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이 금지된 세계의 플레이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N.J.
작품등록일 :
2021.07.27 23:54
최근연재일 :
2021.08.14 19:05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625
추천수 :
15
글자수 :
107,539

작성
21.07.27 23:58
조회
64
추천
2
글자
8쪽

0. Prologue

DUMMY

나는 기쁘면서도 슬픈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수능이 끝나서 이제는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일 거라는 점이 기뻤고, 내가 애지중지하던 시계가 고장 났다는 게 슬펐다.


아버지의 유품인 디지털시계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차고 다녔는데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자고 일어났더니 먹통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계의 중앙이 닿는 손목 부분에 모기가 문 것 같은 작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잘 때도 차고 있었기에 모기가 물었을 리는 없고, 시계가 망가진 것과 관련이 있을까 싶어 시계를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흔들어봤을 때 약간의 탄내가 느껴졌다는 것 정도밖에 알아내지 못했다.


「DLPG의 3대 지휘관인 포비아 연구소장이 금일, 내한했습니다. 수많은 인파의 환영을 받으며 공항을 밟은 그녀는, 앞으로 한 달간 한국에 머물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학교로 가는 길을 어머니가 바래다주는 차 안, 어머니는 라디오를 듣더니 바로 볼륨을 올렸다. 아나운서가 하는 말을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포비아 연구소장은 민간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플레이어에 대한 규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용인지역의 고등학교를 방문할 생각이라 밝혀 해당 지역 학부모들이 환호성을 지르게 했습니다.」


“오늘 너희 학교에 포비아 연구소장님이 방문하시지?”

“···예.”


다른 애들은 부모님이 마음껏 놀라고 용돈도 주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위로를 해준다던데 나는 둘 중 어느 것도 받지 못했다. 가채점 결과가 어머니가 원했던 대학 커트라인은 가볍게 넘었음에도 어머니는 고개만 끄덕였다.

모의고사 때보다 훨씬 잘 치른 수능 점수를 받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포비아 연구소장이 온다는 라디오를 내게는 한 번도 지어주지 않았던 밝은 미소로 듣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숨이 막혔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학교에 가서 자고 싶었다. 수능도 끝났겠다, 선생님들은 내가 하교 때까지 잠만 자도 깨우지 않을 테니 마음껏 꿈꿀 수 있다.


나는 바지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MP3 플레이어를 만지작거렸다. 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두 번째 유품. 정말 다행스럽게도 시계처럼 망가지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MP3 안에는 100개의 파일이 존재하는데, 그중 99개의 파일이 저마다 다른 세계관을 가진 영웅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파일을 재생한 후 이어폰을 끼고 잠을 자면, 나는 꿈에서 파일에 담겨 있는 영웅의 이야기를 영화관의 4D보다 더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잠을 자는 걸 좋아한다. 만약 내게 이런 능력이 없었다면, 이 99명의 영웅들이 없었다면 어머니의 무신경함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영웅이다. 내게도.


100번째 파일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반복 재생으로 설정해두고 몇 번 잤는데, 그때마다 꿈은커녕 눈을 뜨니 햇살이 나를 반겼다. 도대체 어떤 파일일지 궁금하긴 했지만, 10번째 시도에도 변화가 없자 포기했다.

내게는 99명의 영웅들이 있었으니까. 참고로 오늘은 34번 파일에 담긴 영웅의 이야기를 볼 차례다. 이미 모든 이야기를 수십, 수백 번은 넘게 봤지만, 몇 번을 봐도 재밌었다.


“어머, 포비아 소장님이 오셔서 그런지 검문을 하네요?”

“예. 오시는 분이 워낙 높으신지라.”

“이해해요. 고생이 많으시죠.”


온화한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가 창밖에서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춰 주고 있는 DLPG의 요원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원 한 명이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나는 창문을 내렸다.


“실례지만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요원은 내게 3X3 큐브같이 생긴 기계 장치를 내밀었다. 나는 장치의 중앙에 뚫린 동그란 구멍에 검지를 집어넣었다. 잠시 후 따끔거리는 감촉이 느껴졌고, 나는 손가락을 뺐다.


저 장치는 바늘로 사람의 혈액을 소량 체취, 분석하여 사람에게 MPTP-19 바이러스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체내에 그 바이러스가 있다면 장치가 경보음을 울리는데, 나는 그럴 일이 없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게임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 경고, 경고! 플레이어 확인, 플레이어 확인. 즉시 체포 요망.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다. 이건 말도 안 돼.


“두 손 들어!”


요원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총으로 나를 겨눴다. 나는 그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가끔 장치가 고장 나서 잘못된 결과가 나올 때가 있다고 들었다. 그래, 저 장치가 고장 난 거다. 어머니가 검사한 장치로 검사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도 그럴 게,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내가 플레이어라는 게 말이 안 된단 말이다!


