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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야 님의 서재입니다.

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김백야
작품등록일 :
2019.10.21 17:46
최근연재일 :
2019.12.02 10:29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016
추천수 :
80
글자수 :
139,372

작성
19.11.0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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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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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화: 만남

DUMMY

유성지는 사람이 싫었다. 정확히는 불편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들을 시체로 조우하는 건 지긋지긋했다.


시체조차 남지 않는다는 점이 제일 허무했다.


"이번 광고는 좀 뻔하긴 한데, 어그로를 끌어서 반항 심리 불러 일으키는 걸 목적으로 했어요. 이대로 내보내면 윤리 위원회에서 난리 날 테니까, 소란 좀 있으면 노이즈 마케팅도 되고. 아, 작가님 디자인 가치 훼손될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유성지 작가 명예 실추된 것 아니냐, 그런 댓글 팀도 사전에 풀어둘 거고요. 그러면 작가님이랑 저희를 분리해서 생각할 테니까, 그런 식으로 맞불을 피워서 논란을 만들면......"


가령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팀장이, 내일이면 CG속 사람처럼 유성지의 앞에서 죽어나갈 수도 있었다.


"야 이 씨발 새끼야! 그 따위로 할 거면 나오라고!"


감독은 30초짜리 광고 헤드라인을 찍으면서 역작이라도 만드는 양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유성지를 세워 두고 떠들던 팀장은 감독의 목소리에 묻히지 않기 위해 소리를 한껏 높여야 했다. 성량에 비해 억지로 키운 목소리가 거슬렸다.


"......그래도 매출은 잘 나올 거고요, 이번 광고 내보낸 다음에 몇 달 지나서 시계 수입 몇 퍼센트는 외곽인들, 블랙 칼라 하위 계층한테 기부했다고 하면 광고 저의는 몰라도 좋은 일 했다고 여론은 뒤집힐 거예요. 실제 기부액이랑은 상관 없이......"


이제 촬영은 막바지였다. 죽지 마세요, 시계를 차세요. 광고 문구가 지나갔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유성지는 간혹 시체 없는 무덤을 만드는 작업에 불려다녔다. 고인이 터져 나가기 직전에 남긴 물건이나 머리카락 등을 수습해 화려한 무덤을 만드는 것이 고위 계층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대부분은 텅 빈 함에 고인을 기억할 만한 물건을 넣은 뒤 묻거나 간직하는 것으로 장례를 대신했다. 언제 어떻게 불시에 죽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장례조차 치르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개미가 동료의 장례를 치르지 않는 것처럼.


"......그래도 어디선가는 우리가 사회 취약 계층이니까 좀 더 전범위하게 돈을 풀어야 할 것 아니냐, 쓸 거면 화끈하게 써야지 기업씩이나 돼서 저게 뭐냐, 총 기부액 공개해라 종알거리긴 할 건데, 그 정도는 커뮤니티에 여론 팀 풀어서 입 닥치게 만들면 그만이고요......"


돈이 넘쳐나는, 때문에 자신의 할당량을 타인에게 떠넘기거나 미룰 수 있는 사람들은 주변인을 성대하게 기렸다. 죽은 이의 모형을 시체처럼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넣는 경우도 있었다. 고위 계층일 수록 주변인을 잃기 어려우니 죽음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거일 수도 있었다.


죽은 이의 모형은 생전 그대로 만들지 않았다. 상황을 가늠해 죽었을 당시를 재현했다. 만들어진 모형이 죽기 직전과 가까울수록 높은 금액에 거래되었다. 어떤 작가는 때가 되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부패하는 장치 역시 만들어 넣었다.


"작가님, 성지 작가님. 듣고 계세요?"

"네? 아,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셨죠."

"저희 10월 매출 덕분에 주가가 상승해서, 작가님께도 상여금이, 아, 작가님은 저희 회사 사람이 아니니 상여금이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유성지는 팀장을 슬금슬금 피해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지루했다. 감독은 배우에게 같은 장면을 세 번째 지시하고 있었고, 배우는 지쳤는지 물을 마시면서 스탭에게 욕을 지껄이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과도하게 말을 거는 거지. 재계약 안 따내면 다음은 네 모가지라는 지시라도 받았나.'


유성지가 불편한 기색을 보여도 생글생글 웃기만 하는 팀장은 유수지와 닮아 있었다.


유성지의 누나인 유수지는 모두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친절을 익혔다고 했다. 예의를 차리고, 지쳐도 웃던 유수지는 결국 그제 터져 나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타인을 배려하겠다고 했으면서, 유수지 자신의 죽음은 예견하지 못한 걸까.


친절도 예의도 가식처럼 느껴졌다. 시체조차 남지 않을 사람들과 웃고 싸우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럴 시간에 작품을 만드는 게 나았다.


