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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야 님의 서재입니다.

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김백야
작품등록일 :
2019.10.21 17:46
최근연재일 :
2019.12.02 10:29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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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글자수 :
139,372

작성
19.11.2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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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3화: 미로같은 골목, 골목같은 미로

DUMMY

새해가 밝았다. 세상과 단절된 블랙의 지역에도 눈이 내렸다.


'어쩌면 단절된 건 외곽인들이 아닌 블루칼라들일지도 몰라.'


이완은 순찰을 도는 중이었다. 꺼진 가로등이 불규칙하게 늘어선 블랙의 골목은 불 없는 암실처럼 깜깜했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의 골목길도, 후드 안에 담긴 총의 무게도 익숙했다.


"3번 골목 체크 완료."


이완이 무전기에 대고 중얼거렸다.


"4번 골목도 완료되었다."

"5번도 완료."


추주안과 추주원의 목소리가 줄지어 울렸다. 값싼 무전기는 통신 끊긴 텔레비전처럼 지직거렸지만, 목소리를 알아듣기엔 충분했다.


무전기는 이완이 낸 아이디어였다. 무두는 귀가 없어 소리를 듣지 못하니, 휴대 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외곽에서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던 거였다.


낡은 무전기는 블루 칼라의 지역에서야 쓸모 없을지 몰라 중고로 팔려나갔지만, 외곽에서는 골목 순찰과 함께 할당량을 체크하기에는 제격이었다. 자정이 되도록 할당량을 완수하지 못한 블랙이 있다면 무두가 나타난 골목을 불러주어 사상자가 없도록 했다.


'무엇보다 값이 핸드폰보다는 싸니까.'


중고 무전기 세트는 이완이 비상금을 탈탈 털어 구매한 거였다. 돈이 어디서 났는지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이완은 이미 그들의 수장이었으니까.


이완은 외곽에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하나는 할 일을 찾은 이상 집에 돌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지하철역으로 가다가 들키면 뒤집어질 테니. 배신감을 느낄 거야.'


였다.


블랙 모두가 이완을 따르고 좋아했다. 쌀쌀한 11월의 마지막 날, 블랙들에게 거의 들리다시피 하여 지하실에 도착한 이완은 그간 파다하게 퍼져 있었던 소문에 걸맞도록 환대 받았다.


'차마 내가 블루의 세상에서 왔다는 걸 말할 수 없었어.'


무엇보다 이완 자신이 돌아가고 싶지 않기도 했다. 블랙 칼라의 수는 블루에 비해 한없이 적었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서울 중심에 있을 때보다 누군가 터져나가는 걸 목격하기 힘들었다.


어떤 이가 무두에게 팔이나 다리를 잃으면 한 마음으로 아파했고, 부상자를 도와 어떻게든 할 일을 마련했다. 사람이 터져도 눈 하나 깜짝 않던 블루들과는 달랐다.


...

1월 2일 (금)

11시 37분

날씨: 함박눈이 내립니다. 빙판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금일 할당량:

구역 순찰 (4/4)

무두 사냥 (5/5)

지도 완성하기 (1/1)

...


이완은 습관처럼 할당량 카드를 확인했다. 회사를 그만두자 사원증은 평범한 할당량 카드로 돌아갔다. 유성지가 디자인한 시계가 객관적으로 꽤 탐이 났기 때문에, 살까 고민했다가 그만두었다.


블랙 칼라의 지역에서 그렇게 눈에 띠는 물건도 없을 터였다. 공연히 구설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완이 블랙을 이끄는 리더가 되자, 회사에 관련된 할당량은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무두 사냥으로 채워졌다. 언제 보아도 신기한 시스템이었다.


자정이 지나 할당량이 갱신되면 블랙들은 그 날의 동향과 사냥한 무두 수, 사상자와 바뀐 골목, 남은 식량 파악과 다음 식량 차가 오는 때를 조율하기 위해 지하실로 모였다. 회의의 주축은 이완이었다.


