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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야 님의 서재입니다.

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김백야
작품등록일 :
2019.10.21 17:46
최근연재일 :
2019.12.02 10:29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010
추천수 :
80
글자수 :
139,372

작성
19.11.1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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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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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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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5화: 외곽으로 향하다

DUMMY

강동구 끄트머리에 도착한 이완은 무작정 걸었다. 걷다 보니 서현주의 본가 앞이었다.


'아, 나도 모르게 무심코.'


서현주의 본가는 불이 꺼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이완은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어디로 가야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떠돌던 이완은 어두운 골목길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큰 길에서 멀어질 수록 집들은 급격히 낡아갔다.


'보수해야 할 집이 한둘이 아닌데. 진짜 괴물 나온다는 소문 돌 만 하겠다.'


황폐했다. 시선이 느껴졌던 예전과 달리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졌다. 멀쩡한 가로등이 몇 개 남지 않은 골목은 깜깜했다.


'괴물, 괴물 하는 이유를 알겠다니까...... 이러니까 그렇지.'


골목은 낡은 집과 집 사이로 끝없이 이어졌다. 이완은 미로 속을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완은 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괴물이라는 게 있기는 있는 건가. 유성지 작가의 말에 순간 귀가 팔랑거리긴 했는데.'


아니면 돌아가면 그만이라고, 이완은 애써 스스로를 위안했다.


어딜 보아도 집 자리인 곳들이 드문드문 공터로 남아 있었다.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집들도 남아 있긴 해서 그 광경이 꼭 이 빠진 노인 같았다.


불 켜진 집이 한 곳도 없었다. 사람이 살기나 하는지 의문이었다. 얼마간 걸으니 빈 자리에 낡은 판자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꼭 서울 옥탑들만 모아둔 것 같네.'


삼촌이 없었다면 이완이 살게 되었을 곳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니 친숙하기도 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이런 곳에 살게 될까 하는 현실감 없는 기분도 들었다.


그때였다. 검은 그림자가 가로등을 뒤로 하고 이완의 앞까지 길게 늘어졌다. 오싹했다.


이완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누구...!"

쾅.


눈 앞이 암전되었다.


*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죽었을 거라고 이완은 생각했다. 머리를 맞고 어딘가에 끌려온 모양이었다.


"얘 죽은 거 아냐?"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세게 내리치래?"

"손에 들고 있는 게 망치밖에 없었다고!"


시끄러운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뒷목이 당기고 어깨가 뻐근했다. 주변이 웅성거렸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 번에 들려와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이완은 눈을 떴다.


"저 놈 코트 좋은 거 입었던데."

"그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네까짓 게 어떻게 아냐!?"

"블루 칼라라고 해서 다 잘 사는 건 아니던데. 짭일걸."

"저 녀석 얼굴을 봐. 연예인이나 뭐 그런 거 아닐까?"


이완에게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사람 대여섯이 서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꾸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 놈 일어났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이완을 바라보았다.


"그것 보라지! 안 죽었을 거라고 했잖아."

"방금까지 확신 없다는 말투 아니었냐?"

"살았으면 됐지!"


이완은 손을 움직여 보았다. 의자에 묶여 있었다. 뒤통수가 뜨끈했다.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남자 둘, 여자 하나, 그 뒤에 또 여자......'


인원을 파악하려던 이완은 곧 그만두었다. 작은 방이었다. 평수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핏줄기에 앞이 보이지 않아 제대로 눈을 뜨기 어려웠다.


가느다란 눈으로 살펴본 사람들은, 성별과 나이에서 공통점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젊은 여자부터 건강한 남자, 나이 들어 보이는 노인까지 다양했다.


"야, 정신 좀 들어? 그러게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

남자 하나가 이완의 뺨을 툭, 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 놈 함부로 건드리지 마. 일단 코트는 내 거다!"

"짭일지도 모른다니까...?"

"알게 뭐야! 난 블루 칼라 놈들이 증오스럽다고!"


이완은 눈을 깜빡였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이완을 호기심 반, 증오 반인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막 블루 칼라가 증오스럽다고 소리친 여자가 망치를 붕붕 휘두르고 있었다. 척 봐도 위협적이었다.


"여기... ...어디..."

"블루 칼라 놈이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입이 말라 갈라지는 목소리를 채 내뱉기도 전에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물... ...좀."

