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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novel

신을 찾는 자 : EAST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백아™
그림/삽화
키샷
작품등록일 :
2015.11.06 21:44
최근연재일 :
2016.02.06 16:14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15,801
추천수 :
356
글자수 :
368,327

작성
15.11.17 15:09
조회
165
추천
8
글자
12쪽

1부. 하늘이 내린 돌 : 열

DUMMY

백경과 가장 가까운 항구 백항(白港). 전국에서 모인 상선들과 사람들로, 해가 졌지만 시장처럼 시끌벅적했다. 주점은 뱃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불을 켜놓았고, 숙박업소 앞에 주인장들이 나와 손님을 잡고 있었다.

목선(木船)들이 늘어서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백항 중심부와 달리, 별로 멀지 않은 외진 항구에는 배 한 척이 외롭게 정박해있었다. 일반인들은 출입이 엄중하게 금지된 곳. 백항에서 훤히 보일 만큼 가까우나 출입이 통제된 백항 서만(西灣)이었다. 그곳에는 육천(六天)에서 찾아보기 힘든 철선 하나가 정박해 있었다.

철선 앞에서 물건을 나르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중천 조정 관리로 보이는 이가 탄 말이 사라지자 뱃고동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뱃고동소리에 백항에 있던 이들의 시선도 잠시 철선 쪽으로 향했지만, 별 일 아니라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뱃고동소리와 함께 철선이 바다 쪽으로 움직였다. 거대한 철선이 해무(海霧)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아, 갑갑해 뒤질 뻔했구만.”

배 가장 바닥에 위치한 창고엔 수많은 상자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그 중 가장 구석 쪽에 있던 상자 하나가 열리며 대료문이 기어 나왔다. 대료문이 손과 발로 땅을 짚고 대호(大虎)처럼 기지개를 켜는 사이 다른 이들도 모두 상자 밖으로 나왔다.

배 가장 구석, 두 면은 벽이었고, 한 면은 창고 중앙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나머지 한 면은 상자들이 높게 쌓여 있었다. 그 넓지 않은 공간에 두 개의 빈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여섯 명의 사내가 저마다 바닥에 눕거나 축 쳐진 채 앉아 있었다.

“먹을 거 든 상자가 무어요?”

대료문이 주변의 상자들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누구에게 묻는 진 정확하지 않았으나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요척이 손가락으로 한 쪽의 상자를 가리켰다. ‘식(食)’ 자라 작게 적힌 상자 하나. 그것을 보고 대료문의 표정이 밝아졌다.

대료문이 어슬렁어슬렁 그 쪽으로 가 상자를 열었다. 그 순간 허연 것이 푸드덕거리며 하늘로 치솟았다. 깜짝 놀란 대료문이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전서구로 쓰기로 한 천둥새. 천둥새 두 마리가 창고 상자들 사이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썅, 깜짝 놀랐구만.”

대료문이 천둥새 쪽으로 짜증스럽게 말하고는 다시 상자로 다가갔다. 안에 머리까지 넣어 이것저것 살피던 대료문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런 니미!”

대료문은 머리를 빼고 상자 안에 있던 것을 하나 잡아 바닥에 내팽개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바닥으로 향했다. 바닥에 뒹구는 것은 육포(肉脯)였다.

“안에 물하고 육포, 어포밖에 없소. 이런 것들만 먹고 열흘을 어이 버티라는 거이야!”

대료문이 씩씩 거리며 다시 자신이 내팽개친 육포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는 육포 질겅질겅 씹으며 한 쪽 벽에 기대앉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태서가 혀를 찼다.

“그럼 몰래 남의 나라로 가는데 진수성찬이라도 들어있을 줄 알았나?”

태서가 중얼거리자 안 그래도 심기 불편하던 대료문이 그를 노려봤다. 앞머리 때문에 눈이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장난을 치던 것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방금 뭐라 했소?”

“뭐, 불만이라도 있나?”

태서는 그런 위압적인 대료문의 목소리에 지지 않겠다는 듯 어깨를 쭉 펴며 맞섰다. 대료문이 옆에 놓아둔 칼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할 때였다. 장현군이 일어나 둘 사이를 가로 막았다.

“그만.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킨다면 전하께서 하사하신 검으로 목을 칠 것이오. 다들 출발할 때 전하께서 하신 말씀을 잊지는 않았겠지요?”

장현군이 태서와 대료문을 번갈아 바라보며 허리의 칼을 한 손으로 잡아 보였다. 이에 태서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여 알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러나 대료문은 그런 장현군의 모습에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가 무시기였지? 환천군이었니?”

대료문이 옆에 앉아 있던 윰을 바라보며 물었다. 윰은 몇 시간 동안 상자 안에 쭈그리고 있은 터라 지쳤는지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대료문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는지 말을 계속했다.

“환천군 대장님의 명령이니 어띠 아이 따르갔슴까.”

