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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이 금지된 세계의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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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J.
작품등록일 :
2021.07.27 23:54
최근연재일 :
2021.08.14 19:05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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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7,539

작성
21.08.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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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추락

DUMMY

머릿속으로 알고는 있었다. DLPG에서 나를 체포했을 때 분명 내 MP3 플레이어를 가져가 분석했을 테니까 분명 내 능력에 대해서 언젠가는 알아챌 거라는 것을.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을 목격하니 심란했다.


“나와라, 비천!”


황규가 사방으로 불길을 휘날리며 포효했다.


“능력을 해제하면 구연동화도 저절로 해제되는 거 아닌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 발동된 구연동화는 자의로 해제할 수 없다. 내가 무저갱에서 탈출한 순간 곤지암 교도소에서 탈출했던 것처럼, 이야기의 흐름에 맞게 진행된 후에 저절로 해제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식으로든 저 황규와 결착을 맺어야만 구연동화가 해제된다.


“혹시 비천의 이야기가 새드 엔딩으로 끝나나요?”

“아니. 행복한 결말이야.”


무저갱에 들어가서 구한 여인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어떻게 보면 뻔하지만, 정말 행복한 엔딩이었다.


“그렇다면 저 황규라는 자에게 무조건 이기는 게-.”

“아니야.”


내가 보고, 듣고, 경험했던 영웅들은 단 한 번도 지지 않은 무패의 영웅들이 아니다. 오히려 어중간한 기사들보다 더 많이 깨지고, 무릎 꿇고, 떨어졌다. 그들의 화려한 비상은 이야기의 후반부에 짧게 나올 뿐, 그들의 전체적인 이야기의 대부분은 고난과 시련이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섣불리 황규의 도발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그럼 이대로 도망치면···.”

“구연동화가 발동되면 정해진 흐름대로 움직여야 해. 흐름을 거스르게 되면 몸의 통제를 잃고 일정 시간 동안 저절로 움직이게 돼.”


젠장. 완벽한 외통수다. 사라나 뤼카의 위치만 알고 있다면 관유를 그쪽으로 보내고 황규에게 가면 되는데, 저놈이 사방으로 불꽃을 뿜어대는 탓에 바람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애초에 구연동화는 온전히 내 의지대로 펼친 적밖에 없어서 이런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다. 만약 구연동화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면-.

도박을 한 번 해볼 만하다.


“너는 여기 있어.”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아도 해야 돼. 그래도 걱정은 하지 마.”


결국에 이기는 쪽은 영웅이니까.


좋아. 나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 황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상황을 이끌고 있는 쪽은 나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 구연동화를 조금이라도 내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내게 몇 번이자 졌으면서 지치지도 않고 계속 덤벼대는구나.”


- 구연동화의 시간대가 변동되기 시작합니다.


방금 내가 뱉은 대사는 옥염마제가 여섯 번을 지고 일곱 번째 도전하러 찾아왔을 때 비천이 질린 얼굴로 말한 것이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이번에는 예전과 다를 것이다.”

“그 대사 역시 몇 번이나 반복했던 것이지. 이쯤 되면 그대의 지적 능력이 서당 개보다 높은지 의심이 가는군.”


- 구연동화가 올바른 시간대를 찾아 움직입니다.


상대는 아직 구연동화에 미숙하다. 아니면 비천의 이야기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있다. 내가 황규 역할을 맡았다면 스스로 여섯 번을 졌다는 뜻을 내포한 말을 뱉지 않았을 테니까.


“오라. 그대가 얼마나 예전과 달라졌는지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하지.”


나는 바람을 전신에 두르고 두 손으로 뒷짐을 졌다. 선공을 양보하겠다는 의미이자, 너는 나보다 약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자세였다.


- 구연동화의 시간대가 수정되었습니다.


나는 염호(炎虎)가 되어 달려드는 황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지금의 메시지로 확정되었다. 이 싸움의 승자는 비천이다.


“염호출산(炎虎出山)!”

“어디가 달라졌다는 거지?”


분명 화염의 열기와 돌진하는 속도는 빠르지만, 직선적인 공격을 맞서는 것이 아닌 회피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나는 몸을 옆으로 비틀고 바람으로 내 몸을 살짝 밀어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이후 몇 차례 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다네.”

“그대의 행동 어디가-.”


갑자기 다섯 군데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그리고 각 기둥이 서로를 뜨거운 불의 장벽으로 연결되었다.


“이건···.”


