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도가는 대표적인 사상이 무위자연 및 그에 비슷한 사상인데..
불가는 먼가여?
유교는 머고?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분 계신가여?
먼가 무위자연 마냥 내세울 수 있는 사상이나 문구가 심히 궁금하네여!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보통 도가는 대표적인 사상이 무위자연 및 그에 비슷한 사상인데..
불가는 먼가여?
유교는 머고?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분 계신가여?
먼가 무위자연 마냥 내세울 수 있는 사상이나 문구가 심히 궁금하네여!
오해하고 계신 게 있을까봐 글을 남깁니다.
소승불교가 소승불교로 불리게 된 이유는 대승불교의 출현으로 부터입니다.
부처의 입적 후에 '정통성'이 문제가 됩니다. 누가 부처의 가르침을 제일 잘 받았느냐는 문제인데,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18~20개 되는 부파가 나옵니다.
이를 '부파 불교' 시대라고 합니다. 이때, 부처의 가르침을 정립하는 시기가 되는데요. 가르침을 정립하는 동안 대중에게서 멀어집니다. 이에 반성하여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위로는 깨달음을 아래로는 중생을 조화롭게 한다는 말로 '대승 불교'가 나옵니다. 이 대승은 큰 수레에 많은 중생을 담겠다고 말하는 데, '소승'이 중생의 구제에 신경쓰지 않았다고 폄하하는 것입니다. 애초에 부처의 가르침이 자비인데 대중의 구제에 힘쓰지 않았다라는 것이 말이 안 됩니다.
소승과 대승의 차이는 '기도' 인정 유무입니다.
부처는 '주술'을 말하지 않습니다. 당시, 힌두교인들이 강물에 몸을 씻는 정화의식을 하는데, 부처는 이에 "강물이 무슨 소용이랴"라고 비판합니다. 만약, 정화가 되면.. 강물에 있는 물고기는 윤회에서 벗어나고도 남았겠죠. 아무튼 대승 불교에는 '이타 정신'이 중심되는 회향 사상이 나타납니다. 이 회향은 공덕을 쌓으면 다른 이들을 위해 쓰이길 바란다는 뜻인데, 일종의 주문이죠. 그래서 대중적으로 중생의 죄를 사하게 되는 업보가 해소가 되는 것이죠.
부처는 입적하면서 자신의 우상화를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자등명 법등명.
스스로 등불을 밝히고 법 (부처가 내리친 가르침)으로서 밝히라는 말을 남깁니다.
그리고 부처는 무아를 말합니다. 자아, 고정적 실체가 없다고 말하죠. 하지만 대승 불교로 들어오게 되면서 (불교는 인도에서 나왔습니다.) 이상적 인간상을 보살을 제시합니다.
일체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는 중생이 불성이 있다고 말을 하게 되는데요. 이는 대중에게 널리 전파되어야 하다보니, 이러한 요소를 지니게 된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내 안에 부처있다"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뭐... 대승불교의 평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부처의 가르침을 확대해서 새로운 신앙으로 이끌어 냈다는 평도 있구요. 그리고 대승 불교로 넘어오면서, 대승 불교에서 보이는 마인드를 좀 더 보여주기 위해 경전을 새롭게 쓰고, 부처는 무아를 말했는데 중생이 불성이 있다고 말하면 안 맞아서... 대승비불설 그러니까 대승은 부처가 아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부처가 소승 불교에서는 신이 아니지만 신격화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대승불교로 넘어오면서 부처가 위대한 스승에서 구원자로서의 부처로 신격화됩니다. 이는 힌두교로부터 영향도 받고 박티라는 신애 사상이 유입되면서 신격화가 드러납니다.
동양의 '종교'와 서양의 '종교'는 의미가 다릅니다.
한쪽은 스승을 모신다는 의미입니다.
유교, 불교, 도교는 모두 사실 스승을 모시는 종교인데, 이게 지방 신앙등과 결합하여 '신격화'된 사람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유교쪽이 그런건 가장 약합니다.
서양의 '종교'는 영어로는 릴리브, 아마 믿음이라는 조사와 뭐가 합쳐진 것으로...
가르침을 받는 의미가 아니고 '믿음'을 갖는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무협에서 사용되는 유교/불교/도교의 가르침은
도교에서는 무위자연...
그러한 바를 그러하게 하라.
불교는 깨달음...
집착에서 벗어나 고통을 잊고 경지에 오르기...(소림사가 소승불교 쪽일겁니다.)
유교는 인의예지...
사람과 사람의 신뢰와 약간은 법가적 영향도 받아서 군신과의 관계등도... 그러나 주로 사람의 신뢰가 주가 될겁니다.
후대 유교는 물론 좀 변합니다. 양명학 이후...
종교로서의 성격을 묻는 것인지,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묻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모두를 포괄해서 말한다면
불가에서는 부처의 가르침 '연기'에서 모든 논의가 시작됩니다. '공'도 이 의미에서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연기는 여러 조건과 원인들의 우연적인 만남입니다. 어떤 결과를 생각했을 때 원인이 없다면 결과는 발생하지 않겠죠. 즉, 이 연기는 관계적입니다. 어떠한 것도 독립성을 지닌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이 없는, 즉, 고정적인 실체로서 주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고정성이 없으니 모든 것이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이에, 부처는 삼법인을 말합니다. 제법무아(고정적인 실체가 없고, 제행무상 (모든 것이 변화하는데), 일체개고 (여기에 집착하려 드니 괴로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네 가지의 진리라는 것이 있는데요. 사성제로서 고집멸도가 나타납니다. 괴로움을 멸하게 되면 '해탈'로 주어진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유가에서는 사람의 '본성'에 대해 다룹니다. 인의예지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불가와 차이점이라면 유가에서는 사회적 시스템면에서 인간의 본성을 봅니다. 이 유가에서 다루는 내용은 후에 성리학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 성리학은 당시 중국에 성행하던 불교 세계관에 대항하여불교 세계관을 따옵니다. 이는, 우주와 사람을 관통하는 존천리 거인욕이라는 명제로 나타납니다.
인은 측은지심입니다. 우물 가에 있는 아이를 바라 볼 때 걱정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입니다.
의는 수오지심입니다. 부끄러운 일을 했을 때 부끄러운 마음을 깨닫는 것이고,
예는 사양지심입니다. 이는 겸손하면 사양할줄 안다는 것입니다.
지는 시비지심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다는 것인데요.
대체적으로 사람이 해야할 도리에 대해서 많이 탐구하다 보니, '역할'에 대해서 언급하죠. 임금과 신하와의 관계 가정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등등. 공자는 이에 '군군신신부부자자'라고 말하죠.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하는...
불가에서는 마음적인 것에 주로 치중했다면, 유가에서는 사람이 해야할 도리 사회와 관계시켜서 생각합니다.
도가가 무위자연이라면 불교는 글자 그대로 인간존중과 평등입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반영되었느냐는 차치하고요. 인간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차별하지 말아라를 제일 원리로 내세웁니다. 유학은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열심히 천도(천명, 천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기본이라고 보입니다. 그 천도가 인간 세상에 구현되거나 따라야 할 것이 仁입니다. 仁을 쉽게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禮입니다. 그런데 그 예가 오히려 형식화되어서 非仁이 되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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