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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던전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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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작품등록일 :
2020.11.16 20:21
최근연재일 :
2021.01.07 19:3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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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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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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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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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5화

DUMMY

거대 늑대의 습격을 무사히 막아낸뒤, 우리들은 그 자리에서 뒤처리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검날 상했네······.”


하기야 그 두터운 두개골을 두쪽내버렸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뭐 소설 속에 나오는 소드마스터마냥 검기라는걸 쓸 수 있는것도 아니고······.


한편 한쪽에서는 시체의 피를 빼는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기본적으로 몸무게가 몸무게다보니 피가 잘빠지도록 기울여 놓는 것조차 힘든 것처럼 보였다.


“허윽··· 이거 왜이리 무거운거야?”

“으으, 빈! 허리 좀 똑바로 세워봐! 그래야 들 수 있을거 아냐?”

“허, 허리가······.”

“어휴··· 막스, 여기와서 좀 도와줘요! 아무래도 양 옆으로 같이 드는게 더 낫겠어.”


로라의 말에 늑대 시체 밑에서 온몸으로 시체를 들어올리고 있던 막스가 스물스물 기어나와 또다시 예의 여자모험가 형상을 취했다.


“응! 맡겨만 줘!”


여태까지 던전을 탐사하면서 보여줬던 개인주의적인, 나쁘게 말하면 나사빠진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막스는 꽤나 열심히 시체 옮기는 것을 도왔다.


···물론 역시나 막스답게, 피를 마셔보고싶다는 굉장히 나사빠진 동기로 한 일이긴 했지만······.


결과만 좋으면 장땡인법 아닌가? 의도야 어떻든간에 융과 삼인방은 무사히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고, 막스는 그 보상으로 여전히 철철흐르고 있는 피를 배터지게 마실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장비손질한다는 핑계로 작업에서 빠졌으니 이것이야말로 모두가 해피해피해지는 최선의 방법이지 않았을까?


“이보게, 리더. 언제 다른 적이 올지모르니 장비를 손질하는 것은 당연한일이지만··· 너무 오래걸리지 않는가?”

“늑대 두개골이 꽤 튼튼했는지 검날이 많이 상했어서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또다른 괴물늑대라도 오면 큰 일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어차피 작업도 다끝났으니 꼼꼼히 하게.”


나는 싱긋 웃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름 전직용병이었다고 이상한 낌새를 느낀 모양인데, 렌이 직접 싸운게 아니었기 때문에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다.


태클걸만한 사람이 없는건 아니지만 막스는 피빨아먹느라 바빴고, 융은 애초에 관심없다는 듯 무전기를 들고 통신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쩌겠어? 아저씨. 지금은 이런거라도 해야지.”

“끄응, 용병생활때 쓰던 방패만 가지고 있었어도 이런 신세는 아닐텐데··· 그보다 대체 언제까지 아저씨라고 부를참인가? 이래뵈도 아직 30줄이네만.”

“뭐야, 싫어? 말을하지, 그럼이제부턴 렌이라고 할께. 설마 오빠라고 불러달라는 소리는 아니지?”

“설마라는 말이 왜 나오나! 그럼 내가 오빠지, 아저씬가?”

“와··· 양심하곤, 저기 아저씨, 오빠소리 듣고싶음 그 말투랑 얼굴 먼저 고치고 오던가? ···적어도 리더정도는 되야지.”


거기서 내가 왜 나와? 슬쩍 로라를 쳐다보니, 보란듯이 날 빤히 쳐다보고 있기에 도리어 내가 고개를 먼저 돌렸다.


“험, 그보다 융씨? 꽤나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혹시 언제쯤 처리반이 도착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내 물음에 융은 무전기에 잠시 뭔가를 더 중얼거리는 듯싶더니, 통신을 끝내고 자연스레 품속에서 시가비스무리한 것을 빼 물었다.


“곧 온다는군.”


