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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야 님의 서재입니다.

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김백야
작품등록일 :
2019.10.21 17:46
최근연재일 :
2019.12.02 10:29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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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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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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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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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DUMMY

서현주는 이완의 애인이었다. 한때는 결혼을 약속할 정도로 깊은 사이였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이완은 취업 전선에, 서현주는 대학원에 뛰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 처음 일 년은 회사 적응하는 데만도 바빴으니까.'


일 주일에 한 번이던 데이트는 한 달에 한 번으로, 매일 주고받던 전화는 안부 문자로 변했다. 그마저도 답장을 잊거나 연락하는 걸 깜빡하고는 했다. 이완이 부지런히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동안 서현주는 대학원에 출퇴근했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동안 비슷했던 관심사는 저절로 벌어졌고, 이완은 서현주를, 서현주는 이완을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은 항상 토를 달았다. 공부가 힘들다는 서현주의 말에 이완은 그녀를 위로하면서도, 속으로는 나 역시 집안이 따라주었다면 공부를 계속했을 거라고 대답했다.


이완은 서현주에게 남자가 있다는 걸 알았고 이완 역시 간혹 다른 여자와 데이트했다. 헤어진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못돼 먹었던 거지.'


그래도 서현주는 이완의 애인이었다. 함께 모임에 나갈 때면 이완은 서현주를 애인이라고 소개했고, 서현주도 대학원 동료들에게 이완을 애인이라고 소개했다. 남자친구가 잘 생겨서 좋겠다며, 현주 씨와 잘 어울린다는 말에 서현주는 쑥스러운 듯 웃고는 했다.


이제 와서 서현주에게 열등감을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연락이 늦은 건 순전히 바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기억을 잃은 건지, 세상이 바뀐 건지는 몰라도 당황스러운 일이 있지 않았던가. 덤덤한 성격의 이완이라도, 사람이 눈 앞에서 실시간으로 터져 나가는데 제정신일 수는 없었다. 서현주와의 마지막 통화는 이 주 전이었다. 시기를 생각하면 연락할 때가 되긴 했다.


'연락이 안 되네.'


이완은 그래도 서현주가 좋았다. 서현주는 현명했다. 신경질적인 면이 있어서 밤 늦게 퇴근한 이완에게 전화를 걸어 한 시간이 넘도록 스트레스를 토로할 때도 있었지만, 언젠가는 그런 면도 사랑스럽게 느껴졌을 때가 있었다.


이완은 종종 그녀와 사귀지 않고 친구로 남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벌써 세 통 째인데.'


연결되지 않는 신호음이 초조했다. 이완은 문자라도 남겨둬야 하나 고민했다. 메신저는 사라져 있었다.


서현주는 연락이 안 되는 타입이 아니었다. 교수가 부르면 새벽에도 뛰쳐나가야 한다며 항상 전화벨 소리를 켜두고 잤다. 덕분에 잠귀가 과도하게 밝아져서, 이완이 서현주의 자취방에 묵을 때면 아침이 될 때까지 내내 뒤척이지 말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현주야. 메신저 없앴더라. 문자 보면 연락 줘.]


바쁜 건가, 답장은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오지 않았다. 서현주에게 전화를 건 순간 할당량은 채워졌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이완은 들었다. 그녀가 걱정되었다.


잠수를 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이완이 아는 서현주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화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느껴지는 감정을 쏟아붓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표현이 적고 무뚝뚝한 이완은 그럴 때마다 곤란함을 느꼈다. 어떤 날은 가만히 있어도 화를 냈고, 대답해도 화를 냈다.


[현주야,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이완은 문자를 한 통 더 남겼다. 신호는 가는데 받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했다. 고민하던 이완은 서현주의 성화에 못 이겨 깔았다가 거의 사용하지 않는 SNS에 접속했다.


