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글을 쓰기 전에 본문은 제 독단과 편견으로 쓰여지는 것이라고 공언을 해두겠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분들과 의견이 틀릴 수도 있으며, 세간의 인식과 다를 수도 있고, 애초에 기본적인 정의(定義) 틀려먹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도 저는 아래에 쓰는 바와 같이 생각한다는 점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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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 세상에서 사용되어지는 언어 중에는 '사전적인 의미'와 '실사용 의미(어감)'가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면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아예 없을 거라고 단언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어쨌든 그에 관해서 걸리는 점이 있어서 이 글을 쓰는 것인데, 여기서 제가 화두로 들이미는 것이 바로 '옳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이 둘의 의미가 비슷한 듯 보여도 엄연히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독단과 편견에 들어 나누어 보자면
1. 옳은 일 - 도덕, 윤리, 양심, 사회통념, 대중적인 상식 등을 토대로 한 일반적으로 선하다고 여겨지는 일. 비슷한 관련어로는 [대의명분].
2. 해야만 하는 일 - 엄밀히 따지면 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 기본적으로 체감 기준으로 커다란 패널티를 감수해야만 하는 일.
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그에 관련해서 의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즉, 말장난일 뿐이지 '옳은 일'이나 '해야만 하는 일'이나 서로 똑같은 의미라는 의견을 들었던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발단이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의견을 내어주신 분과 더불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서도 저 '옳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은 같은 것이라고, 혹은 저의 분류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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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을 죽인다'라는 것은 어느 것을 들어도 기본적으로 '옳은 일'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살인이란 인간사회에 있어서 달리 비교할 것이 드문 대죄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한 가정의 가장이라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떤 정체모를 자가 자신의 가족들을 납치하고, 자기 요구대로 어떤 이를 죽이지 않으면 대신 네 가족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제 3의 선택, 소설이나 만화 속의 주인공처럼 기지를 발휘해서 협박에 굴하지 않고 가족들을 구해내 해피엔드! 같은 선택지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아두겠습니다.
즉, 중요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 예를 든 불쌍한 가장은 '절대' 아래 선택지 외에는 고를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1. 협박범의 요구를 들어주고(사람을 죽이고), 가족을 구한다.
2. 협박법의 요구를 무시하고(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가족이 죽는 것을 방관한다.
그러니까 혹여 그래도 제 3의 선택지(기지로 협박에 굴하지 않고, 가족을 구하려 시도한다.)를 선택한다면 그건 결과적으로 2번 선택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가족을 구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므로 여기서 이 가장이 '가족을 구하는 것'을 절대명제로 하고 있다면, 여기서 협박범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해야만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옳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무슨 이유가 있던 간에 그는 알지도 못하는 죄 없는 사람을 죽이려 하게 된다는 것이니까요.
물론 여기서도 1번 선택지가 '옳은 일'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긴 할 것입니다.
가장이란 결국 가족의 안전이 최우선이고, 그들을 구하는 일은 옳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은 옳은 것이라는 논법을 펼친다면 말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싫어지는 논법이지만요. 저런 논법을 펼치는 시점에서 '살인'이라는 분명 옳지 않을 일을 정당화하며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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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예를 든 것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런 극단적인 상황이기에 흔지 않은 일이다, 흔지 않은 일이기에 저런 것까지 포함해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라는 의견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약간 덜 극단적인, 비교적 현실적인 부분으로도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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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예시의 주체가 되는 것은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이 가장은 나이가 대략 50줄이고, 병든 아내와 이제 막 고3이 된 자식도 있습니다.
병든 아내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몸이 약해서 짧은 주기로 특정한 약을 꼬박꼬박 먹어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며, 그 특정한 약은 매우 비싼 값을 지불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고3인 자식의 경우에는 희망직종이 의사인데 성적이 매우 우수하고, 내신도 좋아서 이대로만 가면 그 꿈을 이룰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가장이 다니는 회사가 불황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서 매우 극단적인 비리행위를 저지르기로 합니다.
그리고 회사의 사장은 이 가장을 포함한 회사 사람들에게 절대 이 일에 대해 외부에 함구할 것을 다짐시켰습니다.
만약 이대로 회사 모두가 문제가 되는 비리행위를 함구하고 일을 진행하면 회사는 다시 살아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과 관련해서 큰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 가장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회사의 비리행위를 대중에게 폭로하는 것은 '옳은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비리행위가 사전에 폭로되면 가장이 다니는 회사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망하기도 전에 퇴직금도 없이 가장은 불명예퇴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갑자기 퇴직금도 없이 일자리를 잃은 가장은 병든 아내에게 약을 살 돈도 여의치 않을 것이고, 고3인 자식을 원하는 대학에 보내줄 여력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십중팔구 그의 자식은 원하는 대학지망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땅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비리행위를 폭로한 탓에 동종업계에서는 블랙리스트로 찍힌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일자리를 찾자니 이미 나이가 50줄이라 여의치도 않고, 장사할 수완이나 밑천도 없으며,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급여가 짜서 도저히 원하는 지금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뭔가 운 좋게 되서 다 잘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럴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습니다. 결과적으로 가장이 회사의 비리행위를 폭로한다는 것은 자신을 포함한 자신의 가정을 파탄시킨다는 패널티와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족을 위한다'라는 것을 최우선의 절대명제로 삼는다면 '비리행위를 묵인한다.'는 '해야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과연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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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저는 '옳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것에서 제가 간과한 것이나 넘겨집은 것 또는 폭론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점이 있다면 무작정 불평만 하실 것이 아니라 제대로 집어서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1 - 제가 이런 걸을 쓰게 된 것은 전 글인 ‘옳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의 차이’ 에서 흰코요테님께서 이 점에 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으셨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신다면 제 답변에 어떻게 생각하실 모르겠습니다만, 최대한 성의 있게 답변하려 노력했다는 점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덤으로 전 글에서 제가 내놓았던 소재 예를 보고 어떤 것이 ‘옳은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인지에 대한 인식이 순수하게 궁금합니다. 이번 본문를 읽고, 그럼에도 전글에 한해서라도 둘이 서로 같다는 점에 변함이 없으시다면 과연 어떤 결론에 도달하셨던 것일지?
PS 2 - 전글도 포함해서 제 글은 아마 가벼운 편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 불쾌하다는 반응도 있으신 거 같습니다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다는 답글에는 성의있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흔히 비난, 비판, 반론을 모두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들을 적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혹은 그저 욕하고 싶으니까 욕하고 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기본적으로 제 쪽에서 사절입니다.
제가 쓴 본문의 내용에 불쾌함을 가질 수도 있고, 반론할 말이 없으신 것도 아닐테지만 만약 답글로 본문을 부정하려 하신다면 최소한 자신이 쓰려는 답글이 비판이나 반론인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적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을 제대로 읽고, 생각을 거듭해 자기 나름의 논리를 펼치는 것에는 설령 제 의견과 반대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글을 제대로 읽기는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발언에 무턱대고 하고 보는 헐뜯기는 좋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것은 상대의 품성만 의심될 뿐, 읽어봤자 하등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악만 되는 글들이니까요. 한담란이란 쓴 글을 통해 서로 생각을 공요하거나 같이 생각해 발전해나가고자 쓰는 거지, 무차별사격마냥 자신의 화풀이나 기분풀이하는 쓰레기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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