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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던전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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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작품등록일 :
2020.11.16 20:21
최근연재일 :
2021.01.0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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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1.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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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3화

DUMMY

패넘과 나는 서문을 나와 곧바로 마력숲으로 향했다. 비록 마력숲으로 가는 동안 우리 사이에 대화라곤 일정 발생하지 않았지만.


어쩌라고? 내가 그런 꼴을 당했는데 먼저 말 걸고 하하호호 떠들게 생겼냐?


그리고 19이라매? 어떤 19살이 어르신한테 반말 찍찍 내뱉고 다니나?


내가 한국에서 22살까지 살았고, 이세계로 넘어와 산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이태까지 먹은 밥공기 수만 몇 그릇인줄 아나?


그런데! 저 19살 발랑까진 고딩여자애는 그 저주받을 요정가루로 내, 내······.


생각을 말자. 너무 말이 없다보니 잡생각이 막 든다. 나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신경을 끄고 주변 경치나 좀 더 구경하기로 했다.


하늘은 드높고 푸르렀고, 땅은 고갤 숙이고 반짝반짝 황금빛으로 빛났다. 길을 걷다보면 희미하게 맡아지는 고소한 곡식냄새가 사방을 찔렀다.


현재 계절은 가을, 가을을 일컬어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그 말 그대로 하늘은 저다지도 높은데, 그와 맞닿은 땅들의 황금빛 곡식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절로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목가적인 광경이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낮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토록 좋은 날씨에, 이토록 좋은 풍광에, 절로 흘러나온 노래였다.


어릴 적 살던 마을에서 어르신들이 한 해의 결실을 수확할 때면 버릇처럼 흥얼거리던 콧노래였다.


음정도, 박자도, 가사조차 없는 그저 의미 없는 가락일 뿐이지만, 뭐 어떤가? 중요한건 내 감정이 아닌가.


지금만큼은 이 의미 없는 콧노래가 내가 부를 수 있는 최고의 노래였다.


“······.”


패넘은 콧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내가 신경 쓰였던 건지, 말없이 길을 걸으면서도 이쪽을 흘끗흘끗 쳐다보곤 했다.


그러면서도 제 딴에는 그런 모습을 들키기 싫었는지 잠시 훔쳐보다 홱- 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수줍움 타는 소녀의 모습이라 나도 모르게 살풋 웃어버리고 말았다.


“······!”


이런, 내가 너무 크게 소리내어 웃었나보다.


패넘은 나를 한 번 흘기더니 이번에는 아예 고개를 반대편으로 휙- 돌려버린다.


참, 저러니까 나이 대답게 풋풋한 소녀처럼 보인다. 가정교육은 조금 덜 받은 것 같지만······.


곧게 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 다보니 인적이 끊기고 거친 날것 그대로의 자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곧고 평탄하던 길은 자갈과 작은 흙둔덕이 쌓여있는 거칠고 구불구불한 길로 변했고, 황금빛 대지는 선명한 초록빛으로 다시끔 반짝였다.


여전히 평야는 이어져 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주변으로 접근해오지 않는다. 대신, 평야에 우거진 초목사이사이로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것이 언뜻언뜻 보였다.


아직은 토끼수준인가.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사냥감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포식자가 그 주변에 존재함을 의미하므로.


혹시 모를 적들을 경계하며, 나와 패넘은 처음의 가벼웠던 분위기를 완전히 벗어 던진채 날카롭게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아직까지는 괜찮겠지만··· 그래도 좀 조심하면서 가는게 좋을 것 같은데?”

“동감이다. 시···준? 시준, 마력을 머금은 숲이 코앞이다. 언제 어디서 위험이 덮쳐올지 몰라.”


아무래도 그녀는 내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 흠, 시준이란 이름이 그렇게 부르기 쉬운 이름은 아니긴 하지.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며 길을 걷기 시작한지 수십 분, 조금씩 좁아지던 길이 끊기고 걸음을 멈춰선 곳에는 숲의 입구가 있었다.


숲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는 숲 주변의 공터에 둘러앉았다.


“후··· 드디어 도착했나. 그래도 해가 떠있는 위치를 보니, 제법 빨리 온 것 같네.”

“역시··· 체력이 좋군.”

“당연하지. 이 짓으로 벌어먹고 살려면 좋은 체력은 필수야, 필수! 그래도, 숲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정비시간을 가지는게 좋을 것 같다만··· 어때?”

“물론. 사전준비는 필수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한 시간 정도만 쉬었다가 들어가지.”

“한 시간? 그렇게나 많이 필요해?”

“너와 호흡을 맞추는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네 말처럼 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인데···. 사람도 우리 둘 밖에 없고. 숲에 들어가기 전 행하는 일종의 의식이라고 생각해다오.”

