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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야 님의 서재입니다.

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김백야
작품등록일 :
2019.10.21 17:46
최근연재일 :
2019.12.02 10:29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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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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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글자수 :
139,372

작성
19.11.2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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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1화: 사냥에 천부적인 재능을.

DUMMY

이완은 사냥에 소질이 있었다.


소질이 있다, 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웠다. 이완은 천재적이었다.


추주원과 함께 다닌 건 첫 삼 일 뿐이었다. 이완이 무두를 발견할 때마다 선수를 쳤기 때문이었다.


"아, 좀. 나한테도 기회를 달라니까? 처음 연습할 때 놀렸다고 보복하는 거지?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나도 꽤 능력 있다고!"

"아니, 그게 아니고. 능력 있는 거야 당연히 알지. 손이 저절로 나가서. 그렇잖아. 내가 안 죽이면 죽는데... 본능이란 게."

"안 되겠다, 내일부터는 따로 다녀! 나보다 잘 잡는데 이제 같이 있을 필요도 없을 거 아냐. 이러다 내 할당량도 못 채우겠어. 당신 도와주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야."


검은 후드를 쓴 블랙, 실력이 죽은 위세화보다도 한 수 위라며 소문이 퍼지기까지는 일 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누가 이완을 보고 소문을 퍼뜨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철저히 몸을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소문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추주안은 소문을 막아도 막아도 끝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찔리네.'


짐작되는 소문의 근원지가 없는 건 아니었다. 무두에게 죽기 직전인 블랙들을 몇 번 구해냈던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이완에 대한 추론과 소문이 늘어나고 있다며 추주원은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완 오빠 소문 장난 아냐!"


끼이익.


철문을 닫으며 추주원이 말했다. 이완이 무두 세 구를 연달아 해치운 후로 추주원은 이완을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따라갈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할당량을 채운 후에는 추남매의 집에서 대기하는 게 의례적인 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기는 이르고, 그렇다고 먼저 돌아가 버리면 정체를 눈치채는 블랙이 있을 지도 모름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블랙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러니 자정이 지날 때까지는 집에서 대기하십쇼.'


추주안의 판단이었다.


"우리를 벗어나게 해 줄 구세주라느니, 리더로 모셔야 한다느니, 신 같은 거 아니냐느니. 말도 안 된다니까!"


추주원이 계단을 뛰어내려와 이완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외곽에 드나들며 이완은 추남매에 대한 소문을 이것저것 주워들었다. 사람을 피해 골목과 골목 사이를 넘나들 때마다, 블랙들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탓이었다.


대부분 남매가 아니면 새로 생긴 블랙이라는 이완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추주원 그 녀석, 총 솜씨는 진짜 못 따라가겠다니까. 훨훨 날아 다녀, 아주.'

'세화한테는 미안하지만 주안이 형이 다시 작전 담당 맡은 뒤로 일하기는 훨씬 편해졌지.'

'그 남매가 없었다면 여긴 여전히 무법지대였을 거야.'

'걔들도 말야, 무두와 블루에게 부모를 잃었으니 이를 가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지.'

'뭐야, 나도 무두에게 가족을 잃은 건 마찬가진데. 난 아니라는 거냐!'

'아니지, 걔들이 너보단 똑똑하다는 거지.'

'죽을래?'


...대략 그런 내용들이었다.


추주안은 블랙 사이에서 수장 역할을 했다. 추주원은 추주안을 도와 주민들을 훈련시키고, 분위기를 북돋았다.


여태까지 들키지 않은 것도 추주안이 이완을 보호하고 있어서라는 까닭을 모르지 않았다. 남매의 배려가 기꺼웠다.


"오빠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 솔직히 자존심 상해서 미치는 줄 알았는데, 어쩌겠어. 원래 나보다 강한 실력 앞에는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거야!"


추주원이 조잘조잘 떠들었다.


"조용히 좀 해라. 형이 정체를 들키는 날은 네 목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일 게 분명해. 아주 우리 집에 숨은 블루가 있다고 광고하는 꼴이지. 가뜩이나 옆 집 코고는 소리까지 들리는 마당에."

"아니거든? 오빠 목소리가 더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하라니까. 지금도 봐라."


이젠 남매의 대화를 지켜보는 것도 익숙해졌다.


"저는 동생도 형도 누나도 없어서, 사이가 좋은 게 보기 좋습니다. 외동이거든요."

"그렇지? 우리 오빠가 좀 대단해."

"......방금 전까지 내가 더 시끄럽다고 한 건 누군데."

"칭찬해 줘도 뭐래!"


남매는 이런 점이 귀여웠다.


"아무튼, 아무튼. 이완 오빠. 다들 오빠가 엄청난 사람이라고 해. 잘 피해 다니나 봐? 오빠가 궁금해서 눈에 불 켠 사람이 한 둘이 아니던데."