서현주의 계정이 사라져 있었다. 서현주는 SNS를 즐겨 했다. 마음에 드는 옷 가게나 음식 사진, 연구실과 대학원, 이완의 사진, 글귀를 찍어 올렸다. 방금 업로드한 글에 마음에 들어요를 눌러 달라고 종용할 때도 있었다. 데이트를 할 때면 함께 사진을 찍자고 이완을 졸랐다. 사진이 기록이라고, 찍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했다.


고민하던 이완은 자신의 팔로우 목록에서 서현주의 친한 친구를 찾았다. 장수인은 이완과도 동기여서 번호가 있었다. 자정이 지났다. 연락하긴 늦은 시간이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연락해야겠지.'


이완은 망설였다. 전화번호부에서 번호를 찾기는 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장수인의 게시물이 SNS 피드에서 갱신되었다. 한가롭게 목욕을 즐기고 있는 사진이었다. 오늘 할 일도 끝, 문구와 함께 웃는 이모티콘 세 개.


무슨 용기가 났는지 이완은 장수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수인아, 나 이완인데."

"야, 무슨 일이야! 전화 잘못 건 줄 알았어."

"잘 지냈어? 다름이 아니라 물어볼 게 있어서."

"응? 뭐가? 네가 먼저 연락을 다 하고 별일이네."


전화기 너머, 장수인의 목소리는 활발했다. 다행이었다. 서현주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라면 이렇게 반기진 않았겠지. 이완이 기억하기로 서현주와 장수인은 최근까지도 하루에 몇 번씩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완과 있는 동안에도 장수인과 통화했고, 이완과 싸우면 장수인에게 전화해 화를 풀었다.


이완은 서현주가 잠수 이별을 탄 게 맞다고 해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주가 연락이 안 돼서."

"응? 현주?"

"그래, 현주가 내 연락을 안 받아. 신호는 가는데. 늦은 시간에 정말 미안한데, 걱정이 되잖아. 얘가 연락을 안 받는 타입도 아니고, 정말 미안하지만 네가 알면 혹시......"

"현주가 누구더라?"

"뭐라고?"


이완의 말을 끊고 들려온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이완은 장수인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놀리지 말고, 현주 말야. 너희 둘이 제일 친한 친구라며."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야. 갑자기 연락해서 모르는 사람 이름부터 대면 어떡해? 우리 학번 동창이야? 찾아볼까?"

"현주를 모른다고?"

"그래, 처음 듣는 이름이야. 좀 흔한 이름인 것 같긴 한데... 그래서 기억이 안 나나? 잠깐만."


전화기 너머로 무언가를 찾는 소리가 났다. 장수인이 이완을 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냐, 아냐. 미안하다. 모르면... 됐어. 푹 쉬어."


이완은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 종료를 알리는 화면이 핸드폰에 떠올랐다. 장수인은 서현주를 모른다고 했다. 이완은 당황스러웠다. 이완은 다시 서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섯 번째였다.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한 이완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볼펜 끄트머리를 잘근거리고 있었다. 인스턴트 커피를 입에 대지 않게 되자 종이컵 대신 씹을 게 필요했다.


'진짜 이상한데.'


내내 서현주가 걱정이었다. 서현주는 아침까지 연락이 없었다. 자정이 되자 할당량은 갱신되었다. 덕분에 해야 할 일을 파악하기 쉬웠다. 추가 업무가 주어질 때가 있었지만, 제한 시간 내에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정도였다. 나쁘지 않았다. 최근에는 야근도 없었다. 이완은 사원증을 컴퓨터 옆에 걸어놓았다. 그 편이 할 일을 한 번에 확인하기 좋았다.


11월 6일 (목)

14시 21분

날씨: 저녁에도 제법 따스합니다.


금일 할당량:

안경사 샘플 완성 후 백업해 올리기

안경사에 연락하여 발주 승인 받기

V사 팜플렛 물량 확보

서울시 성북구 타이포 출력하기

...


사원이 그렇게 된 뒤로 신입을 다시 뽑진 않았지만, 사원이 처리했던 일이 많지 않아서 업무는 조금 추가된 정도였다. 이완은 서울시 성북구 투어 팜플렛에 쓸 타이포를 출력해 체크하면서, 할당량이 눈에 보이게 된 덕분에 일정 관리는 훨씬 편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 현주 사는 동네인데.'


