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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던전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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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작품등록일 :
2020.11.16 20:21
최근연재일 :
2021.01.07 19:3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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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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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글자수 :
281,675

작성
20.11.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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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5화

DUMMY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걸까.


이미 사위는 온통 개 짖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필사적으로 달아났지만, 역시나 추적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내 몸은 이미 멍과 상처투성이였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전투한번 치루지도 못했으면서, 달리다가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치이고, 베이면서 생긴 것들이다.


온몸이 멍 때문에 욱신거리고, 흐른 땀으로 베인 상처가 쓰라려왔다. 이미 따라잡혔다는 것을 패넘의 마법으로 알아차렸을 때부터 뒤늦게 찾아온 통증이었다.


통증은 싸늘한 신호였다. 우리들이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있다는 신호.


불행 중 다행으로, 사냥개들은 바로 우리를 습격해 오진 않았다.


놈들은 절대로 정면으로 덤벼들지 않았다. 그저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며, 수풀과 나무 사이사이로 슬쩍 모습을 드러내기만 할 뿐.


컹-!


“···꺼져!”


나는 신경질적으로 내 앞으로 불쑥 나타난 사냥개에게 방패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 모습을 비웃듯 사냥개는 풀쩍- 크게 뒤로 뛰더니, 곧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도 지금 우리주변을 맴돌고 있는 동족들과 합류한 듯싶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놈이 불현 듯 옆의 수풀에서 불쑥 몸을 드러내고 하얀 이를 내보였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녀석 때문에, 나는 그것이 단순한 위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리는 경로를 틀 수밖에 없었다.


몰이당하는 사냥감의 심정이 이러할까? 우리는 명백히 사냥당하고 있었고, 놈들은 차근차근 우리들의 체력과 방향감각을 앗아갔다.


패넘의 시기적절한 방향지시가 없었더라면, 이미 어디 막다른 곳에 몰려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겠지.


하지만 이대로라면, 숲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지쳐 쓰러져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무슨 수를 내긴 내야했다.


“어디지?”


거친 호흡 때문에 길게 말하는 것이 힘겨웠다. 나는 여태까지 뛰어오면서 수신번도 더했던 질문을 똑같이 반복했다.


그러자, 내 옷깃에 붙어있던 정령들이 스르르 떨어져나와 바람에 흩날리는 꽃가루처럼 한 곳으로 흐리기 시작했다. 젠장, 방금전의 격돌로 방향이 또 틀어졌나 보다.


“딱 한 번만 말한다! 마나실드를 거두고, 신체강화 주문을 펼쳐!”

“······.”

“이대로라면, 여기저기 몰이당하다가 사냥당할 뿐이다! 네 요정가루로 봤을 것 아냐? 적은 저 사냥개들이 다야! 날 믿어!”


그 말이 그녀를 움직였나 보다.


패넘은 그 즉시 여태까지도 측 후방을 보호하던 마나실드를 거두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비록 거친 호흡 사이사이 씹어뱉듯이 내뱉은 껌같은 영창이었지만, 어쨌거나 영창은 영창이었다.


그녀가 너무 지쳐 마법을 펼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그래도 한시름 놨다.


중요한건 지금이다. 측 후방을 안전하게 지켜두던 마나실드도 사라진 상태, 이런 와중에 갑자기 개들이 들이닥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다.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릴굴려 답을 찾아 나섰다. 사냥개는 몇 마리나 될까, 눈에 띌만한 특징을 가진 녀석들만 5마리에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가 다른 녀석들이 2마리.


최소 7마리의 사냥개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사냥개들의 숫자와 녀석들이 취하는 행동으로 볼 때, 사냥개들을 푼 살인강도들은 보다 뒤쪽에서 우릴 쫒아오고 있을 것이다.


매복이나 함정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곳은 어둡고 식생이 빽빽하게 들이찬 울창한 삼림이다. 매복이나 함정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녀석들은 숲을 벗어나서도 우릴 끝까지 쫒겠지. 애초에 그러라고 조련한 놈들일 테니까.


하지만 저런 추적에 능한 사냥개를 풀어놨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당장 맞이할 적은 사냥개 7마리내지 그 보다 조금 많은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것도, 사람 하나 없이. 오직 개새끼들로만!