"들킬 뻔한 적은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들 무두 잡느라 바빠 보여서. 안 그래도 어두운데 내 얼굴까지 보긴 어렵지."


추주안이 따듯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


" 형한테 드린 구역이 그런 구역임다. 혼자 무두 한 구를 없애긴 힘들어서 2인 1조나, 3인 1조를 짠 사람들 옆 구역. 그 사람들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형이 가서 없애 주기도 쉬울 것 같고, 또 자기들 일 하느라 형한테 신경 쓸 짬도 없었을 것 같았슴다. 자기들 옆 구역이 형인 것도 모를 검다. 안다고 해도 구역들이 워낙 미로 같아서, 찾아가기도 쉽지 않을 거고요."

"엄청 배려해줬네, 고마워요."


이완이 살갑게 웃었다. 영업용 미소에 추주안이 큼큼거렸다.


"...별 말씀을."

"아닙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게 해 줘서 기뻐요. 믿어 줘서 더 그렇고요."


이완의 다소곳한 대답에 추주원이 다짜고짜 뺨을 꼬집어 늘렸다.


"이그, 다들 이완 오빠가 우리 오빠처럼 한 성격 할 거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이렇게 샌님 같아서야! 다들 실망하겠다. 조금 더 숨어 있어야겠어!"

"주안 씨가 한 성격 한다고?"


'귀여워 보이는데.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추주원의 말도 일리가 있슴다. 형이 무두 사냥에 참여해 준 이후로 사람들 사기가 올라가고 있거든요. 곧 이 구역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새 할당량이 부여될 수도 있다는."

"...블랙들은 블루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요."

"싫어하지만 동경하죠. 블루의 편안한 삶을 부러워하고."


'블루의 삶 역시 마냥 편안하진 않지만.'


이완은 생각했다.


"맞아! 안 그래도 무두 사냥에 영 소질이 없는 사람부터 할당량이 바뀌고 있거든? 이건 엄청 좋은 징조야. 어쩌면 그 사람들 말대로 이완 오빠가 정말 구세주일지도 몰라!"


이완이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구세주... 는 과장이 큰 것 같은데. 그냥 하는 거지 뭐."

"착하다니까. 오늘도 새벽에 돌아갈 거지?"

"응, 그래야지. 출근해야 하니까."

"블루들이란! ...사람들 눈 피해서 돌아가는 거 힘들지 않아?"

"역 앞에서 좀 더 걸어서 택시 타면 돼."

"비쌀 것 같은데."

"그 정도 돈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추주원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심야 택시비가 부담스러웠던 이완은 역 앞에서 꼬박 밤을 새고 첫 차에 올라타 집에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출근 준비를 해야 했으니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회사에서 자꾸만 졸음이 쏟아져 큰일이었다.


*


퍽.


팔이 잘려나갔다.


"아악...!"


행여나 누군가 비명을 들을까 이완은 소리 죽였다. 무두였다. 뒤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나머지 총을 들어올리기도 전이었다.


무두는 스트라이프 셔츠와 청바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머리 아래로만 보면 영락없이 평범한 사람이었다.


새까만 연기가 목 위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으윽...하아."


졸았던 탓이었다. 목숨이 오가는 일이라는 건 알았지만 졸음 앞에선 장사가 없었다. 피곤했던 나머지 벽에 기대 꾸벅대느라 무두가 다가오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이완은 한 팔로 총을 지탱해 무두의 심장을 겨냥했다.


탕.


소름끼치게 시원스러운 소리와 함께 무두가 쓰러졌다. 이완은 비틀거리다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팠다.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이완의 팔이었던 것은 연기가 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잘린 부위가 타 들어가는 것 같기도 했고, 얼어 깨져 버린 것 같기도 했다. 속이 허랑해 헛구역질이 나왔다. 무두의 효과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완이 이를 악물고 잘린 부위를 내려다 본 순간이었다. 푸른 빛이 팔꿈치를 감싸는가 싶더니 뼈가 자라나고 살이 돋아났다.


놀랍지도 않았다.


'망치 맞은 머리가 돌아왔을 때부터 짐작해야 했는데.'


팔은 멀쩡했다. 이완은 주먹을 쥐었다 펴 보았다가 총을 옮겨 쥐었다. 아프지 않았다. 고통은 어느새 사라졌다.


쓰러진 무두에서 동그란 빛 줄기가 나와 이완의 심장에 스며들었다.


'이게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처음 두 번은 우연인가 싶었으나 우연이 아니었다. 무두를 죽일 때마다 무언가가 이완에게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는 무두를 없애는 게 훨씬 쉬웠다. 마치 경험치처럼.


처음에는 심장의 위치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정도였으나, 이제는 총을 들어올리는 것 만으로도 어디를 겨냥해야 무두가 쓰러질 지 알았다. 한 팔로도 무두를 사냥할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었다.