“차에서 내려!”

“쏘, 쏘지 마세요. 내릴게요. 제발 쏘지 마세요.”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열 번을 시도한 끝에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나왔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는 요원에게 재검사를 요청했다.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게임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요원님. 저희 어머니가 게임을 얼마나 싫어하시는데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한 번만 재검사해 주세요.”

“게임을 하지 않았더라도 인위적인 바이러스 주입으로 플레이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 어떤 이상 현상을 겪은 적이 있었나?”


요원의 말에 내 눈이 저절로 오른쪽 손목으로 움직였다. 항상 시계를 차고 다니는 부위에 나 있는 아주 작은 상처. 시계가 고장 났기에 평소라면 안 보였을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눈을 들어 요원과 시선을 마주친 나는, 저 상처를 보면 안 됐음을 깨달았다.


“플레이어 관련 특별법에 따라, 너를 긴급 체포한다. 저항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반항하는 플레이어는 즉결 처형까지 가능하니까.”


요원은 내 두 손목에 망설임 없이 수갑을 채웠다.


“어머니!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저 아시잖아요!”


나는 몸을 뒤로 돌려 내 하나뿐인 보호자에게 나를 보호해 달라고, 변호해 달라고 요구했다.


“어머··· 니?”


나는 두 번째로 깨달았다. 순순히 요원을 따라갔어야 했음을, 어머니를 바라보면 안 됐음을.

어머니는 내게 한 번도 짓지 않았던 표정을 하고 계셨다. 저 표정은 분노도 아니고, 원망도 아니었다. 99명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나는 저 표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경멸.

그래. 내 유일한 부모님인 어머니는 나를 경멸하고 있었다.

탕!


어머니가 총을 쐈다. 나를 노리고. 경비원이 손에 쥐고 있던 총을 단숨에 뺏어서.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셨던 덕분인 것 같다.


오른쪽 눈가가 쓰라렸다. 어렸을 때 성냥으로 불장난하다가 손가락을 덴 것의 수천 배는 아팠다. 나는 손을 눈가에 가져가며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쏜 이유를 물었다.


“그딴 눈으로 날 보지 마. 더러운 범죄자 새끼가 어디서-.”


그러나 내 질문은 어머니의 분노를 자극할 뿐이었고,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기려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어머니는 나를 죽이려 들었고, 플레이어를 처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DLPG의 요원은 나를 살렸다.


“플레이어에 대한 처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DLPG뿐입니다, 부인. 게임과 플레이어에 대한 부인의 증오와 분노는 이해하지만, 그래서는 살인자가 되고 맙니다.”


요원이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총을 되찾았다.


‘저딴 쓰레기를 인간 취급해 주다니. 포비아 연구소장님도 무른 면이 있어.’


눈빛만 보면 알 수 있다. 나를 낳고 기른 여성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혀를 한 번 차고는 차로 돌아가 문을 세게 닫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쓰러졌다. 오른쪽 눈가가 너무 아파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검어지는 시야와 의식 속에서, 내가 들은 마지막 소리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자동차의 엔진 소리였다.


작가의말

새 작품으로 다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미흡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게임이 금지된 세계의 플레이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 21.08.14 17 0 -
공지 연재 시간 공지. 21.08.01 23 0 -
19 18. 분기점 21.08.14 20 0 12쪽
18 17. 고난과 시련 21.08.14 17 0 11쪽
17 16. 추락 21.08.12 18 1 12쪽
16 15. 빌런 21.08.11 20 1 13쪽
15 14. 강릉지부 습격 사건 #2 21.08.10 26 1 12쪽
14 13. 강릉지부 습격 사건 #1 21.08.09 20 0 13쪽
13 12. 도굴꾼 21.08.08 25 0 12쪽
12 11. 하기 싫은 것 21.08.07 26 0 13쪽
11 10. 반격 21.08.06 28 1 13쪽
10 9. 위기 21.08.05 33 1 13쪽
9 8. 안 하던 짓 21.08.04 32 1 13쪽
8 7. 원한, 은혜 21.08.03 29 1 12쪽
7 6. 도원결의 21.08.02 36 1 14쪽
6 5. 민속촌에서 생긴 일 #3 21.08.01 38 1 13쪽
5 4. 민속촌에서 생긴 일 #2 21.07.31 42 1 12쪽
4 3. 민속촌에서 생긴 일 #1 21.07.30 45 1 12쪽
3 2. 탈출 21.07.29 45 1 15쪽
2 1. 만남 21.07.28 60 1 14쪽
» 0. Prologue 21.07.27 65 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