'누나가 나 때문에 죽었다는 게 무슨 소리지.'


김성준의 말을 떠올렸다. 구석에 없는 사람처럼 서 있으니 팀장이 자신을 찾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유성지는 몸을 최대한 벽에 붙였다. 꼭 촬영 장비 같았다.


학창 시절, 유수지는 아무와도 함께 다니지 않는 유성지를 위해 종종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시켰다. 유성지가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성지야. 내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내.'


기억 속의 유수지는 활짝 웃고 있었다.


'네가 성지구나, 수지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천재라면서? 재능이 대단하다고.'

'진짜 대단하다, 난 그림은 하나도 못 그리는데......'

'타고났다는 게 이런 걸까. 나도 뭐가 됐든 하나라도 잘하고 싶다!'


유수지의 친구들은 유수지가 유성지를 자랑하며 보여준 그림들을 펼치며 한 마디씩 했다.


유수지의 친구들은 유성지와 학교에서 마주칠 때마다 아는 체를 했다. 지금, 유성지를 애타게 찾고 있는 팀장처럼. 유성지는 그녀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서 말을 걸 때마다 당황한 얼굴로 누구냐고 물어야 했다.


'너는 어쩜 볼 때마다 내 이름을 까먹니? 얼굴은 기억하는지 의심되네.'

'......'

'기억하지? 그렇지?'

'어......'


유성지가 유명 작가로 이름을 떨치기 전에도 사람들은 유성지를 좋아했다. 유수지의 친구들은, 누나의 걱정 어린 당부라고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유성지에게 치근덕댔다.


유수지는 따돌림을 걱정했지만 반 아이들은 유성지에게 냉정하게 군 적이 없었다. 유인물이나 숙제를 까먹는 유성지를 위한다며 연락하는 아이들이 귀찮으면 귀찮았지, 따돌림을 당한 적은 없었다.


'아는 척 하실 필요 없어요. 왜 자꾸 인사하는 건가요.'

'그거야 네가 수지 동생이니까.'

'그런 거라면 더더욱 아는 척 안 해도 되는데요. 오지랖이에요.'

'넌 잘생겼잖아. 수지를 빼도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지.'


유성지의 이목구비가 모난 곳 없긴 했지만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유성지는 스스로의 외모를 그런 식으로 평가해 본적이 없었다. 유성지도 눈이 있고, 하물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으니 인간이 보기에 편하고 호감을 갖는 외모가 어떤 식인지는 알고 있었다.


유성지는, 키는 작았고 형편없이 말랐으며 팔목과 발목은 가느다랬다. 작고 왜소하고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 아니었다. 비뚤어진 입술과 음울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음침해 보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유성지를 좋아했다. 모를 일이었다.


"작가님! 여기 계셨네요! 스크립트는 넘겨 보셨어요? 계약 건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광고는 괜찮은 것 같나요? 아까 제 얘기는......"


기어코 팀장이 유성지를 찾아냈다. 잠이나 자고 싶었다. 갑작스레 졸음이 몰려왔다. 침대가 간절했다. 팀장은 유성지가 없는 동안 하지 못한 말을 전부 쏟아낼 기세로 조잘댔다.


"아 참, 작가님은 영감을 어디서 얻으세요? 작가님 작품 볼 때마다 궁금해가지고요. 현대 미술이랑 디자인, 고전 예술을 같이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사진 작업도 하신다면서요? 여쭤봐도 되나요?"

"아, 그게. 음."

"진짜 궁금했어요. 제 동생도 그림을 그리거든요! 작가님 팬이에요. 그래서 저도 알게 됐는데. 하여간, 작가님이 어디서 그렇게 뛰어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하다고 그러더라고요."

"아. 그냥. 자면서."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정말입니다. 그냥 자면......"

"잠이요? 역시 천재는 다른 건가? 그것도 대단...!"

"조금 피곤하네요."

"어머, 괜찮으신 거예요? 많이 그러세요?"

"저는......"

"세하야! 작가님 피곤하시다는데 커피 한 잔 사다 줄래?"


양 팔 가득 들어오는 조명 장비를 끌어안고 스튜디오에 지뢰처럼 깔린 전선을 피해 종종거리던 스탭을 불러 세우더니 팀장이 말했다. 법인카드를 꺼내는 손을 유성지가 막아 섰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러지 마시고요, 작가님..."

"아뇨, 아뇨, 진짜 괜찮습니다. 커피는 직접 사다 마실게요."

"작가님 저희가......"

"괜찮아요. 괜찮아요. 진짜로. 지금 사 올게요. 지금..."