나는 거기서 생각을 멈추었다. 때론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야 할 때가 있다. 빠르게 눈을 굴리며 등을 기댈만한 커다란 장애물이 있는 지형을 찾았다.


젠장, 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그 와중에 어찌저찌 기대설만한 커다란 나무 한그루를 발견했다.


“패넘! 잠시 자리에 멈춰 선다! 신호하면, 같이 멈춰!”

“하나!”


패넘의 반응을 기다릴새도 없이,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둘!”


나는 그대로 나무를 향해 뛰어 갔다. 가까이서 본 나무는 내 생각보다 제법 커보였다.


“셋! 멈춰!”


나무앞에 다다르자마자 그대로 반전하여 나무에 등을 붙이고 기대섰다.


그에 따라, 여태까지 질기도록 우릴 쫓던 사냥개들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포위하기 시작한다.


몇 놈은 수풀사이로 스며들고, 몇 놈은 대놓고 앞으로 나와 하얀 이를 씩 드러낸다.


그 모습이 호선을 그리며 휘어져있는 안광과 맞물려 마치, 그들이 쫓던 사냥감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씨발. 개새끼들 주제에. 비웃는 꼬라지 하곤.


놈들의 그런 여유로운 작태에 분개하는 한편, 몸은 한층 더 긴장을 더 하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내 등위로 싸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간다.


여태껏 뒤에서 따라오던 죽음을 바로 앞에서 맞닥뜨린 느낌.


“···패넘 적의 숫자는 몇이나 되지?”


정령들이 작게 모양을 그려내었다. 일자로 뻗은 작대기 두 개.


“11마리······.”


나는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생각보다 사냥개들의 숫자가 많았다.


패넘은 거의 속사포에 가깝게 주문을 뱉어내고 있었다. 숲에 들어오기전 한 시간이나 명상을 해 둔게 이렇게나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녀가 펼친 마법들 덕분에,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젠 한계였다. 그녀가 뱉어내는 주문이 마법을 쓰면 쓸수록 점점 더 길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젠, 정말 이곳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잘 들어. 저 개들은 우리가 숲에서 빠져나와도 추적을 멈추진 않을거다.”


패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저 그 커다란 귀를 한 번 쫑긋거릴 뿐.


“숲에서 벗어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러기 전에, 어떻게든 한 번은 놈들을 따돌려야 한다.”


나는 말을 하면서도 사냥개들을 예의 주시했다. 언제 놈들이 달려들지 모른다. 실제로도 녀석들은 잔뜩 흥분해선 크륵-크륵-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개들은 후각이 민감하다고들 하지. 패넘. 개들의 후각을 강화시켜라.”


그러면서, 방패로 앞을 가려 놈들이 못 보게 슬금슬금 주머니에 대충 쑤셔넣었던 약초를 꺼내었다. 이 숲에 들어오기전 땅바닥을 뒤지며 찾아다니던 약초다.


“알지? 주문이 끝나는 즉시 코를 막는 게 좋을 거다.”


벌써부터 톡쏘는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방귀초, 마력숲의 경계에서 자라며 이름 그대로 그 톡쏘는 냄새가 특징적인 녀석이다.


용도는··· 폭탄제조.


몸체자체가 가스로 가득 들어차있는 약초인만큼, 조그마한 열기에도 쉽게 터져버린다. 그 정도가 그래봤자 콩알탄 터지는 정도의 수준이지만, 중요한건 그 사이에 나오는 냄새다.


“타이밍은 네가 맞춰줘. 주문이 끝나자마자 이 약초무더기를 사방으로 던질거야.”


갑자기 증폭된 자신의 감각에 개들은 당황할 것이다. 거기에 추가로 들어오는 고약한 냄새까지. 그래봤자 짐승, 훈련받지도 않은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리없다.


“그러면 네가 내 허리춤에서 화염물약을 꺼내 던져. 밖에서 밥이나 해먹으려고 챙겨둔건데.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줄은 몰랏네.”


그녀는 알겠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주문이 다 되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나는 곧 무섭게 표정을 굳혔다. 어느 샌가, 개들의 포위망이 한껏 조여져 있었다.


그래봤자 1분도 안 되는 시간일 텐데···. 제 주인이 오기도전에 저리 이를 드러내고 물려고 드는 것을 보니, 개들은 생각보다 참을성이 없어 보였다.


결국 격돌을 피할 수는 없는가?


