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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삼닭의 닭장

BARREN 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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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삼닭
작품등록일 :
2014.08.31 17:44
최근연재일 :
2014.09.11 20:29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823
추천수 :
63
글자수 :
47,440

작성
14.09.09 09:28
조회
95
추천
3
글자
9쪽

#2. 보랏빛 저주(8)

DUMMY

“죽어라! 이 생선대가리 녀석아!”


베번의 일격이 미끈미끈한 피부를 관통했다. 상처 틈새로 검푸른 색의 피가 왈칵왈칵 솟아나왔다. 급소가 찔린 괴물은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충격으로 튕겨져 나가 쓰러진 베번 주위로 병사들이 몰려와 그를 부축했다.


“아아. 됐어 난 멀쩡해.”


베번이 얼굴에 튄 액체를 신경질적으로 닦고 불에 그을린 망토를 벗어던지며 말했다.


“난 내버려 두고 마을에 부상자나 사망자가 없는 지나 확인해봐.”


마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어 버렸다. 거리에는 희생당한 사람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고 건물들은 원래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무너져 있었다. 마을 여기저기서 한탄의 울음소리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소녀는 혼이 나간 사람 마냥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래드 앞에 서있었다. 그의 몸은 반쪽이 아무렇게나 뜯겨나가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몰골이었지만 리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앞에 쓰러져있는 래드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저씨... 일어나요. 가게 정리해야죠.”


“아저씨. 대답 좀 해봐요.”


소녀의 부름에도 래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소녀는 두 손이 피로 젖어가는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래드를 붙잡고 흔들었다.


“아저씨...래드 아저씨... 오칸하트에 제일가는 가게를 차리겠다는 꿈은 어떻게 된 거에요. 이렇게 누워만 있어선 안 되잖아요...”


리나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빠... 흑.”


처음으로 래드에게 아빠라고 불러 본 리나였다.


“리나.”


영향을 받은 것일까. 간신히 정신을 차린 래드가 숨을 가쁘게 내쉬며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리나의 이름을 불렀다.


“정신이 드세요? 움직이지 말고 여기 잠시만 계세요. 제가 지금 바로 사람을 불러 올게요!”


황급히 일어나려는 리나의 손을 래드가 말없이 붙잡았다.


“아저씨?”


“리나... 잘 들으렴... 난...이미 틀렸다. 이제부...”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치료를 받으면 분명 살 수 있을 거에요! 제가 들은 얘긴데 *넬에 있는 마법사들은 죽은 사람도 살려 낼 수 있다고 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해서든 제가 꼭 치료해드릴게요.”


래드가 울컥하고 피를 토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리나를 향해 힘겹게 고개를 저은 뒤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리나. 얼마 안 있으면...이 마을... 아니. 이 세상 전체가...혼란에 빠질 거야...”


너무 많은 피를 흘린 탓에 래드는 시야가 어두워지고 정신이 몽롱해졌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 눈앞의 딸 같은 소녀에게 충고를 했다.


“리나. 절대 쉽게 남을 믿지 말거라. 앞으로 네가 살아갈 세상은... 네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잔혹할거야... 리나... 절대로...”


래드의 숨소리가 더욱 가빠졌다.


"함부로...믿...지...마..."


리나의 손을 잡은 커다란 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저씨?... 아빠? 아빠!”


차가워진 주검 위로 뜨거운 눈물이 빗줄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얘야. 괜찮니?”


병사 한명이 흐느껴 울고 있는 리나에게 다가왔다. 그가 래드의 시신을 보려했다.

하지만 그녀는 병사의 손을 뿌리치고 싸늘해진 시체를 부둥켜안은 채로 한참을 울부짖었다.


"아빠! 아빠! 흑흑."


거리에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들이 하늘에 일렁이는 커다란 오로라와 섞여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절망과 슬픔이 가득찬 거리를 검은빛의 사내가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듯한 기분으로 거닐고 있었다.


“음...아주 상쾌한 저녁이군.”


그늘진 얼굴 사이로 누런 이가 보였다. 이는 끝이 뾰족하게 갈려있어 사람의 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봐. 뭐가 그렇게 즐겁지?”


감색 갑옷의 기사가 사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비릿한 공기, 공포에 가득 찬 분위기, 피로 흥건한 거리... 이런 광경을 보고도 즐겁지 않다? 크큭! 난 참을 수가 없거든. 내 평생 이렇게 즐거운 날은 처음인 것 같아.”


기괴한 모양으로 몸을 비틀며 사내가 실소를 터트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뱀이 몸부림치는 사냥감을 질식시키려는 것 같았다.


“네놈. 정체가 뭐냐.”


베번이 다곤의 혈흔이 아직 눅눅하게 묻어있는 칼을 사내의 가슴팍에 들이밀었다.


“워어... 진정해. 서로 좋게 좋게 말로 하자고. 광견이라 불리더니 정말 미친개가 되어 버린 건가? 솔란트.”


사내가 자신의 가슴팍에 닿아 있는 칼끝을 옆으로 치워내며 비아냥거렸다. 베번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최대한 억누르며 말했다.


“배짱이 두둑한 것 하나만은 칭찬해주마. 하지만.”


