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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야 님의 서재입니다.

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김백야
작품등록일 :
2019.10.21 17:46
최근연재일 :
2019.12.0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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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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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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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글자수 :
139,372

작성
19.11.2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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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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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24화: 미로같은 골목, 골목같은 미로 (2)

DUMMY

"어떻게 가능하다는 거야, 계획이 뭔데."


추주원이 되물었다. 예쁘장한 하얀 얼굴에 답답함이 가득했다. 이완이 입을 열었으나 지하실이 워낙 소란스러운 덕택에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새벽의 수산 시장도 이렇게까지 시끄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겨우 다섯 평 남짓한 지하실 벽에 소리와 소리가 부딪쳐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쾅.


"조용!"


추주원이 단상을 발로 밀어 쓰러뜨렸다.


"조용! 조용히 해! 이완 오빠가 설명한다잖아! 터무니없고 현실 감각 없고 모두를 죽일 생각이냐는 비난은 듣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고맙다..."


추주원의 말은 어째 이완에게 돌려 말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아니, 돌려 말하는 게 아니라 들으란 듯 말하는 것 같았지만 이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뺨을 긁었다.


"저 기집애, 위세화가 죽더니 더 드세졌어..."

"위세화의 영혼이라도 들어갔나... 아니 그렇잖아, 그 위세화가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야?"

"합리적 의심 같은데."


앞 자리에 선 블랙들이 속닥거리고 있었다. 이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총은 성능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스무 자루 정도가 더 필요해요. 나는 무두를 빛으로 유인해 한 번에 해치울 생각입니다. 미로 밖까지 데려와서요."

"진짜 말이 안 되는데."


계획을 듣자마자 추주원이 꿍얼거렸다. 이완은 단상을 일으켜 세웠다. 싸구려 판자를 덧대 만든 단상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무두가 리젠되는 골목은 아무도 없을 때 바뀌어요. 조사를 위해 이틀 내내 지켜 보고 있던 골목이,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변해 버렸습니다. 길이 헷갈려서 벗어나느라 한참 걸렸죠. 변한 건 열 세 번째 골목이었어요."


단상 아래 깔렸던 자료와 지도를 집어 들며 이완이 말했다.


"...그렇다면, 자정이 지나고도 우리가 정해진 자리에 서 있는다면? 골목을 지키고, 보고 있다면? 바뀌지 않는 겁니다. 무두를 전부 없앤다면 빈 골목에 서 있던 사람들이 리젠되는 구역을 조사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그렇게 해 봤어요! 다 실패했다니까요!"


블랙들이 아우성쳤다.


"실패한 이유는 뭔가요."

"그야, 다 죽었으니까. 전부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그러니까 무두를 유인해 사냥하겠다는 거예요. 골목이 비면 어떤 무두도 인간을 먹어 치울 수 없으니까. 미로가 전부 비면 무두가 나타날까 두려워 할 필요도 없잖아요."

"너무 무모함다!"


추주안이 성큼 다가와 단상을 내리쳤다.


'이 단상의 수명도 오늘까지인가...'


추주원에 의해 구멍난 단상이 추주안의 주먹에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골목에 서 있던 사람들이 죽으면요! 자정이 지날 때까지 기다리다 습격 당하면? 위치를 파악했다고 해도 스무 곳이나 되는데 형이 어떻게 전부를 없앤단 말임까!"

"그러니 유인이 필요한 겁니다. 주안아, 진정해."

"하지만...!"


이완이 추주안의 어깨를 두드렸다. 추주안의 미간에 짙은 금이 갔다. 갈빛 피부에 식은땀이 맺혀 어두운 조명 아래 녹아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형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겨우 블랙 지역이 안정되고 있어요. 여기서 사상자가 나오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크게 흔들릴 거예요. 그게 형이면 더 안 되고요."

"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


추주안만 들을 수 있도록 속삭인 이완이 말을 이었다.


"빛을 쓰면 모든 무두가 저에게로 몰릴 거예요. 여러분은 각 구역에 서 있다가 저를 엄호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빛을 본 무두는 사냥하던 사람이 있더라도 빛을 향해 다가오니까요."


무두의 우선 순위는 빛이었다. 그들은 마치 영영 잃어버린 온기와 따듯한 피부, 숨쉬는 피를 되찾고 싶어하는 것처럼 밝은 빛 아래로 꾸물꾸물 모여들었다.


"형, 빛을 써서 무두를 잡으려던 사람들은 이미 전부 죽었어요. 알고 있잖아요."

"난 죽지 않아."

"형도 인간입니다! 무두가 한번에 달려들면 죽을 거라고요!"

"......괜찮아."