융은 여상스러운 말투로 대답하곤, 시가를 깊게 들이마셨다. 내 뱉은 숨결을 따라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아, 예··· 곧 오는군요······.”


좀 더 상세하게 말해주면 어디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도대체 ‘곧’이라는 말이 정확히 언제쯤 온다는 걸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그 말의 의미는 얼마안가서 밝혀졌다. 융의 입에서 뿜어낸 연기가 그의 얼굴 주변을 자욱하게 둘러 쌓았을 때, 멀리서 희미한 말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불빛이 보이더니, 일단의 무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보기엔 일반적인 모험가 무리와 다를게 없는 차림새였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행의 맨 앞에서 둥둥떠다니는 광구와 그것을 조종하는 늙수그레한 마법사의 존재였다.


···마법사? 마법사가 웬일이지?


혹여나 다른 모험가 무리인가 싶어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온 마법사가 손을 휘저으며 반갑게 인사를 해오는 것이 아닌가.


“오- 융씨. 오랜만입니다 그려.”

“프라우, 오랜만이오.”

“이게 얼마만에 만나는건지··· 저번 사냥때는 아쉽게 참석을 못했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참석할 수 있었다오.”

“그거 아쉽겠구만, 저번 사냥때 질 좋은 마석이 많이 나왔는데 말이오.”

“헐헐- 그래도 나는 내 운을 믿는다오. 이번에 마석이 열손가락으로도 채 못 셀만큼 많이 나올 테니 두고보시오!”

“하하, 자네가 그리 말하니, 내 두고보겠네.


그 쿨하기 짝이없던 융의 입이 저절로 열리다 못해 은은한 미소까지 띄우는걸 보니, 저 마법사 일행이 사냥단의 처리반이 맞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리들과 합류한 마법사와 융이 이야기 꽃을 피우는 동안, 그를 뒤따라왔던 사람들이 배낭에서 여러가지 도구들을 꺼내어 바닥에 두었다.


흠, 어째 ‘처리반’이라고 말한 것 치고는 무장이 튼실하더라니, 바로 여기서 도축해서 가지고 가나보다.


“허허허··· 그보다, 뒤의 분들은 뉘신지···?”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시준이라고 하고, 뒤의 이들은 저희 일행입니다. 오늘 하루 융씨와 함께 사냥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거, 이제보니 어제 사냥단과 계약한 모험가 분들이셨구만, 반갑소. 작은 광장 주변에서 조그마한 마법도구점을 하고 있는 프라우라고 한다오.”

“만나뵈서 영광입니다. 프라우 마법사님.”

“허허, 영광은 무슨······.”


작은 광장 주변에 가게를 낼 정도라면 일반적인 어중이떠중이 마법사들이 아닌 진짜 제대로된 마법사란 뜻이다. 나는 그 어느때보다 공손한 태도로 늙은 마법사를 맞이했다.


“그나저나 융, 이 친구랑 같이 움직이는 걸 보니 실력이 대단히 뛰어난 모험가분들인 것 같소. 이 친구가 함부러 남이랑 같이 다니는 친구가 아닌데 말이오.”

“하하, 아닙니다. 그냥 흔한 F급 모험가일 뿐인데요.”

“계급이 중요한가? 내가 이 친구 눈썰미를 알아서 하는 말인데, 분명 크게 될 거요. 허허, 이제보니 내가 잘보여야겠구만 그래.”

“과찬이십니다. 어르신.”

“혹시라도 희귀한 소재를 팔 곳이 마땅찮으면 가게로 오시오. 아 참, 마법도구 살 일 있어도 와도 된다오. 장담하건데, 어느쪽이든 다른 곳보다 나을 거요.”

“이보게 프라우. 그놈의 영업질은 지상가서 하게나. 체신머리없이 구는건 자넨데, 왜 내 낯짝이 뜨거워지는지 모르겠어.”

