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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이 금지된 세계의 플레이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N.J.
작품등록일 :
2021.07.27 23:54
최근연재일 :
2021.08.14 19:05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633
추천수 :
15
글자수 :
107,539

작성
21.08.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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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7. 원한, 은혜

DUMMY

내 생에 있어서 이토록 고민되는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뭐가 있는지 일일이 되짚으며, 어떤 능력으로 죽여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을지 생각했다. 그러다 리카르도에 이르렀을 때, 화형이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이라는 영상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34장을 읽겠다.”


- 옥염의 주인, 리카르도 디프레이브의 이야기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런고로 화형 확정이다. 우리가 가는 길 마지막 유언 같은 것을 들어줄 정도로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나는 오른손에 지옥의 불길을 불태우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후회할 텐데.”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내 대답을 들은 그녀가 갑자기 싱긋 웃더니 입고 있던 롱코트를 활짝 펼쳤다.


“···이런 미친.”


뒤에서 사라의 욕설과 관유의 기겁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코트 안에 숨기고 있던 그녀의 몸에는 폭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나는 불길을 꺼트렸다. 혹시라도 열기에 반응해 터질 수도 있었으니까.

둘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그녀의 게임에 대한 증오는 충분히 저러고도 남을 정도였으니까.


“플레이어가 된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탈옥범이 돼?”


내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짜증과 혐오가 치밀어 올랐는지, 가면이 깨지고 그녀의 본래 표정이 드러났다.


“어쩌겠어.”


나는 그런 그녀에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여 주었다.


“배운 게 이런 것뿐인데. 그러게 잘 좀 가르치지 그랬어?”

“버러지 같은 것. 그 빌어먹을 새끼의 피가 흐르는 것을 키우는 게 아니었어.”

“···듣고 있자니 말이 너무-.”


나는 손을 뒤로 뻗어 사라에게 입 닥치고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미안하지만, 콜로세움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더는 내 몸에 네 피가 흐르지 않아. 정말 다행이지 않아?”

“그거 하나는 쓸모 있구나.”


경멸을 가득 담아 말한 그녀는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그리고 내게 던지듯 건넸다.


“···가족 관계 증명서?”


그녀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되어 있는 증명서였다. 그녀의 이름 위아래로 있어야 할 이름 두 개가 빠져 있었다.

내 아버지와 내 이름이.


“이미 죽은 남편은 그쪽 집안에 소송을 걸어서 지웠고, 너는 흉악범에 탈옥까지 했다는 점을 참작해 지워 주더구나. 네 눈알을 날려버린 공적이 참작되어 DLPG에서 힘을 좀 써줬다.”


그러니까 저년의 말은, 자식의 눈알 하나를 총으로 날려버린 대가로 남편과 아들의 이름을 호적에서 완전히 지웠다는 뜻이다.


“···애꾸 선장 후크라고 불렸던 이유가, 설마 자신의 어머니 때문이었을 줄이야.”


많은 이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는 이야기였건만. 뭐, 얼떨결에 동료가 되었으니 굳이 이런 이야기를 남들에게 뿌리고 다니지는 않겠지.


“그래서, 개소리는 다 했어?”


- 풍권사, 비천의 이야기를 선택하셨습니다.


고작 저런 폭탄 따위로 내게 협박을 하려 했다면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거다. 바람으로 돔을 만들어 그녀를 가두고 폭탄을 자극하면, 그녀는 재도 남기지 못하고 타버릴 테니까.


“후크 님.”


뒤에서 관유가 내 옷소매를 잡았다. ···빌어먹을, 이놈의 불살주의에 미소를 짓던 때가 얼마 전이었는데 그걸 까먹다니.


“한 명 정도는 괜찮아. 증거도 안 남아.”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나를 통제할 수가 없을 것 같아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를 누가 보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녀를 죽이지 않는다면, DLPG에게 자신들의 분석이 맞았다는 착각을 심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이유까지 대면서 나를 설득하니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의 설득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하지만,


“죽이지만 않으면 되잖아.”