- 구연동화가 분기점을 맞이합니다.


분기점? 갑작스러운 메시지의 출현에 당황스러웠지만, 지금은 이것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나를 중심으로 세워진 다섯 기둥이 끝을 모르고 솟아오르고 있었고, 장벽은 손을 댔다가 바로 재가 될 것처럼 뜨거운 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바람을 모아 위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불기둥에서 여러 갈래의 가시들이 나와 방해하는 탓에 여의치 않았다.


“그러게 내가 말했지 않나. 나는 지옥에서 돌아왔다고. 그곳에서 얻은 내 힘을 똑똑히 지켜보도록!”


발밑의 땅이 갈라졌다. 마치 거대한 괴수가 아가리를 벌리듯 끝을 모르게 벌어진 땅에서 뭐라 묘사하기가 불가능한 무언가가 기어 올라와 내 발목을 잡으려 했다.

분기점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비천의 승리가 불투명해졌다는 것만은 명했다. 그렇기에 나는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선풍관산(旋風貫山).”


내가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의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장벽에 조그마한 틈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체없이 그 틈에 몸을 던졌다.


치이이익.


금세 복구된 장벽에 닿은 살갗이 익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렸다. 너무 극심한 고통이었는지 다행히도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장벽을 뚫고 나와 몸을 확인해 보니 바람을 두른 덕분에 피부가 아예 녹아내리지는 않았다. 다만 옷은 말끔히 타버려 알몸이 되었다. 피부는 군고구마 껍질처럼 완벽히 검게 타버렸다.


“꼴이 이제야 좀 볼 만하군.”


황규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의 몸에 둘린 불꽃의 색깔은 아까와는 달랐다. 검은색에 짙은 회색이 가미된 꺼림칙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불쾌한 색이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말했잖아. 지옥에 갔다 왔다고.”


바람을 불러 거리를 벌림과 동시에 공격을 시도하려던 찰나, 하복부 쪽에서 바늘 수천 개로 동시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끄으윽.”


목을 타고 넘어와 입가에 흐르기 시작한 피가 불타 버린 피부에 닿아 끔찍한 고통을 선사해 주었다.


“그러니 그대도 한 번 가 보는 게 어떤가? 지옥에.”


그렇게 말한 황규가 내 어깨를 걷어찼고, 통증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내 몸뚱어리는 뒤로 넘어졌다. 아까 봤던 그 무언가가 내 몸을 잡아 밑으로 잡아당겼고, 나는 끝까지 황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강적이 사라졌습니다.

- 구연동화가 일시적으로 해제됩니다.


“···너.”

“잘 가라.”


나를 심연의 구렁텅이로 처박은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기쁨과 동시에 어이가 없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내 생각에 확신을 얻을 수 있어서 기뻤고, 그녀가 도대체 왜 아버지의 유산에 손을 댔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어이가 없었다.


“두고 보자.”

“···그건 전형적인 삼류 악당의 대사야.”


그녀가 나를 한껏 비웃고는 등을 돌려 사라져 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마지막까지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아래를 확인했다. 나는 몸을 둥글게 말고 손으로 코를 가능한 세게 막았다. 마지막으로 눈을 질끈 감아 충격에 대비했다.


퍼어엉!


5층짜리 아파트로 만든 야구 배트로 후려친 듯한 충격이 내 등을 강타했다.


*


관유는 쉬지 않고 달렸다. 입으로 거칠게 마셨다가 뱉는 숨이 달디 달았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과 폐는 지금 속도 이상의 공기 흡입을 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팔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야마저 뿌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후크 님이 졌어! 후크 님이···.’


그의 계획은 완벽했다. 아니, 완벽하다고 생각했었다. 후크를 동료로 삼은 순간 그의 계획을 방해할 요소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시위하는 데 필요한 카메라, 마이크, 스피커를 쉽게 구했고 힘들 것으로 생각했던 사라, 뤼카, 네이선의 동료 합류에도 성공했다.

그래. 한참 이른 생각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계획이 이미 성공했다고 생각했었다.


평소에 운동을 좀 해놓을걸. 후크 님에게 의존하는 계획을 세우는 대신 나 혼자서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해놓을걸. 수없이 많은 가정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지나치는 나무 한 그루마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상념들이 묻어 있었다.


‘후크 님은 살아 계시겠지? 살아 계실 거야. 그렇다면 다음 계획은-.’


