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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이 금지된 세계의 플레이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N.J.
작품등록일 :
2021.07.27 23:54
최근연재일 :
2021.08.14 19:05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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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수 :
107,539

작성
21.07.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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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민속촌에서 생긴 일 #2

DUMMY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헬멧의 덮개에 페인트칠해서 스스로 시야를 줄인 이 멍청한 여자를 동료로 삼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뭐가 있을까? 어쩌면 능력을 얻었을 때부터 저런 외형이었을 수도 있으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긴 하겠지만, 글쎄.

나로서는 관유가 왜 이 여자를 동료로 삼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자기소개를 했으니 웬 놈들이냐는 이딴 질문을 해도 되겠지?”

“저희는 VR 길드에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도움?”


나를 노려보고 있던 해골이 고개를 돌려 관유를 쳐다봤다.


“우리에게 도움을?”

“예. 고사양 카메라를 빌리고 싶습니다.”


카메라? DLPG의 심기에 거슬리는 일을 하는 데 카메라가 필요하다고? 최신형 폭탄이나 해독제가 없는 독, 바이러스 따위가 아니라?


“어느 정도 사양을 원하는데?”

“백 미터가 넘는 거리에서도 확대했을 때 피사체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를 원합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를 계속하지.”


헬멧 덮개가 열리고 그녀가 시가를 입에서 떼어냈다. 그러자 그녀가 입고 있던 육중한 갑옷이 사라졌다. 그녀는 워커에 짙은 갈색 멜빵, 흰 티셔츠 차림이었다.


“따라와.”


엄지와 검지로 시가의 타는 부분을 비벼서 끈 그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학과 구름이 그려져 있는 병풍의 앞에 놓인 한 명이 업무를 볼 정도의 크기인 책상을 건드렸다. 그러자 책상이 옆으로 밀리며 숨겨져 있던 지하로 향하는 통로를 드러냈다.


방법이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VR 길드는 아마···.


“먼저 내려가. 나는 입구를 원래대로 되돌려야 하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관유를 먼저 내려보냈다. 그리고 그의 뒤에 바짝 붙어 내려가며 영웅의 서를 소환해 두었다. 앞, 뒤에서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어이, 후크.”


입구를 되돌리고 내 뒤에 붙은 사라 레이너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을 걸어왔다.


“뭐지.”

“근데 너 진짜 왜 탈옥한 거냐?”

“···거기서 언제까지 갇혀 있을 수는 없으니까.”

“왜?”


뭐?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녀는 자신이 뱉은 질문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정도면 교도소에서 대우를 잘해 줄 거 아니야. 굳이 탈옥해서 피곤하게 살 이유가 있어?”

“그러는 너는 언제부터 DLPG에 협력하고 있었지?”


굳이 영웅의 서를 펼쳐 능력을 쓸 것도 없었다. 그녀의 경직된 얼굴은 내 질문에 너무나도 솔직하게 답을 해주고 있었으니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모르긴. 너무 티 나게 손을 바지 주머니로 향하고 있잖아. 라이터라도 꺼내서 시가에 불을 붙일 셈인가?


“모른다면 됐다. 이걸로 네가 여태껏 지껄인 개소리는 없던 걸로 하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주제에 너무 건방진 거 아닌가?”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더 자극했다가는 그녀의 말대로 관유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게 불가능해질 것 같았으니까.


계단의 끝에는 철로 된 문이 있었다. 관유가 앞에 도달하자, 문은 저절로 열렸다. 관유는 문 너머를 보더니 감탄사를 토했다.


“···제법 규모가 있군.”


지하는 지상의 건물보다 몇 배는 넓었다. 사람의 수도 50명이 조금 안 되어 보일 만큼 많았다. 기껏해야 열 명 조금 넘을 줄 알았는데, 이로써 내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길드장! 뭡니까, 이 불청객들은?”


문의 근처에서 용접하고 있던 웬 남자 한 명이 일어나 다가오더니 눈을 재수 없게 뜨고 나와 관유를 노려봤다.


“손님이다.”

“손님?”


우리를 위아래로 훑는 게, 우리가 과연 손님이 될 자격을 가졌는지 평가라도 하는 듯했다.


“돈은 있으신가 모르겠네?”

“아, 그건-.”

“너희가 돈이 왜 필요하지?”


