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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종조 님의 서재입니다.

늙으니까 강해진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금종조
작품등록일 :
2024.05.08 12:48
최근연재일 :
2024.06.16 11:02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148
추천수 :
4
글자수 :
179,576

작성
24.06.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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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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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7. 배때지에 확실히 칼금을 그어줘라!

DUMMY

“아무튼, 이한조는 음침하고 괴상해. 도무지 맘에 안든다구.”


백리토가 이한조를 헐뜯자 천사림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이 멍청한 녀석아. 너도 친해지기 꽤 어려운 성격이란 것을 알아야지.

누가 누구더러 요상하다 괴상하다 운운하냐? 완전 적반하장이로구만.


이때 마차 문이 벌컥 열렸다.

팔짱을 낀 이한조가 마찬 안에 앉아서 양쪽 손에 짐을 든 백리토를 찬찬히 훑어 내렸다.


“작은 주인아. 남 뒷담까는 버릇은 매우 안 좋은 거다. 유념해라.”


백리토는 말문이 막혔다.

바로 앞 흑마차 안에 이한조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그새 평상심을 회복하고 소리를 질렀다.


“야! 이한조 너가 이 흑마차 돈 주고 전세 냈냐? 왜 떡하니 내 자리에 앉아 있어. 얼른 일어나지 못해! 일꾼이면 일꾼답게, 표사면 표사답게 고객님을 응대할 줄 알아야지!”


그러자 이한조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것은 작은 주인 말이 옳다. 난 마부석으로 가겠다.”


백리토는 순순히 이한조가 자릴 비키자 얼른 할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그사이 저희를 금순이 은순이라고 소개한 하녀들이 짐을 받아 마차에 실었다.


그런 다음 알뜰살뜰 그를 챙기기 시작했다.

먼 길을 가는 길에 여독이 쌓이면 안 된다면서 금순이 은순이는 대뜸 그의 몸을 마구 주무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백리토는 온몸이 노곤해졌다.

어린 하녀들의 뽀얀 손길이 제 몸을 만지자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한편 흑마차는 빠른 속도로 앞쪽 흙길을 밟으면서 나아갔다. 마부석에는 표두 천사림과 이한조가 앉아 있었다.


건마 열두 필은 우렁찬 콧소리를 내면서 마구 질주했다. 동시에 뒤쪽으로 백리표국이 점으로 화해 사라졌다.

그 정도로 흑마차는 달리는 속도가 뛰어났다.


이렇듯 흑마차는 밤이고 낮이고 달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다음달 15일까지 기한 내에 곤륜까지 당도하려면 부지런히 가야했다. 흑마차는 이틀 만에 호북성을 빠져나와 섬서성으로 진입했다.


물론 그사이에도 간간히 도적들의 습격은 있었다.

한번은 무려 오십여 명이 길을 막고 덮친 적도 있었다. 한동안 산채에서 살았는지 죄다 그 걸친 옷은 토끼가죽, 살쾡이가죽, 늑대가죽 이랬다.

손에 든 무기들도 하나같이 변변찮았다.


그 중에 머리 하나가 더 큰 두목이 소리쳤다.


“흐흐흐, 너희는 어디 놈들이냐? 나라세금을 모으는 치들이라도 되나? 마차가 제법 큰 것을 보니 그 안에 엄청 돈이 많을 것 같은데.”


마부석에 앉은 천사림이 호통을 쳤다.


“헛소리 좀 작작해라! 너희는 단체로 눈깔이 삐었냐? 아님, 까막눈이야? 보면 몰라? 호북성에서 잔뼈가 굵은 백리표국의 마차잖아!”


옆에 앉은 이한조도 팔짱을 낀 채 도적들을 한심하게 봤다.

이것들 모두 등신 중에 상 등신이라고 확신했다.

흑마차 전면에 백리표국을 상징하는 노란 깃대가 커다랗게 꽂혀있는데도 엉뚱한 소리들을 해대니 말이다.


창피를 당한 도적의 두목은 잠시 부들부들 떨다 소리쳤다.


“쳐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이 개 같은 것들의 배때지에 칼금을 확실히 그어줘라!”


공격명령을 받은 도적들은 몽땅 다 덤벼들었다.

바로 그때 팔짱을 끼고 있던 이한조가 나섰다. 굳이 천사림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인자술과 왜도술의 달인인 이한조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도적들을 도륙했다.

방금 전 헛소리를 한 도적의 말대로 놈들의 배때지에 확실히 칼금을 선사했다.

도적들은 삐져나오는 내장을 감싸 쥔 채 참혹한 비명을 질러댔다.


이때 백리토는 마차 안쪽에서 차양을 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름 흡족한 맘에 고개를 까딱이며 손뼉을 쳤다.