고개를 살짝 위로 든 상태에서 달렸기 때문에 발밑의 돌부리를 차마 보지 못했다. 그 결과, 그의 몸은 1초 정도 허공에 붕 떴다가 빠르게 추락했다.


“으으윽!”


쓰라렸다. 하지만 그의 팔에 난 상처보다 더욱 쓰라리고 따가운 것은 그가 무적일 거라 믿었던 한 영웅의 추락이었다.


“어이.”


누군가가 뒤에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는 기겁해 몸을 돌려 그 손을 쳐냈다. 그리고 열심히 두 손을 놀려 뒤로 물러났다.


“침착해. 나야.”

“···네이선 님.”


얼굴에 흙을 잔뜩 묻히고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된 네이선이 서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도 미소를 짓고 있는 네이선을 보고 있자니 안도감이 몰려왔다.


“일어날 수 있겠어?”

“예. 감사합-.”


말과는 달리 떨고 있는 그의 다리는 미동조차 없었다. 네이선의 손을 잡고 일어나려 해도 꼼짝 않았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울지 마.”


네이선이 몸을 낮춰 자신의 등에 그를 업는 동안, 그는 왠지 눈물이 났다. 네이선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어 눈물을 그치게 만들고 싶었으나, 그의 몸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너희들에게 아직 내 능력을 말해주지 않았구나. 나는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아. 그리고 주인공 버프가 있어서 절대 안 죽어. 그러니까 괜찮아.”


나뭇잎과 흙이 묻어 있어 더러운 그의 등이 이렇게나 믿음직스러울 줄이야. 관유는 그의 등에 얼굴을 바짝 밀착했다.


“···저기다!”

“베타, 오메가, 감마 분대에 알린다. 적을 발견했다.”


NPC들의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빗발치는 총성. 두 손은 네이선의 목 앞에서 서로를 맞잡고 있었기에 관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아. 아까 말했지? 나 이런 상황에서 절대 안 죽는다고. 저런 놈들에게 죽을 거였으면 진작 죽었어. 도굴꾼으로 첫 삽 떼기 전에 죽었다고. 그러니 우리는 살아. 무조건 살아.”


산다. 살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는다.


관유는 네이선의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NPC들의 군화 소리, 발포음, 고함. 그 모든 소음을 박자로 삼아 그는 계속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우리는 아무도 다치지 않고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의 주문을.


“···뤼카! 사라!”


네이선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산에 어울리지 않는 문 너머에 사라와 뤼카가 그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꽉 잡아!”


네이선의 말에 관유는 자신의 손을 부서질 듯 꽉 쥐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네이선은 있는 힘껏 내달려 문을 통과했다. 사라가 곧바로 문을 닫았고, 뤼카가 문을 나뭇잎으로 만들어 주머니에 넣었다.


살았다.


“괜찮아? 안 다쳤어?”


네이선이 관유를 부드럽게 땅에 내려 주었고 사라가 곧바로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해 주었다. 자신들의 꼴이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첫 번째 관심 대상은 그였다. 관유는 그 사실이 서러웠다.

길고 길었던 꿈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세계를 바꿀 영웅에서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 남자아이로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었다.


“후크 님이···. 절벽에서 떨어졌어요.”

“괜찮아. 걔는 안 죽어. 우리 중에 제일 강하잖아.”


사라의 널찍한 품에 안긴 그는 펑펑 울었다. 자신이 동경하던 영웅의 추락을 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며, 그 영웅이 부디 무사하기를 바라며.


작가의말

갑자기 비가 오네요. 덕분에 오늘 잠은 시원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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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 강릉지부 습격 사건 #2 21.08.10 26 1 12쪽
14 13. 강릉지부 습격 사건 #1 21.08.09 20 0 13쪽
13 12. 도굴꾼 21.08.08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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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 반격 21.08.06 28 1 13쪽
10 9. 위기 21.08.05 33 1 13쪽
9 8. 안 하던 짓 21.08.04 32 1 13쪽
8 7. 원한, 은혜 21.08.03 29 1 12쪽
7 6. 도원결의 21.08.02 36 1 14쪽
6 5. 민속촌에서 생긴 일 #3 21.08.01 38 1 13쪽
5 4. 민속촌에서 생긴 일 #2 21.07.31 42 1 12쪽
4 3. 민속촌에서 생긴 일 #1 21.07.30 46 1 12쪽
3 2. 탈출 21.07.29 46 1 15쪽
2 1. 만남 21.07.28 60 1 14쪽
1 0. Prologue 21.07.27 65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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