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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이 금지된 세계의 플레이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N.J.
작품등록일 :
2021.07.27 23:54
최근연재일 :
2021.08.1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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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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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7,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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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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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1. 하기 싫은 것

DUMMY

사라가 만들어준 틈 덕분에 우리는 DLPG의 군대를 박살 낼 수 있었다. 구연동화를 해제한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의 전경은 용암이 흐르고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여러분들 덕분에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뤼카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관유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들의 보금자리를 파괴한 것만 같아 마음이 좋지 않네요.”

“가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DLPG의 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는 중인데 보금자리라니요.”


웃으며 말한 뤼카는 바지 주머니에서 나뭇잎을 두 장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관유에게 건네주었다.


“하나는 거래로 받아야 했던 보상이고, 다른 하나는 저희를 지켜주신 것에 대한 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관유는 바로 두 장의 나뭇잎을 확인했다. 한 장은 옷에 달 수 있는 초소형 마이크와 목소리를 증폭해 줄 스피커 세트였고, 다른 하나는 귀에 꽂는 이어폰형 무전기 여섯 개였다.


“무전기 같은 경우에 서로 얼마나 떨어져 있든 대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투명화 기능이 있어 착용한 후 가볍게 두 번 두드리면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죠.”


뤼카의 말에 관유는 곧바로 무전기 하나를 귀에 꽂아 두 번 두드렸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전기를 꽂은 귀를 보여주었다.


“안 보이네.”


내 대답을 들은 관유는 신기해하며 우리에게 무전기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3개가 남은 무전기들은 다시 나뭇잎으로 변했고, 관유는 나뭇잎 두 장을 주머니에 고이 넣었다.


“···뤼카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저희와 같이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동료로 섭외하시는 겁니까?”


뤼카는 눈을 크게 떴다. 관유의 제안에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뒤에 있는 R&R 길드원들의 표정이었다.


“길드장, 설마 우리를 버리고 갈 건 아니죠?”

“길드장이 없으면 우리는 죽어요!”

“우리를 한 번 책임졌으면 끝까지 책임져야죠! 가족이잖아요, 우리!”


도대체 길드를 만든 놈들은 왜 자꾸 가족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걸까? 아까 말한 놈은 한국인이었고, 뤼카는 죽었다 깨어나도 한국인은 아니라 둘 사이에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그동안 여러분들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습니다. 그것으로는 모자랐던 것입니까?”


뤼카는 슬픈 것 같기도 하고, 후회하는 것 같기도 한 눈빛으로 자신의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대체 관유가 동료로 삼으려는 놈들은 왜 하나 같이 자신의 길드원들과 사이가 이상한 거야.


“왜 그러세요?”


내가 바라보자 관유는 눈을 빛내며 나를 올려다봤다. 혹시 이놈의 능력이 사람들 간의 불화를 촉진하는 게 아닐까? 잠깐 그를 쳐다봤던 나는 시선을 돌렸다. 뤼카와 R&R의 사이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저분들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투쟁하고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도와 여러분들이 하루라도 빨리 편하게 하고 싶은 음악, 게임을 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게 언제가 될지 알고?”

“그동안 우리가 다 죽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둘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뤼카는 우리에게 합류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고, R&R은 절대 그런 그를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다들 닥쳐!”


고슴도치남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는 나와 사라에게 시비 걸었을 때와 똑같은 눈빛으로 뤼카를 쳐다봤다.


“···우리보다 방금 만난 탈옥범들이 더 좋다는데 어쩌겠어. 보내줘야지.”

“크롱.”


저 고슴도치의 이름이 크롱인 모양이다. 귀여운 이름에 그렇지 못한 외모와 성격이라. 나는 저 이름을 본인이 짓지 않았기를 바랐다.


“대신 문은 두고 가.”


크롱은 뤼카에게 손바닥을 내밀며 마치 당연히 줘야 한다는 듯 뻔뻔하게 굴었다. 옆에 있던 사라가 “뭐야, 저 미친 새끼는.”이라고 말했으니 나는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가족은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넘어왔을 때 처음으로 만난 당신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제 모든 것을 희생했었죠.”

“그러니까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희생하라고. 문만 내놓으면, 네가 저 새끼들과 해적 놀이를 하든 말든 상관 안 할 테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은 제게 조금의 희생도 보이지 않는군요.”


고개를 뒤로 돌린 뤼카가 우리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당장이라도 물을 흘릴 것처럼 슬퍼 보였다.


“저분들은 오늘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 모두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왜 저는 여러분들보다 저분들이 더 가족 같다고 느껴지는 걸까요?”