이완이 오기 전 수장이나 다름없던 추주안은 이완을 칭송하는 분위기에 자연스레 뒤로 빠졌다. 그 자리가 버겁기라도 했다는 듯이.


"먼저 와 있었네."

"다들 안에 있슴다."


추주안이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이완과 추주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원이는?"

"아직 안 왔슴다."

"그러면 같이 기다리자."


버거울 만도 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추주안은 겨우 21살이었다. 17살짜리 동생과 블랙 모두를 책임지기에는 한참 어렸던 것이다.


가난한 집안 사정에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치워 버리고 일찍 군대에 입대했다고 했다. 다녀오고 나니 부모님은 블루의 할당량에 밀려 죽어 버렸고, 여동생 하나만 달랑 남아 울고 있었다는 거였다.


사실을 안 뒤, 뜨거운 물을 침대에 앉아 마시며 이완은 물었었다.


'그러면 일부러 그런 말투 썼던 거야?"

'그런 말투라니 뭠까.'

'나랑 있을 때는 봐, 지금처럼 편하게 얘기하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근엄하게 뭐뭐 했다. 뭐뭐 했군. ...그러잖아?'

'그건, 나이 때문에... 우습게 보이면 안 되지 않슴까!'


이완의 지적에 추주안의 얼굴이 시뻘개졌던 걸 기억한다. 그 날 이완은 배가 터지도록 웃어젖혔다.


"블루인 건 계속 숨기실 생각임까."


추주안의 말에 퍼뜩 현실로 돌아온 이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이제 와서 밝히기에도 너무 늦은 것 같아."

"그렇긴 하지만 걱정임다. 숨기려면 제대로 숨겨야 할 검다."

"어차피 블루 지역으로 돌아갔던 것도 오래됐어. 다음 달엔 아예 집을 내둘 생각이야. 월세가 아까워서. 그렇게 되면 부탁 좀 할게."


"저는 상관없슴다. 오히려 안심임다. 남자가 둘이나 사는 집이니 주원이가 위험해질 일은 없을 거 아님까."

"주원이가 웬만한 남자보다 셀 걸..."

"그래도요."


"오빠! 이완 오빠!"


굽이굽이 복잡한 골목 너머에서 추주원이 손을 흔들며 뛰어 오고 있었다.


"하여간 양반은 못 되네."


이완이 말했다. 추주원이 발개진 볼을 하고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응? 뭐가?"


이완과 추주안이 추주원의 옆에 서 머리고 어깨고 가득 쌓인 눈을 털어주었다.


"들어가자, 춥다. 빨리빨리 좀 하고 다녀라, 가시나야. 너 때문에 형이랑 기다렸잖아."

"아! 또 잔소리!"


추주원이 귀를 막으며 문을 열더니 먼저 지하실로 내려가 버렸다.


'기꺼이 기다렸으면서 아닌 척 하기는. 하여간 귀엽다니까...'


생각하며 앞으로 나선 이완은 간이 연단을 딛고 장부를 펼쳤다.


"오늘 무두 사냥에서 빠진 사람 할당량 먼저 확인할게요."


추주안과 추주안이 이완의 뒤에 나란히 섰다.


"저는 사상자 치료로 바뀌었어요."

"저는 음식 만드는 쪽으로."

"내년에 농사 지을 생각 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씨를 구해 관리하라는 할당량이 떴습니다!"


너도나도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할당량은 블랙의 세계에 등장한 이완의 존재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완이 무두를 빠르게 해치우는 속도에 따라 체력이 부족하고 사냥에 소질 없는 사람부터 다른 할당량이 배정되었다.


무두가 나타나는 구역이 점점 줄어드니 봄이 찾아오면 농사를 지을 생각부터 하는 이도 있었다. 귀농이 꿈이었다는 것이다.


할당량은 모두의 바람에 충실히 반응했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에게는 마을 보수와 헌 옷 리폼하기를, 군대에서 취사병을 맡았던 사람에게는 식량 조달과 요리하기가 할당량에 등장했다.


