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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던전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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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작품등록일 :
2020.11.16 20:21
최근연재일 :
2021.01.07 19:3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5,735
추천수 :
135
글자수 :
281,675

작성
20.11.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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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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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화

DUMMY

언제나 그렇듯, 도시의 하루는 신전에서 울리는 종소리로 시작된다.


나는 반사적으로 누워있던 침대 옆에 놓인 탁장시계를 쳐다보았다. 늘 그렇듯 알람은 전혀 울리지 않았다. 묵고 있는 여관 옆에 있는 신전은 항상 정확히 정각 5시에 종을 쳤고, 오늘만큼은 답지 않게 부지런 떤 종치기가 일찍 종을 울렸길 바랐다.


“저 엿 같은 고문 딱지가! 한번을 정확하게 울린 적이 없어!”


바램이 이루어진 것일까? 탁장시계의 시침은 정확히 5시에서 1분전을 가리키고 있었고, 이는 그가 도시 유일의 모험가 길드 ‘리안’에서 좋은 일거리를 얻지 못할 것임을 의미했다.


그래, 한마디로 말해 이번 주 벌이는 완전 공치기 일보 직전에 와있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괜찮은 일거리들을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부리나케 한구석에 쳐 박아두었던 갑옷과 신발, 갖가지 장비들을 주섬주섬 착용한다.


후다닥 뛰쳐나가느라 급하게 신은 신발 한쪽이 벗겨져 넘어진 것은 그리 웃기지도 않을 촌극일 것이다.


----------------------------------------------------------------------


“밀지 마!”

“뭐하는 거야? 저리 안 비켜?”

“저기··· 잠시만 지나갈게요.”

“이건 또 뭐야! 꺼져!”


급하게 나선다곤 했지만 역시나 길드 앞은 신출내기 모험가들로 그득 그득 거렸다.


시골에서 푼돈 모아 대거나 숏소드 따위를 사들고 무작정 도시로 상경한 수많은 촌놈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하루살이 같은 빈민들, 한탕주의로 적당한 방패하나 들고 모여든 양아치들, 모험이라는 말에 감명 받아 칼 한 자루 덜렁 들고 모험가에 뛰어든 애새끼들까지.


이 일거리 빼앗아 쳐 먹는 뉴비들이 너무나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사실 나부터가 저 부류에 속하는데.


나는 인상을 팍 쓴 채로 길드 안으로 들어가··· 지는 않고 바깥에 있는 ‘신출내기도 할 수 있는 모험 게시판!’을 살폈다.


“아, 씨발, 벌써 욕 나올라 그러네··· 이미 나왔구나.”


길드 앞에서 북새통을 이루는 뉴비들로 보건대, 오늘은 글러먹은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주변 시골마을을 순회하는 상회의 마차가 수십 대씩 우르르 도착했더랬다. 씨발 그거 타고 왔구나.


속으로 연신 ‘씨발’을 중얼거리던 나는 이내 파워풀하게 사람들을 밀치며 게시판으로 다가갔다.


“밀지 마! 밀지 말라고! 이런 씹···!”


내 거친 몸짓에 밀려난 뉴비들의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려왔으나,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 이런 상황에선 그게 어떤 일거리든 닥치는 대로 받아서 수행 해내야만 한다!!!


뉴비들이 의뢰 내용을 보고 주저하고 있을 때가 기회였다. 똥오줌도 못 가리는 놈들, 그러니까 니들이 뉴비인거다!


그렇게 인파를 헤엄치며 게시판으로 다가가다 보니, 나와 같은 생각할 하고 인파를 거세게 해쳐오는 이들이 보였다.


낯익은 안면들이다. 분명 전에도 신출내기 게시판 앞에서 여러 번 마주쳤을 면상들일 것이다. 과연 뉴비들 중 고인물이라는 것일까?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가장 빠르다!!!!!!!”


나는 거의 미친놈처럼 소리 지르며 게시판으로 다가갔다. 얼마 남지 않았다!!! 5미터, 4미터, 3미터··· 1미터!!!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고를 시간 따윈 없다! 쿨하게 첫 번째 의뢰부터 다섯 번째 의뢰까지 일괄 수락한다!