나는 막 입을 열던 관유의 뒷덜미를 잡아당겨 내 옆에 두고 저 싸가지 없는 새끼의 말에 대신 대답해 주었다. 너무 저자세로 나갔다가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적정한 대가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딴 놈들에게 나를 동료로 삼은 놈이 호구로 낙인찍히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어차피 DLPG에게 받아먹고 있잖아.”


내 말에 각자 작업을 하고 있던 VR 길드원들의 눈이 일시에 나를 향했다. 나는 그들과 일일이 눈을 맞춰 주며 말을 덧붙였다.


“뭐냐, 그 눈빛은.”


나는 협소한 장소에서 완벽에 가까운 방어를 선보일 수 있는 영웅이 누가 있을지를 생각하며 계속 말했다.


“설마 몰랐던 거냐? 아니면 내가 그저 떠보는 것 같아서 그러는 거냐. 둘 중 어느 쪽이든, 가관이군.”

“너, 증거는 가지고 씨불이는 거냐? 우리 길드장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딴 망발을 지껄여, 지금!”

“일단 이것부터 놓고 말하지.”


나는 내 멱살을 잡은 채 침을 튀겨 대며 말하는 이 싸가지 없는 새끼의 손목을 비틀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말했다.


“그리고, 왜 내게 증거를 내놓으라 그러는 거지? 너희가 살아 숨 쉬는 증거잖아.”

“···그게 무슨 개소리야.”


싸가지 없는 새끼가 멱살을 풀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아쉬웠다. 1초만 더 잡았어도 팔 채로 꺾어버렸을 텐데.


“얘는 DLPG의 전 수석 연구원이었다. VR 길드의 위치는 물론, 길드장이 누구인지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나?”

“우리를 일부러 내버려 두고 있다고?”


싸가지는 없어도 지능은 있군. 놈은 갑자기 두통이라도 생겼는지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가고는 사라 레이너를 쳐다봤다.


“사라. 이 새끼 말이 맞아? 우리가 어렵게 부품을 모아 만들고 있는 것들 중에 DLPG로 넘어간 게 있어?”


나는 사라를 쳐다봤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대뜸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고개를 뒤로 빼는 것으로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여 주었다. 그딴 느려터진 주먹으로는 나를 절대 맞출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녀는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더니, 시선을 싸가지 없는 놈에게로 돌렸다.


“루크. 너 지금, 오늘 처음 보는 외부자의 말을 듣고 나를 의심하는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말이 안 되잖아! 우리의 위치가 이미 들켰다면 DLPG는 왜 우리를 내버려 두는 건데!”

“플레이어의 수는 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루크라는 이름을 가진 싸가지 없고 귀가 얇은 놈의 말에 관유가 대답해 주었다.


“DLPG의 독재 정권이 유지되는 기간은 플레이어가 사라지기 전까지입니다. 만약 지구에서 모든 플레이어가 사라진다면, 그들은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하죠.”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일부러 플레이어를 안 잡는다는 거야?”

“폭력적인 성향이 없는 PVE 길드가 PVP 길드보다 존속 기간은 물론, 규모가 큰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뭐야.”


루크는 허탈한 표정이 되어 근처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이런 걸로 충격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언제까지고 유지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너, 이름이 관유라고 했던가?”

“아, 네. 맞습니다.”


사라는 루크의 축 처진 어깨를 손으로 두어 번 두드려 주더니 관유를 금방이라도 목을 비틀어 죽일 것처럼 노려봤다.


“카메라, 원하는 만큼 빌려줄게.”

“정말이십니까?”

“대신, 당장 이곳에서 나가. 우리 가족의 사이를 갈라놓지 마.”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VR 길드원들을 쭉 한 번 둘러봤다. 한국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모인 이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부는 사라를 굳건히 믿는 듯했고, 일부는 내 말에 동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족이라고? 이들이?


“한심하군.”

“뭐라 그랬어, 지금?”

“한심하다고 했다.”


나는 시가를 어금니 쪽으로 가져가는 사라에게 대답해 주었다.


“막 들어온 내 말에 흔들리고 있는 놈들이 지금도 여럿 보이는데, 단체의 대표를 신뢰하지도 않는 놈들을 데려다가 뭐? 가족?”


어이가 없어서, 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왼쪽 입꼬리만 올라간 비웃음이. 이 세상에 가족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정정할 게 있는데, 우리는 카메라를 빌리는 게 아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받아가는 거지.”

“무슨 개소리야.”


