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사람인듯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던전 탐험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사람인듯
작품등록일 :
2020.11.16 20:21
최근연재일 :
2021.01.07 19:3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5,734
추천수 :
135
글자수 :
281,675

작성
20.11.17 14:00
조회
448
추천
7
글자
14쪽

2화

DUMMY

다시금 누비갑옷을 조이고 있는 벨트를 단단히 동여 메었다. 평소에는 덥기만 하고 관리하기는 더럽게 까다로운, 때론 방호력이 있기는 한지 걱정되는 물건이지만 오늘만큼은 내 부드러운 몸뚱이를 지켜줄 소중한 갑옷이다.


이후 옆구리에 덜렁 찬 장검을 단숨에 뽑아내었다.


매끄럽게 칼집에서 뽑아낸 칼은 맑은 금속음을 내며 잠시 부르르 떨었다. 나는 잡티하나 없는 새하얀 검신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행여나 이가 나간 부분이 있나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등에 매는 적당한 크기의 원형방패를 손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립이 헐겁지는 않은지, 어디 갈라지거나 찢긴 부분은 없는지 세심하게 확인했다.


가죽 장갑에 묻은 먼지들을 정성스레 털어내기도 했다. 전투 중에 행여나 검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장갑 끝에 묻은 먼지 한 톨조차 마른 헝겊으로 박박 털어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어느새 울리기 시작한 신전 종소리를 배경삼아 이뤄졌다.


더워서 그런 것일까, 긴장해서 그런 것일까? 주섬주섬 마지막으로 착용한 장비들을 점검하고 있던 내 콧잔등위로 땀방울이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온다.


나는 의뢰를 떠나기 전에 이런 의식을 치르곤 했다. 준비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지 않던가. 이런 일들을 하는데 커다란 소모가 따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아침잠만 조금 줄이면 될 일이었다.


“좋아······.”


착용할 장비를 점검하는 일을 모두 끝마치고, 마지막으로 무릎까지 오는 긴 부츠를 신고 끈으로 단단히 고정했다.


오늘은 느낌이 좋았다. 검은 잘 갈아져 있었고, 갑옷은 찢어지거나 헤진 부분 하나 없이 온전하다. 장갑과 부츠는 마치 나를 위해 맞춤형으로 제작한 듯이 딱 들어맞아 좋은 착용감을 선사했다.


이정도면 다른 뉴비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무장 수준이지 않는가? 지금도 창밖으로 대거하나 달랑 차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촌놈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속이 자신감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래! 그래봤자 F급 의뢰 아닌가? 게임으로 치자면 시작마을 촌장 NPC인 ‘장로 스탄의 편지’같은 느낌의 퀘스트 인 것이다!


흠칫-


순간 초원을 뛰어다니며 삐슝삐슝 광선총을 난사하는 문어머리 외계인들이 떠올랐으나, 애써 무시했다. 이 이상 생각을 이어가면 온 몸가득 차올랐던 뽕이 순식간에 쪼그라 들것만 같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구걸하며 지냈던가, 그깟 주문서 한 장이 없어서······.


나는 이를 악물며 어제 미리 짐을 싸둔 가죽 자루를 벨트에 매고 다리에 고정시켰다. 하루치 건량과 약초무더기를 담은 자루였다.


다시는 지구방위를 위해 희생하지 않으리라! 스탄!


나는 보무당당하게 여관방을 나섰다. 방문을 나서고 방문이 닫히기 직전 불어온 바람에 탁자위에 올려둔 편지가 나부꼈다······.


----------------------------------------------------------------------


사위는 여전히 어두웠다. 5시를 알리는 신전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건만, 잠꾸러기 태양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이제야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도시는 분주했다. 여전히 비몽사몽한 태양과는 달리,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리저리 분주히 오가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모험가들도 보였다. 오랫동안 던전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꾀죄죄한 몰골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이들도 있었고, 이제 막 모험을 떠나는 듯 삐까뻔쩍한 장비를 차고 힘찬 걸음으로 걷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뉴비들, 말이 모험가지 사실상 도시 잡역부나 다름없는 그들은 광장의 한구석에서 밤새 수행한 G급 의뢰의 보상금을 정산 받고 있었다.


