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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야 님의 서재입니다.

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김백야
작품등록일 :
2019.10.21 17:46
최근연재일 :
2019.12.02 10:29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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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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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글자수 :
139,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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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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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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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2)

DUMMY

"대리님, 혹시 사람이 사라지면 존재도 잊혀지나요?"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이완 씨......"


주 대리가 아연실색했다. 이완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는 얼굴이었다. 옆에서 녹차 티백을 뜯던 김서윤은 아예 이완이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작게 웃기까지 했다.


김서윤이 녹차를 들고 탕비실을 벗어나자 주 대리는 이완을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병원이라도 가 보는 게 어때. 꼭 기억 때문만은 아니고, 이완 씨 말대로라면 지금 충격 장난 아닐 거 아녜요. 항우울제 같은 거 필요하지 않겠어?"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리님. 그러게요."


이완이 영혼이 나간 말투로 하하 웃었다. 주 대리가 마침 커피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시선을 돌려야 했다.


"일은 잘 하니까 별 말은 안 하겠지만, 걱정되니까 그렇죠. 하여간, 너무 참견해서 미안해요. 이완 씨도 얼른 들어와."


탕비실 문이 닫혔다. 이완은 간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완은,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주 대리와 김서윤의 반응을 보면 사람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존재가 사라지는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어제도 밤새 포털을 뒤졌지만 사람의 존재 자체가 소멸된다는 말은 토씨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이완 역시 터져 버린 사원과 여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니 가능성은 적은 이야기였지만, 혹시나 했기에 한숨을 쉬었다.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차라리 누군가가 자판기 뒤에서 나타나 지금까지 트루먼 쇼였다고 외쳐 주길 바랐다. 자판기를 멍하니 바라보던 이완은 습관처럼 종이컵을 뽑았다가, 차가운 물을 따라 마시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완은 반쯤 넋을 빼놓고 2팀 드라이브에 발주 날짜를 기입하고 있었다. 업무가 끝나면 서현주의 본가에 가볼 생각이었다. 연애하면서 서현주의 부모를 만난 건 세 번이었다. 서현주의 부모는 이완을 좋아했다.


'남자친구가 아주 훤칠하고 잘생겼네! 이런 청년을 어디서 찾은 거냐?'

'우리 현주 능력 있네!'


부모의 칭찬을 들을 때마다 서현주는 키득거리며 이완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완 역시 민망하긴 해도 여자친구의 부모에게 잘 보여 나쁠 것 없었기에 무던하게 웃었다. 서현주의 본가는 강동구 끄트머리에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지만, 그깟 피곤함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완은 그들의 연락처를 몰랐다. 예의에 어긋나더라도 직접 찾아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완은 시계 바늘이 여섯 시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회사를 벗어났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음료수 패키지 하나를 샀다. 빈 손으로 찾아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였다. 이완은 기억에 의지해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내려갔다. 사람이 적었다. 주 대리가 말한 것처럼, 이런 골목에도 할당량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있을까. 어딘가에서 또 칼을 쥔 남자가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이상했다. 외지긴 했으나 엄연히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동네였다. 집들은 조용했고, 멀쩡했던 도로 몇 개는 아예 막혀서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 너머로 불에 탄 것처럼 무너진 집들이 보였다. 아파트가 있었다고 기억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라도 죽은 건가. 아니면 자연재해? 그러면 왜 재건하지 않는 거지.'


강동구는 최근 집값이 오르는 지역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이완이 기억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아파트가 통째로 무너지거나 사라졌다는 소식은 본 적 없었다. 공터는 낯설었다. 이완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서울에서 땅을 놀릴 리가 없는데. 손바닥만한 땅에도 건물을 짓지 않던가.'


골목으로 들어갈 수록 길이 지도와 달라서 이완은 한참 헤맨 뒤에야 서현주의 본가를 찾아냈다. 창문에서 형광등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행이야, 집에 계신가 보다.'


이완은 초인종을 눌렀다. 집 안에서 발소리가 났다. 인터폰으로 서현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현주 남자친구인데요, 이완입니다. 갑자기 찾아 봬서 죄송합니다."


슬리퍼 소리가 가까워지고 문이 열렸다. 서현주의 어머니는 일 년 전에 보았던 그대로였다. 이완은 잠시 안심했다.


"잘 지내셨어요? 어머니. 현주가 연락이 안 돼서요."

"무슨 일로 찾아오셨... ...현주?"


서현주의 어머니는 무언가 경계하는 듯한 표정으로, 문을 완전히 열지 않고 도어 체인 사이로 이완을 바라보았다.


"네, 현주요. 서현주."

"우리 집에 그런 사람 안 사는데."

"......네? 어머니, 어머님 딸 현주 말이에요."

"우리 부부는 딸이 없어요. 남편 성이 서 씨는 맞지만. 청년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나네... 아무튼 잘못 찾아온 것 같아. 돌아가요."