“내 안면은 식은 철판과도 같으니 걱정마시오. 마법연구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어휴, 요새 까칠까칠한 검은 보리빵만 먹느느라 입안이 다 헐었다오. ···이제 가봐야겠구만, 융씨 오늘 사냥끝마치고 내 천막으로 오시오. 차 한 잔 해야지. 그리고, 우리 모험가 분들도 조심해서 사냥하시오. 다쳐봤자 본인만 손해라오.”

“그래, 알겠으니 어서 가기나 하시오.”

“감사합니다. 프라우 마법사님.”


프라우는 기분 좋게 껄껄웃으며 자기 일행에게로 돌아갔다. 작은 광장의 주변이라··· 지금은 무리지만, 언젠가 갈 일이 생길수도 있으니 기억해두어야 겠다.


일행들은 내가 프라우와 말하고 있던 사이 출발할 준비를 모두 끝내 놓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눈에 불을 켜고 있었는데, 프라우와의 대화가 그들에게 퍽 인상깊었던 모양이다.


“융씨, 슬슬 저희도 움직일까요?”


다시 쿨병모드로 돌아온 융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아, 다시 탐사 시작이다.


***


그 날, 우리들은 던전을 탐사하며 두 마리의 몬스터를 더 잡았다. 한 놈은 똑 같은 늑대형, 다른 한 놈은 무려 잡기힘들고 비싸다는 사슴형 몬스터다.


다른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우리들을 발견하자마자 부리나케 도망을 쳐댔는데, 로라가 홧김에 쏜 화살이 정확히 눈에 걸려, 비교적 손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탐사도중에 발견한 값비싼 약초를 꿀꺽 하기도 했는데, 계약 위반이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한 융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나만 입다물면 그만인데 무슨 상관이오? 그보다, 돈 벌기 싫소? 나는 좋아하오만.”


물론 우리도 돈을 좋아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므로, 우리들은 그 비싼 약초를 사람 수대로 육등분하여 나눠 가졌다.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탐사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파티의 사기를 위한다는 측면에서, 융과 나의 야합은 현명한 선택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사냥단과의 계약금, 사체 판매값, 약초값까지 합쳐 인당 백실버께나 되는 거금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생각지도 않던 뜻밖의 거금에 고무된 신출내기들과 함께 나는 주점에서 축하파티를 함께 하고 있는 중이었다.


“건배!”

“자자, 오늘은 마시고 한 번 죽어보세나! 이렇게 기쁜 날엔 죽을 정도로 마셔줘야해!”

“오이! 술이다. 술! 진짜 먹어보고 싶었던 건데~.”

“막, 막스씨. 천천히 드세요. 테이블위로 다 흐르잖아요······.”


파티의 분위기는 썩 괜찮았다.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주점으로 향해서 피곤할텐데도, 품속에서 묵직하게 찰랑이는 은화의 감촉이 이를 싹 잊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문득 맨 처음에 이들을 만난 날을 회상했다. 세명 지각에 막스는 아예오지도 않았다. 나름 친목도모를 위해 마련한 자리였지만 친목도모는커녕 무료급식소에서 배식해주는 것 마냥 점심값을 뜯겼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이들었다.


뭐··· 이게 서로 친해져서인지, 돈을 잘벌어서 인지는 좀 헷갈리긴 하지만.


어쨌든 시종일관 훈훈한 분위기속에 서로에 대한 덕담이 오가던 중, 다음 탐사일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보다, 대장. 우리 다음 탐사는 언제쯤으로 계획하고 있어? 응, 응? 빨리 결정해야지!”


그 주제를 처음 꺼낸 것은 막스였다. 역시나 포링족답게 벌써부터 새로운 탐사에 목말라 있는지, 두 눈에서 빛이 반짝반짝 나는 것처럼 보였다.


“아, 다음 탐사요······. 10일뒤는 어떻습니까? 원래 주기를 좀 더 짧게 가져가려고 했는데, 생각치도않게 큰 돈을 벌어서요. 여러분들도 동의하시죠?”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로라와 빈은 찬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막스는 실망한 낯빛을, 렌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다.