"블루 칼라 따위한테 줄 물은 없는데?"


이완은 비로서 블루 칼라라는 유행어가 어디서 왔는지 깨달았다.


'이 사람들, 외곽인이겠지. 블루 칼라, 블랙 칼라 같은 말은 이 사람들이 만든 거겠구나.'


지금까지는 막연히 서울 내 사람들이 하위와 상위 계층을 나누려 만든 혐오 단어일 거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시초는 연예인이나 포털 같은 거일 줄 알았지.'


이완이 유행어의 뿌리를 짐작한 건 외곽인의 말투 때문이었다. 주 대리나 유성지, 김서윤보다 확신에 가득 찬 투로 블루 칼라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오래도록 사용한 말인 게 티 날 정도로 자신만만했고, 비꼬는 어조도 느껴졌다.


'이 사람들이 만들어 직접 퍼뜨린 거라면 말이 달라지지...... 그런데 왜 그런 짓을?'


이완은 머리를 맞고 끌려온 모양이었다. 생각이 평소보다 느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완은, 뒤통수가 빠르게 나아가는 걸 눈치챘다.


'그럴 줄 알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죽진 않는군.'


처음엔 골이 울리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점점 시야가 회복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맞은 부위일 뒤통수가 미친 듯이 간지러웠다.


마음 같아선 아까부터 이완의 코트를 호시탐탐 노리는 남자에게 옷을 전부 벗어 주고 머리를 긁어 달라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저 녀석을 어떻게 할까. 확, 사지를 분해해 버려?"

"뭐야? 그렇게 하지도 못할 놈이."

"이젠 짬을 좀 먹었으니까. 어차피 불가능하지도 않을 거 아냐?"

"아니, 진정 좀 해. 저 녀석이 높은 블루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함부로 죽인다 만다 그런 말 하지 말고."


이완은 눈짓으로 빠르게 내부를 살폈다. 코에 닿는 공기가 매캐했다. 먼지가 가득 섞여 있었다. 창문 하나 없었다.


출입구는 이완과 멀리 떨어진 곳에 난 올라가는 계단 하나가 다였다. 지하실 같았다.


"블루들은 우릴 버렸어! 이젠 지원도 끊겼다고! 지들끼리 잘 먹고 잘 살 거 아냐!"

"그래, 블루들은 할당량을 지키기만 하면 죽지 않잖아. 얼마나 살기 편하겠어?"

"세화 말이 맞다. 우리가 힘들게 하루 먹을 음식 찾아 헤맬 때 블루 칼라들은 떵떵거리면서 놀고 먹을 거 아니야."


혐오가 가득한 말들이었다. 목숨, 적어도 고통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이완은 의아함을 느꼈다.


'말이 지나치게 와전됐는데. 이 사람들이 블루 칼라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떵떵거리면서 살진 않으니까.'


블루, 블랙. 어느 쪽이든 서로에 대해 묘사하는 말들이 괴리감이 있었다.


'교류가 그렇게까지 활발하지 않은 거겠군. 군인이나 경찰도 꺼린다는 게 사실이었나. 꼭 원시 시대 같네.'


손목의 매듭은 느슨했다. 잘만 하면 풀어내고 의자를 무기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가 여럿이었다. 한 둘은 힘으로 제압한다고 해도 전부는 무리였다. 세화라고 불린 여자가 이완에게 다가왔다.


"너 같은 블루 칼라가 우리들, 블랙의 지역에 자진해서 와 주다니 환영이야."

"당신들... ...이 외곽인인가."

"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우리는 나약하지 않아.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바싹 말랐던 입술에 생기가 돌았다. 아직 드문드문하지만 어렵지 않게 말이 나왔다. 이완은 피가 멈춘 걸 눈치챘다. 상처가 나아가고 있었다.


'꼭 혁명군같이 말하네. 여자를 인질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완은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분한 얼굴이었다. 얼굴이 일그러진 게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나는 블루에게 어머니를 잃었어.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당신들 같은 사람들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야. 저 사람도, 저 사람도. 저 사람도! 심지어 여기 있는 어린애 전부가!"

"그게 무슨...?"


"우리가 하층민이라고 할당량을 떠넘기고 죽도록 만들었지. 이 지역은 버려졌어. 정부는 여길 통째로 포기한 거다."