서현주의 어머니는 이완의 외모에 호감을 가졌는지 이완을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그 뿐이었다. 문을 열어준 것도 이완이 낯익어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했다. 이완은 닫히려는 문을 급하게 잡았다.


얼핏 보인 서현주의 본가는 딱 한 번 방문했을 때와 똑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장식장 옆에 처음 보는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는 것 뿐이었다. 서현주의 어머니가 도어 체인을 잡아당겼다. 하마터면 손이 끼일 뻔했다. 예의고 뭐고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이완은 문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머니, 현주요. 정말 죄송한데, 제발 한 마디라도 해 주세요."

"이거 놔요! 신고할 거야!"

"장난치지 마시고요, 현주 소식 조금이라도..."

"우리 집에 그런 사람 없다니까! 무섭게 왜 이래요!"

"어머니, 저 기억 안 나세요? 작년에 뵀잖아요, 현주 학교 근처에서...!"

"자꾸 이러면 경찰 부를 거라니까! 안 그래도 동네 흉흉해서 무서워 죽겠는데. 썩 꺼져!"

"어머니, 어머니!"


쾅, 문이 닫혔다. 서현주 어머니의 겁에 질린 얼굴에 놀라 현관을 놓은 탓이었다. 이완은 뒷걸음질쳤다. 손이 얼얼했다.


"...현주야."


이완은 중얼거렸다. 손에 힘이 풀려서 음료수 패키지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완은 서현주에게 몇 번째인지 모를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창문 너머로 경계의 시선이 느껴졌다. 한참이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이완은 음료수를 현관에 내려놓고 뒤돌아 걸었다. 서현주의 어머니, 아니 이제는 그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를 중년 여자는 동네가 흉흉하다며 오래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곱 시가 되자 거리는 죽은 듯이 깜깜해졌다. 제대로 작동하는 가로등이 몇 대 없었다. 사람도 차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이완은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내내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심지어 한 명이 아닌 것 같았다. 가끔 발소리와 말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어떻게 된 건지 한 번 더 확인해 봐야겠어.'


번화가에서 택시를 잡았다. 이완은 서현주의 집으로 가면서 목에 걸린 사원증 - 할당량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이번에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열쇠로 문을 열었다. 열쇠를 받았을 당시보다 지금 더 자주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는 어떤 물건도 없었지만 오래도록 방치되어서인지 먼지가 두꺼웠다. 이완은 신발을 신은 채 방 안으로 들어섰다.


'먼지가 심하네.'


콜록거리며 방을 둘러보던 이완은 익숙한 물건을 발견했다. 서현주의 핸드폰이었다. 모퉁이 사이에 놓여 있어서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핸드폰은 비교적 쌓인 먼지가 적었다.


핸드폰이 놓인 모퉁이는 원래 서현주의 침대가 있었던 자리로, 서현주는 잠결에 종종 핸드폰을 침대와 모퉁이 사이에 빠뜨렸다. 그러고는 핸드폰이 없어졌으니 전화를 걸어달라며 이완을 귀찮게 했다.


'또 침대 사이에 빠뜨린 거 아냐?'

'아냐! 찾아봤는데 없었다니까.'

'...그럼 여기 있는 건 뭐야?'

'거기 있었네...... 손이 안 닿았나 봐.'


이완은 충전기를 꺼내 연결했다. 전원이 들어왔다. 핸드폰에는 패턴이 걸려 있었다. 서현주가 걸어뒀을 법한 패턴 몇 개를 시도해 보았지만 죄다 실패했다.


잠금 화면은 이완과 서현주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패턴 위로 통신사 마크와 서비스가 가동되고 있음을 알리는 아이콘이 떴다. 이완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야."


이완은 추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완의 친구로, 재작년에 고시를 패스한 경찰이었다. 집구석에서 빛도 못 보고 공부해 합격했더니, 이젠 집에 들어갈 시간이 없어졌다며 추지한은 투덜댔다. 하필이면 첫 발령이 수도권이었던 것이다. 원래도 띄엄띄엄했던 만남은 추지한이 경찰 제복을 받은 이후로 더 드물어졌다.


전화 너머는 소란스러웠다. 여덟 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그랬다. 추지한은 전화를 받아 놓고서 한참 뒤에 대답했다.


"이완? 이 새끼, 무슨 일이야. 너 술 먹고 사고 쳤냐?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말단 중의 말단이라 덮어줄 재간 같은 거 없다."

"그게 아니고."

"연줄 필요한 거면 잘못 연락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말단이니까."


일전에 술에 잔뜩 취해 말단부터 올라가려면 힘들겠다고 막말을 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완은 식은땀을 흘렸다. 추지한은 뒤끝이 강했다.


"미안하다니까... 걱정돼서 그랬다고."

"네, 네. 말단이라서 죄송합니다."

