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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던전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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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작품등록일 :
2020.11.16 20:21
최근연재일 :
2021.01.07 19:3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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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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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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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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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6화

DUMMY

하아··· 오랜만이다.


이 얼마만의 꿀 맛 같은 휴식인가? 나는 아직도 왼손에 쥐고 있는 이 차가운 콜라의 존재가 믿겨지지 않았다.


심지어, 이 오른손에 들린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한 마리 봉황처럼 길게 뻗은 작태, 황금빛 들녘을 떠올리듯 눈부시게 찬란한 황금빛 피부, 한 입 베어 물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뽀얀 속살까지.


그 이름하야 치킨이로다. 경사로세, 경사야.


···응? 이거 이세계 모험물 아니었냐고?


마지막에 등짝에 화살을 맞았을 때, 나는 영락없이 어딘지도 모를 이 세계에서 그대로 뒤져버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일순 세상이 뒤흔들리는 느낌이 들더니 지금 이 모양이다. 내가 살던 자취방에서 이세계로 소환되기 바로 전의 그 모습.


벌써 3년은 지난 예전 기억이지만, 여전히 선명했다. 정리된 듯 정리 되지 않은, 깔끔하게 접힌 속옷들과 아무렇게나 내팽겨 친 겉옷이 공존하는 방의 풍경이. 그리고 벽에 쏟은 라면 국물 냄새, 쉬어버린 빨랫감에서 나는 군내, 남자들이 사는 자취방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겹쳐 방 안을 떠도는 혼란스런 냄새가.


그리고, 지금도 방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시준아! 문 좀 열어봐. 엄마 왔다니까?”


내가 이세계로 전이되기 직전, 엄마한테 한 말이 뭐였을까? 아쉽게도 그건 기억나질 않았다. 마치 머릿속 한 구석이 뿌연 안개로 휩싸인 듯 했다.


쾅쾅-


“시준아! 시준아! 아이 참, 얘는 또 주말이라고 자고 있나?”


나는 들고 있던 치킨이랑 콜라를 조용히 탁자에 내려놓았다. 지금은 음식 따위가 아니라,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했다. 말하는 말 한 자라도, 목소리 한 톨이라도 놓친다면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오롯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했다.


“시준아! 어휴, 내가 진짜 못 살아! 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엄마 왔다니까? 어서 이 문 열어!”


엄마의 목소리가 이랬구나··· 나는 예전에는 늘 들어와서 별 감흥도 없었던 그 괄괄한 목소리를, 이제는 낯설어져 버린 그 가녀린 목소리를 들었다.


“하아···. 야! 박시준! 엄마 무거운거 들고 있느라 힘들어, 빨리 일어나! 왜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어서!”


···어느새 눈에는 한가득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리운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지금 당장이라도 저 문을 열고 어머니를 만나고 싶었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 마음대로 움직이던 몸이 이제는 망부석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왜 나는 갑자기 여기로 와있는 걸까? 왜 콜라는 여전히 차갑고, 치킨은 계속해서 갓 만든것처럼 따뜻할까? 왜 엄만, 어머니는, 먼저 문을 열지 못할까?


문은 분명 열려 있을 텐데.


“시준아, 일어나. 어서. 언제 까지 꿈꾸고 있을 생각이니? 어서. 일어나야지. 착한 우리 아들.”


어머니의 목소리가 잦아든다. 방금과는 달리 평온한 기색이다.


“엄마는, 항상 널 응원한다. 아들.”


···안 돼.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가지마··· 가지마!


나는 어느샌가 벌떡 일어나 어머니가 있는 문으로 힘차게 달렸다. 원래라면, 뛰기는커녕 걸어 다니기에도 좁기 만한 이 비좁은 자취방이 너무나 넓게 느껴졌다.


이대로, 이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어······! 적어도 가기 전에 말 한마디라도!


영원히 닿지 않을 것 같던 저 현관문도 어느새 이렇게 가까이 와 있다. 이젠, 손 만 뻗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어.


기다려 엄마. 제발. 제발······.


···사랑한단다.


“안돼!”


나는 비명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운 침대 한편에 쌓여있던 빈 유리병들이 바닥에 떨어져 크게 부딪히며 여기저기로 굴러다녔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꾸던 꿈 따위는 금방 잊어버린다고 누가 말했던가.


아직도 손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듯 서 있던 현관이, 유리창으로 어렴풋이 비춰지는 어머니의 형상이 이렇게나 선명한데.


멍하니 눈 앞에 아른거리는 현관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역시, 손에 잡히진 않는다. 지금 이순간이 꿈이고, 방금 꾼 꿈이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문고릴 잡으려 휘젓는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한기가, 손끝에 스치는 침대시트의 부드러운 촉감이 알려준다.


