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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orn's Yggdrasil

아이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理本
작품등록일 :
2012.11.10 13:48
최근연재일 :
2013.06.25 16:22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74,146
추천수 :
333
글자수 :
157,381

작성
13.01.13 16:37
조회
837
추천
4
글자
7쪽

5장 레오 폰 카를로스 1

DUMMY

푸르른 풀숲에 누워 뻐금 뻐금 눈을 깜빡이는 한 어린아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밝은 갈색머리에 키는 5메크 3마르크를 겨우 넘는 정도. 그리고 총명하게 빛을 내는 검은 눈동자. 차갑게 식은 육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몸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눈을 몇 번 더 끔벅이던 아이는 조금씩 손가락을 움직였고 더 힘을 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는 몸에 힘이 돌자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의 뭉친 근육을 풀었다.


‘살아있다.’


숨을 들이 마시자 폐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신선한 숲의 공기. 간간히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렸고 정진은 폐에 품었던 맑은 공기를 이산화탄소로 내쉬었다. 아이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한숨을 푹 쉬고는 근처 바위에 걸터앉았다.


‘나는 문 정진.’


아이는 턱을 괸 채 방금까지 있었던 세 가지 일을 회상했다. 목구멍 끝까지 피가 차올라 입으로 가득 피를 쏟았던 옥상에서의 열전과 계속 신의 말장난에 놀아났던 사후 세계에서의 일, 그리고 머리끝까지 땀이 차올라 입으로 거친 숨을 토했던 숲에서의 도주.


‘제기랄, 두통이…….’


이미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어림잡아도 열 살이 안 되는 어린 아이의 몸에 새하얀 피부. 그리고 어깨를 타고 목을 간질이는 갈색 장발. 목을 만져도 칼자국은 없었다. 신의 말대로 제대로 환생이라는 것을 하기는 한 모양. 다시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 기쁘기는 했지만 자꾸 지끈거리는 두통은 그를 불쾌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이언스의 제국, 카를로스 가문의 장자. 그리고 흑사검술의 계승자.’


군데군데 끊어져서 떠오르는 기억. 자신이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두 사람의 기억이 융합하고 있었다. 자신은 문 정진. 그리고 동시에 레오 폰 카를로스였다. 네 살에 나이로 키리루타 제국의 볼모로 끌려가 살다가 아홉 살의 나이로 의문의 자객들에게 납치당해서 알 수도 없는 이 숲에서 살해당했다.


‘처참하군.’


아이는 자신의 죽음의 기억이 떠오르자 가슴을 움켜잡았다. 왼쪽 가슴의 상처가 손끝에 똑똑히 느껴졌다. 머리에 두 사람이 떠올랐다. 정진이 죽기 전에 울어준 견택과 레오가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기사 자칼. 아이는 고개를 털어 머릿속 상념을 털어내며 한숨을 쉬었다.


‘나란 놈도 참 기구하군. 이런 몸에 들어오다니. 그것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제국으로 돌아가는 길도 모를뿐더러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한숨을 쉬며 신에 대한 원망과 한탄, 자신의 기구함, 그리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생각했다. 몸의 기억이 카를로스라는 기구한 아이는 맞지만 자신은 엄연히 문 정진이었다. 아이는 궁상맞게 계속 이것저것을 생각하다가 허기가 지면 울리는 알람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우선 마을부터 찾자. 키리루타 제국 근처에는 이 정도의 큰 숲은 없으니, 제국사람을 만날 일도 없겠지.’


특이하게도 대륙에서도 가장 포악하고 흉포하며 잔인한 성정을 가진 키리루타 사람들. 아이는 차라리 이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볼모로 겪은 고통이 크다는 증거였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딜까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아이는 일어나 태양이 비추는 방향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제기랄, 죽일 거면 곱게 죽일 것이지 왜 소지품을 가져가고 지랄들이야.’


흙과 먼지에 찌들었지만 꽤나 고급스러운 옷. 분명 도망칠 때만해도 주머니에 시계라던가, 금화가 든 주머니도 있었건만 주머니를 털어 봐도 나오는 것은 먼지뿐이었다.


‘호수라도 찾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물배라도 채우면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으니깐.’


오랜 산간 생활로 자연에서 살아가는 지식이라면 아주 빠삭한 정진은 생존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물품인 식수를 찾기 위해 숲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죽일 것이면 좀 다음 그 몸을 차지할 사람을 위해서라도 옷도 신경 써 주어야지 이게 뭐야?’


