈르릉! 귀가 멍해질 만큼 크게 우레가 울리는 듯하더니 갑작스레 박살 난 문이 날아와 책상에 꽂혔다.


까딱 잘못했으면 문에 맞아 그대로 즉사할 뻔했다. 그러나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놀랍기보다는 그냥 당황스럽기만 했다.


천둥 좀 쳤다고 문이 날아와 책상에 꽂힐 수가 있나? 물론 그럴 수는 없다. 그럼 누가 이런 짓을 했나?


메이어스 경이 생각하기에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한 놈뿐이다.


“샬릭!”


그 외침에 반응하듯 갑옷 입은 기사가 벼락과 함께 등장했다. 그가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빗방울이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제기랄, 북부인은 문을 열 줄 모르나? 왜 멀쩡한 문을 부수고 들어오냔 말이야?”


“문을 열 줄 모르냐니? 북부인을 무슨 문도 열 줄 모르는 야만인쯤으로 아는군. 조심하라고, 나야 지성인이니 이런 무례를 참지만 다른 북부인은 아닐 테니까.”


자기가 문 부수고 들어온 주제에 말만 번지르르하군. 메이어스 경은 능글맞게 헛소리를 지껄이는 샬릭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순 문은 변상하고 가게.”


“문을 좀 튼튼하게 만들지 그랬어. 그러면 나도 문을 부수지 않았을 텐데. 따지고 보면 나도 피해자지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지. 문 부순 값은 줄 테니 감사히 여기도록.”


메이어스 경은 더 말하기 싫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대신 시장이 말했다.


“자네 벌써 시킨 일을 다 끝내고 온 건가?”


“가서 경고만 하고 오면 되는 건데 오래 끌 필요 있나.”


“경고, 경고라······. 내 뜻을 확실히 전했는지 궁금하군.”


샬릭은 대답하는 대신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 가볍게 던졌다. 시장은 반사적으로 날아온 것을 붙잡아 물건을 확인했다.


“이건······.”


흰색의 조그마한 무언가가 세 개쯤 있다. 시장은 그게 뭔지 빤히 쳐다보다가 으악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던졌다.


그걸 본 샬릭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만하면 충분히 경고한 것 같은데. 몇 개 더 뽑아올 걸 그랬나?”


“···아니, 괜찮네. 그래, 확실히 이 정도면 충분한 경고가 됐겠군.”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어. 아니면 이 말고 팔다리를 뽑아올 걸 그랬나? 걔가 팔다리 하나쯤은 없어도 살겠더라고.”


지금 저 끔찍한 소리를 농담이라고 하는 건가? 시장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괜히 더 자극할 필요 없다네.”


“충분하다고 하니 나로선 아주 만족스럽군. 고객의 행복이 내 행복이거든. 그런데 영주 놈이 경고 아닌 경고를 하던데, 괜찮으려나 모르겠군?”


“경고라니?”


샬릭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뒤에 누가 있는 줄 알고 이러냐고 발악하던데. 잘은 모르겠는데 자기 주인이 엄청 대단한 사람인가 봐.”


“자기 주인? 혹시 제국공이 어쩌고 하던가?”


“그랬지 아마.”


그 말에 시장이 픽 웃었다.


“그럼 신경 쓸 필요 없네. 그놈이 그냥 지껄이는 소리일 뿐이니까.”


확신에 찬 어조였다. 샬릭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뭔 근거로?”


“제국공은 말이야, 바빠. 그것도 아주 바빠. 제국이 무너진 이후 제위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일곱 명 중 하나이니 당연히 바쁘겠지.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을 걸세. 그런데 이런 조그마한 영지에서 벌어진 다툼에 신경이나 쓰겠나? 내 장담하지. 아무 신경도 안 써. 놈이 정말 제국공의 부하인지 아닌지는 제쳐두고서, 제국공은 이곳의 다툼에 아무런 관심도 없을 걸세. 그러니 신경 안 써도 돼.”