내가 진실로 살아가는 곳은 바로 이 곳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잡히지 않는 문고리를 잡으려 애쓰며 그 사실을 절절히 느꼈다.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이 눈가가 시큰거리지만, 눈물이 흘러내리는 일은 없었다. 3년 전의 갓 전역한 백수 한시준이라면 몰라도 이세계에서 구르고 아프고 깨지며 살아 온 시준은, 이런 일에 눈물 흘리기엔 너무 훌쩍 커버렸다.


그저, 이렇게 커버린 나에 대한 안타까움만이 있을 뿐. 이러는 와중에도 세상에 단련된 이성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 내게 주변상황을 살펴 볼 것을 요구했다.


어느새 시큰 거리던 눈가가 잠잠해지고, 나는 전보다 조금은 더 삭막해진 시선을 주변으로 돌렸다.


내가 있는 곳은 어딘가의 병실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1인실. 그저 하얀색 벽으로 둘러쌓인 방에 침대하나 놓여있을 뿐이지만, 덮고 있는 이불에서 씁쓸한 약초 냄새가 맴돌았다.


한 밤중인 듯, 사위는 어둠과 적막에 잠겨있었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여전히 바닥을 굴러가는 유리병 소리만이 또렷이 들려왔다.


나는 차분히 기다리며,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방금 전 내지를 비명소리와 유리병 구르는 소리만으론 오밤중의 적막을 깨기에 부족했던 모양이다. 밤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비명소리를 먹고는 침묵으로 그것을 가렸다.


아무래도, 역시 아무도 안 오려는 것 같다. 다시 몸을 침대위로 붙인다.


“···윽.”


눕자마자 등짝에서 은은한 통증이 느껴진다. 영락없이 화살 맞고 뒈진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아픈걸 보면 어찌저찌 살긴 살았나 보다.


나는 그제야 작은 안도감을 느끼며 긴 숨을 내쉬었다.


불과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등 뒤로 따라붙던 개 짖는 소리가 선명할진데, 그 소리는 어디가고 오직 고요한 적막만이 방에 흐른다.


“···후우. 역시 아무도 안 오나?”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얼마나 크게 다쳤는지는 모르지만 무려 화살이 쳐 박힌 몸이 아닌가.


괜히 이리저리 돌아다닐 바에는 가만히 누워있는 편이 백배는 나으리라.


···그리 생각했었는데.


꾸르르르르륵- 꼬록···


아무래도 이 놈의 배때지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가 보다. 그러고 보니 의뢰 당일 아침에 가볍게 빵 두세 개 먹은 걸 제외하곤 뭘 먹질 못했다.


그래놓고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고, 화살 쳐맞고 골골대며 누워있기까지 했으니.


어째 도통 빠지질 않던 볼살이 쪽 빠진 것 같기도 하고······.


꼬로로로로로록- 꼬르르륵- 꼬륵- 꾸륵······.


아, 씨발. 이러다 배고파 뒤지겠다. 화살 쳐 맞은 부위가 악화되든 말든, 일단 당장이라도 뭘 먹어야 좀 살 것 같다.


얼마나 심하게 다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못 움직일 정도로 심하게 다치진 않은 것 같다.


좀 움직였다고 증상이 악화될 정도면 진작 아파서 떼굴떼굴 구르고 있지 않을까? 지금 등짝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그렇게 심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짧게 쉼 호흡 한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방에 별다른 먹거리가 보이지 않으니, 직접 바깥에 나가볼 생각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한 걸음 씩 내딛어 보았지만, 역시 등이 좀 욱신거리는 걸 제외하면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안심하고 방을 나서기위해 방문으로 다가갔다. 일단은 문을 살짝 열어 바깥이 어떤 상황인지 좀 알아볼 요량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문이 안 열린다?


“이 시발?”


뭐지? 사람이 몇 일 굶었다고 이렇게나 허약해지나? 방문짝 하나 못 열만큼?


혹시나 문이라도 잠겨있나 싶었지만, 애초에 이 문에는 문고리라고 할 게 없었다. 그럼 바깥에서 빗장이라도 걸어놨나?


···그것도 아니다. 힘을 주고 계속 밀자 어느 정도 밀리긴 한다.


뭔 문짝을 이렇게 무겁게 만들어 놨나? 이제 보니, 이거 통짜 나무로 만든 문이다. 그리고 벽은··· 통째로 커다란 돌덩어리?


여기, 대체 뭐하는 곳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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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문을 열자 곧게 뻗은 복도와 방금 나온 방과 비슷하게 생긴 방 여러개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바깥도 방 안처럼 불 한점 없이 어두울까 싶었지만 다행히 벽에 일정 간격으로 촛대가 놓여져 있었다.


“근데, 여기 진짜 뭐냐······.”