도시의 광장은 이른 시간임에도 굉장히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한구석에 조용히 모여 돈을 받아가는 뉴비들의 모습만큼은 빈말로라도 활기차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저게 곧 내 모습이 되겠지··· 자초한 일이지만, 저 거지새끼나 다름없는 몰골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착 가라앉는다.


애써 그들을 무시하며, 나는 빠르게 서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새벽녘 도시의 성문 앞 풍경은 사뭇 색달랐다.


커다란 성문 앞, 도시의 경비병들은 졸린 기색을 채 지워내지 못 하고 하품을 찍찍 하며 성문을 열 준비를 했다.


그리고 행렬, 상인들과 용병들, 모험가들 그리고 주민들까지, 곧 다가올 아침을 맞아 도시를 떠날 채비를 하는 각양각색의 무리들이 성문 앞을 가득 매웠다.


나는 사람들의 무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슥 지나쳤다. 늘 봐오던 지겨운 풍경일 뿐만 아니라 의뢰인이 저 행렬에 끼어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성문근처에 있는 ‘리안’길드 소유의 작은 간이 대기소였다.


‘리안’의 간이 대기소란 F, G급의 급이 떨어지는 의뢰의 의뢰인들을 위한 건물이었는데, 모험가 길드로서는 F, G급의 의뢰들은 길드에 가져오는 이득도 적고, 그 수가 너무 많아 하나하나 일일이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궁여지책이었다.


간이 대기소가 하는 역할은 간단하다. 의뢰인과 모험가를 이어주는 중간 가교와 같은 역할, 쉽게 말해, 길드에서는 냄새나는 사내들끼리의 소개팅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 와중에 술이나 간단한 안주류를 파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소개팅의 기본은 첫인상이다.


생각해보라, 자신이 모험가라며 얼굴에 기다란 칼빵을 새기고 히죽거리며 들어오는 괴한의 모습을······.


심지어 이 괴한이 자신이 내건 의뢰를 수락한 당사자라면?


의뢰인 입장에서 이보다 아찔한 경험은 어렸을 적 이불에 오줌지리고 발가벗겨진 채로 쫓겨난 기억 밖에 없으리라······.


내가 아침마다 괜히 일찍 일어나서 검 닦고 갑옷 닦고 신발 닦고, 닦고, 기름치고, 손질하고 지랄발광을 해대는 것이 아니다.


자고로 같은 말을 하더라도 번듯한 무장을 갖추고 온 모험가와 얼굴에 팬티하나 덜렁 쓰고 온 모험가 사이에는 태평양만큼의 거대한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지 않는가?


나는 얼굴에 있는 듯 없는 듯 가벼운 미소를 살짝 띠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마치 도시의 주점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주점치고는 되게 간소한 주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기야 파는 음식이라곤 대량으로 미리 만들어둔 스프, 이미 조리된 햄, 소시지, 육포, 건빵 따위가 전부이니 당연한 모습일 것이다.


대기소는 이미 도착한 수많은 의뢰인들과 모험가들로 혼잡했다. 아직 채 동이 제대로 트지도 않은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숫자의 사람들이 서로 떠들며 소음을 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막 들어온 것 따윈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혼잡한 인파다.


하지만 이미 건물로 들어온 순간부터 소개팅은 시작된 것, 그는 홀로 테이블에 걸터앉아 보리 맥주하나만 달랑 시킨 채로 애타게 날 기다렸을 것이다.


이번에도 미친 새끼가 오면 어떡하지? 이 이상 일을 못하면 굶어죽고 말텐데··· 조금 모자라더라도 착한 놈을 골라? 아니, 아니야······.


애꿎은 보리 맥주만 쪽쪽 빨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지도 몰랐다······.