시장이 그리 말하니 샬릭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제국공이 무서웠다면 애초부터 샬릭에게 의뢰를 하지도 않았을 터다.


“그러시다면야 나도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그럼 의뢰는 이걸로 끝인가?”


“가능하다면 이곳에 오래 머물면서 주기적으로 내게 도움을 줬으면 하네만, 그러긴 싫을 테지? 북부인은 자유로운 바람과 같아서 한곳에 머물지 않으니까 말이야.”


“바람은 돈으로 잡아둘 수 없지만 북부인은 돈 많이 주면 잡아둘 수 있지. 그런데 나는 몸값이 비싸서 그리 오래 잡아둘 수는 없을걸. 그러니 정말 필요할 때만 부르라고. 구면이니까 좀 싸게 해드리지.”


시장은 반쯤 장난으로 한 말이었지만 반쯤 진심이기도 했다. 북부인은 모두 전사지만 샬릭만큼 강한 자는 흔치 않으니까.


만약 샬릭이 아니스에 남는다면 트리온은 다시는 이곳을 넘보지 못할 텐데. 아쉽긴 하지만 그의 몸값을 감당하긴 어렵다. 당장 이번 의뢰만 해도 상당한 돈을 쓰지 않았나.


시장이 웃으며 말했다.


“좀 아쉽군. 자네만 한 실력자는 찾기 힘든데 말이야.”


“나도 아쉬워. 댁만큼 돈 잘 주는 의뢰인도 드물거든. 다들 처음 의뢰할 땐 간이든 쓸개든 다 내줄 것처럼 하다가 막상 일이 끝나면 돈을 안 주려고 한단 말이야. 그래서 가끔 돈 받으려고 고생을 좀 해.”


그 약간의 고생이라는 게 뭘 뜻하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시장은 다른 의뢰인들이 대체 뭔 자신감으로 보수를 안 주려고 했던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쨌건 덕분에 돈 좀 벌었군. 주머니가 두둑한 게 아주 마음에 들어. 남자의 자신감은 항상 주머니에서 나오는 법이지.”


샬릭이 주머니를 툭툭 건드리며 웃고 있으니 메이어스 경이 말했다.


“···이번에 번 돈으로 한동안은 놀고먹어도 되겠군? 유흥가에서 돈을 바닥에 버리는 게 아니라면 몇 달은 쓸 테니 말이야.”


그 말은 빈정거림에 가까웠다. 북부인은 대개 실력 있는 전사고 용병으로서 크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그들 중 큰 부자는 없는데 왜냐하면 돈을 버는 족족 술과 유흥에 전부 써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샬릭이 저만한 돈을 벌었다고 한들 저게 생산적인 일에 쓰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북부인이니까. 그것도 진짜 중의 진짜.


샬릭은 메이어스 경의 비꼼을 알아들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유흥에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럴 수야 없지. 나한테는 먹여야 할 입이 많거든.”


“먹여야 할 입이 많다니? 결혼해서 자식을 뒀나?”


“설마. 세상에 자기 발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사람도 있나? 난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런 짓은 안 해.”


그러니까 결혼은 자기 발에 족쇄를 채우는 일이라는 뜻인가? 너무나 솔직한 발언에 메이어스 경이 끙 소리를 냈다.


시장이 물었다.


“그럼 용병단이라도 이끌고 있나? 하기야 자네 정도의 실력이라면 거기서 단장을 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지.”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약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야. 그리고 난 무리를 짓기엔 너무 강하고.”


“그것참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군······.”


샬릭이 웃었다.


“뭔가 거창한 듯 말했지만 사실 별건 아니야. 난 그냥 이 돈을 후원에 쓸 뿐이야. 아이들 말이지. 그저 북부의 칼바람이 피할 곳이 필요할 뿐인 아이들.”


그 말에 시장은 물론이고 메이어스 경까지 뜻밖이라는 얼굴이 됐다. 돈 때문에 팔다리를 뽑아버리겠다는 협박을 하는 놈이 아이들을 위해 돈을 후원한다고?