유성지는 뒷걸음쳤다. 팀장이 뭐라고 잡기 전에 스튜디오를 벗어났다. 문이 닫히자마자 팀장이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충 사교성이 없다느니 저래서 예술가들은 안 된다느니 같은 말이었다.


도망칠 생각이었다. 스튜디오에 있고 싶지 않았다. 유성지는 주머니를 뒤져 할당량 카드를 확인했다.


...

D업체 시계 광고 센터 방문_6시(1/1)

...


다행히 방문 일정에 완료 표시가 떠 있었다.


'곧장 집으로 가서 자야지.'


사람들은 유성지에게 작품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느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유성지는 그냥 잔다고 대답했다. 사실이었다. 유성지에게 잠은 도피처이자 예술의 근원이었다.


*


이완은 이 주일 만에 회사에 출근했다. 이완의 무단 결근에 주 대리는 한참 잔소리를 퍼부었다. 윗선은 모른척했다. 징계를 받긴 했지만 수위는 약했다. 잘리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새 사람 뽑기가 아까웠나. 고작 잡무인데도 가르칠 사람 기르는 게 귀찮았나 보지.'


출근하지 않은 동안, 할당량은 매일 갱신되었지만 끝내지 않아도 죽지 않았다. 이완이 끝내지 않은 할당량은 내용만 바뀌어 미뤄지다가, 다른 것으로 교체되거나 했다.


회사에 출근한 건 생활비가 없어서였다. 침대에 누워 잠만 자도 공과금과 집세는 통장을 빠져나갔다. 집세 납부가 안 되었다는 집주인의 전화에 통장을 확인하니, 이번 달 생활비마저 간당간당했던 것이다.


11월 21일 (금)

6시 29분

날씨: 바람이 차갑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모두 쌀쌀합니다.


...

금일 할당량:

서울매트로 공익 광고 3차 편집(1/1)

G사 광고주 미팅(1/1)

....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완은 계약이 진행되는 내내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이완의 수척한 몰골에 업체는 계약을 망설이는 듯 했으나, 주 대리의 작품인 건실한 계약서를 보고 도장을 찍었다. 이완은 막 외근을 마치고 건물을 나오는 길이었다


이완이 유성지와 부딪친 건 그 때였다.


"아, 죄송합니다."


남자는 왜소했다. 요 며칠 체중이 감소한 걸 감안하더라도 이완의 체격은 큰 편이었다. 남자는 휘청거렸다.


이완은 남자의 팔을 잡아 주려고 했지만, 이완의 손을 쳐낸 그는 괜찮다는 말도 없이 이완을 지나쳤다.


'무뚝뚝한 사람이네.'


익숙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거리에 멈춰 선 이완은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엉망인 머리카락, 퀭한 눈.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저 얼굴, 저 모습 자체를 어딘가...'


이완은 뛰어가 남자의 팔을 잡았다. 걸음이 빨랐다. 다행히 신호가 바뀌기 전에 남자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유성지는 놀라고 당황하고 불쾌한 눈으로 이완을 돌아보았다.


"저기요, 죄송한데 혹시 저 모르시나요. 얼굴이 낯이 익은데."

"네?"


훗날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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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미로같은 골목, 골목같은 미로 19.11.27 30 2 12쪽
23 22화: 형이 왜 거기서 나옵니까 19.11.25 34 1 11쪽
22 21화: 사냥에 천부적인 재능을. +1 19.11.24 32 2 12쪽
21 20화: 천부적인 재능을. 19.11.22 35 3 12쪽
20 19화: 훈련 19.11.20 31 1 12쪽
19 18화: 고양이 눈매의 남매 19.11.18 34 3 12쪽
18 17화: 괴물의 심장은 사람과 같다 19.11.17 39 3 11쪽
17 16화: 외곽으로 향하다(2) 19.11.15 47 4 12쪽
16 15화: 외곽으로 향하다 19.11.13 45 3 11쪽
15 14화: 블루 칼라 19.11.11 52 3 11쪽
14 13화: 세계가 조작한 만남 19.11.10 44 3 12쪽
13 12화: 이세계의 정원 19.11.08 60 3 13쪽
12 11화: 나도 모르는 새에 살인자가 되었다 19.11.06 55 3 11쪽
11 10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19.11.04 58 3 12쪽
10 9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19.11.03 73 3 12쪽
» 8화: 만남 19.11.01 68 3 12쪽
8 7화: 유성지 19.10.30 69 3 11쪽
7 6화: 죽음을 결심하다 19.10.28 74 4 11쪽
6 5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2) 19.10.27 78 3 13쪽
5 4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9.10.25 86 3 11쪽
4 3화: 할당량 19.10.23 99 3 14쪽
3 2화: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19.10.23 143 4 11쪽
2 1화: 게임 오버 19.10.23 211 6 11쪽
1 프롤로그 19.10.21 446 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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