누가 들어도 비꼬는 말이었다. 이에 태서가 발끈하여 나서려고 하였으나 장현군이 다시 이를 말리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그런 태서와 장현군은 신경도 쓰지 않고 대료문이 셔츠 가슴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까만색의 손가락만한 통이었는데, 뚜껑을 돌려 열자 익숙한 냄새가 주변에 퍼졌다.

대료문이 통을 뒤집어 손바닥에 툭툭 치자 내용물이 나왔다. 물처럼 투명한 액체였다. 대료문은 능숙하게 한 손으로 다시 뚜껑을 닿곤 통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거이 갑갑해서 몬 살갔어.”

대료문이 중얼거리며 양 손바닥을 비볐다. 액체가 양 손에 골고루 묻자, 대료문이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옆에 있던 윰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응? 요거? 기름이야, 기름. 머리에 바르는 기름. 고 계집애들이 바르는 거 있잖니.”

대료문의 말에 윰은 그 냄새를 어디서 맡아 봤는지 기억났다. 신전에서 접신을 하던 날. 대리자에게, 그녀에게서 나던 냄새였다.

늘 길게 머리를 풀고 다니던 그녀였지만 매 달 접신을 하는 날이면 정갈하게 뒤로 묶고 기름으로 윤기를 나게 했었다.

윰이 그 기름 냄새에 취한 듯 그녀의 모습을 떠올릴 때 한 쪽에서 누군가 비명과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윰이 얼른 그쪽을 바라봤다. 그쪽에는 태서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대료문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저, 저, 서무하. 서무하.”

서무하라는 태서의 말에 요척도 반응했다. 대료문의 옆에 앉아있던 요척이 튀어나오듯 일어났다.

“서무하?”

요척이 대료문 쪽을 보며 놀란 듯 중얼거렸다. 대료문은 가리고 있던 앞머리를 뒤로 넘겨 이마까지 훤히 드러나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그의 눈은 반쯤 감겨 몽롱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서무하라면, 서방인 셋을 죽이고 도주한….”

요척의 말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대료문에게 쏠렸다.

서무하. 몇 년 전, 서방인 셋을 죽이고 도주. 수배가 떨어진 뒤 체포하려는 관군들까지 몇 차례 살해한 자였다. 칼로는 육천에서 당해낼 자가 없다는 소문까지 도는 자.

대료문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앞머리를 다 넘기고, 옆머리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요척과 해기서는 지금의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멍하니 서있었고, 윰과 장현군은 앉아 대료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료문이 옆머리까지 모두 정리하고 정면을 바라보는 순간, 태서의 손이 움직였다. 허리, 등 쪽에 꽂아놓았던 권총을 뽑아드는 태서의 움직임에 군동작은 없었다. 간결했고, 신속했다.

태서가 양손으로 권총을 감싸 쥐고 대료문 아니, 서무하를 겨눴다.

“네 이놈, 무슨 목적으로 신분을 속이고 이 배에 오른 것이냐!”

태서가 호통에 대료문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곧 낮은 음색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주변으로 퍼졌다.

“소리 지르지 말라. 우리가 몰래 탄 거이 잊었니?”

“이 놈이, 바른 데로 말하지 못할까!”

“그거 한 방에 못 맞추며는 니가 뒈진다.”

대료문이 여유롭게 말했다. 그러나 태서도 일군의 총괄을 맡은 자. 그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집안 덕에 이 자리에 오른 줄 아나. 이래봬도 사격술 하나로 일군의 총괄직을 맡은 몸이다. 권총, 장총은 물론 활까지. 단 한 번도 맞추려 한 것에서 빗나간 적이 없어.”

태서는 말과 달리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대료문은 표정에 아무런 동요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총, 쏴보라. 쏠 자신 있으면 쏴 보라니까니. 내 칼로 칼을 절단 낼 수는 있지마는 총알 막는 재주는 없으니까니, 방아쇠만 당기면 내 틀림없이 죽을 기라. 근데 니, 여서 쏘며는 위에 서방 놈들이 가만히 아이 있을 기라는 건 알고 있갔지?”

대료문은 말하며 태서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태서는 침을 꿀꺽 삼키고 방아쇠를 잡은 손가락에 천천히 힘을 줬다.

대료문이 한 발자국 더 다가서는 순간, 장현군이 그의 앞을 막았다.

“그만. 지금 지휘관은 나요. 그대가 누구인지는 알았으나 이미 그대는 내 휘하에 소속이 되었고, 우리가 맡은 바 소임은 대라자 님을 무사히 모셔오는 것이오. 지금 여기서 이런다면 우린 모두 죽을 뿐만 아니라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여 전하께 불충하는 것이 되오.”

장현군의 말에 대료문이 허허 웃었다.

“나는 소임이고 불충이고 모르니까니, 알아서 하라.”

대료문이 어찌 되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원래 자리로 가 앉았다. 장현군의 시선은 태서 쪽으로 향했다. 태서는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고맙소. 저 자의 정체는 서방에 당도한 후 보고할 때 함께 처분을 묻겠소. 대료문, 혹여 불만이 있는가?”

장현군의 말에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던 대료문이 고개를 저었다.

“없소.”

“저도 없습니다.”