“그래? 그럼 좀 이르지만 밥이나 먹을까? 아침밥까진 안 싸왔는데······.”

“마음대로. 하지만 방해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 말한 패넘은 그 즉시 자리를 펴고 앉으며 눈을 감았다. 명상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명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인지 한 손에 작은 완드를 들고 있었다.


이윽고 패넘의 몸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기류들이 피어올랐다. 지구와 비교했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이질적인 에너지, 마나였다.


그래, 마나다 마나! 내가 책에서나 볼 수 있던 마나를 실제로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어찌 보면, 마나야말로 이세계로 넘어와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패넘은 마나를 사역하고 다루는 마법사로서 주위 마나에 감응하고 그것들 하나 하나를 몸으로 익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겸사겸사, 여러 주문들을 미리 장전해두기도 하고. 경지에 오른 마법사들은 걷거나 뛰거나, 밥을 먹거나, 심지어 화장실을 갈때도 마나와 감응할 수 있다지만, 패넘에겐 무리인 모양이다.


그래도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건 좀 과하지만. 실제로는 저것보단 덜 걸릴 거다.


화염물약이나 던져서 불피우고 밥이나 먹을까 싶었지만, 역시 너무 일렀다. 그냥 간단히 주변이나 좀 탐색해보기로 했다.


명상이 끝날때까지 저 요정아가씨를 쳐다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얼굴이야 이쁘장하게 생겼지만은, 1시간 내도록 찬찬히 뜯어볼 만큼 절세의 미모는 결코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숲을 향해 다가갔다. 울창하게 뻗은 숲은 그 자체로 굉장한 생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저 식생이 좀 풍부할뿐 겉으로 보기엔 다른 숲이랑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그러나 숲 곳곳에서는 패넘의 몸 주변에서 일어났던 현상처럼 기운들이 여기저기 나폴거렸는데, 아지랑이 치며 나무들 사이사이를 오가는 그 모습이 마치 빛나는 작은 날벌레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때때로, 그 기운들은 서로 합쳐져 커다란 한 주먹 덩어리가 되어 두둥실 떠다니곤 했는데, 그렇게 커다래진 기운들은 이내 비실비실 휘청이다가 펑- 하고 터져버렸다.


그러면 다시 수십마리 날벌레들이 나무 사이사이를 날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은 빽빽하게 들어찬 초목들에 의해 한껏 어두워진 숲의 모습과 대비되어 마치 바로 눈앞에 별들이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목판위에 밤하늘을 그린다면 저런 모습일까.


나는 그 판타지스러운 광경이 퍽 마음에 들었다. 이곳으로 강제로 전이당하며 마음에 안드는 일, 짜증나는 일, 서러운 일, 무서운 일들이 태반이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겪는 이런 가슴벅찬 풍경이 나를 계속 움직일 수 있게 해주었다.


왜 자신이 모험가 일을 시작하였나? 지금 보는 이 풍경이 내 선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주지 않던가.


나는 모험이 좋았다. 가슴 뛰도록.


“엇?”


숲의 경치를 구경하다말고 나는 그 자리에 바짝 엎드렸다. 그리곤 유심히 땅바닥을 훑고는 그 중에서 눈에 띈 풀뿌리 하나를 단숨에 캐내었다.


“오예! 씨발 심봤다!!!”


마력숲의 경계지형에서만 자라난다는 희귀한 약초가 틀림없었다. 그것은 그 약초 특유의 톡- 쏘는 듯한 찌릿한 향과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숲의 100가지 희귀한 약초들>이 증명한다. 그리고 그 책에 나와있는 가격대로, 나는 땅 한번 훑어보곤 5000원을 벌었다!


나는 아까 전 숲의 멋진 광경을 쳐다볼 때보다도 더 커다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금 쭈그려 앉아 풀 사이를 마구마구 헤집고 다녔다.


모험도 좋지, 새로운것도 좋고, 근데 제일 좋은건 돈이다 돈.


예전에 다니던 검술도장은 돈이 더럽게도 안 되었다. 하루 세끼 딱딱한 빵하나 벌어먹기 힘들었던 것이다.


어? 사람이 말이야. 사람답게는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야? 지금은 그래도 따끈한 스프에 그나마 덜 딱딱한 빵이라도 끼얹어 먹을 수 있으니 좀 사람다운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나는 발견하는 약초들을 족족 주머니에 쳐넣으며, 개처럼 땅을 기었다.


“오케이! 씨발! 좋구요!”


1만원!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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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입도 좋다만. 이제 부터는 임무에 집중해주었으면 한다.”

“···미안.”

“알면 됬다.”


그래도 몇 시간 같이 있으며 우리 둘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나 싶었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버렸다. 아니, 오히려 더 못해졌다.


