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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종조 님의 서재입니다.

늙으니까 강해진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금종조
작품등록일 :
2024.05.08 12:48
최근연재일 :
2024.06.16 11:02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139
추천수 :
4
글자수 :
179,576

작성
24.05.09 12:03
조회
150
추천
1
글자
11쪽

2. 잠 좀 자자!

DUMMY

한 치 앞도 보이질 않는 달도 뜨지 않은 밤.

장강(長江) 선단의 맨 뒤쪽에는 백리표국(白利鏢局)의 소국주 백리토(白利兎)가 있었다.


그 나이는 16세. 첫 표행 길로 그 앞쪽에는 백리표국의 깃대를 꽂은 십여 척의 배들이 있었다.


한밤중 이들은 잠 한숨 못자고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이때 백리토는 우거지상을 쓰고 뱃전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한손에는 피 묻은 검을 꼭 쥐고 있었다.


아, 젠장!


방금까지도 장강수적(水賊) 잠수병 오십 명의 공격이 있었다. 그들은 개미떼처럼 뱃전에 들러붙어 뾰족한 꼬챙이로 배에 구멍을 뚫으려 기를 썼다.


그때마다 백리토는 기겁을 하고 뱃전에 달라붙은 수적들의 몸에 칼빵을 빵빵 놓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격퇴한지 채 반각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백리토는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느허헉,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헤엄을 배워두는 건데.”


백리토는 아직 헤엄을 칠 줄 몰랐다.


부친이 그렇게나 헤엄을 배워두라고 귀에 딱지가 않도록 말했었는데. 이제야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수적에 의해 배에 구멍이 뚫리면 정말로 끝장이다. 그대로 백리토는 표물들과 함께 강바닥에 가라앉고 말 터였다.


언뜻 소름이 끼친 백리토는 물에 젖은 머리를 탈탈 털었다.

호기롭게 한손에 쥔 칼을 치켜들고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으하하핫! 내가 그렇게 될까보냐? 이 개 같은 수적 놈들아!”


이때 뱃전 앞으로 커다란 물보라가 일었다. 검은 형체의 무엇이 물 밖으로 빠르게 튀어나왔다.


피수(避水)능력의 특수한 옷을 입은 장강의 수적이었다.


한참 배 바닥에 붙어 있던 수적은 숨길이 막혀 그쪽으로 떠올랐다. 하필이면 백리토가 칼을 치켜들고 있는 쪽이라니.


재수가 없어도 오지게 없는 수적이다.


백리토는 큰 눈을 부라렸다.

물 밖으로 빠져나온 수적과 그 시선을 맞추었다.


“아 쫌! 고만해라! 이 등신들아!”


백리토는 한 손에 쥔 칼로 그 수적의 머리통을 힘껏 내리쳤다. ‘쩍’하는 소리와 함께 수적의 머리는 반으로 쪼개졌다.


새까만 머리 거죽 속에 새빨간 과육이 잔뜩 든 것이 참으로 맛나게 보였다.


누가 알면 당장 미친놈이라 할 터였다.

백리토는 장장 사흘 동안 장강의 수적들과 싸웠다.


잠을 못자 눈앞이 다 어질어질하고 뱃가죽도 등짝에 ‘착’ 달라붙을 만큼 배고팠다.


지금 그가 탄 뱃전 주위로는 온통 핏물이 섞인 강물밖에 없었다. 마시고 싶어도 도무지 떠 먹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런 차에 두 쪽으로 ‘벌컥’ 쪼개진 새빨간 머리통을 보니 순간 달달한 수박이 먹고 싶어졌다.


백리토는 순간 착각했다. 하마터면 그 수적의 머릿속에 든 과육을 한 손으로 퍼먹을 뻔했다.


으헉,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퍼뜩 정신을 차린 그는 연방 토악질을 해댔다.


한편 수적들은 여전히 백리표국을 뒤쫓았다. 때문에 백리토를 포함한 표국의 선단들은 수적들의 배를 향해 가차 없이 화살을 쏘아댔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잠수병들을 향해서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쇠뇌를 마구 갈겨버렸다.


장강의 수면이 ‘푝푝푝푝푝푝’하고 빠르게 튀었다.


그것으로도 안 되면 물에서도 심지가 꺼지지 않는 화탄까지 불을 붙여 내던졌다. 그렇게 시작된 화탄 던지기는 하룻밤 하룻낮 동안 계속됐다.


준비해 뒀던 화탄이 전부 없어질 때까지 써버렸다.


표국의 선단 주위에는 수십 장 길이의 물 폭포가 허공으로 ‘좌왁좌왁’ 쏟아졌다.


백리토는 물에 젖은 생쥐 꼴로 덜덜 떨었다. 수심이 깊은 곳의 강물이라 그런지 물의 온도가 얼음장 같았다.


화탄의 영향인지 백리표국이 지나간 강 중앙에는 허옇게 배를 드러내고 죽은 물고기 떼가 그득했다.


또 백리표국의 표물을 노리는 장강의 수적들도 둥그렇고 빵빵한 배를 드러낸 채 둥둥 떠올랐다.