내가 내심 전투를 준비하며 몸을 단단히 굳힐 때, 여태까지도 내 주변을 서성이던 마나정령들이 금새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몸을 떨어대었다.


신호다! 제 시간에 발현된 주문에 느낀 기쁨도 잠시, 주문이 끝나는 지점을 정확히 알기 위해 패넘의 말에 귀 기울였다.


“ ···그러니 명하겠다! 저들에게 보다 강력한 후각을! 너무나 강력해 그 스스로도 주체 못할 후각을 내려라! 저들은 코에 묻은 먼지하나에도 괴로워할 것이며, 그 어떤 작은 악취라도 세상의 모든 악취를 한데모은 것처럼 느끼리라! 익스펜시브 올펙토리!(Excessive olfactory) "


한 줄기 기이한 바람이 패넘의 몸에서 불어나와 사냥개들을 향해 날아갔고, 이내 그들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미리 하얀종이에 둥글게 뭉쳐놓은 약초뭉치를 던졌다. 부피가 큰 약초를 그냥 들고다닐 수는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처리해둔 것 인데, 덕분에 던지기에 용이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패넘이 화염물약을 꺼내 던진다.


개들이 갑자기 달라진 감각에 놀라 허둥거리는 사이, 던져진 화염물약은 내가 미리 던져두었던 약초더미에 정확히 명중했고 이내 뻥- 하고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캥!


반응은 극적이었다. 개들은 생전처음 맡아보는 악취가 고통스러운지 연신 몸을 꼬면서 비틀거렸다.


“패넘!”


이제는 내가 부르기만 해도 내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던 건지, 패넘은 마나정령들을 부려 출구로 향하는 길을 표시해주었다.


나는 마지막 수를 꺼내들었다. 물결치는 회색무늬가 너울거리는 작은 구슬, 연막 구슬이었다. 이 하나만 터뜨리는 것으로 주변 일대를 자욱한 연기에 감싸버릴 수 있는 강력한 물건.


정말로 생명이 위험할 때 쓰려고 아껴놨던 것이지만, 지금 쓰지 않으면 언제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주저 없이 연막 구슬을 땅바닥에 던졌고 구슬은 깨지자마자 뭉게뭉게 구름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뛰어!”


후각은 마비됐고, 연막 때문에 시야도 차단되었다. 우리들의 발소리를 들을 수는 있겠지만 강렬하다 못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후각 때문에 제 몸 추스르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니 저 개놈들이 정신을 차리고 우릴 쫒아오기 까지, 최대한 거리를 벌려 놓아야했다.


나는 혹시라도 개들이 금방 충격에서 벗어나 뒤를 쫓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슬쩍 뒤를 돌아보니 추격해오는 기미는 없어보였다.


점점 주변의 식생이 듬성듬성 자라기 시작하고, 내 몸통보다 두꺼웠던 나무들은 어느새 내 팔뚝만한 지름의 얇은 나무들로 바뀌어 있었다.


출구가 머지않았다. 패넘이 거의 저주 수준으로 개들의 후각을 강화시켜 놓은 것이 예상외의 큰 성과를 낸 모양이었다.


이대로 라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부풀어 오를 때 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옆에서 함께 뛰던 패넘이 그대로 넘어지며 땅을 세차게 뒹굴었다.


“이런, 패넘!”


나는 급히 뒤를 돌아 패넘에게 다가갔다. 얼마나 심하게 굴렀던지, 달아나느라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땅을 구르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퍼질 정도였다.


“괜찮··· 이런 씨발!”


가까이서 본 패넘의 몰골에,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참을 수 없었다. 굴러서 갑옷 곳곳이 찢어지고 드러나 있는 맨살 곳곳에 피가 방울방울 올라와있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녀의 얼굴이었다. 마치 질식이라도 한 것 마냥 새파랗게 질린 얼굴, 바싹 마른 입술과 온통 검게 물든 눈두덩이 까지.


간신히 눈은 뜰 수 있는 듯 했지만, 그녀는 이지경이 되도록 그렇게 무리를 해댄 것이었다.


어쩐지, 씨발. 1시간 집중 좀 했다고 헐떡일 정도로 달리면서 마법을 난사할 수 있을 리 없다. 자기 생명력까지 깎아가며 주문을 외웠던 것이리라.