“뤼카! 개소리 그만하고 문을 넘겨!”


크롱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뤼카를 위협했다.


“사라 님. 후크 님.”


우리는 뤼카에게 가까이 가는 것으로 관유의 말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아까 소환했던 거대 우주 전함 하이퍼리온의 탓인지, R&R 길드는 나보다 사라를 더 경계했다.


“거 듣자 하니 여태까지 뤼카의 도움으로만 살아남은 거 같은데, 너희들이 그러고도 플레이어냐?”

“외부인은 빠지지?”


사라는 고슴도치의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은 협박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며 말을 계속했다.


“그럴 바에는 DLPG의 밑으로 들어가서 NPC 노릇이나 해. 무슨 뤼카가 너희 부모님도 아니고, 나이 먹을 대로 처먹은 놈들이 무슨 애새끼들처럼 땍땍거리고 있으니까 심하게 보기 안 좋다.”

“빠지라고 했지!”


고슴도치가 손에 검을 하나 소환했다. 아마 검사가 나오는 게임을 주로 했던 모양이다. 검에 기나 마나가 둘리지 않은 것으로 봤을 때 저 정도면 사라의 슈트가 가볍게 막을 수 있을-.


서걱.


···뭐야? 내 예상과는 다른 소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사라 역시 나를 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가슴에는 사선으로 된 길고도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흐흐. 내가 빠지라고 했지. 그러게 내 말을 들었으면 다칠 일도-.”


나는 허벅지에서 권총을 뽑아 진종헌의 능력을 빌리는 것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고슴도치의 두 허벅지와 검을 들고 있는 오른팔에 한 방씩 총알을 먹여 주었다.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은 고슴도치는 검을 떨구었고, 검은 땅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후크. 나 좀 살려줘라···.”


그녀의 입에서 시가가 떨어졌고, 슈트가 자동으로 해제된 그녀가 뒤로 넘어지듯 쓰러졌다. 가슴에서 피가 철철 흘렀고, 관유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나는 그녀를 잠깐 관유에게 맡기고 크롱에게 다가갔다.


“크흐흐흣. 역시 아무리 강한 놈이어도 DLPG를 이길 수는 없는 거야.”


DLPG?


“크롱! 당신 설마 DLPG와-.”

“글쎄? 한 가지 말해줄 수 있는 건, 너희 둘 다 좆됐다는 거지.”


크롱은 우리와 R&R을 한 번씩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후에 킬킬 웃어댔다. 나는 그런 그가 너무나도 꼴 보기가 싫어 미간에 총알을 박았다. 그러니 놈은 조용해졌다.


“후크 님! 사라 님의 피가 멈추질 않아요.”

“뤼카! 문을 열어! 여기와 멀리 떨어진 곳 아무 데나.”

“아, 예!”


뤼카가 주머니에서 나뭇잎 하나를 꺼내 땅에 던지듯 놓자, 연기와 함께 폭발한 나뭇잎은 문이 되었다. 나는 혁무진의 능력을 빌려 사라를 등에 업고 곧바로 문 너머로 들어갔다. 내 뒤를 따라 관유, 뤼카가 들어왔고 나는 문을 닫아 치우라고 말하고는 사라를 땅에 조심스레 눕혔다.


“불, 불을 지필만 한 것들을 찾아올게요!”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어두침침한 동굴이었다. 관유가 입구 쪽으로 달려가려는 것을 뤼카가 제지했다.


“제게 모닥불이 있으니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뤼카는 사라의 옆에 나뭇잎을 한 장 꺼내놓았고, 그것은 작은 캠프파이어용 모닥불이 되어 동굴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게임을 할 때 튜토리얼 클리어 기념으로 받은 것이라 만들어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쓸 데가 생기네요.”


덕분에 사라의 상처를 살필 수 있었다. 자세히 살피기 위해 그녀의 옷을 걷으려고 하는 찰나, 웬만한 남자보다 두꺼운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가슴은 보면 안 돼.”

“···미친년이.”


나는 그녀의 옷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절대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능력을 사용할 때가 왔다는 것에 내가 아는 최고로 심한 욕을 마음껏 퍼부었다.


“71장을 읽겠다.”


- 성녀, 루산데의 이야기를 선택하셨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99개 중에 제일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영웅은 내가 싫어하는 여인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후, 후크 님! 얼굴이···!”

“알아. 아니까 닥쳐.”


