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세계관이 조금 빡빡해서 골머릴 썩히면서 세계관도 작성하고 글도 썼습니다. 쓰다 보니까 뒷내용이 더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또다른 소설을 구상했습니다.
1편 썼습니다. 어째 원래 소설은 약간 그렇고 그런 부분이 있어도 판타지였는데 70년 뒤를 다루는 소설은 리얼 전쟁 소설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건 신경 안 씁니다.
그런데 이런 요청을 받았습니다.
네오(본인)야 네오야. 너 설정 빌려서 글 쓰면 안 되냐? 그 [삐───]이랑 [삐─]인지 [삐─]인지에 나오는 거. 대략 1970~80년대 풍 소설을 쓰고 싶어서.
나 혼자 세계관 만들고 나 혼자 낄낄대면서 글 쓰는 건 엄청나게 익숙한데, 그 세계관을 타인이랑 공유하다니. 난생 처음이야.
그래도 매몰차게 거절은 못하겠더랍니다. 그래서 승낙했어요.
그러자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습니다. 혼자 쓸 때는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하니까, 그다지 압박감이랄 게 없었는데, 그걸 타인과 공유하기 시작하니 '내가 잘 해야 돼.'라는 야릇미묘한 느낌을 받은 겁니다.
답답함에 담배를 피우고 싶어졌지만 저는 미성년자였습니다. 술도 마시고 싶어졌지만 저한테는 안 팔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지금도 세계관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후, 언어, 화폐, 도시, 무기와 장비, 군 편제, 정부 체제… 이런 "이름만 정해두면 되는." 것들이었지만, 지금은 온갖 지형지물에 이름을 붙이고, 그로 인한 파급효과도 적어두고 있습니다.
산맥이 있으면 분수령을 경계로 기후가 달라지고, 문화가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걸 모두 드러내며 쓰자니 장난 아니더구만요.
그래도 만족스럽긴 합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이 진행될수록 내가 만든 세계가, 나의 빈약한 상상력으로 창조한 세계가 더욱 완벽한 모습을 띠게 된다는 것이, 그토록 고양감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비너스가 남자에게 주는 흥분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무언가─── 아, 이것이 창조의 기쁨이구나.
그것을 알게 되었던 하루입니다. 서점에 여섯 시간 동안 박혀 있던 건 없던 일 치고, 귀중한 깨달음을 얻은 하루입니다.
결론: 소설 스케일이 커지면 몸과 마음이 고생한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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