실망시킬 순 없었다. 내 기꺼이 그대의 백마 탄 왕자가 되어 주리라!


나는 곧장 사람들을 가로질러 모험가 패를 인식하는 일종의 모험패 리더기로 향했다. 절차는 간단하다. 모험패를 꺼내들고 신상정보가 적혀있는 부분을 리더기의 인식판 부분에 가까이 가져다 대면 끝.


그러면 리더기는 의뢰인이 위치한 자리번호를 뱉어내고, 그것을 보고 모험가와 의뢰인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의뢰인이 늦게 도착하더라도 상관없다. 의뢰를 신청할 때 어디서 처음으로 만날 것인지 미리 정하고 의뢰를 넣으므로, 의뢰인을 못 만나 미아가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니까.


“응?”


의외다, 의뢰인은 지금 2층에 있었다.


모험가 길드의 간이 대기소라지만, 그 구조까지 간소한 것은 아니다. 이 건물은 이래봬도 2층짜리 알짜배기 건물이었다.


대게 1층은 주점을 겸하는 건물답게 떠들썩하고, 격의 없는 분위기를 풍긴다.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서로 잔을 부딪치고 육포를 뜯고 햄을 베어 먹는다.


그러나 2층은 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 2층은 1층의 그런 격의 없는, 다른 말로는 혼잡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조용한 손님들이 자리 잡는다.


그에 걸맞게 2층에서는 차, 과자류, 빵종류 같은 정말로 내가 살던 세계의 카페와 같은 음식들을 판매한다.


그렇다면 2층은 그저 조용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 일뿐인가? 그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길드에서 돈을 쳐 부어가며 2층을 만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가령, 지금 내 앞에서 우아한 자세로 차를 마시고 있는, 연녹색 피부에 2쌍의 날개를 가진 요정족 여편네처럼 말이다.


“반갑다.”

“아, 예··· 반갑습니다.”


나는 조심스레 요정족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요정족 여자의 날개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으흠”


요정족 여자는 흘끔 나를 쳐다보더니 이유모를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자신이 마신던 차로 시선을 돌렸다.


초면에 요정가루부터 뿌려대다니, 역시나 막돼먹은 종족이 아닐 수 없었다. 요정족들은 그들의 날개에서 생성되는 특수한 가루를 흩뿌려 가루들이 떠다니는 공간내의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고들 한다.


문제는 이게 되게 실례되는 행동이라는 거지, 어느 정도냐면 길가다 처음 만난 사람이 대뜸 “오늘 당신의 팬티색깔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는 것보다도 더 큰 무례였다. 저걸 뿌려대는건, 팬티색 물어보는 수준을 넘어서 강제로 바지를 벗기고 팬티색이 뭔지 보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나는 뒤통수에 슬쩍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지만, 집안을 쓸쓸히 굴러다니는 비어있는 돈주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참았다.


요정족 한두 번 만나는 것도 아니고, 요정족들은 남의 바지속이나 까보고 다니는 변태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속 편하다.


“하, 하, 하··· 성질 급하신 분이군요. 피차일반 바쁜 만큼 통성명은 생략하고 바로 의뢰 이야기로 넘어가실까요?”

“······.”

“그러니까, 당장 오늘부터 서문 근처의 마력 숲에서 호위의뢰를 맡기신 분 맞으시죠? 어디보자 여기 있군요. 의뢰 번호 35006, 길드 연계 퀘스트··· 네메시아 길드 소속이신가 보군요. 혹시 신분 증명을 위한 서류를 좀 볼 수 있을까요?”

“···너 뭐야? 너 같은 놈이 왜······.”

“예?”

“아니, 상관은 없겠지. 서류는 여기 있다.”

“아, 예······.”


저거 방금 너 같은 놈이라고 씨부린거 맞지? 그치?


아무리 싸가지가 바가지인 요정족 이래도 그렇지, 초면인 사람한테 놈이라고 씨부릴줄은 몰랐다. 저거 내가 F급 모험가라고 괄시하는 거 아냐?