“동의. 나는 무조건 찬성이야. 애초에 리더아니었으면 이만한 돈을 벌지도 못했을텐데, 내가 무슨말을 하겠어?”

“저도··· 동의하겠습니다. 이번 탐사때 느낀게 많아서요. 기왕에 돈이 생긴만큼 새로운 장비라도 맞추려고 합니다.”

“뭐어? 둘 다 진짜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야? 실망이야! 한시라도 빨리 던전에 갈 생각을 해야지!”


동의한다는 둘의 말에 막스가 심통난 어린아이처럼 귀엽게 볼을 부풀렸다. 겉보기엔 다 큰 어른이 저러고 있으니, 어째 되게 철없어 보인다.


“···막스? 그 표정은 또 어디서 배운겁니까?”

“흥! 안알려줄건데?”


정정하겠다. 철없어 보이는게 아니라 걍 애새끼다. 포링은 겉모습으로 나이를 판단할 수 없다고 하던가? 이번 탐사에서 보여준 모습을 볼 때 막스는 확실히 어린티가 팍팍 나긴 했었다. 쌓인 경험에 따라 성격이 결정된다고 하니, 그녀가 겪은 경험들이 어떤것인지 알만했다.


그렇게 막스가 삐친 표정으로 투덜대고 있을쯤, 이번에는 렌이 가세했다.


“큼, 리더. 안정을 기하는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네만, 이럴때일수록 더 나아가야 발전이 있는법 아닌가? 하루 단단히 준비해서 당장 모레부터라도 2박, 3박씩 던전탐사를 하는것도 좋다고 보네만······.”


웬일로 저 안전지향주의 아저씨가 저런 소리를 하지? 로라와 빈을 쳐다보니 그들도 렌이 저런식으로 말할지는 예상못했다는 듯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레요? 그것도 2박, 3박씩······? 그렇게나 멀리가면 위험합니다. 준비도 하루정도 하는 걸로는 어림도 없구요. 제가 분명히 설명해드렸을텐데, 대체 어디로 가자는 말입니까?”

“아니, 거 뭐냐 꼭 2박, 3박씩한다고 멀리갈 필요는 없지 않나? 듣기로 사냥단인가 하는 저 치들이 앞으로 일주일은 더 있으면서 계속 사냥한다고 하던데··· 이 기회를 이대로 놓치는건 아깝지 않겠나?”

“맞아! 맞아! 아까워, 아깝다고!”


옆에서 과하게 동의하는 막스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렌의 말은 이번처럼 사냥단옆에서 계속 꿀이나 빨아보자는 의미였다.


과연 모험가일을 시작하게된 이유중의 큰 부분이 돈을 차지하는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로라나 빈도 그 말에 혹한 듯 은근슬쩍 나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당장 내일도 거기에 계속 남아서 있고 싶었다네. 자네가 돌아가자고 해서 돌아가긴 했지만··· 물론! 자네덕분에 우리가 이만한 큰 돈을 벌게 된 것도 있지, 그건 인정하겠네. 하지만 그 돈을 우리만 버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자네도 모험가인 이상 돈이란건 벌수있을 때 벌어야 하지 않겠나?”


이 아저씨 되게 필사적으로 설득하는데, 어떻게든 꿀빨고싶어서 아주 안달이 난 모양이다. 정작 던전에서는 위험하지 않느냐는 둥, 몬스터 잡으러 가기 싫다면서 수까지 쓰던 양반이 말이다.


···그 말이 적어도 그들 기준에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큰 돈을 벌만한 기회가 왔고, 우리들은 그 기회를 뒤로한채 던전에서 나와버렸다. 그들 눈에는 굴러들어 온 복을 제 발로 걷어찬걸로도 보일거다.