덕분에 추운 계절임에도 외곽은 활기를 띠었다.


"블랙, 저는 오히려 무두 사냥이 한 구 추가됐는데요."


하준이 앞으로 나서 기록해 두었던 할당량을 보여주었다.


"최근 하준 씨가 무두 사냥 실력이 붙었다더니 정말이네요. 할당량이 늘 정도라면. 대단한데요. 의지 좀 할게요."


하준은 이완의 코트를 탐내던 블랙이었다. 11월 말, 이완에게 목숨을 구해진 이후로 무두 사냥에 두각을 드러내며 이완의 인정을 적극적으로 바라기 시작했다. 하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이 늘었다니,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 좋은데요."

"내일부터는 무두 출연이 잦은 구역에 배치해 줄게요. 같이 갈 사람도 붙여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밝아진 목소리를 하고 하준이 자리로 돌아갔다. 외곽인, 블랙들은 이완을 블랙이라고 불렀다. 이완이 이름을 알리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블랙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블루와 연결된 이완이 블랙이라고 불린다니 아이러니했다.


이완은 품 속에서 지도를 꺼내 강단에 붙였다.


"오늘 드디어 미로의 규칙을 전부 알아냈어요. 여기, 추주안 추주원 남매가 수고해 주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일찍 무두를 없애 준 덕분입니다."


드디어, 블랙은 역시 대단해! 같은 말이 귓전을 때렸다. 적어도 오십 쌍은 되는 눈동자가 한결같이 이완을 바라보고 있었다.


"골목은 총 스무 개입니다. 더 이상 늘지는 않더라고요."

"스무 개밖에 안 된다고요?"

"말도 안 돼. 백 개는 되는 줄 알았는데요!?"


이완이 입을 열자마자 대꾸가 날아왔다.


"그 동안 추주안 씨가 모아 온 지도를 바탕으로 조사했으니 틀림없습니다. 구역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전부 속임수예요. 미로는 스무 개의 구역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완은 지도에 붉은 펜으로 그어진 엑스 자 스무 개를 가리켰다.


"여기가 골목이 변하는 지점입니다. 골목의 시작점에서 생기는 무두는 총 세 마리. 각기로 흩어진 세 마리가 전부 죽으면 골목이 변합니다. 리젠되는 시간을 벌기라도 하려는 것첨요."


추주안이 다가와 기존에 만들었던 지도를 이완의 옆에 펼쳤다.


"그 동안은 골목마다 무두가 한 구씩이라고 설명했는데, 거리가 있을 뿐 그렇진 않았다. 바뀌는 지점부터 끝까지 한 구역이라고 상정하면 두 구, 세 구를 넘어갈 때도 있었어. 그래서 한 구역의 무두를 없앴는데도 다른 구역에서 무두가 넘어오는 것처럼 보였던 거야."

"주안 씨 말대로예요. 무두의 근원을 파악했으니 사상자는 빠른 폭으로 줄어들 겁니다."


추주원이 바뀐 지도를 한 장씩 나눠주었다. 이완은 말을 이었다.


"첫 번째 골목부터 스무 번째 골목까지 순서대로 이름을 붙여 설명하자면, 첫 번째 골목이 다섯 번째로 변하고, 다섯 번째가 일곱 번째로 변하는 식이에요. 지켜본 결과 갑작스럽게 다른 모양이 나타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변형 가능성이 열 아홉 개가 있을 뿐이지 새로운 골목이 나타나진 않아요."

"규칙을 알아냈다니 좋긴 한데, 이게 무두 사냥에 무슨 영향을 줍니까? 우리는 어차피 블랙이 시키는 구역에 가서 사냥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누군가가 소리쳤다.


"멍청하긴, 이래서 사람이 멍청하면 안 되는......"

"조용히 해라."


추주안이 추주원의 입을 틀어막았다.