나는 날카로운 바람으로 그녀의 몸에 달려 있는 폭탄들을 끊어내고, 하늘 높은 곳까지 날려 보냈다. 새벽에 난데없는 불꽃놀이가 펼쳐졌고, 나는 한 걸음으로 그녀의 앞에 도달했다.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대는 끝까지 알지 못하는군.”


당황했을까? 아니면 지금 이 상황조차 그녀의 예상 안일까. 나는 태연한 척하고 있는 저 가면 뒤에서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그녀의 팔을 분질렀다.


“이 버러지 같은 게···.”


이를 악물고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을 뱉었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이 고통을 참느라 힘겹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명 지르는 게 좋아. 다쳤을 때 크게 비명을 지르면 덜 아프다고 하더라고.”


나는 반대편 다리를 분질러 주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절대 내가 말한 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나는 그녀의 가상한 의지에 감동하여, 그녀의 다리를 분질러 주었다.


“···끄윽.”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입술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나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고작 이 정도로 포기하면 안 되지. 내가 교도소에서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이건 아직 십분의 일도 안 된다고.


나는 그녀의 사지 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를 분질렀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나는 축 늘어진 그녀의 목에 발을 올렸다. 여기만 부러트리면, 그녀의 눈은 두 번 다시 떠지지 않을 것이다.


“후크 님!”


관유가 소리를 질렀고, 나는 발을 뗐다. 그리고 그를 쳐다봤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습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 가요.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는 것은 무리일 테니 갈 길이 멉니다.”

“얼마나 멀길래 그래?”


사라가 그의 편을 들어주었고, 나는 둘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저희가 다음으로 갈 곳은 경기도 이천의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입니다.”


이천?


“그렇게 안 먼데?”


내 말에 관유는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내가 말한 멀지 않다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차를 타고 이동했을 때다. 우리에게 마땅한 이동수단이 없으니 걸어서 가는 것만으로도 며칠을 소비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할래?”


우선은 이천 방향으로 길을 걸으며 사라가 관유에게 말을 걸었다.

나 혼자라면 갈 수 있다. 솔직히 말해, 능력을 사용하면 이 둘을 데리고도 금방 지산 락페스티벌이 열리던 장소로 날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을 누군가가 해결해 주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니까.


“주변의 차를-. 아냐, 관유. 정신 차려!”


훔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도 하지. 당장에 눈에 들어오는 것만 해도 차가 수 대는 됐으니까. 눈을 딱 감고 창문을 깨부순 후 시동을 걸면, 우리는 편안하게 이천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아, 생각났다!”


관유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씩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민속촌 위에 자동차 극장이 있던 거 기억하세요?”

“응.”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지만, 집에 늦게 들어가는 길에 언덕 위로 향하던 자동차들의 행렬은 기억에 남아 있다.


“그곳이 중고 자동차로 바뀌었거든요. 왜 이걸 까먹고 있었지?”


자신의 머리에 가볍게 딱밤을 먹인 그는 당차게 앞장섰다.


“가요!”

“거래할 돈은 있고?”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전생이 자동차 극장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중고 자동차 거래소에는 거대한 스크린이 오연히 서 있었다. 우리는 곧게 나 있는 차도를 따라 초대형 스크린의 옆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한 3분 정도를 더 걸으니, 낡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야밤의 불청객을 싫어한 문이 까마귀나 낼 법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불은 꺼져 있었기에 관유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다섯 걸음 정도를 내딛었을 때, 갑자기 천장의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누구슈?”


산악용 바람막이에 얼룩무늬 바지, 등산화를 신은 노인이 저 안쪽에서부터 걸어 나왔다.


“늦은 시간에 불쑥 찾아와 정말 죄송합니다, 어르신. 저희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 차를 한 대 빌릴 수 있겠습니까?”

“빌려?”


관유의 말에 노인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어림도 없는 소리! 내가 너희의 뭘 보고 차를 빌려줘?”


···적어도 뉴스는 안 보는 노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탈옥범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을 관유에게 버럭 화를 낼 수 있는 인간은 몇 안 될 것이다.


“그럼 거래로 하시죠, 어르신.”


사라가 인상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사라 님, 그건!”


