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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던전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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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작품등록일 :
2020.11.16 20:21
최근연재일 :
2021.01.07 19:3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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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675

작성
20.11.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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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4화

DUMMY

우리들은 숲의 나무들 사이로 졸졸 흐르는 개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패넘은 연신 날개를 살랑거리면서 길을 인도했는데, 보기엔 거기서 거기인 길들이지만 그녀에게는 내겐 느껴지지않는 어떠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날개를 한 번씩 강하게 움찔거릴 때마다 어김없이 진귀한 약초들이 한 무더기로 발견되었고, 그저 길을 걷는 와중에도 다양한 종류의 약초들이 곳곳에서 군락을 이루며 자생해 있는 것을 보면, 요정족의 날개의 탐지대상은 비단 움직이는 생물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여기다.”


또 한 번 진귀한 약초들을 찾은 가보다. 그녀의 날개가 한 번 크게 움찔거리더니 패넘은 개울 주변의 나무 그루터기 밑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딸려 나오는 커다란 구근들.


“나무뿌리기생초다. 이름그대로, 나무뿌리에 붙어 그 나무가 죽을 때까지 나무의 영양분을 빨아먹지. 보통은 어떤 나무에 기생초의 씨앗이 붙었느냐에 따라 기생초 구근의 크기가 결정된다.


그녀는 흡족한 듯 나무뿌리기생초의 구근을 연신 쓰다듬었다.


“이 녀석은 제법 커다란 오래된 나무에 들러붙었었나보군. 다른 것보다 크기도 반배 이상 크고, 결정적으로 작지만 마나가 깃들어 있어.”

“이놈은 용도가 뭔데?”

“보통은 식용식물이지만··· 내 날개가 반응할 정도의 녀석이니, 약재로도 충분히 쓸 수 있겠지.”


패넘은 손에 들린 구근을 망태기에 던져 넣었다. 어느새 가져온 망태기의 2/3가 여러 종류의 약초들로 가득 차있었다.


특별히 진귀한 약초거나 특수한 식물들은 특별한 과정을 거쳐 처리하여 허리춤에 맨 작은 가방에 집어넣었으니, 실제로는 사실상 망태기를 꽉 채운 것이나 다름없는 양이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이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처음 의뢰 내용을 확인했을 땐 꼼짝없이 저녁까지 붙잡혀 있겠거니 싶었지만, 다행히 이번 의뢰는 소위 말하는 ‘꿀빠는 의뢰’였다. 내가 어제아침까지만 해도 제대로된 일거릴 찾지 못할까봐 안절부절하던 것을 생각해볼 때 굉장히 양호한 의뢰지 않는가.


일도 쉽고, 보수도 쎄고, 위험하지도 않고, 심지어 말 많고 으스대길 좋아하는 의뢰주덕에 약초에 대한 지식도 얻어갈 수 있다.


정말 모든 의뢰가 이것만 같아라. 참 꿈만 같은 시간이다.


그러나 정말 안타갑게도, 자꾸만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흔적들이 눈에 띈다.


명백히 싸움이 벌어졌음을 암시하는 흔적들, 꺽인 나뭇가지. 여기저기 짓밟힌 수풀, 깊게 패인 땅바닥까지.


숲의 야수들과 싸운 흔적일까? 그러기엔, 동물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털, 무거운 무게에 짓눌린 흔적, 발톱자국들이 보이질 않았다······.


보이는 것은 날카롭게 배인 나뭇가지들과 단단하고 딱딱한 무언가에 부딪힌 흔적들 뿐.


결정적인 것은 길을 걷던 도중 발견한 깃대가 부러진 화살이었다.


숲의 초입, 보았던 시빨간 천조각과 같이 빨갛게 물든 화살촉······.


“패넘.”


“이미 알고 있었다. 진작 대비하던 중이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무래도 지금 이 숲에 인간 백정놈들이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마치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벗기듯, 사냥한 사람의 장비와 무구를 털어가는 놈들이······.


패넘은 진작 무슨 수를 써두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쩐지 아까부터 말수가 급격히 적어지고, 뭔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한다 싶더니만.


나는 거추장스러워 뒤로 매었던 방패를 한 손에 단단히 고정시키며 패넘의 앞으로 나섰다.


“이제 부턴 진형을 변경한다. 내가 앞으로 가고. 패넘, 네가 뒤에서 간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여러 명 구해서 다닐 것을, 내가 너무 방심했나 보구나.”


애초에 이런 숲에 살인 강도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자체가 예외다. 평소에는 일반인도 드나들만큼 안전한 곳일텐데······.


“마나 실드 전개가능하지? 정면은 맡기고, 뒤랑 옆에만 둘러.”


마나 실드는 전개방향이 어디든지 일정한 경도와 형태를 가진다. 내가 뒷걸음질 치며 뒤를 막기보단 앞을 막고, 패넘이 그 외 나머지 방향을 전담하는 게 효율이 더 좋았다.