저와 성격은 맞지 않지만 일처리가 깔끔한 것이 맘에 들었다. 하여 이한조에게 곤륜산까지 표물 운송을 가는 수고비조로 은전 천 냥을 제시했다.


이한조는 은전 천 냥이라는 말에 완전 끔뻑 죽었다.

연방 양쪽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작은 주인! 작은 주인! 노래를 불렀다.


동영출신 촌놈이라 그런지 천사림이 얼마를 받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의문을 갖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천사림이 은전 만 냥을 갖는 다는 것을 알면 그의 기분이 과연 어떨까.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을까.


암튼 흑마차는 무리 없이 섬서를 통과해 감숙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착실히 지역 관아에서 기한 내에 표물을 운송하고 있다는 도장을 받았다.


나라에서 지정한 공문서가 아닌 담에야 관아에서 그리 해줄 이유는 없었다.

다만 오래된 관례로 표국들의 뒷돈을 받아 공문서에 준하는 취급을 해주고 있었다.


이제 백리표국의 깃대를 꽂은 흑마차는 아무런 방해 없이 감숙의 난주(蘭州)를 지나치게 되었다.

호북성 무현에서 출발한지 딱 이십여 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운이 좋게도 그간 강북에 거점을 두고 있는 나한표국 이하 다른 중소표국의 인사들과 부딪친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들과 맞닥뜨리면 좋은 꼴을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온갖 시비를 걸어와 흑마차와 표물을 빼앗으려 들지 모를 일이니까.

헌데 감숙의 옥문관(玉門關)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갑자기 백리토가 끙끙 앓아눕기 시작했다.

그간 쉬지 않고 길을 달려온 탓에 피로가 겹친 데다 음식을 잘못 먹고 식중독에 걸려버렸다.

천사림은 아픈 백리토 주위를 뒤져 요사이 그가 먹은 것들을 점검해보았다.

호북성을 떠난 뒤 이들은 단 한번도 객점에 묶거나 따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미리 준비해 뒀던 건량으로 끼니를 때웠던 것이다.

그런데 흑마차 안쪽에서 못 보던 나무상자 하나가 보였다.


천사림이 그게 무어냐고 금순이와 은순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금순이 은순이가 몸을 달달 떨면서 저희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비단 천에 곱게 싸인 나무상자를 열었더니 그 안에 노란밀랍과 꿀이 잔뜩 들어 있었다.


천사림이 금순이 은순이에게 물었다.


“거짓말 하지 말고 바른대로 말해. 이거 어디서 났어?”

“저.. 저.. 그것이 감숙성 난주 장터에서...”


금순이와 은순이는 말끝을 흐렸다.

그 정도만 해도 천사림은 일의 전말을 딱 떠올릴 수 있었다.


감숙성은 까마득히 떨어지는 절벽에서 꿀을 채취하는 석청으로 유명했다.

그 맛과 영양이 천하일품이라 황제가 머무는 궐에까지 진상되고 있었다.


다만 이 석청은 미량의 독이 있어 다량 섭취할시 복통과 어지럼증을 유발시킨다. 심하면 설사병과 탈수증상으로 목숨이 위험하다.


“젠장! 내가 난주를 통과할 때 소국주가 먹는 것을 잘 눈여겨보라 했잖아! 근데 그것 하나를 못해서 이 사달을 만드냐!”

“흑흑, 잘, 잘못했어요, 표두님. 저희도 도련님을 말려보려 했지만 소용없었어요. 마른 건량은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면서 달콤한 꿀이 먹고 싶다고 계속 그러셨거든요.”


화가 뻗친 천사림은 울고 있는 금순이, 은순이 뺨을 올려붙였다. 하지만 이한조가 나서서 천사림을 말렸다.


“때리지 마라. 그 애들은 죄가 없다. 무식한 작은 주인 탓이다.”


이한조의 말대로다. 힘없는 하녀들이 무슨 잘못을 했을까.

안 봐도 빤하다고 난주 장터에서 검수된 식재료를 구입할 때 백리토가 몰래 빠져나가 석청 한 상자를 사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 옆에서 금순이, 은순이가 말려봤자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겠지. 오히려 천사림과 이한조에게 말하지 말라면서 단단히 주위를 주었을 터였다.


이한조가 말했다.


“석청의 독은 때에 따라 매우 위험하다. 얼른 의원을 찾아야 한다.”

“젠장! 표물운송보다 소국주 뒤치다꺼리 하는 것이 더 힘들어서야 원!”


흑마차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돈황에서 의원을 찾았다.


서역과 중원을 잇는 요충지로 무역업을 하는 장사치들이 많았다. 흑마차는 이한조가 지키기로 하고 천사림이 병든 백리토를 업고 뛰었다.


한참 발품을 팔아 의원 하나를 찾아서 백리토를 치료케 했다. 중원에서는 보기 힘든 긴 천을 머리에 둘둘 감은 복색의 의원이었다. 그가 말했다.