옷의 가슴팍에 번져 눌러 말라붙은 검붉은 혈흔의 흔적. 주머니가 깨끗하게 털린 것도 맘에 안 드는데 옷마저 흙과 먼지에 이어 핏자국까지 있으니 짜증이 극에 달했다. 내리쬐는 태양열에 머리는 더운데 숲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탓에 몸은 춥지, 배는 고프고 목은 마르지. 아이를 짜증나게 함과 동시에 지치게 하는 요건들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다.


‘배고파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겠어.’


걸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태양광이 쨍쨍했던 숲은 어둠의 장막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한 치 앞을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날이 저물자 아이는 주린 배를 부여잡고 속이 썩어 사라진 나무 밑동에 들어가 몸을 기댔다. 살아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사(餓死)로 다시 신을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아이의 속에서 열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엄마……. 후에엥!”


정진의 영혼의 의지가 아닌 레오의 육신이 울부짖는 엄마소리. 가뜩이나 이미 컴컴해진 하늘과 스산한 바람소리, 그리고 매몰차게 대지를 두들기는 빗소리는 9살, 어린 아이의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제기랄……. 이 망할 육신이.’


마치 한 편의 동요처럼 울다 지쳐 잠이 든 아이는 쏟아지는 나무의 틈사이로 비치는 찬란한 아침햇살에 눈을 떴다. 밤 새 눈물을 흘려서인지 퉁퉁 불어있는 그의 얼굴.


“맞다……. 콜록! 콜록!”


입을 열자마자 세차게 쏟아지는 기침세례. 정진은 몸에서 느껴지는 으슬으슬한 한기와 머리에서 느껴지는 어지러움에 감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정말 벌써 죽는 건가. 이건 뭐지? 아사(餓死)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병사(病死)라고 해야 하나.’


이미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생각. 차갑게 식은 대지, 아니 축축이 젖은 나무속에서 몸을 누인 그는 주변을 있는 힘, 없는 힘으로 주변을 더듬었다. 목에서는 불타는 갈증이 느껴졌고 배에서는 영양분을 달라며 계속 아우성을 쳤다. 머리는 열로 펄펄 끓어올랐고 얼굴은 이미 불어올라 터질 것만 같았다.


‘나란 놈은 대체……. 전생에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삶을 사는 거야.’


아이의 기억 속에 수많은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대부분 정진의 기억. 학창시절 장난으로 목검을 이용해 사람을 때린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대회에서는 이강을 고자로 만들었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떠오르는 그의 악행.


‘제길, 이게 전생이었나. 그러면 빈말로도 착하다고는 말 못하겠다.’


아이는 점점 의식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정진의 영혼이 두 번, 레오의 몸이 두 번째로 느끼는 죽음의 공포.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와 심장에 칼이 박혀 죽는 것과 아사, 셋 다 죽는다는 죽음의 공포는 똑같았다. 주마등처럼 레오의 기억이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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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이린(Irin) 6장 동부의 소국 3 13.05.16 817 5 4쪽
34 아이린(Irin) 6장 동부의 소국 2 13.05.14 1,241 6 4쪽
33 아이린(Irin) 6장 동부의 소국 1 13.05.11 558 4 3쪽
32 아이린(Irin) 5장 북부의 인간미 10 13.05.07 1,848 4 6쪽
31 아이린(Irin) 5장 북부의 인간미 9 13.05.01 1,127 8 8쪽
30 아이린(Irin) 5장 북부의 인간미 8 13.04.28 851 4 8쪽
29 아이린(Irin) 5장 북부의 인간미 7 13.04.23 811 6 9쪽
28 아이린(Irin) 5장 북부의 인간미 6 +2 13.03.30 575 5 7쪽
27 아이린(Irin) 5장 북부의 인간미 5 13.03.24 878 4 7쪽
26 아이린(Irin) 5장 북부의 인간미 4 13.03.22 1,033 4 8쪽
25 아이린(Irin) 5장 북부의 인간미 3 13.03.20 854 14 9쪽
24 아이린(Irin) 5장 북부의 인간미 2 13.03.10 1,461 6 7쪽
23 6장 땀은 얼지 않는다 2 13.02.28 1,643 6 15쪽
22 6장 땀은 얼지 않는다 1 13.02.25 1,008 8 15쪽
21 5장 레오 폰 카를로스 4 +2 13.02.19 2,525 6 13쪽
20 5장 레오 폰 카를로스 3 13.02.15 2,970 10 10쪽
19 5장 레오 폰 카를로스 2 13.02.14 1,640 4 7쪽
» 5장 레오 폰 카를로스 1 13.01.13 838 4 7쪽
17 4장 흑막 5 13.01.12 1,180 4 9쪽
16 4장 흑막 4 12.12.23 1,937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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