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사람인듯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던전 탐험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사람인듯
작품등록일 :
2020.11.16 20:21
최근연재일 :
2021.01.07 19:3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5,740
추천수 :
135
글자수 :
281,675

작성
20.11.23 14:05
조회
167
추천
5
글자
13쪽

8화

DUMMY

때는 이른 아침, 나는 오랜만에 느지막이 일어나 간만의 아침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이른’아침인데 ‘느지막이’ 일어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가? 모든건 상대적인 법.


매일같이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서 여기저기 쏘아 다니는 입장으로, 벌써 아침 햇살이 창문을 타고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도 아침밥이나 먹고있는 게 나한테는 느긋함이다.


자, 봐라. 무려 따끈따끈 갓 끓여낸 스프다. 매일 일찍 다니느라 아침밥은 여관에서 주는 딱딱한 호밀빵으로 때우기 일상이었는데, 이걸 탁자에 앉아서 뜨끈한 수프에 푹 담가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호사다.


나는 호밀빵을 크게 떼어내어 수프에 담가두었다. 조금 흐물흐물해지면 먹을 요량이었다.


아, 행복하다. 세렌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서부터, 내게는 중간 중간 이런 여유로움이 생겼다. 천세, 만세, 세렌 만세다.


물론, 내가 그녀에게 키잡질을 당하기로 결심해서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나라는 경계요소를 길드의 의뢰로 제어하고자 했고, 나는 거기에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알아서 나한테 길드차원으로 의뢰를 내려준다는데, 내가 거절할 일이 어디 있겠나? 이제 내가 할 일은 가만히 입 벌리고 서서 떨어지는 의뢰들을 받아먹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에 반해, 내가 짊어져야 할 제약은 길드에서 내려주는 의뢰만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 뿐. 그마저도 세렌이 내가 수행하지 못할 의뢰를 내려주진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니, 별로 어려울 것도 없어 보였다.


만사 내 편한대로만 지나가지는 않겠지만, 걸린 제약에 비해 얻는 리턴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명백히 내게 유리한 제안이었다.


···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예?”


“왜? 무슨 문제있나?


“의뢰가, 좀 많이 잘못된 것 같은데요?”


“뭐가?”


“아니, 그니까···. 대체 이게 뭔 의뢰입니까?”


나는 다시금 내 앞에 놓인 의뢰지를 흘끗 쳐다보았다.


- E급 의뢰(길드 연계 의뢰)

의뢰길드 : 리안

의뢰번호 : 40001

유형 : 호위, 교습

의뢰기간 : 30일이내

소요시간 : 최소 하루 이상 던전 탐색(3회)

집결장소 : ‘리안’의 1층 로비

보수 : 50실버+@(의뢰종료 후 전원생존시 50실버추가 지급, 던전 내 부산물들)

특이사항 : 던전탐색 물품비 지원(최대한도 100실버, 상세한 거래내역 증명서 포함)

상세내용 : 리안의 ‘초보 모험가 지원 정책’에 따라 마련된 프로젝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총 5명으로 이루어진 모험가 무리의 리더 역할을 맡아서 그들이 던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능력을 총동원하여 신출내기들을 어엿한 던전 모험가로 만들어 주십시오!

※ 신출내기들은 그 왕성한 호기심과 안전불감증으로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해주세요!

※ 중고 침낭 대여 가능!!!


씨발, 나한테 꼭 맞는 의뢰만 시켜주겠다더니. 이렇게 대놓고 엿을 맥일줄은 몰랐다.


제한 조건도 없고, 물품비도 지원해주고, 보수도 두둑-한 삼관왕짜리 예쁜 의뢰로 보이지만 속으면 안된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의뢰는 모험가 길드 연계 퀘스트 중 좆같기로는 탑5정도에 드는 무지막지한 녀석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마음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렌은 천진한 얼굴로 아부성 멘트를 날려 왔다.


“무려 E급 의뢰야! 이젠 제법 끗발 좀 날리겠는데?”


나이는 나보다 십 수살은 더 많은 사람이 저리 가증스럽게 굴다니. 아무래도 그녀는 꼭 이 일을 하게 만들 생각인가보다.


나는 급히 입을 열었다.


“음, 이건 명백히 제 능력 밖의 의뢰······.”

“아 맞다! 다른 의뢰들도 보여줘야지, 잠시만 기다려봐.”


세렌은 미리 준비한 것이 틀림없는 의뢰지 다발을 품속에서 꺼내 흔들었다.


G, G, G, G, gee···.

의뢰지에 붙어있는 G급 마크가 한국의 모 아이돌 걸그룹 노래 마냥 나폴거린다······.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찬찬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이런 시발.


“···선택지는 개뿔이, 선택지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니 앞에있는 그걸 골라서 하면 되겠네. 뭐가 문제야?”

