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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종조 님의 서재입니다.

늙으니까 강해진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금종조
작품등록일 :
2024.05.08 12:48
최근연재일 :
2024.06.16 11:02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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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0
추천수 :
4
글자수 :
179,576

작성
24.06.1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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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8. 곤륜선생 귀후림.

DUMMY

곡괭이를 든 노인을 경계로 그 왼쪽과 오른쪽 절벽에는 무수히 많은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다. 대충 봐도 수천여개는 족히 되어 보였다.


저 구멍들은 대체 뭐지?


“헉헉, 여보쇼, 노인장. 노인장은 뉘신데.. 느헉, 이처럼 높은 벼랑에 구멍을 뚫고 있는... 겁니까?”

“허허, 이놈 보게. 넌 이쪽길이 뭔지도 모르고 올랐단 말이야?”

“느헉, 뭔... 길인지는 나는 모르고, 헉, 그저 장례를 치러준다는 곤륜파 도사를.. 헉, 찾고 있는데?”

“어랍쇼, 이게 아주 말을 착착 잘 놓네.”

“헉헉, 죄송.. 지금 많이 힘들어서. 그래..”


호두껍질 노인장은 작업을 멈추고 백리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 네가 바로 장가네 객점 소개로 올라온 놈이로구나. 장례를 치러줄 도사를 찾아 나선 어린놈 맞지. 수중에 제법 돈이 많다고 하던데.”


돈 얘기가 나오자 도사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느헉헉. 어린놈 맞지. 돈도 많고. 헉헉.”


백리토는 기분은 나빴지만 일단 인정을 했다.

이처럼 고단한 이때 얼른 천 표두와 이한조의 장례를 치러주고 곧장 곤륜파로 가고 싶었다.


사실 백리토는 아까부터 이 짓을 때려치우고 싶었다.

이미 죽은 천사림과 이한조가 자신의 노고를 알아 줄 리도 만무하고. 괜한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닌가 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가파른 산을 타고 벼랑까지 올랐다.


천성이 게으르고 힘든 일은 죽어라 하기 싫은 그지만 그보다는 천사림과 이한조가 먼저였다.

그랬기에 힘든 것도 무릎 쓰고 이 개고생을 하는 거였다.


“헉헉, 노인장 조금만 쉬겠소.”


백리토는 바로 앞쪽에 뚫린 암굴로 들어섰다.


숨이 찬 가운데 드디어 몸져누울 곳을 찾자 그대로 벌렁 자빠져 헉헉헉 숨을 골랐다.

가쁜 호흡이 가라앉자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그러면서 흐릿했던 안구에 하나의 상이 맺혔다.

머리맡에 무언가 스산한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암굴 한쪽에 있는 눈 덮인 석상이었다.

어? 근데, 석상이 아니었다. 어두운 암굴안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젊은 여인이었다.


그 쏟아진 흰 눈이 반쯤 몸을 덮고 있었고 그 위쪽으로 삐죽이 솟아난 여인의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리고 그 길고 검은 머리칼 사이로 새까맣게 뻥 뚫린 백골의 두 눈과 콧구멍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으악!”


그는 혼비백산하여 암굴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다 죽은 여인의 발을 밟고 한쪽 발을 헛디뎠다. 그와 동시에 넘어져서 떼굴떼굴 굴렀다.

자칫 잘못하면 벼랑 끝 암굴에서 떨어질 판이었다.



*****



백리토가 발을 헛디뎌 구르자 호두껍질 노인장은 재빨리 곡괭이자루를 내던졌다.

노인장과 금귀가 동시에 그의 팔을 잡아챘다.


그런 이때였다.

금귀는 별안간 백리토의 한 팔을 붙잡은 노인장의 어깨죽지를 다른 한손으로 콱 움켜쥐었다.

그 즉시 노인장의 어깨에서 ‘우드드득’소리가 났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으아악! 아야! 이, 이것들이 곤륜파 도사를 잡네! 잡아!”


그 소리에 백리토는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엉? 노인장이 곤륜파 도사라는 겁니까? 그 장가네 객점 주인장이 소개해준 그 곤륜파 도사? 날 도와서 친구들 장례를 대신 치러준다던 그 도사요?”

“아야, 욘석아! 도사고 나발이고, 이 무식한 놈더러 먼저 손부터 떼라고 해라! 네 친구들 장례보다 내가 먼저 장례를 치르게 생겼어!”

“금귀! 그 손 놔! 노인장, 아니, 이 도사님은 적이 아니야!”


그 말 한마디에 금귀는 곤륜파 도사의 어깨죽지를 놓아주었다. 백리토가 말했다.


