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序章)
“아악!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내 나이 16세에 늙어서 죽는다는 게 말이 돼?”
그는 함정에 빠졌다.
제 나이 십육 세에 어느덧 구십 먹은 노인이 되어버렸다.
곤륜파 도사에게 속아 잘못된 무공을 익힌 탓이다.
그는 축축한 동굴 한 귀퉁이에 앉아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삭였다. 경세무적(驚世無敵)의 신공(神功)은커녕 이제 숟가락 젓가락을 쥘 힘도 없었다.
젊은 여자와 몇 번 자보지도 않았는데 이 꼴이 되고 말다니.
혈압이 올라 그대로 뇌혈관이 터져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사실 그는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잘 컸다.
황제수저는 아니어도 지방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의 젖과 꿀로 항시 목욕을 했고 인삼무침을 끼니때마다 밥반찬으로 삼았다.
팔대세가(八大世家).
그렇다. 그는 팔대세가의 한곳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엄마 품에 안겨 밖에 나갈 때면 온 저잣거리가 떠들썩해질 정도로 그는 떡잎부터 잘생겼다.
너무 잘생겨서 애기엄마들이 단체로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였다.
또 그는 남달리 발육상태도 훌륭했다. 밑이 거뭇해지는 사춘기시절에 그는 벌써 한 나라의 장수 같은 몸집을 하게 되었다.
무예를 업으로 삼는 무림가문에서 태어난 팔자 그대로의 신체조건이었다. 두뇌도 꽤 명석한 편으로 십 세 이전에 사서삼경을 떼었다.
굳이 그보다 특출난 금강지체(金剛之體)니, 지존지체(至尊之體)니, 태양지체(太陽之體)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문과 무를 겸비한 훌륭한 무재를 타고났다.
이렇듯 그도 스스로가 무척 잘난 줄 알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옷을 걸쳐 입어도 그의 뛰어난 외모는 감히 숨길 수 없었다. 흙속에 넣어도 진주고 돼지우리에 넣어도 진주이듯이.
그는 어떤 자리에서도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났다.
십오 세가 되었을 무렵에는 주위에 내로라하는 집안의 여식들이 그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의 집안보다 더욱 대단한 가문에서도 혼약을 맺자는 청이 들어올 정도였다.
반면 그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겨우 십오 세의 나이에 남몰래 성에 눈을 뜨더니 여자를 밝혔다. 장차 호색한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제법 총명한 두뇌와 무골을 지녔지만 그 무재를 갈고 닦을 줄 몰랐다.
그의 영명함이 폭발한 것은 십 세 이전으로 끝이 났다. 천성이 게으르고 머리 쓰는 일을 극도로 기피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나 그 일을 남들에게 떠 맡겼다.
그가 직접 해결하는 법은 없었다.
그는 남들 앞에 서면 언제나 뛰어난 무공을 익힌 듯 젠체했다. 하지만 그는 애당초 응석받이로 자랐다.
타고난 겁도 많고 의심도 많고 시기도 많았다.
자신보다 잘나가는 상대가 미워 밤잠을 설친 적도 있었다.
어떤 때는 그 상대를 저주하여 저주인형을 만들어 그 인형의 팔과 다리를 꺾고 목을 분질렀다. 기름을 묻혀 활활 태우기까지 했다.
그 대가로 상대가 타죽었다는 후문도 있었다.
그랬던 그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한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면서부터다.
그것이 그가 달라진 이유였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하는 미래는 생각보다 밝지 않았다.
아니, 이루기조차 힘들었다. 그녀와 맺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사실 그 스스로가 대단타 여겼던 그의 집안은 알고 보니 별거 아니었다. 같은 팔대세가 내에서도 그의 집안을 같은 급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그는 단지 지방 촌놈에 불과했다.
때문에 그는 부친과 모친을 속이고 집을 나갔다.
경세무적의 신공을 익혀 쇠락한 집안을 다시금 일으키고 싶었다. 그렇게 멋진 모습이 되어 그가 좋아하는 여자를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는 더이상 그녀 앞에 나설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16세의 강건했던 육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
흑발의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윗턱과 아래턱에는 더는 이빨도 남아있지 않았다. 심각한 노화현상으로 모조리 쑹쑹 빠져버렸다.
별빛처럼 반짝이던 동공도 이제는 뿌옇게 탁해져 눈앞의 사물이 흐릿하게만 보였다.
그는 이제 끝장이었다.
전설 속 반로환동(返老還童)이 아닌, 그에 반하는 반동환로(返童還老)를 이루고 만 것이었다.
으흑흑흑. 이제 나는 망했어! 내 인생은 정말로 쫑 났어. 완전 좆 됐단 말이야! 나를 속인 곤륜파 이 말코 도사 놈! 결코 용서치 않겠다!
크흑, 할 수만 있다는 네놈을 아주 뼈째 아작아작 씹어 먹고 싶구나!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