“저 F급 모험가입니다? 제 어딜 믿고 던전탐색의뢰를, 그것도 호위임무를 맡깁니까?”

“아, 걱정하지를 말어. 아무렴, 내가 널 믿고 이런 의뢰를 주겠니? 다~ 나를 믿고 내준거란다. 그러니 안심하고 의뢰를 수행하기만 하면 돼!”


나는 인상을 구기며 눈앞에서 얄밉게 생글거리는 노움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리 노려본다고 이 상황이 해결될 일도 아니었던지라, 결국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수밖에 없었다.


“내 팔자가 그러면 그렇지······.”

“임마, 그리 기죽지말어. 이거 무려 승급의뢰야. 이번 의뢰만 성공적으로 끝마치면 너도 이제 어엿한 E급 모험가가 될 수 있다니까?”

“당연히 승급의뢰겠죠···. 이거 원래는 E급모험가들만 수행할 수 있는 임무잖습니까.”

“사내자식이 왜이리 혓바닥이 길어? 계속 투덜댈 거면 G급의뢰나 받아가던지?”

“하······.”


아무리 좆같은 의뢰라고 해도, 세렌의 손에서 팔랑거리는 저 폐기물들을 의뢰랍시고 받을 수는 없었다.


나는 결국 눈 앞에 놓인 의뢰지를 고이 접어 품 속에 집어넣고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정보나 조금 더 주시면 안 됩니까? 같이 모험할 놈들 인명부라던가, 성공 조건 같은것들······.”

“안 그래도 준비해놨지.”


그러면서 그녀는 또다시 품속에서 종이다발을 꺼내었다···. 품도 작으면서 저런 건 다 어디서 나오는 거야?


“자, 각각 인명부, 탐색시 필수 필요물품, 탐색 추천 코스, 던전 저층에 관한 정보다.”

“참, 미리 준비라도 한 것 마냥 준비성이 철저하시네요? 제가 이 의뢰 안 받았으면 어쩌시려고.”

“그랬으면 넌 내일부터 밤마다 쓰레기나 주우러 다녔겠지. 안 그래?”


···아무래도 이 노움을 말빨로 이겨먹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나는 그녀를 다시 한 번 쏘아보고는 그대로 종이다발을 챙겨 길드를 나왔다.


“건투를 빌어~~~”


가는 길에 들린 그녀의 응원소리는 덤으로 챙기고 말이다.


----------------------------------------------------------------------


그렇게 강제적으로 의뢰를 받아들인 후 며칠이 흐른 뒤, 나는 던전을 본격적으로 탐험하기 전에 팀원들과의 간단한 식사자리를 마련했다.


당연한 일이다. 미리 합 한번 안 맞춰보고 생판 남끼리 갑자기 던전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겸사겸사 친목도 다질 겸, 탐험 준비라도 할 겸 모처럼의 섭외력을 발휘해 마련한 자리였다.


바로 불러낸 것도 아니고 길드를 통해 사전에 간단한 미팅자리를 열 것이라고 편지까지 보내 놓았으니, 최소한의 대가리가 있다면 당연히 참석할 것으로 보였다.


···분명, 그래야 할터였다.


댕- 댕- 댕-


점심을 알리는 괘종시계의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습관적으로 괘종시계의 바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시계의 바늘은 정확히 1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본래라면 이미 저 종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맛있고 적당한 가격으로 유명한 이 가게의 음식을 양껏 먹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 담소도 나누고, 감정을 주고받는 일들이 벌어졌겠지.


그 뒤엔, 어디 바깥이라도 잠시 나가서 서로 합을 맞춰보고 오후에는 가게를 순회하며 탐험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다니지 않았을까?


그러나 괘종시계의 종소리가 전부 울려 퍼지고 나서도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오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군수군-


“아니, 저 사람은 뭔데 저 큰 탁자를 혼자 차지하고 앉아있는 거야?”

“누군 자리 없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 이봐요. 저 자리로 가서 앉으면 안 됩니까? 저기 자리가 비었잖소!”

“저, 손님. 저 자리는 저 분이 미리 예약하신 자리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 참나. 돈 많다고 자랑 질이라도 하는 거야 뭐야?”


푹-


수치스러움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가게에서 혼자 떡하니 테이블하나 잡고 앉아있으니, 주위에서 온갖 종류의 시선과 말이 날아온다.


“···씨발.”


닥쳐온 수치심에 결국 내뱉는 것은 욕설뿐이라···.


그러는 사이에 자리가나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항의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고, 결국 다른 손님들의 성화를 못이긴 종업원이 조심스레 테이블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지금이라도 나가야하나? 아니, 잘못한 건 안 온 놈들이 잘못인데,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하지?