“이런 한심한 사람을 보았나. 석청을 잘못 먹어 비장(脾臟)에 독이 잔뜩 쌓였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


천사림은 의원이 침을 놓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럼, 이제는 괜찮다는 말이오?”

“한 삼일은 개고생하겠지만 그 뒤엔 괜찮아. 침도 맞고 약도 쓸 거니까. 다만 다신 석청을 먹어선 안 돼. 몸에서 석청을 거부할 거야. 내말 알아들어?”

“괜찮다는 말은 잘 알아들었소만.”


의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그거 말고. 다신 석청을 먹어선 안 된다, 그 말이야.”


천사림이 되물었다.


“먹지는 않고 맛보는 정도는 상관없지 않겠소?”


그러자 의원은 옆에 있던 나무책상을 ‘탕’하고 내려쳤다.


“이것 봐, 이것 봐. 전혀 내말을 듣지 않고 있군. 이제 이 환자는 석청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는 몸으로 바뀌었어. 때문에 맛보는 정도로도 큰일을 당할 수 있어. 얼굴과 손발이 붓고 기도가 막히면서 호흡곤란이 올 거야. 거부반응이 극심하면 바로 심장이 멎을 수도 있지.”


천사림은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소리는 복잡해서 잘 모르겠고 마지막에 심장이 멎을 수도 있다는 말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아무튼 앞으로 석청은 절대 안 된다, 그 말씀이구려.”

“그렇지. 그렇지. 이제야 말귀가 좀 트이는군.”


이후 천사림은 의원이 약 처방을 하고 백리토의 몸에 일천여개의 바늘을 꽂는 곳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백리토는 완전 백짓장 같은 혈색으로 의식 또한 가물가물했다. 이따금 헛소리를 하는데 금순이, 은순이 젖을 찾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그 같은 백리토의 헛소리에 천사림은 어금니를 아득아득 씹어댔다.

자신과 이한조는 흑마차 마부석에 앉아 온갖 비바람과 흙먼지를 맞으면서 이곳까지 달려왔거늘.

이 쬐그만 녀석은 아늑한 실내에서 금순이, 은순이의 몸을 떡 주무르듯 하고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부아가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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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지존의 길. 24.06.16 14 0 14쪽
29 29. 통관. 24.06.16 15 0 13쪽
28 28. 도를 닦아 신선이 될 수도 있다. 24.06.16 19 0 13쪽
27 27. 이미 신체를 포기했다는 뜻. 24.06.16 17 0 13쪽
26 26. 견습도사 조령령. 24.06.15 19 0 15쪽
25 25. 곤륜파 속성반. 24.06.15 18 0 14쪽
24 24. 조교도사. 24.06.15 18 0 14쪽
23 23. 백발신공. 24.06.15 20 0 21쪽
22 22. 꺼져, 나한테 다가오지 마! 24.06.14 23 0 14쪽
21 21. 왜 너희 종년 맞잖아. 걸레 같은 종년들! 24.06.14 29 0 10쪽
20 20. 백리가의 비밀(2). 24.06.13 26 0 11쪽
19 19. 백리가의 비밀. 24.06.13 23 0 10쪽
18 18. 곤륜선생 귀후림. 24.06.13 21 0 10쪽
17 17. 도력이 높은 양반을 수배했다. 24.06.13 21 0 12쪽
16 16. 어쩌다 곡마단 단원이 된 백리토. 24.06.13 18 0 11쪽
15 15. 저놈의 말은 순전히 거짓말입니다. 24.06.13 21 0 12쪽
14 14. 방울을 흔들면 그가 나온다. 24.06.12 23 0 11쪽
13 13. 죽음은 늘 가까운 곳에. 24.06.12 23 0 11쪽
12 12. 금귀혼강시의 위력. 24.06.12 27 0 14쪽
11 11. 황금관짝과의 거리는 불과 십보. 24.06.11 22 0 14쪽
10 10. 황금관짝. 24.06.11 31 0 17쪽
9 9. 도둑놈, 도둑년이라면 이가 갈리는 백리토. 24.06.11 35 0 13쪽
8 8. 금귀혼강시(金歸魂剛屍) 24.06.11 38 0 15쪽
» 7. 배때지에 확실히 칼금을 그어줘라! 24.06.11 30 0 10쪽
6 6. 친해지기 어려운 요상한 성격. 24.06.10 40 0 10쪽
5 5. 수취인불명의 표물. 24.06.10 48 0 12쪽
4 4. 곤륜은 너무 멀다. 24.06.10 73 0 17쪽
3 3. 진짜진짜 무림지존(武林至尊)이 될 몸. 24.06.10 105 1 30쪽
2 2. 잠 좀 자자! +1 24.05.09 151 1 11쪽
1 서장(序章) +1 24.05.08 181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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