PC방에서 잘나신 분들이 게임하고 있는 모습을 촬영할 때 사용했던 지렁이같이 생긴 카메라였다.


“이거 겉보기에는 이래도 웬만한 전자상가에 가져가서 팔면 중고차 한 대 값은 나올 겁니다.”

“이 지렁이 같은 게 그리 비싸다고? 벼룩의 간을 빼 먹어라, 이 빌어먹을 놈아!”

“···안 통하네.”


그녀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다시 품에 넣었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봤다.

뭐, 어쩌라고 나보고.


“너는 뭐 내놓을 만한 거 있냐?”


···나한테 뭐가 있더라. 가슴에 한 정, 허벅지에 달고 있는 두 정의 권총을 제외하고는 딱히 가지고 있는 게 없었다.


“하는 수 없지. 가자.”


가다가 정 안 되면 차를 한 대 훔치면 되고, 이 노인처럼 뉴스를 챙겨보지 않는 기사의 택시를 타도 된다.


“···잠깐만. 너, 얼굴 좀 자세히 보자.”


문으로 가던 나를 노인이 붙잡았다. 나는 그의 요구에 따라 몸을 돌려 그를 쳐다봤다. 내 얼굴을 빤히 보던 노인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후크. 후크 맞지?”

“···맞습니다.”


교도소에서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이들을 상대로 반말했는데, 왠지 이 노인에게는 그러기 어려웠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에 뱉는 존댓말인지, 말하면서 팔에 소름이 돋았다.


“따라와.”


노인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우리는 잠깐 눈빛을 교환한 후 그의 뒤를 따랐다.


“이게 여기서 가장 좋은 차다.”


노인이 안내해준 곳에는 대형 SUV가 있었다. 우리는 세 명밖에 없어 뒷좌석의 가운데 자리를 펼쳐 누워도 자리가 남을 듯했다.


“왜 갑자기 이 차를···.”


관유가 물었다. 나 또한 이유가 궁금했기에 노인을 바라봤다.


“내 아들은 플레이어에게 묻지마 살인을 당해 죽었어. DLPG는 내 아들을 죽인 놈을 흉악범으로 분류해 곤지암에 처넣었지. 그런 그를 후크, 네가 죽였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를 거다.”


···그래서였군.


“감사합니다, 어르신. 잘 쓰고 반납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름도 모르는 이 노인의 말이, 내 마음속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어떤 응어리 같은 것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었다. 이것만으로 감사의 이유는 충분했다.


“반납은 안 해도 돼. DLPG 놈들이 오면 뺏겼다고 할 거니까 알아서 처리해.”

“예.”

“야! 타!”


어느새 운전석에 앉은 사라가 손짓했다. 나와 관유는 노인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차에 올랐다.


“간다!”


사라가 액셀을 밟았고 노인은 빠르게 작아졌다. 나는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사이드미러로 그를 바라봤다. 그 역시, 나를 바라봐 주었다.


작가의말

이번 화는 제 스스로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스토리 아레나 기간 안에 완결을 낼 수 있도록 빠르게 달려보겠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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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 강릉지부 습격 사건 #2 21.08.10 26 1 12쪽
14 13. 강릉지부 습격 사건 #1 21.08.09 20 0 13쪽
13 12. 도굴꾼 21.08.08 25 0 12쪽
12 11. 하기 싫은 것 21.08.07 27 0 13쪽
11 10. 반격 21.08.06 28 1 13쪽
10 9. 위기 21.08.05 33 1 13쪽
9 8. 안 하던 짓 21.08.04 32 1 13쪽
» 7. 원한, 은혜 21.08.03 29 1 12쪽
7 6. 도원결의 21.08.02 36 1 14쪽
6 5. 민속촌에서 생긴 일 #3 21.08.01 38 1 13쪽
5 4. 민속촌에서 생긴 일 #2 21.07.31 42 1 12쪽
4 3. 민속촌에서 생긴 일 #1 21.07.30 46 1 12쪽
3 2. 탈출 21.07.29 46 1 15쪽
2 1. 만남 21.07.28 60 1 14쪽
1 0. Prologue 21.07.27 65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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