“노인.. 아니지. 죄송합니다. 곤륜파 도사님인지 몰라뵀어요.”


곤륜파 도사는 스스로를 곤륜선생이라고 칭했다.

현재 곤륜파에서 당주직을 수행 중에 있다고 했다.


오늘날 곤륜파에는 조사전(祖師殿)과 육관(六關), 일동(一洞), 일당(一堂)이 있었다.

그 육관에는 등룡관(登龍關), 낙룡관(落龍關), 운룡관(雲龍關), 추룡관(追龍關), 화룡관(火龍關), 뇌룡관(雷龍關)이 있었고.

일동은 용미동(龍眉洞), 일당엔 풍묘(風墓), 동묘(凍墓), 설묘(雪墓)를 합한 삼묘가 있었다.


백리토는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생긴 것은 그냥 죽은 사람이나 파묻고 다니면서 망자를 위로하는 하찮은 도사쯤으로 보였다. 헌데 그 앞에 있는 이 노인이 곤륜파의 당주라니.


당주라는 노인네를 보자 백리토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오호, 그럼 이 노인네만 잘 꼬시면 앞으로의 일은 만사형통이라 이거로군.


그 얼굴에 주림이 자글자글한 곤륜선생이 말했다.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있나? 집나간 마누라 생각하는 것도 아니겠고.”

“네? 방금 뭐라고 하셨죠?”

“나참, 그 생긴 것과 달리 좀 멍청한 구석이 있나보군. 장가네 객점주인에게 그랬다면서. 장례를 치러줄 사람을 찾는다고.”

“네네, 그랬었죠.”

“뭐가 그랬었죠야. 그 사람이 바로 나 곤륜선생이니까. 어서 장례비를 납입하고 친구들을 극락왕생 하게끔 빌어줘야지.”


백리토는 주섬주섬 품속을 뒤져 은원보 하나를 건네주었다.

곤륜선생이라는 노인은 즉각 은원보를 받아들고서 그 앞니로 슬쩍 깨물어보았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했다.


“아, 진짜로군. 역시 장가네 객점은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단 말씀이야.”


뭐야? 돈 냄새? 갑자기 미심쩍어진 그가 물었다.


“근데, 도사님. 극락왕생은 불교쪽 아닙니까? 도교라면 태상노군, 원시천존,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려 망자가 한을 품고 귀신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까?”

“너 갑자기 똑똑해지면 못쓴다. 원래대로 해 그냥. 줏대 없이 왔다갔다 하지 말고.”


백리토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쩐지 그 하는 말투하며 하는 행동이 사짜 냄새가 물씬 풍겼다.


“혹시 근처에 다른 곤륜파 도사님들은 없으신가요?”

“흥, 너는 나를 못 믿는구나. 그렇지?”

“아, 아닙니다. 못 믿긴요. 그랬다면 제가 그리 큰 은원보를 장례비로 드렸겠습니까?”

“하긴, 그렇군.”


그는 영 곤륜선생이라는 작자가 미덥지 못했다. 그가 상상한 곤륜파의 위풍 있는 도사의 모습과는 너무 많은 괴리가 있었다.

어쨌든 장례는 치러야 하니까. 금귀를 시켜 황금관짝을 끌어올리게 했다. 백리토가 물었다.


“곤륜선생님, 이 위쪽에 길이 있나요? 제 친구들이 꼭 좀 양지바른 곳에 묻혔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아주 끔찍한 일을 당했거든요.”


곤륜선생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암굴 한쪽에서 이것저것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자, 이제부터 날 따라와. 길이 험하니까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절대로 잡은 줄을 놓치지 마. 재수 없으면 졸지에 친구들과 함께 장례를 치러야하는 불상사가 생기니까.”


딴엔 재미있으라고 한소리인가 본데 백리토는 전혀 웃기지가 않았다.


이후 곤륜선생과 백리토는 한참이나 더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이때부터 백리토는 혼자의 힘으로 절벽을 오를 수 없었다.


뒤에서 금귀가 받쳐주지 않았다면 단 일각도 버티지 못하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백리토는 황금관짝을 짊어진 금귀의 도움으로 계속 곤륜산맥을 오를 수 있었다. 차가워진 공기가 그의 전신을 싹싹 훑고 지나갔다.

얇은 옷을 입은 그는 너무 추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덧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풀과 나무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눈과 얼음뿐이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양지바른 곳은 절대 나올 리가 없었다.


그는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어 곤륜선생을 부르려 했다. 그런데 마침 곤륜선생이 절벽에 매달려 그에게 손짓을 했다.

어서 이곳까지 올라오라는 소리다.


백리토는 그가 말하는 대로 한참 위쪽 석굴로 들어섰다.


