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을 읽다가 여자주인공 현판은 왜 폭망하는가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네요.
그래서 저도 고민을 해보니 몇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폭망이란 극단적인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자주인공 현대판타지가 왜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할까? 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한담글에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다셔서 겹치는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름 제 생각을 써보려고 합니다.
1. 여성주인공을 매력적으로 창조해내기가 너무 힘들다.
일단 작가의 성별을 보면서 왜 어려운지 생각해 보죠.
남성 작가는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많은 고뇌에 빠지게 됩니다. 정말 엄청난 대작가분이시더라도 주인공에 작가의 가치관이나 언행이 조금씩 묻어나기 마련이죠. 하물며 새로 작가에 도전하는 새내기 분들이나, 아 차라리 저거보단 내가 쓰는 게 더 낫겠다 하고 달려들어 보는 분들은 더 심합니다. 이게 여자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이상한 주인공이 형성될 기회가 많습니다. 미치도록 거칠고 폭력적이거나, 아니면 너무 인공미가 물씬 풍기는 성형미인 캐릭터가 나온다랄까요?
그렇게 꾸역꾸역 써가다 보면 다른 독자의 시선이 문제는 둘째치고, 작가 스스로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 지금 내가 뭘 쓰고 있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조기에 물러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여성 작가는 어떨까요?
여성 작가들이라고 해서 주인공 및 캐릭터가 번듯하게 잘 나온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여성을 잘 이해하고 계시니 자연스러움은 살릴 수 있겠지만, 자연스럽기만 한다고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건 아닐 테니까요.
오히려 여성 작가분들이 더욱 호불호가 강력해지는 캐릭터를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트와일라잇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트와일라잇의 주인공 에드워드 역을 맡은 <로버트 패틴슨>은 인터뷰 때 여러 차례 딥빡침을 온몸으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사진출처 : 뇌이버 이미지검색)
뭐...한 사람의 반응만 보고선 모든 독자의 의견을 대변하기는 뭐하지만, 제가 군대 있을 때에 수많은 군인 아저씨들이 이쁜 벨라라는 캐릭터를 보고선 환호하기는 커녕 ‘헤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이쁘긴 한데...지조가 없다. 고무신 거꾸로 신을 것 같다.’ 이런 의견이 지배적이었드랬죠.
전역 후에도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좋다는 남자들은 제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꽤 재밌게 읽어서 브리태너를 구입하면 주는 사은품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열쇠고리로 쓰다가 잃어버렸지만 ㅠㅠ)
트와일라잇은 객관적으로 봐도 원작을 잘 쓰기도 했고, 번역 및 마케팅도 뛰어났고, 여러 측면에서 성공을 거둔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티가 꽤 많죠.
트와일라잇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 작가가 주인공 및 다른 캐릭터들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도 수많은 문제가 따라옵니다.
남성 주인공이 이 여자 저 여자 넘어트리고 다니는 걸 극히 싫어하는 독자들이 있는 것처럼, 여성 주인공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수많은 남성 캐릭터들을 모여들게 만드는 그런 소재를 싫어하는 독자들도 분명 많습니다.
또한 동성간의 사랑을 다루는 소재에서도 호불호가 마구 갈립니다.
그리고 여성 작가가 썼다고 해서 마냥 로맨스만 줄창 나오느냐, 그걸 의식하면서 쓰다가 오히려 허구언날 싸움질만 하느냐, 이런 것에도 독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하죠.
결론적으로 여성 작가나 남성 작가나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는 일은 험한 가시밭길을 걸을 각오를 하고 써야합니다. 인기를 끌어모을 매력적인 여성주인공을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인공 하나로 글의 질이 판가름 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반적으로 제일 많은 영향을 끼치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죠.
뭐, 이러니 저러니 해서 결국 여성주인공을 잘 뽑아냈다고 가정하고 넘어가겠습니다.
2. 현대판타지는 도대체 무슨 장르여야 하지?
현대에서 판타지를 뽑아낸다. 뭐가 떠오르시나요?
여기서 다시 한 번 거대한 벽에 부딪치게 된다고 봅니다.
시대 배경이 현대라고 해서 죄다 현대판타지라고 부를 수 있느냐?
아니면 등장인물이 모두 현대의 인물들을 기반으로 창조된 캐릭터들이라고 다 현대판타지인가?
물론 판타지라는 말이 들어간 만큼 정확한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라는 타이틀이 앞에 붙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경계선은 존재하는 법이지요. 이렇듯 애매모호한 범주 내에서 좋은 소재를 뽑아내거나 발상해낸다는 게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장르의 애매함에 발목이 붙잡혀 격추되곤 하죠. 필자 또한 초능력을 소재로 글을 쓰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밑도끝도없이 말그대로 판타지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1번과 2번의 문제가 합체를 하면 골치가 po아파wer집니다.
조폭여왕? 초능력여고생?(셀프디스!) 마법아줌마? 무림고수여대통령?
으어어...시스터 다메요가 절로 나오네요.
대부분의 독자들이 좋아할만한 여자주인공이 현대판타지란 울타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뛰어놀게 만드는 건 제곱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이걸 고뇌하며 쓰다가 또 한 번 선호작품을 눌러주시는 분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갑니다.
3. 누가 내 글을 봐줄까?
정말 작정을 하고
“ㅈ까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이렇게 쓰신다면야 3번 항목은 상관없겠지만...
아무래도 작가는 자신의 글을 봐줄 독자를 생각하며 써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독자를 위한 배려죠.