태서도 총을 다시 허리춤에 꽂으며 대답했다. 장현군은 일단 일이 잘 마무리된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기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대료문은 그런 장현군을 보며 낄낄 소리 내 웃었다.

“내 저 총이 무서워 칼을 아이 뽑은 거이 아인 것만 알아 두라.”

대료문이 슬쩍 요척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척은 한쪽 손에는 긴 천 가방이 들려 있었다. 출발할 때 요척이 서양 가방과 함께 가지고 온 것이었다. 천에 싸여 속에 든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지만 겉으로 긴 봉 모양 형체를 보이고 있었다.

요척의 움직임을 눈치챈 것은 대료문 뿐 아니었다. 윰 또한 요척의 몸 주위로 번진 강한 빛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대료문이 자신의 칼을 품에 끌어안으며 앞머리를 한 번 더 쓸어 넘겼다.

“요 형님이 저래 잡아먹을 듯 보고 있으니 어이 칼을 뽑갔니.”

대료문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칼을 살짝 뽑았다가 다시 넣었다.

“신위군에서 최고라는 거이 거짓말은 아인 모양이오. 장수들 중 제일이라는 단유점이를 내 보지는 못했지마는 형님이 그 다음은 되갔소. 하하.”

대료문이 호탕하게 웃었지만 함께 웃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장현군이 나머지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정에 보고한 후 명을 받기 전까진 함께 해야 하는 동지요. 모두들 너무 거리를 두지 맙시다.”

“대장님이 자비로우시구만”

“앞으로 계속 대료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소?”

“내 대료문으로 왔으니 대료문으로 불리는 거이 당연하갔지? 하하.”

“그대도 너무 분란을 일으키지는 말아주시오.”

“염려 마오. 나도 그 대감 부탁으로 돈 받고 온 거이니. 훼방 놓을 생각 없소.”

대료문의 말에 안심이 된 듯 장현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태서는 여전히 불안한 듯 눈에 초점이 없었다.

잠시 소란했던 창고 안은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가끔 천둥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올 뿐, 숨 쉬는 소리조차 듣기 힘들었다.

장현군과 태서는 물론, 윰을 제외한 그곳의 사람들 모두 말은 없었지만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도후는 저 자의 정체를 알고서 보낸 것인가.’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 대료문에게 물어보는 자는 없었다. 다만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이 창고 안에서 빨리 나가 전서구로 조정에 상황을 보고, 처분이 내려오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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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일곱 15.12.24 193 3 12쪽
38 외전. 호수 위 보름달 : 장현군 下 +2 15.12.23 169 4 16쪽
37 외전. 호수 위 보름달 : 장현군 中 15.12.22 279 5 13쪽
36 외전. 호수 위 보름달 : 장현군 上 15.12.21 189 3 11쪽
35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여섯 15.12.18 298 4 12쪽
34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다섯 15.12.17 268 3 11쪽
33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넷 15.12.16 193 4 11쪽
32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셋 +2 15.12.15 266 4 13쪽
3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둘 +2 15.12.14 314 4 11쪽
3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하나 +2 15.12.11 154 5 11쪽
29 2부. 이국(異國)의 밤 : 열여섯 +2 15.12.10 129 5 13쪽
28 2부. 이국(異國)의 밤 : 열다섯 +2 15.12.09 162 5 12쪽
27 2부. 이국(異國)의 밤 : 열넷 15.12.08 148 4 12쪽
26 2부. 이국(異國)의 밤 : 열셋 15.12.07 146 5 13쪽
25 2부. 이국(異國)의 밤 : 열둘 15.12.04 134 5 11쪽
24 2부. 이국(異國)의 밤 : 열하나 +2 15.12.03 142 5 11쪽
23 2부. 이국(異國)의 밤 : 열 +2 15.12.02 142 6 11쪽
22 2부. 이국(異國)의 밤 : 아홉 +2 15.11.30 129 7 12쪽
21 2부. 이국(異國)의 밤 : 여덟 +2 15.11.28 161 7 12쪽
20 2부. 이국(異國)의 밤 : 일곱 +2 15.11.27 189 7 15쪽
19 2부. 이국(異國)의 밤 : 여섯 15.11.26 133 6 13쪽
18 2부. 이국(異國)의 밤 : 다섯 +4 15.11.25 155 11 10쪽
17 2부. 이국(異國)의 밤 : 넷 15.11.24 146 6 11쪽
16 2부. 이국(異國)의 밤 : 셋 15.11.23 198 11 13쪽
15 2부. 이국(異國)의 밤 : 둘 15.11.21 180 7 11쪽
14 2부. 이국(異國)의 밤 : 하나 15.11.20 162 6 15쪽
13 1부. 하늘이 내린 돌 : 열둘 15.11.19 157 6 8쪽
12 1부. 하늘이 내린 돌 : 열하나 15.11.18 176 7 14쪽
» 1부. 하늘이 내린 돌 : 열 15.11.17 166 8 12쪽
10 1부. 하늘이 내린 돌 : 아홉 15.11.16 187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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