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동물이 나오는 것은 모두 현실성이 없습니다.
외계인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마법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현실성이 있다고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픽션에는 현실성이 결코 필수요소가 아닙니다.
신이 나오건, 마법이 나오건, 말하는 동물이 나오건, 외계인, 초능력자가나오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현실성 따위는 무시해도 됩니다.
문제는 개연성입니다.
현실에는 개연성이 필요치 않지만, 픽션에는 개연성이 필수입니다.
예를 들어 연쇄 살인범이 길가다가 뜬금없이 차에 치어 죽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현실성 충만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결코 좋은 픽션이 될 수 없습니다.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지요.
개연성이라는 것은 영어로는 Probability이며, 이것은 가능성, 확률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소설에는 확률이 높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적어도 독자들이 의식할 수 있는 수준의 확률 20~30%의 가능성이 있는 전개가 필수라는 뜻이 됩니다.
연쇄 살인범이 차에 치어 죽으려면, 수사관을 보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 죽었거나, 마약에 취해서 겁없이 길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꽤 높은 확률로 차에 치어 죽을 수 있는 상황을 전개하면, 독자들이 그것을 개연성이 있다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진중권씨가 말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계신이라는 표현은...
개연성을 무시하기로 유명했던 소설가를 비꼬는 표현입니다.
이 사람의 소설은 마지막에 가면 갑자기 하늘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타나서 그냥 해결해 버렸기 때문이지요.
물론 개연성이라는 것이 모든 장면에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드래곤 볼에서 프리져가 지구에 왔는데 갑자기 나타난 트랭크스가 죽여버렸다는 것은 개연성이 없다고 할 수 있지요.(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수준인데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건의 도입부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스토리의 중심 전개에는 개연성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법이지요.
가끔 독자나 작가분들 가운데에도 리얼리티와 프라버빌리티, 현실성과 개연성을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두 가지는 확실히 분리해서 생각하시는게 좋습니다.
갑자기 로또가 맞은 주인공의 생활을 그린 이야기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주인공이 갑자기 로또에 맞아서 해결되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짐캐리가 등장한 올마이티라는 영화가 있지요.
그가 하느님이 되는 것은 우연이지만, 그가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책임의 무거움을 느끼는 것은 꽤 가능성이 높은(어느정도는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이야기는 현실성은 없으나 개연성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설정이 황당하다고 무조건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현실성(리얼리티)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픽션이 되는것도 아닙니다.
시인 바이런의 말처럼 현실은 픽션보다 기이한 법입니다. 현실에 벌어지는 일들은 개연성이 없지만, 좋은 이야기에는 개연성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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