하지만 내 기준은 다르단 말이지, 리더의 입장에서 최대한 위험요소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게 상책이었다. 더군다나 저들은 이번에 처음으로 던전에 들어온 것이 아니던가? 내일이면 걸어다닐 힘도 없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위험해서 그렇다느니, 너네들이 뭘 몰라서 그렇다라는 식으로 나오면 진짜로 저들끼리 던전으로 휙 들어갈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군.


“렌씨의 말, 다 이해합니다. 흔치않은 기회인건 맞아요. 잘만하면 100실버는 우습게 땡길 테니··· 음, 그래요. 잠시 옛날 이야기나 좀 해볼까요?”


뜬금없는 말에, 초 집중하며 내 입을 쳐다보던 일행들의 표정에 의아함이 서린다. 자, 지금부터 시작이다. 마인드 컨트롤. 이건 내 이야기다, 내 이야기다······.


입에 한껏 침을 바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 처음으로 던전에 들어왔을 때 이야기입니다. 당시 저는 같은 마을에서 형제처럼 자라난 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던전에 향했습니다. 저희들은 어렸고, 자신감으로 가득했죠. 심지어 나오는 적이 고블린이라는 소리엔 기고만장 하기까지 했습니다.”


같은 고향의 친구? 여기 있으면 내가 진짜 얼굴이나 좀 보고싶다.


“그래도 나름 긴장하긴 했었죠. 소문이 소문이니까요. ···하지만 의외로 던전탐사는 굉장히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첫 전투도 되게 잘 치뤘죠. 치열하긴 했지만 저희들은 상대하던 고블린을 단칼에 썰어버리고, 그 고블린 품에서 상당한양의 은화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첫 탐사를 짐꾼으로 시작했다. 당연히 고블린과의 치열한 전투도 없었고··· 은화는 개뿔 만져보지도 못했다.


“···그럼 잘 된거아니야?”

“예, 잘됐죠. 너무 잘됐었습니다. 그에 자신감을 얻은 우리들이 당초 1박2일만 있기로했던 던전에서 될 수있는한 많은 고블린을 잡고 간다라는 계획까지 세우게 될 정도로요.”


나는 이부분에서 감정의 고조를 위한 표정연기를 했다. ···잡티하나없이 똘망똘망한 눈동자위로 작은 물기가 맺혔다. 눈을 너무 오래떠서였다.


“그게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심이었다는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요? 알았더라면, 그런일은 없었을 텐데······.”

“무슨일이··· 설마?”


추임새 좋고!


로라가 눈치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나는 그 짐작이 맞다는 듯 우수에 찬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단 한 번이었습니다. 고블린과 싸우던 도중 어째서 인지 모를 실수 하나 때문에, 모두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저만 겨우 도망쳤죠. 오른팔에 상처를 입고 도망가던 저를 천운으로 주변에 다른 모험가가 구하러 와주었거든요.”


드디어 클라이막스다. 나는 자연스럽게 맥주잔을 쥐는 척 오른팔의 옷 소매를 탁자의 끝부분에 걸었다. 그러자 옷이 걷어지며, 길게 갈라진 듯한 커다란 흉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슬쩍 맥주잔을 입에물고 주변을 훑어보니 모두들 시선이 걷어진 내 오른팔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마무리 일격을 준비했다.


“···저는 더 이상 누군가를 눈 앞에서 잃고싶지 않습니다. ···설사 그게 처음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요.”


끝났다. 얀에게 맞아서 난 길게 찢어진 상처가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내었다. 저들의 숙연한 표정에서는 더 이상 돈에대한 욕심을 찾을 수 없었다.


역시 감정적으로 휘둘려서 하는 말에는 똑같이 감정적으로 설득하는게 상책이다.


그 뒤로 심심한 위로의 시간을 가진 뒤, 나는 기분좋게 주점에서 헤어질 수 있었다. 다른 일행들은 어째 좀 찝찝해보이는 얼굴들이었지만, 뭐.


결과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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