블랙들이 각 구역으로 흩어지고 난 뒤라면, 오히려 이완은 무두를 없애기 편했다. 팔 한 짝쯤 잃고 머리가 날아가도 죽지 않으니. 보는 사람만 없으면 되었다.


"궁금한 게 있어요."


이완과 추주안을 바라보던 사람 하나가 입을 열었다.


김세희였다. 하준의 여자친구. 그들은 고립되기 전인 이 년 전의 강동구에 살았다고 했다. 어느 날 눈을 뜨니 전 재산을 투자한 아파트는 무두의 연기에 의해 사라지고 양가 부모는 죽어 버렸다고. 덕분에 그들의 결혼도 무기한 연기되었다.


"빛을 사용해 무두를 유인한다고 해도 당신, 블랙이 모든 골목을 지나쳐야 하지 않나요. 그래야 무두들이 빛을 볼 수 있을 테니."

"네, 하지만 미로 사이 지름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스무 구역이나 되는 골목을 한 번에 지나가는 게 가능한가요. 자칫하면 블랙을 기다리다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어요."

"웬만하면 무두를 해치우면서 이동할 겁니다."

"블랙도 사람이에요. 구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나가면 지칠 거 아니에요. 블랙이 무두에게 없어지기라도 하면, 한 곳에 몰린 무두들이 누굴 찾겠나요. 그 지역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가겠죠."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이론 상..."


김세희가 사람들을 헤치고 이완에게 다가왔다. 이완의 코 앞까지 다가와 선 그녀는 가까이 있는 추주안과 추주원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블랙이 블루인 걸 알아요. 그 날, 지하실에 잡혀 왔었죠. 내 남편이 입고 있는 코트는 당신 거고."


이완의 눈이 일순간 커졌다.


"블루인 당신이 우리를 없애기 위해 이런 계획을 세우는 건 아닐지 어떻게 믿죠. 지금까지는 우리들의 수장, 블랙 행세를 했다고 해도 나는 당신을 믿지 않아요."

"...전부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건 당신이 내 남편 될 사람의 목숨을 구해 줬기 때문이에요.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면 더는 비밀로 갖고 있지 않겠어요.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들의 리젠 장소를 조사하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어쩌면 무두가 왜 생기는지, 왜 줄어드는지도 알 수 있을 거예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대화가 길어지자 추주안이 다가왔다.


"왜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추주안이 딱딱한 목소리로 김세희에게 물었다. 덕분에 이완은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막느라 입을 가려야 했다. 추주안이 어른 흉내를 내는 걸 볼 때마다 긴장이 풀렸던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계획이 위험해 보여서요."

"그건 내가 보기에도 그러니 더 설명을 들어 보는 게 좋겠다."

"그렇게 하죠."


김세희가 물러섰다.


'한 번도 내가 무두 사냥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게 분명해.'


할 수만 있다면 김세희를 무두 사냥터에 세워 두고 싶었다. 김세희는 병약했다. 무두 특유의 매캐한 냄새와 냉기에 줄곧 기침을 달고 살았고, 당연하지만 병원에 갈 수 없었으니 병세는 이 년 새에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이완이 없었던 시기엔 무두 사냥에 참여하긴 했으나, 그마저도 다른 블랙을 엄호하는 정도였다고 들었다. 무두의 수가 줄어들자마자 다른 업무로 할당량이 변경된 첫 번째 사람이기도 했다.


'나에게는 무두를 죽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직접 눈으로 보게 된다면 더 이상 블루인 걸 말하겠다고 협박해 오진 않겠지.'


이완은 지도를 가리켰다.


"여기, 제 1구역부터 20 구역까지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검정색 펜을 들어 지름길의 모양을 따라 길을 그렸다.

"이 곳을 돌파하는 건 십 분이면 가능합니다. 이론 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해요. 따라오는 무두의 수가 너무 많을 경우를 대비해 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저도 무기가 없으면 별 수 없으니까요."


이완은 골목과 골목 사이, 블랙들이 무두를 죽이기 위해 매복하는 지점을 펜으로 표시했다.


"우리는 보통 여기서 무두를 기다리죠. 여기에 총을 구해 숨겨 두는 겁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도록요. 따라오는 무두를 적절이 없애면서 뛰면 미로 밖으로 유인해 한 번에 모든 무두를 없애는 것도 가능합니다."

"한 번에 한 마리를 잡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가능하다는 겁니까?"

"미로 밖에서 나를 도와 줄 사람들을 미리 대기 시켜 놓을 겁니다. 주안 씨나 주원 씨, 또 하준 씨 정도라면 한 번에 두 구, 어쩌면 세 구까지도 없앨 수 있을 테니까요."


내내 팔짱을 낀 채 이완의 말을 듣던 추주원이 붉은 입술을 열었다.