갈팡질팡 하던 사이 어느새 코 앞까지 다가온 종업원이 내게 말을 걸기 직전, 식당의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명백히 초보자로 보이는 세명의 모험가가 가쁜 숨을 내쉬며 들어왔다.


그들은 누군가를 찾는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더니 금방 나를 발견하곤 거의 뛰듯이 내 테이블로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이 근방 지리가 익숙하지 않아서······.”

“미안하네. 일찍 나선다고 했는데, 이리 오래 걸릴 줄은······.”

“미안해! 오늘이 아니라 내일인 줄 알았지 뭐야.”


음, 오자마자 변명부터 쏟아내는 걸 보니, 파티원들이 맞긴 한 모양이다.


“진정하시고, 일단. 음료나 드시면서 숨이나 좀 돌리시죠.”


나는 갑작스레 들이 닥친 세 사람 때문에 순간 놀라 얼어붙은 종업원에게 음료를 주문하였다. 그러자 종업원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원래부터 주문을 받으려고 왔던 것처럼 자연스레 펜과 주문지를 꺼내며 능숙하게 주문을 받아들곤 자리를 떠났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프로정신 이지 않는가.


그에 반해, 이 프로는커녕 아마추어수준도 못되는 것들은···. 무슨 말을 하겠나? 구구절절 쳐 늦은 이유를 설명해봐야 구질구질해 보일 뿐이란 것을 저들은 너무 잘 아는 모습이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슬슬 눈치를 보는 꼬락서니에, 나는 절로 지끈거리는 눈두덩을 슬슬 문지르며 먼저 말을 꺼내었다.


“뭐··· 좀, 많이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오셨으니 참 다행입니다. 사실 방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의뢰 때려 칠까 생각도 했었거든요.”

“······.”

“그나저나, 다른 한 분은 어디계신지 혹시 알고 계신분 있으신가요?”


그러자 세 명 모두 고개를 돌려 지들끼리 쳐다봤다. 모르겠다고 한마디 하면 될걸, 아직까진 말하기에 눈치가 보이는 것 같다.


그래도 기대해봤는데, 역시나 모두 한 자리에 모이길 바라는 건 무리였나 싶다.


“어쩔 수 없죠. 없는 사람은 알아서 준비하는 수밖에요. 자, 그럼 다들 배고프실 테니, 식사나 한 끼 하면서······.”

“저······.”


여태껏 말 한마디 없다가 밥 먹자는 말에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했다. 산만하게 흐트러진 더벅머리에 어딘가 흐리멍텅 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뭘 물어보려기에 저리 태도가 조심스러운지는 알 수 없지만, 괜찮다. 계속 눈치나 보고 있는 것 보다야 몇 배는 더 나을 테니까.


“네, 성함이··· 빈씨 였던가요? 뭐, 궁금하신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그, 뭐하나 알고 싶은게 있는데······.”

“뭐든지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제가 이래봬도 던전 탐험 경력만 10번이 넘어가거든요. 웬만한 건 다 대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아, 거 답답해죽겠네. 물어보고 싶은게 뭔데? 내가 답답함을 담아서 지긋이 쳐다보자, 빈은 우물쭈물 하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혹시, 여기 밥값은 어떻게 됩니까?”

“네?”

“그게, 제가 수중에 가진 돈이 별로 없어서······.”

“···혹시, 다른 두 분도?”


그러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 오는 두 사람······.


이런 씨발. 내가 이런 거지새끼들이랑 같이 던전 탐험을 3번이나 해야한다고? 그것도 팀장으로?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큼,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래 준다면야······.”

“메뉴판! 메뉴판 가지고 와!”


사주겠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쁜 표정으로 재잘재잘 떠들어오는 세 사람을 보며, 나는 연신 눈가를 문질거렸다.


분명 눈에 뭐가 들어간 것도, 아픈 것도 아니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지끈거리는지.


참으로······. 좆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던전 탐험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18화 20.12.03 95 2 18쪽
17 17화 20.12.02 85 3 16쪽
16 16화 +1 20.12.01 85 3 15쪽
15 15화 20.11.30 91 2 18쪽
14 14화 20.11.29 93 4 15쪽
13 13화 20.11.28 93 4 15쪽
12 12화 20.11.27 105 3 15쪽
11 11화 20.11.26 119 3 14쪽
10 10화 20.11.25 132 3 14쪽
9 9화 20.11.24 145 3 14쪽
» 8화 20.11.23 168 5 13쪽
7 7화 +2 20.11.22 210 4 15쪽
6 6화 20.11.21 232 6 18쪽
5 5화 20.11.20 235 7 17쪽
4 4화 20.11.19 258 5 14쪽
3 3화 20.11.18 316 5 14쪽
2 2화 20.11.17 449 7 14쪽
1 1화 +1 20.11.16 803 1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