베번이 가슴팍에 있던 칼을 사내의 목덜미에 가져다 대었다.


“같잖은 허세는 부릴 대상을 가려서 해야지. 함부로 남발하다간 큰 코 다치는 수가 있어.”


사내는 우스꽝스런 몸짓을 하며 두 손을 번쩍 들고는 거짓된 항복의 의사를 표현했다. 베번의 머리에 힘줄이 잡혔다. 그의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르려던 그 때 누군가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대장님! 어서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병사 중 한명이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손 좀 봐줘야 할 놈이 생겼거든. 금방 끝내고 가도록 하마.”


그가 잠깐 얼굴을 돌린 순간 눈앞에 있던 검은 사내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젠장!"


바로 눈앞에서 상대를 놓친 베번은 들고 있던 칼을 땅바닥에 내팽겨 치곤 한참을 씩씩거렸다.


* * * * * * *



짙은 고동색의 철문이 고대의 문지기처럼 굳게 닫힌 채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녁 늦게 내린 소나기는 온 세상을 잠기게라도 할 기세로 퍼부어 댔다.


“문을 열어라! 던리버의 영주이시자 라마스의 기수인 아온 데보너님이시다!”


무리 중 맨 앞에 서있던 자가 입에서 입김을 뿜어대며 소리쳤다. 그러나 문이 열리긴 커녕 사람하나 그의 부름에 답하는 자가 없었다.

아온의 무리는 비에 홀딱 젖어 마치 하수구의 생쥐 떼 같아 보였다. 그들이 입고 있는 두꺼운 털옷은 겨울비에 얼어 추위를 더욱 배가시키고 있었다.


“어흑. 추워 죽겠구만. 따듯한 수프에 빵 한점 뜯어먹으면 소원이 없겠어.”


“그러게 말이야 내 발가락은 이미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라구.”


“난 다른 것 보다는 계속 이렇게 있다가는 *넌박울프의 밥이 될까봐 그게 두렵다고.”


병사들 사이에서 불만과 불평이 오갔다.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어떡할까요?”


앞서 문을 향해 소리쳤던 자가 아온에게 물었다.


“이상하군. 이미 소식은 전달되었을 터. 단순한 업무태만이라고 보기는 어렵군.”


아온의 무리가 서있는 곳은 라마스의 중심도시인 쏜네스트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비록 늦은 저녁이었지만 이번 회의와 같은 중대 사항이 있을 때에는 관문은 불철주야로 경계를 서는 것이 당연했다. 던리버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두 차례 관문을 거쳤지만 그곳의 주둔 병사들은 마치 생전 처음 듣는 소식이라는 표정을 짓곤 했다.


“으하암~ 음? 당신들 뭐요? 이 추운 새벽에.”


방금 일어난 것 같은 병사 한명이 눈을 비비며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문을 열어라! 우리는 원탁회의를 위해 던리버의 이름을 대표하여 온 시찰단이다!”


“시찰단? 던리버?”


병사는 잠깐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이내 낯빛을 바꾸곤 웃으며 말했다.


“아아! 던리버의 영주 아온 데보너님 이시구려.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폰께서 단속을 철저히 하라고 하셨기에. 하하. 바로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이 길을 따라 두어 시간만 가시면 바로 쏜네스트 입니다요.”


병사가 뒤를 보며 무어 무어라 손짓하자. 곧이어 문이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곧이어 나타난 광경에 아온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게 무슨...”


*넬(NELL)- 에이란의 북서쪽에 위치한 대륙 에이란에 신들이 내려와 다스리기 전부터 존재했다고 알려져있는 고대 민족. 마법을 부릴 수 있다고 하는 소문이 있으나. 실제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존재는 그들의 조상에서 대가 끊겼다.


*넌박울프(Nonbarkwolf)- 짖지않는 늑대. 크기는 일반 늑대와 다를바 없지만 어두운 털색과 빛이 나지 않는 눈, 어떤 이유에서인지 짖지 못하는 독특한 종. 저녁 숲속에서 만나면 목숨은 포기해야한다.


작가의말

드디어 2챕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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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3. 피바람(1) 14.09.10 78 2 7쪽
» #2. 보랏빛 저주(8) 14.09.09 96 3 9쪽
12 #2. 보랏빛 저주(7) 14.09.08 104 3 7쪽
11 #2. 보랏빛 저주(6) 14.09.07 116 3 8쪽
10 #2. 보랏빛 저주(5) 14.09.06 47 4 7쪽
9 #2. 보랏빛 저주(4) +1 14.09.06 49 4 7쪽
8 #2. 보랏빛 저주(3) 14.09.06 76 5 7쪽
7 #2. 보랏빛 저주(2) 14.08.31 150 5 7쪽
6 #2. 보랏빛 저주(1) 14.08.31 134 5 7쪽
5 #1. 눈물의 아이(4) +2 14.08.31 180 6 9쪽
4 #1. 눈물의 아이(3) 14.08.31 165 5 8쪽
3 #1. 눈물의 아이(2) +2 14.08.31 122 6 7쪽
2 1.라마스(RAMAS)-#1. 눈물의 아이(1) +1 14.08.31 142 6 7쪽
1 #0. Prologue +4 14.08.31 187 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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