손가락을 튕기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이완 오빠!"

"쉿."


멀리서 추주원이 뛰어왔다.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에 이완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갔다. 추주원이 할당량을 채운 모양이었다.


추주안은 블랙들이 이완을 발견할 걸 대비하여 힘이 약해 무두를 잡는 것만으로도 신경 쓸 게 많은 사람들 옆으로 이완을 배치했다.


그러고도 혹시 몰라 추주원을 이완의 가까운 곳에 둔 거였다. 짜임새 있는 결정이었다.


'주안 씨가 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은 예상도 못 했다. 못 봤겠지.'


팔이 자라나는 걸 보았다면 큰일이었다. 이완 스스로도 무슨 일인지 모르니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어두워서 네가 잘못 본 거라는 말은 통하지 않을 상대였던 것이다.


추주원이 곧장 팔짱을 꼈다.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눈치였다.


"있잖아, 혹시."

"응?"


추주원의 집 쪽으로 걸어가며 이완이 말을 붙였다. 아직도 골목은 미로 같아서 쉽게 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다가 우연찮게 해치운 무두만 다섯 구가 넘어갔다.


"혹시 너도 무두를 죽일 때마다 뭔가 들어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환영이라도 봐?"

"...그런가? 착각했나봐."

"무두 사냥은 어둠 속에서 이뤄지니까, 반대편 골목 가로등 빛 같은 걸 보기야 하지."

"아아, 그러면 그런 건가 보다."


추주원도 이완에게 들어오는 경험치가 무엇인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비밀로 해 둬야겠다.'


그것이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무두 사냥이 한결 쉬워지니 덮어놓고 보면 좋은 일이었다.


"오빠, 좋은 소식이 있어."


추주원이 말했다.


"뭔데?"

"무두가 줄어들고 있나 봐. 어제 새 지도를 완성했는데 나타난 무두의 수가 지난번보다 훨씬 적었대. 힘이 약한 사람 할당량에서 무두가 빠진 걸 보면 분명해."

"그래, 그 얘기는 지난번에도 했었지."

"응.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그 사람들은 골목 재건이나, 집 수리 같은 걸 할당량으로 받고 있고."

"잘 된 건가?"

"당연하지! 어쩌면 우리도, 몇 년, 아니 몇 달 뒤에는 일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평범한 일 같은 거. 무두만 사라지면 정부도 우릴 다시 지원해 줄 테니까."


희망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다 이완 오빠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 오빠도 처음에 이완 오빠 의심한 거 엄청 미안해 하고 있어."


기뻤다. 틀림없었다.


'이대로 계속 무두를 잡기만 하면 되는 걸까. 이게 맞는 거겠지. ...괜찮아, 다른 사람보다 무두 사냥이 훨씬 쉽기도 하고. 내가 할 일을 잘 찾은 거야. 이러기 위해 이 세계에 떨어진... ...걸까.'


한 구석이 불안했다. 서현주의 실종 뒤로 하염없이 괴로워하던 그 때처럼.


"괜찮아."


이완은 작게 중얼거렸다.


"괜찮을 거야."


추주원에게는 들리지 않을 목소리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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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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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미로같은 골목, 골목같은 미로 19.11.27 30 2 12쪽
23 22화: 형이 왜 거기서 나옵니까 19.11.25 34 1 11쪽
» 21화: 사냥에 천부적인 재능을. +1 19.11.24 32 2 12쪽
21 20화: 천부적인 재능을. 19.11.22 35 3 12쪽
20 19화: 훈련 19.11.20 30 1 12쪽
19 18화: 고양이 눈매의 남매 19.11.18 34 3 12쪽
18 17화: 괴물의 심장은 사람과 같다 19.11.17 39 3 11쪽
17 16화: 외곽으로 향하다(2) 19.11.15 47 4 12쪽
16 15화: 외곽으로 향하다 19.11.13 44 3 11쪽
15 14화: 블루 칼라 19.11.11 52 3 11쪽
14 13화: 세계가 조작한 만남 19.11.10 44 3 12쪽
13 12화: 이세계의 정원 19.11.08 59 3 13쪽
12 11화: 나도 모르는 새에 살인자가 되었다 19.11.06 55 3 11쪽
11 10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19.11.04 58 3 12쪽
10 9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19.11.03 72 3 12쪽
9 8화: 만남 19.11.01 67 3 12쪽
8 7화: 유성지 19.10.30 69 3 11쪽
7 6화: 죽음을 결심하다 19.10.28 74 4 11쪽
6 5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2) 19.10.27 78 3 13쪽
5 4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9.10.25 86 3 11쪽
4 3화: 할당량 19.10.23 99 3 14쪽
3 2화: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19.10.23 143 4 11쪽
2 1화: 게임 오버 19.10.23 211 6 11쪽
1 프롤로그 19.10.21 446 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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