이완은 하늘에서 찍은 성북구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에서 노란 끼를 빼고 색감을 보정하는 동안, 이완은 핸드폰을 계속 흘끗거렸다.


서현주가 학교 근처에 자리잡으면서 이완은 성북구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학교에 메인 서현주가 이완의 집까진 오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이완의 집에서 서현주의 집까지는 한 시간 거리였지만, 이완의 회사에서 서현주의 집까지는 지하철로 삼십 분밖에 안 걸린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네가 좀 와. 난 공부하느라 바쁘잖아. 너네 집 갔는데 교수가 호출하면 어떡할 건데. 네가 책임질 거야? 한 번만 눈 밖에 나도 나가리라고.'


서현주의 앙칼진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럴 때마다 이완은 서현주가 이기적이고 자기 멋대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일로 싸우기도 자주 싸웠다. 지금은 그 목소리가 그리웠다.


결국, 금요일 아침 일찍 이완은 서현주의 집으로 출발했다. 서현주의 자취방은 이완의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대학가일 뿐더러, 세 번이나 환승하고 내려서 십 오분 더 걸어야 했다. 이완은 택시를 잡아 탔다. 회사가 중간에 있어서 잠깐 들리는 정도로는 시간이 아슬아슬하게 맞았다.


'바로 앞에 지하철 역 있으니까 회사로 갈 때 막히진 않겠지.'


지하철이 이런 게 좋다니까, 버스는 막히면 끝도 없는데. 생각하며 이완은 초인종을 눌렀다가 서현주네 집 초인종이 망가진 지 오래라는 사실을 깨닫고 문을 두드렸다. 철문이 쾅쾅 울렸다.


'현주야."


아직 학교 갈 시간은 아닐 텐데, 이완은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현주야! 집에 있어? 나 완이야!"


막무가내로 찾아온 게 아닌가, 서현주가 정말로 이별을 원하고 있다면 어쩔 수 없었지만 얼굴은 봐야 했다. 그래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자 이완의 사원증은 갱신되었고 그건 이완의 세계가 변한 상태로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의미했다.


이완은 변한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적응해야 했다. 그래서 더욱 불안했다. 이미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긴 지금, 주변에 무슨 일이 더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옆집 문이 열렸다.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의 여자가 이완을 짜증스레 노려보았다. 잘 됐다, 혹시라도 서현주의 거취를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죄송합니다, 혹시 여기 사는 사람......"

"저기요, 그 집 몇 년째 비어 있어요. 아침부터 시끄럽게."

"네?"


이완은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빈 집 된지 오래라고요. 시끄러우니까 좀. 멀쩡하게 생겨서 댓바람부터 지랄이야."


여자는 쌀쌀맞게 대답하고는 문을 쾅 닫았다. 대꾸할 틈도 없었지만, 틈이 있었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거였다. 그럴 리 없다. 서현주는 부모님 댁에서 나온 후 몇 년간 이 집에 살았다. 월세가 싸다는 이유로 이사 갈 생각도 없다고 했다.


최근에 이사를 갔다고 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완은 불과 이 주 전에 서현주와 이 집에서 밥을 먹었다. 고민하던 이완은 가방 안에서 예비 열쇠를 찾아냈다. 서현주가 이완에게 선물한 거였다. 서현주는 자신이 집에 없을 때를 제외하면, 이완이 허락 없이 출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가지고 다니면서도 쓸 일이 적었던 열쇠는 문에 꼭 맞았다.


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먼지가 초라하게 굴러다녔다. 방은 전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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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화: 천부적인 재능을. 19.11.22 3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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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화: 고양이 눈매의 남매 19.11.18 3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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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외곽으로 향하다(2) 19.11.15 47 4 12쪽
16 15화: 외곽으로 향하다 19.11.13 45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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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화: 게임 오버 19.10.23 212 6 11쪽
1 프롤로그 19.10.21 447 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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