“그러려면 지금 유지하고 있는 라이트 마법마저 꺼뜨려야 하는데··· 부담이 너무 크다.”

“걱정 마. 나라고 허투루 이 숲에 들어온 건 아니니까. 그리고 네 마법은 너무 광원이 밝아. 오히려 노려질 위험이 크다.”

“···미안하구나.”


패넘은 시무룩해보였다. 그녀로서는 그녀 자체가 마법사이고, 요정족으로서 어느 정도 정령들과 교감도 가능하니, 짐꾼 겸 호위로서 한 사람만 고용했던 것인데, 결국엔 그것이 악수로 작용했다.


마법사던, 요정족이던, 쏘아진 화살 한방에 목숨이 위태로운 것은 똑같다. 이럴 때일수록 곁을 지켜줄 동료가 절실한 법인데··· 아쉽게도 지금 그녀의 곁엔 나밖에 없었다.


곧 우리들 앞을 환하게 비추던 광원이 꺼지고, 갑작스레 시야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단순히 주변이 어두워진 것일 뿐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숲 나들이가 갑자기 리얼 야생 생존 서바이벌로 장르가 바뀌어버렸다.


이것이 이 숲의 본래 모습이다. 던전의 마력에 의해 기이할 정도로 빽빽하게 부풀어 올라 숲 한가득 자리를 차지한 식생들, 그리하여 숲 전체에 깊게 깔린 어둠.


숲을 맴도는 마나 정령들이 제공하는 미약한 빛마저 없었다면, 이 숲에서 광원 없이는 한치 앞을 바라보기도 힘들었을지 몰랐다.


나는 허리춤에 매달아둔 다른 주머니에서 돌돌말린 양피지 한 장을 꺼내었다. 부릅뜬 올빼미의 두 눈이 양각되어 있는 주문서, 나이트 비전(야간 시력) 주문서였다.


어디있는지도 모를 살인강도들 때문에 이 값비싼 주문서까지 써야 한다니······.


하지만, 망설임이 있을 순 없었다. 언제 어디서 화살이 날라올지도 모르는데 패넘에게 전개하고 있는 마나실드를 거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 내 명하노니, 마나여. 내 두 눈에 올빼미 같은 시력을! 빛나는 두 눈은 능히 어둠을 꿰뚫고 적을 찾으리라. 나이트 비전! ”


주문을 외우자, 주문서에 양각된 올빼미의 두 눈이 하얗게 타오르더니 그대로 내 눈으로 빨려들어왔다. 순간 쏟아지는 빛에 반사적으로 감은 눈을 뜨자, 초록색으로 일변한 세상의 풍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준비는 끝났어. 패넘, 숲밖으로 나갈 꺼지?”

“물론··· 다만 우리가 왔던 길에서 90도정도 꺽은 방향으로 움직였으면 하는 구나. 적들이 이 울창한 삼림에 주구장창 매복하고 있을 리도 없을 테니, 아마 우리들의 흔적을 뒤따라오고 있을지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요컨대 우리 지금 쫒기고 있다는 거지?”


패넘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오던 길에 가루들을 뿌려놓았다. 마나정령들에게도 묻혀 보내놨으니, 적이 다가온다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젠장, 재수가 없으려니. 고작 F급 의뢰에서 살인강도라니, 명백한 밸런스 파괴지 않나?


하필 나와도 개시 첫 날에 튀어나와 버렸으니, 무사히 숲을 빠져나가더라도 이 의뢰는 오늘로 끝날 것이다. 길드에서 살인강도가 돌아다니는 숲에 고작 둘이서 돌아다니도록 허용해주진 않을테니까.


그것도 살아 돌아갈때의 이야기였다. 상대는 작정하고 사람들을 죽이려 숲에 들어온 강도무리들이다.


우리들은 그 강도 무리들이 얼마나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강한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자칫하면 죽는다.


그것은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무서운 사실이었다.


나와 패넘은 말 없이 걷는 속도를 올렸다. 최초 공포감에 느릿하던 발걸음은 어느샌가 거의 뛰는듯한 발걸음이 되었고, 호흡은 안정적이었으나, 크고 거칠었다.


그렇게 빠르게 나아가고 있음에도, 자꾸만 발에 걸리는 수풀들과 몸 이곳저곳에 부딪히는 가지들 때문에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귓가에 자꾸만 울려퍼지는 소리, 소리들. 나뭇가지가 밝히는 소리, 나뭇잎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 빠르게 땅을 따라 뛰어가는 소리, 이 모든 소리들이 마치 일종의 무형의 기운을 이루어 내 등 뒤를 바싹 쫒아오는 것만 같았다.


오싹- 오싹-


나는 발작적으로 몸을 크게 털어냈다. 귀신이라도 등 뒤에 달라붙은 것 같았다.