"......할당량을 미루고 모르는 척 하기 쉬웠다는 얘길 하는 건가요."


여자는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얼굴이었다.


"너 같은 녀석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안달 난 놈들이 여긴 많지."

"저는 그런 적, 아니 애초에 여길 온 건...."

"경찰이 와줄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선 우리들이 법이다."

이완은 괴물의 존재에 대해 물으려다 망설였다. 주 대리의 말대로 괴물 같은 건 없고, 블루 칼라들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소문인 걸까.


블루 칼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퍼뜨릴 정도였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었다.


"위세화! 그 녀석은 내가 잡았다고! 화풀이는 내가 먼저야!"

"뭐? 너 혼자 이 놈 운반 못 해서 도와준 게 누군데 어디서 큰 소리야!"


코트를 탐내던 남자와, 남자보다도 키가 큰 위세화라는 여자가 소리 높여 싸우기 시작했다.


"다들 진정해라."


묵직한 소리가 둘 사이를 갈랐다. 이완이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벽에 기댄 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남자였다.


어두운 갈색 머리는 짧게 잘려 이마 언저리를 스치고 있었고, 피부는 그보다 어두웠다. 키가 컸다. 이완보다도 큰 것 같았다.


"곧 일할 시간이야. 이 놈의 처분은 일이 끝난 뒤 결정하지."


남자의 말에 방에 있던 모두가 일제히 목덜미를 확인했다. 할당량 카드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카드는 똑같네. 서울에 인구가 몇이나 된다고 그걸 나눠서 블루, 블랙 그러는 거람.'


이완을 보며 이를 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바깥에서 이완의 감시역을 정하는 듯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위세화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대충 이완을 빼돌리거나 죽여 버리거나 손을 대기라도 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목소리였다.


'어떤 여잔지는 몰라도 든든하네......'


하하, 이완은 헛웃음지었다. 손목의 매듭이 풀리기 직전이었다. 감시역 하나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역시 괴물 같았던 없었던 건가. 얼른 돌아가야 해. 내일도 출근해야, 그래야 사람이 안 죽으니까......'


바깥이 조용해졌다. 문이 열리고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 하나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일할 시간이라며 모두를 조용히 시켰던 남자였다.


'좋아, 가까이 와라...'


남자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총이었다. 당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남자는 시시각각 이완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망했다.'


생각해 보니 위세화가 가족을 잃은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하며 손짓했을 때, 이 남자도 가리켰던 것 같았다.


'젠장, 언제부터 대한민국에서 총기가 합법이었지?'


남자가 이완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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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 미로같은 골목, 골목같은 미로 (2) +1 19.11.29 25 2 12쪽
24 23화: 미로같은 골목, 골목같은 미로 19.11.27 30 2 12쪽
23 22화: 형이 왜 거기서 나옵니까 19.11.25 34 1 11쪽
22 21화: 사냥에 천부적인 재능을. +1 19.11.24 32 2 12쪽
21 20화: 천부적인 재능을. 19.11.22 35 3 12쪽
20 19화: 훈련 19.11.20 30 1 12쪽
19 18화: 고양이 눈매의 남매 19.11.18 34 3 12쪽
18 17화: 괴물의 심장은 사람과 같다 19.11.17 39 3 11쪽
17 16화: 외곽으로 향하다(2) 19.11.15 47 4 12쪽
» 15화: 외곽으로 향하다 19.11.13 45 3 11쪽
15 14화: 블루 칼라 19.11.11 52 3 11쪽
14 13화: 세계가 조작한 만남 19.11.10 44 3 12쪽
13 12화: 이세계의 정원 19.11.08 59 3 13쪽
12 11화: 나도 모르는 새에 살인자가 되었다 19.11.06 55 3 11쪽
11 10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19.11.04 58 3 12쪽
10 9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19.11.03 72 3 12쪽
9 8화: 만남 19.11.01 67 3 12쪽
8 7화: 유성지 19.10.30 69 3 11쪽
7 6화: 죽음을 결심하다 19.10.28 74 4 11쪽
6 5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2) 19.10.27 78 3 13쪽
5 4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9.10.25 86 3 11쪽
4 3화: 할당량 19.10.23 99 3 14쪽
3 2화: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19.10.23 143 4 11쪽
2 1화: 게임 오버 19.10.23 211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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