처음에는 어딘가 이세계 병원의 흔한 모습인가 싶었지만, 아무리 이세계라도 그렇지 방문짝을 저따구로 크게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나?


거기다 뭔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보니 어렴풋이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벽이랑 방문이 지랄맞게 두꺼워서 그런지 잘 들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디 만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이세계 마법고문실험실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 곳에 온지 벌써 3년은 훌쩍 지나갔는데도 여전히 바닥에서 빌빌 기는 빈민신세를 못 벗어나고 있다.


직종이 직종이다 보니 입고 다니는 것들은 삐까번쩍- 그럴 듯하게 생긴 우리 세계로 따지자면 한 벌에 몇 십만 원 짜리 명품 정장이지만.


입고 있는 옷이 명품 정장이면 뭐하나? 박스 뒤집어 쳐 자고 컵라면 쳐 먹고 있는데.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안 좋았더라면 거리 어디에선가 객사할 팔자였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고작 실험체 따위한테 그 비싸다는 포션에, 냄새만 맡아도 비싼 것 같은 약초에, 보드라운 붕대까지 돌돌 감아주나?


아닌 말로 일어나면 어딘가의 커다란 공동 병실에서 급하게 싸구려 약초로 빻아 만든 약이나 발라주고 나무껍질처럼 거친 누런 붕대하나 덜렁 감겨있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 처치는 살아생전 받아 본적 없는 호사지 않는가?


결정적으로 아까부터 주변을 맴도는 훈풍과도 같은 따스한 기운들.


사실 이 기운들 때문에 여기가 안전한 곳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배고프다고 병실바깥을 기어나갈 생각을 하게 해준 것이기도 하고.


꼬르르르르륵-


아. 씨발, 모르겠다. 안전한 것 같으니 이리 돌아다녀도 탈은 없겠지. 배고파 죽겠는데 이 이상 대가리를 굴리는 것도 큰 손실이다.


그렇게 주린 배를 부여잡고 복도를 어적어적 걸어가기를 10여분, 드디어 이 빌어먹게 긴 복도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나마 정상적으로 생긴 얇은 문이었다. 그래, 이게 문이지. 저따위로 통나무 가져다가 붙혀놓은걸 문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지 않는가.


···그런데 설마, 이거 잠겨있는 건 아니겠지? 아 씨, 배고파 죽겠는데······.


그리 생각하며 문으로 다가가던 중.


끼이이익······.


낡은 경첩이 삐걱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스르르 열리고, 한 손으로 문고릴 잡고 다른 손으로는 타오르는 작은 등불을 든 채 들어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찬란한 황금빛 머리칼과 입고 있는 보라색 법복만은 눈에 확 들어왔다.


아무래도 들어온 이는 사제인 듯싶었다. 그것도 꽤나 높은 신분의 사제.


나는 그 남자를 처음 보았음에도, 어쩐지 드는 경건한 마음에 감히 고개를 들어 올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신비한 인물이었다. 단순히 그가 들어온 것만으로도 복도 전체의 공기가 휩쓸려 변한다. 이전까지의 온기가 겨울날 피워낸 작은 성냥불만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이 온기는 마치 완연한 봄의 꽃향기와 같다.


온 평생 얼어붙어 있던 내 몸에 갑작스레 불어 닥친 훈훈한 봄바람, 그는 마치 봄바람과 같은 사람이었다.


따스한 바람에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던 몸이 녹자, 나는 마치 모든 게 낯낯이 까발려진 벌거숭이가 된 것만 같아 더욱 공손히 고개를 푹 숙였다.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키를 쓰고 다니던 아이의 심정이 이러할까. 갑작스레 찾아온 부끄럼에 어찌할 바를 몰라 눈만 뒹굴뒹굴 왔다 갔다 할 때였다.


“···예의바른신분. 본의 아니게 그대의 예의에 무례로 답하고 말았군요.”


남자는 그리 말하며 법복 뒤로 길게 늘어진 후드를 머리에 덮었다.


탁-


그러자, 마치 아까까지 밝게 빛나던 전등의 스위치를 눌러버린 양 공간을 가득 채우던 기운들이 사그라들었다.


“아······.”


갑작스레 불어오던 따스한 봄바람이 그친다. 나는 그것이 기꺼우면서도 안타까워 맥없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다시 한 번, 무례를 용서하시길······.”


그런 내 기색을 알아차린 탓 일까. 남자는 이제 턱 주변부만 어렴풋 보이는 얼굴을 크게 굽혀 왔다.


“아니, 아니. 뭘 또 그렇게 고개를 숙입니까. 뭐 잘 못 한 것도 없는데······.”


주변을 맴돌던 기운이 사라진 것 때문인지, 이제는 그 남자를 대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저 저 남자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좀 불편하게 보일 뿐.