아마 주문서를 쓰지 않았더라면, 우릴 감싸며 여러 장애물들을 막아준 마나실드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패넘이 요정족답게 기민한 발놀림으로 제대로 날 따라오지 못했더라면 진작 넘어져 바닥을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하지?”


나는 숫제 악을 쓰며 그녀에게 물었다. 별 다른 답을 원한건 아니었다. 그저, 어디로든 간다면, 그 길이 정답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이 미쳐버릴 것 같은 긴장감이 조금은 없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패넘은 또 예의 그 중얼거림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게 대답할 여유조차 없는 듯, 필사적으로 주문을 외고 있었다.


“···씨발!”


어떻게든 대가릴 굴려야 했다. 나는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중에서도 우리들이 숲에 들어오기 직전, 공터에서 꽤나 오래 머물렀음에도 별다른 습격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었다.


그것은 이미 누군가 습격받은듯한 여러 흔적들과 맞물려 한 가지 가설을 만들어내었다.


“···그 놈들은 이 숲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됐어! 아직까지 이 숲을 완전히 포위하진 못했을 꺼야!”


그리고 그 가설은 우리들이 살인강도 무리에게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비교적 안전하게 숲에서 빠져나갈 수 있고, 그렇게 나가더라도 밖에 매복이 없으리란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살 수 있어! 바깥으로 빠져나가기만 하면··· 살 수 있다고!”


그저 어둠속에서 촛불하나가 일렁였을 뿐인데, 태양이라도 떠오른 듯이 반응하는 꼴이란.


그래도, 나는 필사적으로 그 촛불을 움켜잡았다. 행여 꺼질세라, 혹여 놓칠세라, 촛대를 꽉 부여잡고 더듬더듬 어둠 속을 헤쳐 나갔다.


“패너엄! 넌 요정족이잖나! 숲의 종족!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왔는지 정도는 알 것 아니야!”

“······.”


패넘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지만, 순간 작게 입술을 들썩이니 우리 주변을 맴돌던 마나정령들이 순간적으로 한 방향을 가르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대로 숲을 빠져나간다! 놈들은 아마 우리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을거야! 매복은 없어!”


···정말로 매복이 없을까? 추격자들이 이미 우리를 쫓는걸 포기하고 숲 밖에서 진을 치고 있을 경우는?


그럴 경우, 우리들은······.


씨발, 지금 그런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설사 지금 손에 움켜진 촛불이 실은 허상에 불과한 도깨비불일 뿐이라고 해도, 나로서는 그저 이것이 진짜 불이겠거니 믿고 달리는 수밖엔 없었다.


이미 심장이 터지도록 달리는 와중에 다른 경우의 수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내겐 너무 벅찬 일이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느니, 주어진 상황에 집중하고 순간순간 보다 낫은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훨씬 가치 있을 것이다.


“ ···그리하여 내가 명한다. 너 마나야, 내 의지를 따라. 내 발걸음을 따라 오거라. 너는 바람 되어 우리 주변을 감쌀지니. 어느 누구도 우리의 발걸음 소리를 듣지 못 하리라. 라이트 스텝!(Light steps) ”


일순, 그녀의 주변에 떠돌던 기운들이 잘 훈련된 군대처럼 일직선으로 사열하더니 그대로 우리 주변을 미친 듯이 맴돌기 시작했다.


“···허억. 기척을, 기척을 지웠어! ···헉. 이제, 우린, 안전해······!”


패넘은 적잖이 지친 듯 했다. 빠르게 달리는 와중에도 마나실드를 전개하며, 또 다른마법까지 펼쳐내었으니, 그녀에게도 그것은 모험이었으리라.


다행이 모험은 성공했고 이제 우리들이 뛰는 소리는 거의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소리만큼이나 작게 들렸다.


“계속 달려! 숲에서 벗어날 때까지!”


작은 촛불 같던 희망은 거센 화롯불처럼 불타올랐다. 약초들을 캔다고 느릿느릿 숲을 헤쳐온 것이 다행이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달린다면, 숲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얼마나 숲길을 달렸을까. 한참을 달린 것 같은데도, 여전히 추격자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숲은 여전히 고요히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사실 추적자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게 아닐까? 벌써 이만큼이나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질 않고 있다.


정말로, 인간 백정놈들은 이미 이 숲에서 떠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던 무렵.


----컹···.


순간, 등골을 타라 싸늘한 한기가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제대로 들었는지조차 헷갈릴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분명히 들었다, 개 짖는 소리.


저것이 숲에 사는 다른 짐승의 소리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추적자들이 쫒아오고 있노라고.


말을 주고받을 여유도, 고개를 뒤로 돌릴만한 여유도 없다. 우리들은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컹, 컹, 컹


뒤에서 추적자들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조금씩, 가까이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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