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구삼닭의 닭장

BARREN 베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구삼닭
작품등록일 :
2014.08.31 17:44
최근연재일 :
2014.09.11 20:29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816
추천수 :
63
글자수 :
47,440

작성
14.08.31 18:10
조회
179
추천
6
글자
9쪽

#1. 눈물의 아이(4)

DUMMY

요란한 등장의 당사자는 꾀죄죄하기가 이를 데가 없어 길가를 떠도는 거렁뱅이라 해도 믿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입고 있는 옷만은 고급스러워서 그가 단순한 노숙자가 아니란 점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는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을 힘들게 숨을 고른 낯선 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온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누구도 쉽지 않을 일이다.) 귀에 대고 무어무어라 속삭였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아온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해 보이곤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오고를 반복했다.


한스는 아버지가 하려는 마지막 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지만 아버지와 사내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거운 분위기에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혹여 둘의 대화에 방해가 될까 싶어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범인은 누구입니까.”


한스가 방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한 아온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낯선 방문자에게 조심히 물었다.


“그게 저희도 아직까지 짐작 가는 자가 없습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넬에서 보낸 암살자와 하쉬락의 카낙이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만 그들 모두 이 정도의 일까지 치를 충분한 동기가 없어 더욱 알기가 어렵습니다.”


전령을 가지고 온 사내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물 한 모금도 못 먹었는지 녹슨 쇳소리처럼 갈라진 소리를 냈다. 아온이 들고 있던 잔을 건네받은 사내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 ‘물고기 배설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기 전까지는.


“윽!... 여하튼 문제는 이 일이 이미 에노스 전역에 퍼져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에서 타오르는 고통을 참아내며 전령사는 힘겹게 말했다.


“아니 어째서 벌써 그렇게 소식이 퍼졌단 말이오? 이런 일은 일단 사태를 수습한 뒤에 공표를 하던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일단은 감추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온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다그쳤다. 그러자 전령을 가지고온 사내는 손을 저으며(그 틈에 슬쩍 캐버주를 내려놓았다.)말했다.


“그게 저희로써는 어떻게 손 쓸 방도가 없었습니다. 길리엄 폐하는 그린캐슬(Greencastle) 외벽에 기이한 모양으로 붙어있어서 시신을 그 곳에서 내리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이른 아침 성채의 하급병사부터 장군들까지 모두 그 처참한 광경을 보지 못한 자가 없었기에... 최선을 다해 입막음을 지시하였으나 아무래도 그들 모두를 관리하는 것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일단 처음 이를 발설한 자를 최대한 물색하고 있으니 곧 소식이 들어올 것입니다.”


“기이한 모양?”


전령사는 한참을 주저하는 듯이 보였으나 이내 결심을 했는지 아온에게 다가가(온갖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왕의 시신은 성벽 벽돌에 꽂아놓은 고리에 걸려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찌나 기이한지 충격에 다들 할 말을 잃었죠.”


아온은 사내의 몸에서 나는 채취가 코를 찌르든 말든 답답함에 그에게 더욱 바짝 붙어 그를 안달했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 걸려있었냐 하는 말이오.”


“그의 모습은 마치 에노스의 상징을 형상화 한 듯 보였습니다. 태양의 황금사자 말입니다. 시신은 사자가 앞발을 들고 있듯이 치켜 올려져 있었고. 머리는 사자의 갈퀴처럼 흩날려 있었습니다. 시신의 아래쪽으론 그의 피로 그린 것으로 보이는 태양이 있었죠. 그러나 무엇보다 저희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옆에 피로 쓰여 진 글귀였습니다.”


‘이 자는 이렇게 애 태우는 것을 좋아하는 부류인가 보군.’


아온은 참을성이 부족했다. 그러나 일개 지방영주가 그를 함부로 대할 순 없었다. 전령사라곤 해도 왕국에서 보내온 칙사이었기에 최대한의 예를 갖추어야 했다.


“에이란의 태양이 저물고 달이 뜨면 영광의 기사들이 깨어나 달빛이 비추는 모든 곳을 불태우리라.”


“음?”


아온은 어안이 벙벙해 전령사를 쳐다보았다.


“이것이 그곳에 쓰여 있던 글귀입니다. 그 글씨체와 문장구조로 볼 때 절대 하쉬락놈들이 사용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이 글귀를 두고 에노스 국민들 사이에선 다양한 소문들이 돌고 있습니다. 에노스를 향한 선전포고, 자치령의 반란. 하다하다 뭐 말피라 신의 부활? 같은 헛소리까지 지지를 얻고 있는 판국이니 정말 골치 아플 다름입니다. 그리고 이건 펠리스 내에서 간간히 돌고 있는 소문인데... 에노스의 제 2왕자인 하인칼 왕자가 저지른 일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자신을 쳐다보는 아온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전령사는 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물론 이건 제 생각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의심은 추호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고말고요!”


하지만 아온은 그의 생각 따위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왕의 시신 옆에 쓰여 있다던 글귀만이 맴돌고 있었다.


‘에노스의 태양... 이건 분명 에노스의 국왕을 뜻하는 것일테고. 달? 달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 달의 관련된 신화인가? 영광의 기사들은 7기사들을 뜻하는 것인가? 달빛이 비추는 곳은 어디지?’