그러자 내 품속에 있는 모험가패가 짧게 빛으로 명멸하더니 신상정보가 적힌 칸 밑의 빈칸이 수락한 의뢰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즉시 난장판을 빠져나왔다. 인파를 파고들 때와는 달리 벗어나는 것은 한결 수월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 고참 뉴비들이 게시판을 향해 돌진한 결과 모든 뉴비들이 게시판 앞으로 가고자 발버둥을 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파를 역행하는 나를 지나쳐 게시판으로 돌진했고, 겨우 인파속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발걸음을 멈춘 곳은 새벽이라 인적이 드문 골목길 어귀에서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품에서 패를 조심스레 꺼내었다.


“제발, 제발, 제발 시간중복 되지 마라··· 제발, 제발!!!”


숫제 발악에 가까운 염원을 외치며 패에 적힌 글자를 확인했다.


“아.”


받은 의뢰의 5개중 4개가 비슷한 시간대의 의뢰였다. 그것도 하나같이 새벽 시간 때의 의뢰들, 이러니 뉴비들이 망설이고 서있던 것이리라. 그들로서는, 이런 보상도 짜고 일하기도 힘든 의뢰를 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란 건가? 그 뉴비 새끼들 때문에 이런 똥 같은 의뢰 4개를 한 번에 받아버린 자신은? 특히나, 저번에 눈여겨보았던 성벽순찰과 같은 꿀 같은 의뢰들을 또 다시 놓치고 만 것이 너무나 슬펐다······.


지금 나는 너무나 좆같다.


씨발


----------------------------------------------------------------------


나는 중복된 4개의 의뢰 중 그나마 괜찮은 일거리를 골라 선택했다. 당연하게도 몸은 하나이기 때문에 양치질을 하면서 라면을 먹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 비유가 잘 못 됐다. 이것들은 라면수준도 못된다. 몸에 안 좋고 맛도 없는 줄 알면서 억지로 처먹은 폐기 삼각 김밥 같은 것들이다.


씨발, 이게 다 옆 신전 종치기 놈이 게을러빠진 탓이다.


“하··· 그래, 그래도 이거하나 건진 게 어디야······.”


그나마 다행히 남은 하나의 의뢰가 제법 모험가다운 의뢰였기 때문에, 나는 억지로나마 울지 않을 수 있었다······.


- F급 의뢰(길드 연계 의뢰)

의뢰길드 : 네메시스

의뢰번호 : 35006

유형 : 호위

의뢰기간 : 10일

소요시간 : 아침 태양이 떠오른 뒤 저녁 태양이 질 때 까지

집결장소 : 서쪽 성문 앞

보수 : 하루 10실버+@(처치한 맹수 한 마리 당 30코퍼)

상세내용 : 도시 주변의 마력 숲에서 약초를 채취할 생각이다. 내용은 위에 적어둔 것처럼, 추가사항으로 내가 들고 온 망태기를 시간이 지나기 전에 꽉 채우면 그 즉시 의뢰 종료다. 기본 보수는 좀 적어보여도 맹수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30쿠퍼씩 얹어 주니 그리 손해는 아닐 거다. 다만, 숲에서는 내 호위에만 집중해주길 바란다.


역시나 F급 의뢰답게 제한 조건 따윈 적혀있지 않았다. 하기는 마력 숲이라니, 던전 주변에 자연스레 형성되는 숲 지형이 아닌가.


지닌바 마나가 너무 적어 식물에게나 조금 축적되는 그냥 일반 숲이나 다름없는 지형이다. 나오는 몬스터라고 해봐야 흉포한 야생동물에 마나정령들이 전부, 그리 큰 위험도 없고 적당히 실전경험도 할 수 있는 적절한 지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고르고 골라 선택한 남은 의뢰 하나는······.


- G급 의뢰

의뢰번호 : 10001

유형 : 사냥

의뢰기간 : 수락 한 후 한 달간

소요시간 : 새벽시간대, 신전의 마지막 종이 친 후, 첫 종이 울릴 때까지

보수 : 하루 3실버+@?

집결장소 : 마르 광장 분수대

상세내용 : 쥐잡기, 쓰레기 청소, 거리 상태 점검, 도시 순찰 등

※ 중요한 사항이 생기면 즉각 보고 할 것, 사안에 따라 소정의 보상이 있을 것임.