하, 이 썩을 놈들. 잘도 죽었네.


백리토는 여직 뒤를 쫓는 수적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야이 병신들아! 지금 이 배에는 호북성 특산품인 말린 생강과 옥로차만 가득 실려 있다고! 네놈들이 탐낼만한 물건이 전혀 없단 말이야!”


이 같은 그의 외침은 장장 사흘 동안 이어졌었다.

하지만 저 수적 놈들은 그런 것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그 뒤를 쫓아왔다.


우리 쪽도 피해를 입어 표사 셋이 죽고 열둘이 다쳤다.


다행히 수적들의 무공이 얕아 이 정도였지 정말로 고강한 고수들이 섞여 있었다면 이쪽도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백리토는 갈증이 나서 마른 입술을 혀로 할짝였다.


며칠 새 많이 초췌해졌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여전히 출중했다. 비록 어리다곤 해도 그 체구는 어른 못지않았다.


그는 백리가(家)의 가전무공인 백리구검(白利九劍)과 백리호지법(白利虎指法)도 일정 수준까지 익혔다.


그래서 그 아비이자 국주인 백리만방이 첫 표행 길을 허락한 것이었다.


헌데 그렇게 조르고 조른 표행길이 이토록 험난할 줄이야. 진정 꿈에도 몰랐다.


젠장! 독고세가의 독고화린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기를 쓰고 오진 않았을 텐데.


독고화린은 독고세가의 외동딸로 역시나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녀를 백리토는 흠모하고 있었다. 좀 있으면 팔대세가의 회합이 남경에 있을 예정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독고화린을 만나볼 생각에 절대로 안 된다는 부친을 그렇게 졸라 첫 표행길에 나섰다.


백리토는 수적이 아니어도 밥을 먹지 못했다.


배멀미가 극심하여 하루에 한 끼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씻기 좋아하는 그는 벌써 보름이나 씻지 못했다.


이제 더는 냄새나는 사내들과 뒤엉키기조차 싫었다.

그렇다고 중도에 포기할 순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이번 표행길을 하게 됐던가. 모친인 기화영이 표국 문 앞까지 나와 ‘엉엉’ 우는 것을 뿌리치고서 왔다.


그런 마당에 한심하게 저만 혼자 돌아갈 순 없었다.


게다가 어여쁜 독고화린을 포기하다니.

그건 정녕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보름간 백리토는 호북성 무현(舞縣)에서 출발해서 남경까지 양자강 뱃길을 따라왔다.


진즉 일이 이리 될 줄 알았다면 그는 이제껏 면식도 없는 표두를 데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좀 더 믿을 만한 표두를 데려왔을 것이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했던가.


“작은 주인아, 쫌만 참아라. 곧 남경이다.”


얼굴을 찡그린 그 앞에 작은 키에 몸집이 왜소한 표두가 섰다.


그의 이름은 이한조(李寒鳥). 섬나라 동영(東瀛) 출신으로 기묘한 검술을 쓴다.


내공보단 외공에 능숙하고 양손으로 네 자루의 왜도를 쥐고 쓰는 쾌도술의 달인자다.


일명 사도사쇄류(四刀射碎流)의 창시자.


이한조는 노상 허리띠에 네 자루의 왜도를 차고 다닌다. 누가 동영출신 아니랄 까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영 특유의 나막신을 고집한다.


백리토는 그가 미덥지 못했다.


정말 동영출신인지 아닌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쩌면 이자는 천생 사기꾼일지도. 동영 말투를 흉내 내어 국주인 부친이나 자신을 농락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 스물 후반인 이한조는 백리표국에 든지 만 삼년이 지났다.


절강성 해안가에서 노략질을 하던 해적들과 한패로 맨 처음 중원 땅을 밟았다가 아예 눌러앉은 놈이었다.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가질 않는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해적질을 했다지만 그 행태가 참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친인 백리만방은 이한조를 신임했다.

이번에 맏아들인 백리토의 첫 표행길에 그를 붙인 것만 봐도 알만하다.


평소 이한조는 국주인 백리만방과 소국주인 백리토를 큰 주인, 작은 주인으로 나누어 불렀다.


그게 뭐 동영식 표현법이라나. 암튼, 그 말투도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것이야 표국에서 제법 친한 천 표두가 그러하니 그냥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억양이 괴상한 것은 듣기가 몹시 괴로웠다.


그가 옆에서 말을 할 때마다 속이 느글거린다고나 할까.


게다가 서로 친해져서 말을 놓는 것과 아예 버릇이 없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담담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이한조가 말했다.


“작은 주인은 아직 어리다. 계집보다는 무공을 익히는데 힘을 써야 한다.”


백리토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이한조, 그만 닥쳐줄래.”


이한조가 말했다.


“작은 주인을 위해서 하는 소리다. 무공을 게을리 하면 언젠가 자객한테 죽임을 당한다.”