사라가 왼손에 라이터를 쥐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내는 관유의 어깨에 손을 얹어 그를 안심시키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탈옥한 지 30분은 넘었으니 슬슬 추격조가 우리의 행방을 눈치챘을 거야. 빠르면 택시 기사를 심문해서 우리가 내린 장소를 파악했을 테고, 근방의 길드로 갔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겠지. 그럼 어떻게 되겠어?”

“너 이 새끼···.”


주먹에 힘을 줘 라이터를 부순 사라가 정말 고맙게도 반대편 손으로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입은 지 얼마 안 된 셔츠에 기름을 묻히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플레이어라는 점,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내게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서 사형 확정이지.”


나는 온갖 게임 기기들이 널려 있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직 우리는 너희에게 도움을-.”

“추격조가 오면 그렇게 말해 봐. 만약 살아남으면 빌려주기로 한 카메라는 꼭 전달해 주고.”

“···빌어먹을!”


사라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어찌나 힘이 장사인지, 책상에 그녀의 주먹 모양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카메라를 주면···.”

“너희가 비밀 통로를 통해 다른 은신처로 도망갈 시간은 충분히 벌어주지.”

“좋아. 거래 성립이야. 자, 다들! 필요한 것만 챙겨서 도망가!”


그녀의 말에 VR 길드원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오직 루크만이 그녀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뭔가 좀 이상한데, 사라. 너는 안 가겠다는 거야?”

“나는···.”


그녀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한 자루 꺼내 관유의 미간에 들이댔다. 그러고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으며 나를 무섭게 노려봤다. 나는 두 손을 들고 물러났다.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기 위함이었다.


“나는 이놈들이랑 간다. 저 새끼가 계약 조건을 충실히 이행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하지만-.”

“어서 짐 챙겨, 루크!”


그녀는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서 말했다.


“어차피 카메라를 받을 장소도, 몇 대를 원하는지도 듣지 못했어. 너희와 연락하기 가장 수월한 내가 가는 게 맞아.”

“···알았어.”

“다음 베이스캠프로 가면 카메라를 가장 먼저 만들어.”


쾅! 콰앙! 콰아앙!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DLPG 추격조들은 여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보다 힘으로 부수는 길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네가 한 말을 지킬 시간이야.”


사라는 관유를 끌어안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눴다. 관유는 괜찮다는 듯 약간은 긴장했지만, 침착한 얼굴로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문으로 몸을 돌리며 영웅의 서를 소환했다.


쿵, 쿠웅. 콰직!


문이 뚫렸다. 적은 좁은 통로로 들어올 테고, 뒤에 지켜야 할 사람들이 많다. 기본적으로 일대다의 싸움에, 손에 아무런 무기도 쥐고 있지 않은 상황.


“66장을 읽겠다.”


- 마황(魔皇), 혁무진의 이야기를 선택하셨습니다.


무림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무림의 거악(巨惡)이 되기로 한 남자. 무림맹주도, 마교의 천마도 상대가 되지 못했던 절대적인 무위의 소유자가 가진 힘이 내 몸에 깃들었다.


“굳이 무기를 차고 다니지 않는 이유는, 내 몸이 가장 강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왼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어 허리춤에 두었다.


“내 의지에 신체가 반응하고 내 신체에 자연이 따라오니, 나는 능히 하늘을 부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초식을 이렇게 부르리라.”


나는 주먹을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뻗었다.


“마황파천(魔皇破天).”


땅이 무너지고, 하늘이 열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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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 강릉지부 습격 사건 #2 21.08.10 27 1 12쪽
14 13. 강릉지부 습격 사건 #1 21.08.09 21 0 13쪽
13 12. 도굴꾼 21.08.08 25 0 12쪽
12 11. 하기 싫은 것 21.08.07 27 0 13쪽
11 10. 반격 21.08.06 28 1 13쪽
10 9. 위기 21.08.05 33 1 13쪽
9 8. 안 하던 짓 21.08.04 32 1 13쪽
8 7. 원한, 은혜 21.08.03 30 1 12쪽
7 6. 도원결의 21.08.02 37 1 14쪽
6 5. 민속촌에서 생긴 일 #3 21.08.01 39 1 13쪽
» 4. 민속촌에서 생긴 일 #2 21.07.31 43 1 12쪽
4 3. 민속촌에서 생긴 일 #1 21.07.30 46 1 12쪽
3 2. 탈출 21.07.29 46 1 15쪽
2 1. 만남 21.07.28 60 1 14쪽
1 0. Prologue 21.07.27 65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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