다양한 가설을 세워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다. 이번에 살해당한 인물은 일개 왕국의 왕이 아니었다. 에이란 대륙 전부를 통치하는 실질적인 종주국 에노스의 황제였던 것이다. 이는 거대한 성채의 중요한 기둥을 무너뜨린 격이었다. 그로써 일어날 일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것임을 아온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영주님?”


사색에서 벗어난 아온은 불안한 표정인 전령사를 보았다.


“아. 이거 미안하오. 잠깐 생각에 빠져있었소.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일단 들어가셔서 씻고 푹 쉬시는 게 나을 것 같아 보이는군요.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마저 하도록 하지요. 제 하인들을 시켜 따듯한 음식을 준비하라 이르도록 하겠소.”


“아! 성의는 감사합니다만. 저는 단지 영주님께 이 소식을 알려드리려 던리버에 들린 것일 뿐입니다. 여기서 목을 축인 것만으로 족합니다.”


전령사는 씁쓸한 웃음으로 냄새나는 캐버주(酒)를 바라보며 말했다.


“몹시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겠소? 물론 사태가 이리 큰 사태이니 말리진 않겠소만. 정 급하다면 몇 일분의 식량과 몸종을 함께 동행시키도록 하겠소.”


“아! 그 또한 역시 감사합니다만. 정중히 거절하도록 하지요. 왕국에서도 이 전령이 매우 은밀히 전달되는 걸 원하시고 계십니다. 몸종을 데리고 다니면 분명 사람들의 눈에 띌 겁니다.”


거듭 거절하는 자에게 베푸는 호의는 호의의 본질을 망각하는 것임을 잘 알기에 아온은 더 이상 그 무엇도 권하지 않았다.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지 여쭤 봐도 되겠소?”


아온이 물었다.


“컴왈프로 갈 예정입니다. 그곳 영주께서도 이 중대한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촐히 떠날 채비를 하는 전령사가 말했다.


“컴왈프라. 할콘 영주가 꽤나 충격을 받겠군요. 그는 워낙 다혈질인 지라. 혹여나 그가 흥분하거든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거요.”


아온은 진심을 다해 조언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아! 내 정신 좀 보게나. 가장 중요한 전령을 깜빡할 뻔 했군요. 내일 모레 쏜네스트에서 이번 사건에 관련해서 라마스 자치령 지방영주들의 원탁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당연히 던리버의 영주님도 포함되어있습니다. *폰 께선 이번 일에 대해 영주들의 의견을 듣고 현 사태의 파악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혜안을 얻고자 이번 회의를 주최하셨다고 하더군요.”


아온은 이런 중요한 사항을 빼먹을 뻔 한 사내의 전령사 자질이 의심되었다.


“자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따듯한 환대 감사했습니다.”


아온은 서둘러 떠나려는 전령사를 붙들었다.


“이거 떠나는 마당에 아직 서로 통성명도 못했구려.”


전령사에 입에 묘한 웃음이 피었다.


“저 같은 자의 이름까지 여쭈실 줄은 몰랐군요. 제 이름은 칼. 칼 리온입니다.”


“던리버의 영주 한스 데보너이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전장의 스톤베어.(아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언젠가 다시 만나길 기대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칼 리온이라고 밝힌 전령사는 타고 온 말을 이끌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의 말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온은 리온이 지나간 길을 응시했다.


‘리온... 리온이라.’



*폰(pawn)- 폰. 체스에서의 그 폰이 맞다. 에노스 왕국의 통치 하에 있는 자치령 국가의 수장들은 자신들의 칭호에 ‘폰’이라는 칭호를 새기면서 신하 됨을 증명하였다. 물론 각국의 군주들이 이를 즐거이 받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와이번
    작성일
    14.08.31 23:04
    No. 1

    재밌네요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 구삼닭
    작성일
    14.08.31 23:06
    No. 2

    감사합니다! 곧 있음 본 이야기의 전개가 시작됩니다. 계속 관심있게 봐주세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BARREN 베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베른의 세계관에 대하여 14.08.31 123 0 -
공지 안녕하세요 구삼닭입니다. 14.08.31 128 0 -
15 #3. 피바람(2) 14.09.11 106 1 9쪽
14 #3. 피바람(1) 14.09.10 77 2 7쪽
13 #2. 보랏빛 저주(8) 14.09.09 95 3 9쪽
12 #2. 보랏빛 저주(7) 14.09.08 103 3 7쪽
11 #2. 보랏빛 저주(6) 14.09.07 116 3 8쪽
10 #2. 보랏빛 저주(5) 14.09.06 47 4 7쪽
9 #2. 보랏빛 저주(4) +1 14.09.06 49 4 7쪽
8 #2. 보랏빛 저주(3) 14.09.06 76 5 7쪽
7 #2. 보랏빛 저주(2) 14.08.31 149 5 7쪽
6 #2. 보랏빛 저주(1) 14.08.31 133 5 7쪽
» #1. 눈물의 아이(4) +2 14.08.31 180 6 9쪽
4 #1. 눈물의 아이(3) 14.08.31 165 5 8쪽
3 #1. 눈물의 아이(2) +2 14.08.31 122 6 7쪽
2 1.라마스(RAMAS)-#1. 눈물의 아이(1) +1 14.08.31 141 6 7쪽
1 #0. Prologue +4 14.08.31 187 5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