나는 순간 망설이다가, 여태까지도 손에 고정시켜 들고 다니던 방패를 등에 단단히 동여매고 재빨리 그녀를 안아 들었다.


패넘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개를 쳐든 생존본능이 그녀를 버리고 가라고 속삭였으나, 그녀를 버릴 수는 없었다.


설사 죽는다고 하더라도.


···아니 씨발, 그래도 죽는 건 무서운데······.


내 두 팔을 짓누르는 그녀의 몸무게에 살리려는 의지가 초단위로 시험받을 무렵, 한순간 여태껏 녹색으로 빛나던 세상이 화악- 밝아지더니, 달리던 모습 그대로 숲을 빠져나왔다.


“나왔다. 나왔어! 나왔다고! 살았어. 살았다고!!!!”


얼마나 그리웠던가. 이 탁 트인 드넓은 대지를, 흔들리는 초목이, 그 위에서 따듯하게 그들을 비추는 황금빛 태양을.


숲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내 몸을 한가득 비추는 태양빛에 비로소 내가 저 지옥 같던 숲에서 탈출했음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기쁨도 잠시, 나는 갑자기 밀려온 육체의 피로에 몸을 기우뚱거렸다. 아무래도,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이제 숲에서 탈출했으니 되었다. 이곳에서 도시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마력숲은 원래부터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곳이었다. 조금만 걸어가도 곧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뭉치면 저 살인강도 놈들이라도 별 수 없을 테지.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조금만.


그리 생각하며, 계속 된 달리기에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간신히 옮기고 있을 때였다.


순간, 싸늘한 한기가 목 줄기를 따라 흘러내렸다.


우리가 이리저리 산 불 맞은 멧돼지마냥 달리고 있을 때, 놈들은 우리의 목적이 숲에서 탈출하는 것이란 걸 금방 알아차렸을 거다.


그리고 그 방향은 당연스레 도시와 가깝고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이 곳. 숲의 입구밖에 없었다.


살인강도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풀어놓은 사냥개들의 수와 숲 곳곳에 남겨진 흔적들로 추론 해봤을 때 최소 두 자리 숫자의 살인강도 떼가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들 무리 중 일부가 우회하여 미리 이 장소로 향했을 가능성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패넘이 살짝 몸을 떨었다. 슬쩍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무언가를 알리려는 듯, 힘겹게 치켜뜬 두 눈.


그리고 그와 함께 공기를 가르고 쏘아지는 커다란 발사음까지.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조금이라도 화살이 맞는 면적을 줄여야 했으므로.


콰직-!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커다란 굉음과 함께 등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에 나는 달리던 그대로 앞을 나뒹굴었다.


뒹굴던 몸이 운동을 멈추고, 나는 그대로 땅바닥에 점차 희미해져 가는 정신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받은 충격이 너무 컸던 가 보다. 귀에서는 연신 삐- 삐- 거리는 이명밖에 들리지 않았고 온 몸은 마비증세가 온 듯 꼼짝도 하질 않았다.


이렇게 뒤지나? 내 인생도 참, 좆같네 진짜···.


나는 곧 나에게 다가올 사신의 거친 발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죽을 때 죽더라도 아무것도 못 한 채 뒤질 순 없지 않는가.


몸은 움직이질 않으니, 그 발소리라도 듣겠다는 엉뚱한 생각이었다.


온통 삐- 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가운데, 천천히 이명이 잦아들고 웬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일정하게 땅을 박차는 소리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식별은 안 되지만, 리듬으로 따지면 다그닥- 다그닥- 거리는, 흡사 말을 닮은 발소리······.


···말?


멍청히 누워있던 내 눈앞으로 길게 다리를 뻗은 우아한 짐승이 뛰어간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바짝 몸을 숙인채로 말을 타고 있는 갑옷을 입은 사람의 형상, 너무 빨리 뛰어간 바람에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한 가지 갑옷에 새겨진 문양만은 똑똑히 보였다.


타오르는 태양의 문양 그 안에 새겨진 고개를 들어 올리고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


첨병이었던 것일까, 그 뒤를 이어 수많은 사자무리들이 그를 뒤따라 맹렬히 달려갔다. 흐릿한 눈으로나마 내게 화살을 들이밀었던 강도놈들이 혼비백산 도망치는 꼬락서니를 볼 수 있었다.


꼴 좋다. 씨발놈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련하게 들리는 강도들의 비명소리를 자장가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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