다행히 그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반갑습니다. 저는 아이리스, 베네딕트 아이리스라 불리는 사제입니다. 혹, 성함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네. 저는 시준, 박시준 이라고 합니다. 아이리스 사제님.”

“아! 시준 형제님이셨군요.”


그, 아이리스는 내 이름을 들은 것이 퍽 기뻤던 모양인지 후드로 덮인 얼굴사이로 유일하게 보이는 입이 살포시 웃고 있었다.


입 밖에 보이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의 가식없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 시준 형제님께, 따스한 활력이 감돌길, 레야시여······. ”


아이리스가 그리 말하며 성호를 긋자. 일전에 느꼈던 따스한 기운들이 실체를 이루어 그가 그은 성호 모양으로 정렬하더니, 그대로 내 몸으로 빨려들어가듯 스며들었다.


“이건······?”

“치유의 성력입니다. 형제의 몸이 조금 불편한 듯하여, 약간 손을 써봤습니다.”


그의 말대로 아직까지 은은하게 남아있던 등의 통증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가셨다.


나는 손으로 여전히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가슴께를 슬슬 문질렀다. 따스하고 빛나는 구슬들을 손으로 문지르는 듯 한 느낌. 그저 가까이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마음 속 어딘가에서 깊은 감동의 파문이 일어난다.


이게 신성력이구나······.


“성력을 처음 받아보시는가 보군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려퍼지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네······.”

“그 소리를 잘 기억해주세요. 모든 걱정과 근심, 불안과 공포는 자기로부터 비롯되는 것, 이를 어떻게 다스릴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언제 부터일까? 분명 전 까지만 해도 문 바깥에 서있던 아이리스가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내 앞에 서있었다.


“의지로 이겨내든, 인내로 참아내든, 신에게 매달리며 구원을 바라든, 악마의 꾐에 넘어가 그것에 잡아먹히든. 중요한 것은 그대가 무엇을 선택하였고, 어떤 행동을 하였는가입니다···. 형제의 마음속에 어떤 근심이 있는지는 모르나, 영혼을 구하는 것은 일의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있나니. 부디 그릇되고 삿된 것을 피하고 항상 올바름만을 따를 수 있기를······.”


그리 말하며, 그는 짧게 성호를 그었다.


“···아쉽지만,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여기까지 인가봅니다.”


“네?”


그가 한 말의 의미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문 너머로 여러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도 촛불을 들고 있는 듯, 살짝 열린 문 틈새로 일렁이는 불빛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희의 다음 만남은 보다 가깝고, 친밀한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당신께 레야의 축복과 인도가 항상 따르기를······.”


벌컥-


그의 말에 대답할 새도 없이 활짝열린 문으로 일단의 하얀 법의를 입은 사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깨어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레야께 감사의 기도를! 무사하셔서 정말 기쁩니다!”

“아니, 벌써부터 이렇게 돌아다니시면 어떻합니까? 어서 돌아가세요!”


아··· 이 무슨, 혼란스러움이란 말인가. 왜 이리 호들갑 떠는지 모르겠다. 그리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 여러분 잠시. 먼저 저랑 대화하시던 분이 계시니까, 그 분하고 대화만 마무리 짓고 얘기 합시다···. 엉?”


분명히 아까전만 해도 내 눈앞에 서있던 신비로운 남자가 사라져버렸다?


“이런, 역시 아직까지 몸이······.”

“환각을 보시는 것 같은데, 독이 너무 퍼져버린 걸까?”

“안되겠다. 잡아!”


그와 함께 슬금슬금 내게로 다가오는 하얀 사제들··· 아니, 두 팔을 걷어붙이니 하얀 법의 밑으로 구릿빛 탄탄한 팔 근육이 보였다.


시발, 사제라며? 과장 안 보태고 팔뚝이 무슨 내 다리만 한데, 저게 어딜 봐서 경전이나 만지작거리는 성직자들이라 할 수 있겠나?


“아니, 진짜 방금까지 있었는··· 잠깐, 잠깐!!!”

“반항하지 마십시오!”

“반항하는게 아니라, 악! 아파서 그런다고!!!”

“현세의 아픔은 잠시일 뿐이나, 영혼의 안녕은 영원할 것입니다. 형제님. 포기하시고 그저 몸을 맡기시지요.”

“뭣들하나? 어서 끌고 가!”


“으아아악! 사제 놈들이 사람 잡네!”


내 연약하기 짝이 없는 하얀빛 근육으론 저 헬스 10년차 알짜배기 근육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나는 간단히 제압당하여 그대로 온몸을 붕대로 묶인 채 방에 쳐 박혔다.


꼬르르르르륵-


그런 와중에도, 배는 계속해서 고팠다···. 계속···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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