“왜 그런 일을 하지?”


“왜 그런 일을 하냐니? 그럼 그 아이들이 추위 속에 얼어 죽게 그냥 두라는 건가? 잔인한 소리를 하시는군.”


“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아니야. 아이들을 돕는 건 어른의 의무지.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귀찮은 의무를 누가 기꺼워하겠나? 자기 자식조차 버리는 사람이 많아. 그런데 남의 자식을 키운다고?”


“키우는 건 아니고. 북부에는 고아원이 있고 거기에 돈을 후원할 뿐이야. 너희가 아는진 모르겠는데 북부에는 고아가 많다. 용 사냥 때문이지.”


샬릭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난 용 사냥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나부터가 용 사냥꾼인걸. 그러나 세상엔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법이야. 위대한 죽음에 미쳐 자기 자식을 개죽음으로 내몰진 말아야지.”


샬릭은 지금 북부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말하고 있었다. 시장과 메이어스 경도 그걸 알기에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도움을 받은 아이는 도움을 주는 어른으로 크는 법이야. 나는 그저 돈을 후원하는 것 말곤 못 했지만 그 아이들이라면 더 나은 방법으로 세상을 바꿀지도 모르지. 아이라는 건 가능성의 생물이거든.”


거기까지 말하고서 샬릭이 어울리지 않게 멋쩍어했다.


“잘난 듯 말했지만 그냥 돈 좀 보내고 으스댈 뿐이야. 책임은 지기 싫은 주제에 착한 척은 하고 싶으니 끔찍한 위선이지.”


“누가 그걸 비난할 수 있겠나? 세상엔 그조차 안 하는 사람이 많은데.”


시장의 말에 샬릭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더 말하기 껄끄럽다는 듯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 했다.


“말이 길었군. 그럼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 하자고.”


샬릭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시장이 말했다.


“자네는 북부가 바뀌길 원하는군.”


“글쎄. 거기서 살아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걸. 살기 힘든 곳이잖나.”


“자네가 고아들을 후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 그들이 변혁의 초석이 되길 원해서군.”


“원래 힘든 일은 남 시키는 게 제일이거든.”


“왜 직접 하지 않지? 자네라면 가능할 법도 같은데.”


“뭘?”


시장이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작금의 제국공이라는 건 본래 제국이 건재하던 시절 각지를 다스리던 대영주였으나 북부에는 그런 존재가 없었지. 그들의 긴 역사 속에서 왕이라고는 오직 한 명뿐이었어. 처음으로 북부를 통일했던 첫 왕 단 한 명뿐. 그가 죽고 나서 북부는 다시 분열됐고 지금까지 주인 없는 땅으로 남았다고 하지.”


샬릭은 잠자코 듣고 있었고 시장이 말을 이었다.


“만약 자네가 정말 북부가 바뀌길 원한다면 한 번 도전해보는 게 어떤가?”


“도전하다니, 뭘?”


시장이 알면서 뭘 묻느냐는 듯 답했다.


“뭐긴, 북부의 왕 말이야. 북부인은 오직 위대한 전사만을 왕으로서 섬긴다던데, 자네 정도 실력이라면 가능하지 않겠나? 자네보다 더 강한 북부인이 또 있을지는 몰라도 자네만큼 북부를 생각하는 북부인은 또 없을 것 같은데. 왕은 그런 사람이 돼야 해.”


샬릭은 곤란한 질문을 들은 것처럼 잠깐 침묵했다. 그러나 오래 그러고 있진 않았다. 그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거 하기 싫어서 이러고 다니는 건데, 내가 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샬릭은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시장이 메이어스 경에게 물었다.


“방금 저 말 어떻게 생각하나?”


“그냥 문 부순 값 안 주고 가려고 헛소리 하는 것 같은데요.”


시장이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를 보았다. 어느새 저택을 빠져나간 샬릭이 비를 맞으며 도망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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