"영향이 있죠. ...무두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각 골목 당 세 구씩이라고 설명했지만 원래는 네 구였던 것 같아요. 아직도 네 구가 출연하는 골목이 있고."


이완이 여섯 번째 골목과 열 두 번째 골목을 가리켰다.


"무두는 분명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빠르게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올해 안에 다른 할당량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당연히 블루들의 세계와도 다시 연결되고, 무두에게 죽을까 떠는 일도 없어질 겁니다."


술렁이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헉, 소리쳤다가 입을 틀어막은 블랙도 있었다.


"무두를 완전히 없애려면 어떤 상황에서 새로운 무두가 생겨나는지를 알아야 해요. 그러려면 시작점을 조사해야 합니다. 이제 지도를 통해 스무 개의 지점을 전부 파악했으니 어렵지 않을 거예요."

"불가능해! 내 동생도 그걸 조사하려다 죽었다고! 위치를 파악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그걸 조사하려다 살아 나온 사람이 없어!"


작년, 무두에게 다리를 잡아 먹혀 외다리가 되었다는 남자가 반발했다.


"...맞아요. 성공률이 영 퍼센트일 만큼 위험한 일입니다. ...하지만... 리젠되는 무두를 한번에 없애면 어떨까요."


이완이 말했다.


"뭐라고요?"

"뭐라고?"

"말도 안 돼."


지하실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추주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완의 팔을 잡았다.


"불가능합니다. 무두를 잡는 건 목숨 거는 일이에요. 각자 한 구씩 없애기도 힘든데, 어떻게......"

"나도 알아. 하지만."

"안 됨다 형, 아무리 형이라도 이 계획은...! 너무 위험함다!"


급했던 나머지 추주안의 입에서 원래 말투가 튀어나왔다.


"아냐, 가능해."


이완이 추주안과 시선을 마주치고, 블랙들을 돌아보았다. 이완이 입을 열었다.


"저는 가능합니다. 전부를 한 번에 없애는 것이."


작가의말

덧글, 추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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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화: 죄책감의 무게 19.12.02 22 2 11쪽
26 25화: 블루 칼라 중의 블루 칼라 +1 19.12.01 24 2 12쪽
25 24화: 미로같은 골목, 골목같은 미로 (2) +1 19.11.29 26 2 12쪽
» 23화: 미로같은 골목, 골목같은 미로 19.11.27 31 2 12쪽
23 22화: 형이 왜 거기서 나옵니까 19.11.25 34 1 11쪽
22 21화: 사냥에 천부적인 재능을. +1 19.11.24 32 2 12쪽
21 20화: 천부적인 재능을. 19.11.22 35 3 12쪽
20 19화: 훈련 19.11.20 31 1 12쪽
19 18화: 고양이 눈매의 남매 19.11.18 34 3 12쪽
18 17화: 괴물의 심장은 사람과 같다 19.11.17 39 3 11쪽
17 16화: 외곽으로 향하다(2) 19.11.15 47 4 12쪽
16 15화: 외곽으로 향하다 19.11.13 45 3 11쪽
15 14화: 블루 칼라 19.11.11 52 3 11쪽
14 13화: 세계가 조작한 만남 19.11.10 44 3 12쪽
13 12화: 이세계의 정원 19.11.08 60 3 13쪽
12 11화: 나도 모르는 새에 살인자가 되었다 19.11.06 55 3 11쪽
11 10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19.11.04 58 3 12쪽
10 9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19.11.03 73 3 12쪽
9 8화: 만남 19.11.01 68 3 12쪽
8 7화: 유성지 19.10.30 69 3 11쪽
7 6화: 죽음을 결심하다 19.10.28 74 4 11쪽
6 5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2) 19.10.27 78 3 13쪽
5 4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9.10.25 86 3 11쪽
4 3화: 할당량 19.10.23 99 3 14쪽
3 2화: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19.10.23 143 4 11쪽
2 1화: 게임 오버 19.10.23 211 6 11쪽
1 프롤로그 19.10.21 446 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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