차디찬 냉기가 석굴 안쪽에서부터 ‘훙훙’ 불어오고 있었다. 얼마나 차가운 바람인지 석굴내부는 물론 바깥까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 안쪽에는 사람크기로 자라나 얼어붙은 덩어리들이 즐비했다.


“자, 여기가 바로 곤륜산에서 제법 명당이랄 수 있는 자리지.”


백리토는 도사의 말에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리 어려도 풍수지리를 조금쯤은 알았다. 어떻게 이런 곳이 명당자리가 될 수 있단 말일까.


“도사님. 이곳은 제 친구들을 묻을 수도 없는 곳인데 어찌 명당입니까?”

“크크, 중원에서 왔다더니 이곳 물정을 전혀 모르는군.”

“예?”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도사를 응시했다.


“이곳 곤륜산의 장례는 오직 세 가지로 풍장(風葬), 동장(凍葬), 설장(雪葬)이 있을 뿐이야”


풍장? 동장? 설장?“


“도사, 아니 곤륜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풍장은 아까 보았듯이 절벽에 구멍을 뚫어 죽은 사람을 놓고 바람에 말리는 것이고, 동장은 여기 이곳처럼 시신을 바닥에 앉혀놓고 꽁꽁 얼리는 것이지.”


그랬다.

삼묘의 당주 곤륜선생 귀후림(歸厚林)은 이렇게 풍장과 동장, 설장의 장례 일을 도맡는 직책에 있었다.

말이 당주급이지 사문에서 그리 큰 위치에 있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곤륜선생의 말에 백리토는 깜짝 놀랐다.


아까 절벽에 수없이 많은 구멍이 뚫린 것이 전부 다 사람의 시신이 들어가 있어 그렇다는 건가?

그럼 지금 이곳에 있는 얼음덩이들도 그냥 얼음이 아니고 죄다 죽은 사람들?


백리토는 곤륜선생 귀후림이 곤륜파에서 꽤 높은 사람이라 여겼다.

그랬기에 공손했던 것이지 아니면 벌써 욕을 하고 자리를 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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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지존의 길. 24.06.16 14 0 14쪽
29 29. 통관. 24.06.16 14 0 13쪽
28 28. 도를 닦아 신선이 될 수도 있다. 24.06.16 19 0 13쪽
27 27. 이미 신체를 포기했다는 뜻. 24.06.16 16 0 13쪽
26 26. 견습도사 조령령. 24.06.15 19 0 15쪽
25 25. 곤륜파 속성반. 24.06.15 18 0 14쪽
24 24. 조교도사. 24.06.15 18 0 14쪽
23 23. 백발신공. 24.06.15 20 0 21쪽
22 22. 꺼져, 나한테 다가오지 마! 24.06.14 23 0 14쪽
21 21. 왜 너희 종년 맞잖아. 걸레 같은 종년들! 24.06.14 28 0 10쪽
20 20. 백리가의 비밀(2). 24.06.13 26 0 11쪽
19 19. 백리가의 비밀. 24.06.13 22 0 10쪽
» 18. 곤륜선생 귀후림. 24.06.13 21 0 10쪽
17 17. 도력이 높은 양반을 수배했다. 24.06.13 21 0 12쪽
16 16. 어쩌다 곡마단 단원이 된 백리토. 24.06.13 18 0 11쪽
15 15. 저놈의 말은 순전히 거짓말입니다. 24.06.13 21 0 12쪽
14 14. 방울을 흔들면 그가 나온다. 24.06.12 23 0 11쪽
13 13. 죽음은 늘 가까운 곳에. 24.06.12 23 0 11쪽
12 12. 금귀혼강시의 위력. 24.06.12 26 0 14쪽
11 11. 황금관짝과의 거리는 불과 십보. 24.06.11 22 0 14쪽
10 10. 황금관짝. 24.06.11 31 0 17쪽
9 9. 도둑놈, 도둑년이라면 이가 갈리는 백리토. 24.06.11 35 0 13쪽
8 8. 금귀혼강시(金歸魂剛屍) 24.06.11 38 0 15쪽
7 7. 배때지에 확실히 칼금을 그어줘라! 24.06.11 29 0 10쪽
6 6. 친해지기 어려운 요상한 성격. 24.06.10 40 0 10쪽
5 5. 수취인불명의 표물. 24.06.10 48 0 12쪽
4 4. 곤륜은 너무 멀다. 24.06.10 72 0 17쪽
3 3. 진짜진짜 무림지존(武林至尊)이 될 몸. 24.06.10 105 1 30쪽
2 2. 잠 좀 자자! +1 24.05.09 151 1 11쪽
1 서장(序章) +1 24.05.08 180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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