“씨발, 그거 조언이냐, 악담이냐? 동영에선 인자(忍者)니 뭐니 하는 자객들이 매일같이 누구 목을 따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만. 이곳은 엄연히 중원 땅이야. 이쪽에는 정도문파의 연합체인 육대문파가 있어. 또 우리 백리세가를 포함한 팔대세가도 있고. 그 누구든 함부로 건드렸다간 그날로 여지없이 아작이 난다고.”


여전히 이한조는 팔짱을 끼고 있다.


이때 그 주위로 다시금 새하얀 물보라가 거세게 쳤다.


동시에 장강수적 여러 명이 뱃전으로 쏜살같이 튀어 올랐다. 백리표국의 소공자를 노리고 덤벼든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으악’하고 비명을 내지르면서 날아갔다.


수적들의 상체와 하체는 정확히 반으로 끊어져서 강물 속에 빠져들었다.


방금 전 이한조는 번개 같은 솜씨로 허리에 매진 네 자루의 검을 뽑아 날렸다. 직후,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 재빨리 거두어들었다.


그 동작이 워낙 날쌔고 빨라 백리토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한조의 잔혹한 쾌도술에 놀라 혀를 내둘렀다.

내공은 별로지만 쾌도술 하나만은 진퉁이었다.


쩝, 완전한 사기꾼은 아닌가보네.


시선을 돌린 이한조가 말했다.


“육대문파? 작은 주인, 그들은 우리를 신경도 안 쓴다. 팔대세가도 쓰레기들이다. 큰 주인, 작은 주인 할 것 없이 백리일족 모두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위인들이다.”


백리토는 이한조가 너무 많은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이제껏 이렇게 말을 길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쨌건 백리토는 흥분해 소리쳤다.


“지랄 마! 동영 촌놈인 니가 뭘 안다고 자꾸 주둥이를 놀려? 니가 육대문파를 알아? 팔대세가를 알아?”


그렇게 꾸짖었지만 금세 입맛이 써졌다.

이한조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그의 말 그대로였다.


잔뜩 화가 난 백리토는 격하게 몸을 돌렸다.


벌써부터 장강의 수적들은 또다시 개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백리토는 손에 들린 검을 또 한번 내질렀다.


“제발, 좀 오지 마라! 오지 마! 너희는 포기도 모르냐?”


백리토는 악착같이 뱃전에 몸을 부리는 장강수적들의 몸을 검으로 ‘쿡쿡’ 찔렀다. 그 머리통을 ‘뎅겅뎅겅’ 쳐냈다.


“씹할, 잠 좀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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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지존의 길. 24.06.16 14 0 14쪽
29 29. 통관. 24.06.16 14 0 13쪽
28 28. 도를 닦아 신선이 될 수도 있다. 24.06.16 19 0 13쪽
27 27. 이미 신체를 포기했다는 뜻. 24.06.16 16 0 13쪽
26 26. 견습도사 조령령. 24.06.15 19 0 15쪽
25 25. 곤륜파 속성반. 24.06.15 18 0 14쪽
24 24. 조교도사. 24.06.15 18 0 14쪽
23 23. 백발신공. 24.06.15 20 0 21쪽
22 22. 꺼져, 나한테 다가오지 마! 24.06.14 23 0 14쪽
21 21. 왜 너희 종년 맞잖아. 걸레 같은 종년들! 24.06.14 28 0 10쪽
20 20. 백리가의 비밀(2). 24.06.13 26 0 11쪽
19 19. 백리가의 비밀. 24.06.13 22 0 10쪽
18 18. 곤륜선생 귀후림. 24.06.13 20 0 10쪽
17 17. 도력이 높은 양반을 수배했다. 24.06.13 21 0 12쪽
16 16. 어쩌다 곡마단 단원이 된 백리토. 24.06.13 18 0 11쪽
15 15. 저놈의 말은 순전히 거짓말입니다. 24.06.13 21 0 12쪽
14 14. 방울을 흔들면 그가 나온다. 24.06.12 23 0 11쪽
13 13. 죽음은 늘 가까운 곳에. 24.06.12 23 0 11쪽
12 12. 금귀혼강시의 위력. 24.06.12 26 0 14쪽
11 11. 황금관짝과의 거리는 불과 십보. 24.06.11 22 0 14쪽
10 10. 황금관짝. 24.06.11 31 0 17쪽
9 9. 도둑놈, 도둑년이라면 이가 갈리는 백리토. 24.06.11 35 0 13쪽
8 8. 금귀혼강시(金歸魂剛屍) 24.06.11 38 0 15쪽
7 7. 배때지에 확실히 칼금을 그어줘라! 24.06.11 29 0 10쪽
6 6. 친해지기 어려운 요상한 성격. 24.06.10 40 0 10쪽
5 5. 수취인불명의 표물. 24.06.10 48 0 12쪽
4 4. 곤륜은 너무 멀다. 24.06.10 72 0 17쪽
3 3. 진짜진짜 무림지존(武林至尊)이 될 몸. 24.06.10 105 1 30쪽
» 2. 잠 좀 자자! +1 24.05.09 151 1 11쪽
1 서장(序章) +1 24.05.08 180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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