"미로 밖으로 유인해 내기만 한다면야 여러 구를 해치우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아. 그래. 일리가 있어. ...하지만, 역시 안 돼."

"어떤 문제 때문에?"

"총 스무 자루라니. 그렇게 많은 총은 못 구해. 지금 우리들, 블랙이 쓰는 것도 겨우 구한 거야. 밀수입한 거라고."

"방법이야 찾으면 되잖아. 총 몇 자루 정도는 행상을 통해 구할 수 있고."

"아니, 안 돼. 일단 예산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한 번에 그렇게 많은 총을 구해 쌓아놨다가는 경찰이 뜰 거야. 경찰들은 우리가 무두를 잡는 걸 절대 이해해 주지 않아. 그 사람들 말대로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무기 소지는 불법이기도 하고."


추주원이 비꼬았다. 추주안이 추주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주원이 말이 맞습니다, 형. 그들은 무두 대신 우리를 잡아갑니다. 법을 어긴 자들이라고 하면서요."

"...하지만! 그런데도 경찰이 블랙을 전부 체포하러 오지 않는 건 어쩌지 못해서가 맞잖아. 그들도 무두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다면서. 이 구역이 두려워 오지 못하는 게 아니었어? 블랙의 무법 지대라고 불리잖아?"

"그야 그렇죠. 하지만 적정 선이라는 게 있어요. 빌어먹을 경찰들 입장에서 우리는 눈 감아 주는 외곽인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이완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명감이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타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방법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추지한.


그는 서울 중앙지검에서 일했다. 고시에 합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말단일 게 분명했다. 그러니 도움까지는 기대할 수 없어도,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들을 수 있을지 몰랐다.


'허점 같은 걸 발견한다면 어떨까. 대화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도움 되는 이야기가 있을 거야.'


이완이 주머니 속에서 휴대 전화를 쥐었다.


"...알겠어. 잠깐만 기다려 줘."

"지금도 언제 경찰들이 들이닥칠 지 모른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무기를 숨기고 당장 숨이 넘어가는 사람 흉내를 내야 했어요. 가난한 병자처럼요. 그거야말로 블루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약자의 모습이죠! 왜 우리가 블루를 증오하는지 기억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그들을 무두에게서 지킬 때, 그들은 우리를 외곽인이라고 부르며 멸시하고 있다는 걸. 잡아가지 못해 안달이라는 걸."

"알겠어. 알고 있어.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까..."


그 때였다.


쾅쾅쾅.


이완과 추주안, 추주원을 포함해 지하실에 담겨 있던 블랙들이 숨을 멈추었다.


"경찰..."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다가 옆 사람에게 입을 막혔다. 추주원이 책상을 뛰어 올라가 불을 껐다.

지하실이 어둠에 가려졌다.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작가의말

추남매 이름은 작가도 쓸 때마다 헷갈립니다.

그게 컨셉인데 컨셉을 너무 과하게 잡았나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5 ek******..
    작성일
    19.11.29 14:00
    No. 1

    어딜가나 공권력이 말세...ㅠ 역시 쉬운게 없군요
    주원이가 돌려까는 거 귀여워요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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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미로같은 골목, 골목같은 미로 (2) +1 19.11.29 26 2 12쪽
24 23화: 미로같은 골목, 골목같은 미로 19.11.27 30 2 12쪽
23 22화: 형이 왜 거기서 나옵니까 19.11.25 34 1 11쪽
22 21화: 사냥에 천부적인 재능을. +1 19.11.24 32 2 12쪽
21 20화: 천부적인 재능을. 19.11.22 35 3 12쪽
20 19화: 훈련 19.11.20 30 1 12쪽
19 18화: 고양이 눈매의 남매 19.11.18 34 3 12쪽
18 17화: 괴물의 심장은 사람과 같다 19.11.17 39 3 11쪽
17 16화: 외곽으로 향하다(2) 19.11.15 47 4 12쪽
16 15화: 외곽으로 향하다 19.11.13 45 3 11쪽
15 14화: 블루 칼라 19.11.11 52 3 11쪽
14 13화: 세계가 조작한 만남 19.11.10 44 3 12쪽
13 12화: 이세계의 정원 19.11.08 59 3 13쪽
12 11화: 나도 모르는 새에 살인자가 되었다 19.11.06 55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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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19.11.03 72 3 12쪽
9 8화: 만남 19.11.01 6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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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화: 죽음을 결심하다 19.10.28 74 4 11쪽
6 5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2) 19.10.27 78 3 13쪽
5 4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9.10.25 86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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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화: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19.10.23 143 4 11쪽
2 1화: 게임 오버 19.10.23 211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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