이와 동일선상에서 자신의 글을 봐줄 독자를 생각해야하는데, 그 독자가 적으면 자연스레 작가는 힘이 빠집니다. 앞서 1번과 2번에서 호불호가 마구 갈렸음을 깨닫고, ‘불호'를 버리고 ’호'를 밀어붙이려고 한쪽 성향으로 작품을 몰아가기 시작하면 그때야말로 본격적인 균열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이른바 ‘매니악'하거나 ’양산형'이 되는 갈림길이 여기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의견이고, 많이 들어왔던 내용입니다.
4번부터는 조금 제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해 보겠습니다.
4. 여성주인공을 함부로 굴리게 된다면...
많은 소설들의 남자주인공들은 수많은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죽다 살아나는 건 기본이고, 성 불구가 되었다가 치료되기도 하고, 인간쓰레기가 되어 흑역사를 만들기도 하고, 인간이 아닌 종족과 사랑을 나누기도 합니다.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그것이 영 좋지 못한 곳일지라도!)
그런데 여자주인공이 다른 종족의 아이를 낳거나, 눈 하나가 없다거나, 사람들을 강간하고 다닌다거나... 이런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남주가 그런건 괜찮냐고요? 물론 싫습니다. 둘 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싫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으로 둘 다 싫다는 것이고,
남자주인공을 악인으로 만들어서 세상에 내보내는 작가님들은 꽤 계십니다. 주인공을 악인이나 에러가 있는 인간으로 설정한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거리낌이 있느냐 없느냐를 묻고 싶은 겁니다.
필자의 경우, 주인공을 너무 심하게 굴리고 망가지게 만드는 건 싫습니다만, 정말 독한 맘을 먹으면 괴랄한 남성캐릭터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보고 지금 쓰고 있는 작품에 나오는 여자주인공을 희대의 마인이나 쓰레기, 불구로 만들라고 하면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겠습니다.
인식의 차이이자 이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남성 작가분들은 본능적으로 여자주인공을 아껴주고 행복하게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기 마련입니다. 예외적으로 독하게 작정하고 여자주인공을 막 굴리는 작가에겐, 같은 남성 독자들이 ‘너 변태냐'라고 비난을 보내기도 하죠.
결코 성차별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자가 여자를 아껴주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운 현상 때문에 작가의 고뇌가 시작된다는 소립니다.
그렇다고 여성 작가가 여자주인공을 잘 굴리느냐? 그것도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리저리 생채기가 나긴 하지만, 결국엔 욕망을 충족시키며 밝은 결말로 나아가는 여자주인공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막상 그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작가는 생채기 수준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부분에서 고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인관계에서, 가치관에서, 사회의 시선에서... 나름 혹독하게 굴린다고 굴렸는데 독자들이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더군요.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집착을 부각시켜서 악인에 가까운 매력적인 여성캐릭터를 만들었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보는 사람들은 ‘히익'하면서 꺼려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선을 지키며 굴렸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이 보기엔 선을 넘은 경우죠.
이렇듯 여성 작가나 남성 작가나 여자주인공을 혹독하게 굴리거나 독특하고 사악한 인격을 부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판타지라는 단어 앞에 ‘현대'가 붙기에 생기는 제약이죠.
현대라는 세계에서 펜이 휘날리는 만큼, 대중의 인식도 현대의 인식에 어느 정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시련과 고통이 있어야 훗날의 행복이 배가 되는 것인데, 그 시련과 고통의 정도를 책정하기가 힘듭니다. 어느 정도로 정해야 사람들이 눈살 찌푸러지지 않으며 볼 수 있나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여자주인공은 그만큼 민감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작가는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받게 되며, 자신이 펼치고자 했던 현대판타지의 범주가 조금씩 좁아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5. 나 글 쓰고 있어!
이건 좀 개인적인 일화입니다만, 제 지인에게 여자주인공인 습작을 하나 보여줬다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남성 작가가 여자주인공을 썼다고 이상하게 바라보다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라고 물어봤는데, 주인공은 작가의 내면이 표출되는 것 아니냐고 하시더군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맞는 말은 아닙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배제하고, 창조적으로 새로운 주인공을 탄생시킬 수도 있는 일이죠.
하지만 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주인공의 성향을 작가와 연결시키며 바라보곤 했습니다. 저 또한 완강히 부정할 수는 없더군요. 1번에서 말했듯이, 저 또한 주인공에 작가의 성향이 어느 정도는 묻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숨덕의 심정이랄까요?
오타쿠란 말을 듣고 상처를 입어 남몰래 조용히 취향을 이어나가는 그런 것 말이죠.
저도 그 때의 상처가 잊혀지지 않아서 제 주변 분들에게 제 글을 보여준 적은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입니다.
물론 제 글을 사랑하고, 아끼고,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나 과거가 생각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부모님께 저 이런 글 쓰고 있어요!라고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습니다.
여성주인공을 쓰는 작가의 고뇌는 이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생각하는 <여자주인공 현대판타지가 많은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음, 많은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는 좀 그런가요? 엄연히 성공한 작품들도 존재하니... 다른 케이스에 비해 명작이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적당할까요...
뭐 아무튼,
정말 재밌는 여성주인공 현대판타지를 쓰고싶다! 하는 생각에 무작정 그 세계로 뛰어든 게 바로 필자이기에, 이렇게 끄적여 보았습니다. 실력도 부족한 판에 정말 어렵고 오묘한 세계로 뛰어들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허허...
개인적인 생각이니 그냥 ‘너는 그렇구나...’라는 생각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ㅠㅠ
여주현판을 꿈꾸시는 작가님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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