이 영웅의 능력을 쓰면 정말 빌어먹게도 내 얼굴이 영웅의 얼굴로 바뀐다. 정말 다행인 점은 내 몸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럼에도 개 같은 점은 내 목소리마저 그녀의 것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내 앞에서는 그 누구도 죽지 못한다. 설령 신의 노여움을 산 자라고 할지어도.”


내 두 손에서 발하기 시작한 환한 빛이 사라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순식간에 사라의 피가 멎고, 흉터도 남지 않게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씨발, 씨발.”

“···너는 내가 사는 게 그렇게도 싫냐?”


기운이 좀 나는지 시답잖은 농을 건네는 사라에게 나는 아까와 같은 욕을 들려주었다.


“씨발.”


*


DLPG 한국지부 NPC 양성소. 이곳을 처음 방문한 지화의 감상은 극도로 진화한 PC방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곳곳에 보이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자 곧바로 치미는 구토감과 혐오감, 어지러움과 분노에 그녀는 자신의 상관인 아르마의 등에 시선을 고정했다.


‘DLPG도 생각보다 별거 없어. 내가 없애야 해.’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에서의 일전이 패배로 돌아간 후였기에 그녀는 자기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자신의 앞에서 걷는 여성의 발걸음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는 것 외에도 그녀가 분노하고 있음은 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화는 조금씩 의문이 들었다. 과연 DLPG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내 피를 일부 가지고 있는 그 빌어먹을 놈이 생각보다 너무 강했다. 포비아 소장님의 명성에 먹칠하고 있는 이 어린 여자가 그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NPC가 되기로 한 게 정말 잘한 짓일까? 아니, 의심해서는 안 돼. 이 어린 여자가 못하면 내가 하면 되는 거야. 그래. 내가 이 여자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서 누구보다도 포비아 소장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돼.


“지화 당신은 RPG 게임을 하게 될 겁니다.”


아르마의 말에 상념에서 벗어난 지화는 조금 늦게 “네.”라고 대답했다.


“물론 게임 자체를 혐오하는 당신에게 있어 왜 게임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시키시면 하겠습니다.”


이미 더한 것도 했다. 그놈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땅에 처박았단 말이다. 그러니 쓸모없는 말을 다 집어치우고 본론만 말해주면 진심으로 고마울 것 같다.


“좋습니다.”


아르마는 거대한 알 같은 장치의 앞에 멈췄다. 지화가 그것의 앞에 서자 알은 저절로 열렸다. 안은 사람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푹신한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들어가세요.”

“네.”


생각보다 의자의 감촉이 훨씬 부드럽고 푹신했다. 알이 닫혔고, 어둠 속에서 아르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하려는 게임은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종류의 게임이 될 겁니다.”

“네.”

“후크가 아버지의 유품으로 가지고 있던 두 가지 물품. 기억하십니까?”

“네.”


분명 전자시계와 구닥다리 MP3 플레이어, 이 두 가지일 것이다.


“당신이라면 분명 후크에게 MP3를 건네주기 전에 직접 확인했을 겁니다.”


당연하지. 게임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당장에 부술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불행하게도 게임과 관련이 전혀 없었다. 분명 99개의 소설이었다. 아무런 교훈도,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은 가벼운 소설.


“후크의 능력은 그 MP3에 담겨 있던 소설들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르마가 뒷말을 잇기까지의 걸리는 약간의 시간이 지화에게는 매우 불길하게 들렸다.


“지금부터 당신의 기억 속에 있는 MP3에 담겨 있던 99개의 이야기를 모조리 끄집어낼 겁니다.”


작가의말

날이 덥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하루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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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 빌런 21.08.11 20 1 13쪽
15 14. 강릉지부 습격 사건 #2 21.08.10 26 1 12쪽
14 13. 강릉지부 습격 사건 #1 21.08.09 20 0 13쪽
13 12. 도굴꾼 21.08.08 25 0 12쪽
» 11. 하기 싫은 것 21.08.07 27 0 13쪽
11 10. 반격 21.08.06 28 1 13쪽
10 9. 위기 21.08.05 33 1 13쪽
9 8. 안 하던 짓 21.08.04 32 1 13쪽
8 7. 원한, 은혜 21.08.03 29 1 12쪽
7 6. 도원결의 21.08.02 36 1 14쪽
6 5. 민속촌에서 생긴 일 #3 21.08.01 38 1 13쪽
5 4. 민속촌에서 생긴 일 #2 21.07.31 42 1 12쪽
4 3. 민속촌에서 생긴 일 #1 21.07.30 46 1 12쪽
3 2. 탈출 21.07.29 46 1 15쪽
2 1. 만남 21.07.28 60 1 14쪽
1 0. Prologue 21.07.27 65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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