당연한 일이다. 호위 임무하러 와서 약초나 캐러 다녔으니. 패넘의 눈엔 내가 무책임한 모험가 나부랭이쯤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게, 내가 요새 돈이 좀 궁해서.”

“쓸데없이 솔직하구나. 알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괜히 변명했다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냥 존나 가만히 있어야지······


“들어가지. 내가 먼저 길을 여마.”


그리 말하고는 패넘은 손에 들고 있던 완드를 들어올렸다. 완드의 끝에 박힌 수정구 안에서 작은 폭풍 같은 기운들이 응집하여 빙빙 난 회전하고 있었다.


“ 마나여, 빛이 되어라. 너를 가리는 어둠을 몰아내고, 그림자를 좆아내어라! 라이트! ”


그러자 빛이 있었다.


패넘의 바로 앞에 떠오른 빛은 곧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그러자, 어두웠던 숲이 환하게 밝아졌다.


광원의 한계 때문인지 기세 좋게 어둠을 꿰뚫고 나가던 빛은 머지않아 그 기세를 잃고 사그라 들었지만, 그래도 우리 두 사람의 시야를 밝히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좋아, 길은 열었다. 그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걱정마. 간단히, 네 뒤에서 널 지키면 되는 일이잖냐.”

“그 간단한것도 못하는 천치들이 얼마나 많은지··· 믿겠다.”


믿겠다니··· 내 어디를 보고?


그놈의 요정가루를 믿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썩 나쁜기분은 아니었다.


우리는 숲으로 들어갔다. 패넘이 자기 앞에 띄운 광원에 의지하며, 우리들은 천천히 숲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너무 천천히.


우리 옆으로 날벌레같은 마나가 부웅- 날아가 추월할 정도로 느리다면 믿겠는가?


“어차피 살펴 볼만큼 다 살펴본 숲이지 않아? 조금더 속도를 올리는건 어때? 지도도 있고.”

“인간들이 만든 숲의 그림을 말하는 건가? 그건 확실히 쓸모가 있지만, 요정에게는 요정만의 탐색법이 있는 법. 잠자코 따라오기나 하거라.”

“예이, 예이······.”


그 와중에도 마나들은 신이 나선 우리 주위를 마구 맴돌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사방팔방 정신없이 날아다니다가 제 힘을 버티지 못하고 풀썩- 옷가지에 붙어버리기도 하는 모습이 꼭 살아있는 것 같았다.


···잠깐, 이거 정령아냐?


어째 아까부터 졸졸 따라온다 싶었더니, 정령들이 패넘의 마나향에 이끌려 따라온 모양이었다.


내가 이세계로 온지는 좀 되었지만, 실제로 정령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건 처음이다. 이 숲이야 제법 와봤지만, 마법사, 그것도 요정족과 함께 온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패넘의 날개 가득 붙어있는 마나 정령들이 그 증거가 아닌가. 정령들이 패넘의 날개에 빽빽이 들러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날개가 얇은 빛으로 코팅되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나저나 저거 안 무겁나. 나는 내 손가락 위에 앉은 마나정령을 슬쩍 위아래로 들었다 내렸다 해보았다. 무게는 없는거 같긴 한데······.


너무 손가락을 격하게 움직였나 보다. 마나정령은 거친움직임이 싫었던지, 휙- 날아 패넘의 날개로 들러붙어 버렸다.


여하튼, 희귀한 경험 하나했다. 이렇게나 정령이 가까이 붙어있는 건 정말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니까.


“정령을 처음 보느냐?”

“음? 아, 본적은 많았어.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지만.”

“훗, 귀여운 놈들이지. 내가 살던 마을에선 흔히 보던 놈들이었다. 매번 몸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조금 거추장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나 좋다고 저러는 놈들이니.”


그런 말을 하며 패넘은 자랑하듯 정령이 가득 붙은 날개를 느리게 두어번 살랑거렸다.


오오, 저거 움직이기도 하는 거였어?


우리들은 처음에 가졌던 경계심은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지고, 마치 소풍을 온 것처럼 정령들과 함께 숲 나들이를 즐겼다.


방심이 화를 부른다고 하던가? 뭐 어쩌라고?


패넘이 마나 정령들을 다루는 시점에서, 몬스터조차 없는 이 숲에서 우리들을 위협할만한 위험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딱 한 가지를 제외하곤······.


나는 힐끔, 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천 조각을 쳐다보았다. 찢어진 천 조각은 무슨 이유에선지 무척이나 붉었다.


단순히, 나뭇가지에 옷이 걸려 찢어진 것일까? 아니면······


나는 오랜만의 평화와 희미한 불안감을 느끼며 그녀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역시나 천천히,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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