성질 같아서는 확!


나는 얌전히 내민 서류를 받아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 수많은 편의점 진상들을 만나온 나다. 이 정도 진상은 애교수준이지······.


“어디보자, 의뢰번호는 맞고··· 의뢰내용도 얼추 맞는군요. 처음과 조금 다른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제 모험패에 있는 의뢰내용과 들어맞아요. 문제는, 흠, 처음 보는 문장인데··· 이건? 네메시아 길드의 문장인가요?”

“좌측의 산양, 우측의 뱀과 가운데 피어나 있는, 생명의 네메시아. 그래, 우리 길드의 문장이 맞다.”

“특이한 문장이군요. 보통 문장의 중심엔 길드의 중심이 되는 상징물을 넣기 마련인데······.”

“네메시아는 그 자체로 생명과 삶을 뜻하지, 우리 길드에 딱 어울리는 상징이다.”

“그렇군요··· 좋습니다. 서류 확인은 모두 끝났습니다. 아무래도 제 의뢰주가 맞으신 모양이군요. 혹시, 모험가 길드에 의뢰하신 건 처음이신지······?”

“걱정마라. 처음은 아니니.”


요정족 여자는 곧바로 테이블 옆에 붙어있는 ‘의뢰 수락’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자마자 품 속에 있던 모험패가 웅웅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품에서 모험가패를 꺼내들었다 모험가패의 수행중인 의뢰를 나타내는 칸에 ‘F급 의뢰 효력 활성화’ 라는 문구가 떠오른 것이 보였다.


“확인했습니다. 지금부터 저, F급 모험가 시준과 네메시아 길드 의뢰 대리인 간의 계약이 성립했음을 알립니다. 앞으로 10일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의뢰주님.”

“···패넘, 패넘이라 불러라.”

“알겠습니다. 패넘님. 아직 의뢰시간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어떻게 나온 차라도 다 드시고 가시겠습니까?”

“···크흠”

“페넘님?”

“반말로 해라, 듣기에 어색하구나······.”


그리 말 하며, 싹바가지 요정족 여자, 패넘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뭐야?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인간들은 나이의 적고 많음에 따라 다른 말을 쓴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만나온 모든 인간들이 그랬듯이, 너도 내게 반말을 해줬으면 좋겠구나······.”

“···저기 실례지만 나이가?”

“성인식을 치른지 1년이 지났으니··· 인간 나이론 19살이구나.”


예? 시발 모라구요? 19살? 고삼?


순간 나는 뇌리에 떠오른 남의 팬티를 들춰보며 으허허- 웃는 19살 고등학생 여자애의 모습을 떠올리곤 아연실색하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19살 고딩 변태 아저씨라니? 내가, 내가 고딩한테 팬티까지 싹 벗겨 보이다니?


비틀비틀 계단을 내려가다가 다시금 뒤통수를 타고 오르는 혈압에 생긴 현기증으로 쓰러질 뻔 한건 그리 대단한 사실도 아닐 것이다.


씨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던전 탐험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18화 20.12.03 95 2 18쪽
17 17화 20.12.02 85 3 16쪽
16 16화 +1 20.12.01 85 3 15쪽
15 15화 20.11.30 91 2 18쪽
14 14화 20.11.29 92 4 15쪽
13 13화 20.11.28 93 4 15쪽
12 12화 20.11.27 105 3 15쪽
11 11화 20.11.26 119 3 14쪽
10 10화 20.11.25 132 3 14쪽
9 9화 20.11.24 145 3 14쪽
8 8화 20.11.23 167 5 13쪽
7 7화 +2 20.11.22 210 4 15쪽
6 6화 20.11.21 231 6 18쪽
5 5화 20.11.20 235 7 17쪽
4 4화 20.11.19 258 5 14쪽
3 3화 20.11.18 315 5 14쪽
» 2화 20.11.17 449 7 14쪽
1 1화 +1 20.11.16 802 1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