씨발. 이게 무려 사냥의뢰란다. 쥐새끼 몇 마리 족치는 것도 사냥이라면 사냥인가보지?


거기에 이 좆같은 의뢰창 좀 보게. 보수, 하는 일, 일하는 시간대까지. 트리플 크라운으로 지랄 맞은 의뢰다. 내가 이 의뢰를 고른 이유도 이 놈이 트리플로 지랄할 때 딴 놈들은 한술 더 떠서 쿼드, 펜타로다가 지랄했기 때문에 뽑혔을 뿐이다.


3실버면 얼마인가 하니, 내가 살다온 한국이란 나라로 따지자면 3만원밖에 하지 않는 돈이다. 마지막 종이 12시쯤 울리니 사실상 날밤을 까면서 일한다는 건데, 일당으로 따지면 6000원 밖에 되질 않는다.


그 돈으론 정말 여관은 꿈도 못 꾸고 노숙하며 삼시세끼 빵쪼가리나 처먹으며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의뢰 시간대도 좆같지 않은가? 자고로 새벽에 하는 일은 그것이 무슨 일이든 남들 다 쿨쿨 맛나게 잘 때 일해야 한다는 점에서 최악의 일이다.


심지어 하는 일도 쥐잡기, 쓰레기 청소 따위의 G급 의뢰라 실적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이 씹탱, 좆망 운빨 의뢰 가챠겜 같으니라고!”


순간 닥쳐온 좆같음에 반사적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내 거친 욕설에 흠칫 했으나, 그런 것에 신경써줄 정도로 내 아량이 곱진 않다.


애초에 이딴 상황에 끌려온 것도 좆같아죽겠는데, 알게 뭐람.


사람은 참으면 안 된다. 뭐든지 참으면 병난다고들 하지 않는가? 지들이 병원비 물어줄 것도 아니고.


각설하고, 이런 참을 수 없는 좆같음을 느끼면서도 그나마 발광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역시나 남은 F급 의뢰 하나가 제법 괜찮은 의뢰였기 때문이다.


장소도, 의뢰내용도, 보수도 만족스러운 이런 의뢰는 흔치 않다.


얼마나 좋은가? 그저 도시 주변 숲에 가서 호위만 10일 해주면 100+@실버가 들어오면서 임무 실적도 들어온다. 거기에 길드 연계 퀘스트이기까지 하니 고사로 따지면 화룡점정이요. 속담으로 치면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그래도 숲이란 말이지······.”


물론 이런 의뢰들이 그렇듯 어쩔 수 없는 위험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도 받은 의뢰를 다 끝낼 때쯤이면, 원래 모아두었던 돈과 합쳐 이딴 천갑빠에 개나 소나 다 들고 다니는 장검이 아닌 제대로 된 무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조금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이딴 일에 기분이 좋아졌다는 사실이 비참하고 슬퍼 다시 기분을 잡치고 말았다.


왜 하필 자신은 이런 곳에 와있는 것일까, 왜 하필 나인가? 왜?


그것은 이따금씩 발작하듯 일어나는 아픔이었다. 어쩌다 나는 어딘지도 모를 두려운 이 세계에서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라도 통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이미 시체가 되어 쓰레기처럼 방치되어 버려졌을 것이다······.


오늘따라 사무치게 고향이 그리웠다······.


원래 지금 이 시간에 고향에선 무엇을 했었나? 늘 그렇듯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겠지,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심심하면 카페나 가서 커피나 사마시고, 친구들과 만나 밥 한 끼 하고, pc방에서 게임도 하고, 그리고, 그리고······.


결코 잊혀 지지 않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이들.


불현 듯 떠오른 그 얼굴들에 나는 필사적으로 비죽 튀어나온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이제 자신은 다 큰 어른이지 않는가······. 길가다 질질 짜는 일 따윈 없어야 했다.


그게 어른이니까, 어른이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됐다. 지금 떠오른 그 얼굴들은 저 머나먼 곳 우주 어딘가에 있지만, 나는 여기 이 곳에 있다. 이 곳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나는 오늘도 요동치는 몸과 정신을 단단히 추스르고 발걸음을 옮겼다.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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