"...그러지 말고, 지한아. 현주가 사라졌어."

"뭐? 그게 누군데?"


추지한도 서현주를 기억하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다. 말 끝마다 말단말단 거리더니 그래도 전화를 끊지는 않았다. 타자기 소리가 바쁘게 울렸다. 퇴근하려면 한참 멀었겠군, 이완은 생각했다.


"...있어. 아무튼, 번호 하나 추적 좀 해 달라고 연락했지. 신원 알아야 해서."

"뭐야, 너 사기 당했냐? 그럴 줄 알았어, 허우대만 멀쩡하지 은근히 나사가 빠져서......"

"그런 거 아니라고, 해줄 수 있지?"

"말단이 뭘 할 수 있다고 그래?"

"술 살게."

"불러봐, 번호."


이완은 서현주의 번호를 불러주었다. 마우스 딸각거리는 소리와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추지한과 연결된 핸드폰을 쥔 손에도, 서현주의 핸드폰을 쥔 손에도 땀이 고였다. 사람이 왕래하지 않아 먼지 쌓인 집 안에 계속해서 서 있자니 목이 멨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서현주의 마지막 증거인 집마저 없어질 것 같아서였다.


"없는 번혼데."


추지한은 대답했다. 더 확인해 볼 것도 없다는 목소리였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봐. 정말 없는 번호야?"

"없어. 그럼 없는 걸 있다고 하냐? 이 번호 뭔데? 어디서 봤어?"

"네 핸드폰으로 전화 해봐."

"없는 번호라니까? 왜 이래, 이 새끼."

"......"

"야, 너 이상한 짓 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괜찮아?"

"괜찮아. 아니 그냥, 아는 사람 번호인데. 번호를 잘못 알려줬나 봐, 그 사람이."


정말로 목이 멨다. 추지한의 목소리에 걱정이 서리자 이완은 아무 말이나 둘러댔다. 이완은 주변 사람의 걱정이 익숙하지 않았다. 이완은 타인을 걱정시키는 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뭐든지 혼자서 잘 했고, 잘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그딴 일로 경찰을 부려먹은 거냐......?"

"미안, 하하. 다음에 술 사줄게. 한가해지면 연락해라."

"그거 평생 안 사주겠단 소리 아냐?"

"시간 내 봐. 내가 맞출 테니까."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친구라고 있는 놈이 귀찮게 군다고 중얼대는 추지한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완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없는 번호라고.


추지한과 전화를 끊고 이완은 서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완의 오른손에 들린 서현주의 핸드폰이 울렸다. 마지막 통화에 전원이 꺼져 있었던 건, 단순히 이완의 연락에 배터리가 닳아 그런 거였다.


남자친구


서현주의 핸드폰 액정 위, 떠오른 네 글자가 낯설었다. 이완은 초록색 통화 버튼을 밀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완의 목소리가 전화기 두 대를 통해 동시에 전달되었다. 이완은 헛웃음을 지었다. 며칠 간의 사투 끝에 이완은 확신했다. 서현주는 세상에 없다.


이완은 직감했다. 아마도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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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화: 블루 칼라 중의 블루 칼라 +1 19.12.01 2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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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미로같은 골목, 골목같은 미로 19.11.27 31 2 12쪽
23 22화: 형이 왜 거기서 나옵니까 19.11.25 35 1 11쪽
22 21화: 사냥에 천부적인 재능을. +1 19.11.24 32 2 12쪽
21 20화: 천부적인 재능을. 19.11.22 35 3 12쪽
20 19화: 훈련 19.11.20 31 1 12쪽
19 18화: 고양이 눈매의 남매 19.11.18 35 3 12쪽
18 17화: 괴물의 심장은 사람과 같다 19.11.17 40 3 11쪽
17 16화: 외곽으로 향하다(2) 19.11.15 47 4 12쪽
16 15화: 외곽으로 향하다 19.11.13 45 3 11쪽
15 14화: 블루 칼라 19.11.11 53 3 11쪽
14 13화: 세계가 조작한 만남 19.11.10 45 3 12쪽
13 12화: 이세계의 정원 19.11.08 60 3 13쪽
12 11화: 나도 모르는 새에 살인자가 되었다 19.11.06 55 3 11쪽
11 10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19.11.04 58 3 12쪽
10 9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19.11.03 73 3 12쪽
9 8화: 만남 19.11.01 68 3 12쪽
8 7화: 유성지 19.10.30 69 3 11쪽
7 6화: 죽음을 결심하다 19.10.28 74 4 11쪽
» 5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2) 19.10.27 79 3 13쪽
5 4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9.10.25 87 3 11쪽
4 3화: 할당량 19.10.23 100 3 14쪽
3 2화: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19.10.23 144 4 11쪽
2 1화: 게임 오버 19.10.23 212 6 11쪽
1 프롤로그 19.10.21 447 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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