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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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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625
추천수 :
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6.01 22:27
조회
237
추천
2
글자
12쪽

1화

DUMMY

영주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크기인 집은 누가 봐도 으리으리하다. 건물 자체는 어두운 계열로 지어졌다. 넓은 정원과 마당에는 풀들이 잘 관리되어 있다. 정문과 후문의 창살 앞에는 왕국의 병사들이 근엄하게 지키고 있다. 둘러싸고 있는 정교한 회색 벽돌로 지어진 담은 사람 키보다 높아 누가 봐도 안이 잘 보이지 않게 설계되었다.


딱 봐도 수상쩍은 이 건물에는 표면적인 주인이 존재한다. 국왕의 소유로 병사를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세웠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안쪽은 그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는커녕 그것들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다.


이 층 중앙에 위치한 큰 방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손님용 의자에 앉아있는 다니엘레는 정면에서 비쳐오는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차에 손을 가져다 대는 그의 팔은 분명 두껍지는 않지만, 단련을 꽤 한 듯 잔 근육이 자리 잡고 있다.


향이 좋은 차와 적당히 달콤한 과자. 비싼 값을 하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으며 그는 평화를 느꼈다. 문제 될 건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시선을 돌려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루치아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눈을 맞췄다.


열아홉인 다니엘레와 동갑인 그녀는 갸름한 턱과 큰 눈이 인상적이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빛이 났다. 포니테일의 머리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귀여운 인상의 그녀와 굉장히 잘 어울렸고 차분한 인상을 심어준다.


“여유롭네요.”


“뭐, 그렇지 않은 적이 있긴 했나?”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그는 꼬던 다리를 바꾸었다. 그녀는 멍하니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햇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부드러운 선의 얼굴형이며 눈은 맑았지만, 어느정도인지 모를 정도로 깊이가 있어 보인다. 날렵한 코를 가졌지만, 멋들어지게 뒤로 넘긴 머리와 함께 전체적으로 미소년 쪽과는 다른 쪽의 미남형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성격이 잘생긴 외모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니엘레 선배는 좋겠네요. 곧 대주교직도 다시고.”


여전히 대답은 무심했다.


“나 말고 할 사람이 어디 있다고. 루치아, 너는 별 얘기 없냐?”


“아직 들은 바가 없어요. 오시면 여쭤봐야죠.”


“그래.”


대화가 끊기고 그는 만지작거리던 과자를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빨리 저 위까지 올라가서 나도 몸 쓰는 일 좀 그만하고 쉬어야지. 솔직히 너무 늦게 진급한 게 아닌가 싶은데.”


“그렇기야 하죠···.”


무슨 주제로 대화를 이어갈까 하던 루치아는 당돌한 그의 말에 무덤덤하게 답했다. 시건방져 보이는 말이었지만, 그녀는 그런 다니엘레의 말투를 좋아했다. 정확히는 그의 자신감을 좋아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오는 확신을.


다니엘레에 대한 그녀가 내린 정의는 극단적인 능력주의다. 그런 성향을 가질만한 가치를 지니기도 했고 그녀 자신도 그쪽 성향이었기에 이곳에 와 지낸 지 얼마 안 돼서 다니엘레를 동경하게 되었다. 가끔 다른 동료를 멸시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었지만.


그런 그에게 대주교 자리는 떼놓은 당상이었다. 견줄 사람도 없었거니와 애초에 교황이 직접 발굴해 애지중지 키운 인물이었으며 얼마 되지 않은 이 단체에 들어온 첫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다니엘레의 고역한 성격을 싫어했지만, 동시에 능력만큼은 인정해 기정사실 된 이야기다. 그녀는 새삼 존경하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밀림과도 안녕이네요. 좋으시겠어요.”


밀림이라는 말에 다니엘레는 무의식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이 비밀스런 단체가 생겨난 원인이자 활동하는 단 하나의 이유. 수많은 소문을 만들어낸 남쪽 끝에 위치한 밀림. 그에게 사명감이나 책임감 같은 건 없다. 그는 그런 사람이 있다 하여도 그 근처에서 한 달만 지내도 질릴거라 확신했다.


“이제는 그쪽 방향으로 쳐다도 보기 싫어. 그 음침한 곳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정신이 돌아버릴 것만 같다고.”


“아마 다 그럴걸요? 그나마 돈이라도 많이 주니 버티는 거지. 이 능력이라도 없었으면 애초에 진실을 몰랐을 텐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 봤다. 그리고 동시에 몸 안에 흐르는 신성력을 느껴보았다. 정확히 신성력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그들은 그렇게 불렀다. 수도원도 아니었거니와 그런 일을 하는 곳도 아니었지만, 신성한 일을 한다는 교황의 의견으로 지어진 말이었다. 루치아는 다시 그를 바라봤다. 존경의 빛이 꺼진 자리에 아쉬움이 채워졌다.


‘가시면 이제 못 보는 건가?’


루치아는 뭐라도 더 말을 붙이려 하는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동시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누군지 확인하자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티아, 조금 늦었네요.”


“안녕하세요, 교황님.”


쉰 살 언저리의 교황은 문을 닫고 천천히 그들 앞으로 걸어왔다. 풍성한 숱을 짧게 친 깔끔한 머리와 주름이 별로 없는 피부가 인상적이고 곧게 편 허리와 꾸준한 관리로 얻은 건장한 체격과 푹 꺼진 볼로 인한 날카로운 인상은 그를 교황이라기보다는 기사단장 정도로 보이게 했다.


“그래, 무슨 얘기들 나누고 있었나?”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마티아는 차부터 따르고선 둘을 번갈아 봤다.


“그냥 뭐, 제 진급에 대해 물어보길래 얘기 좀 나눴죠.”


“부러운 거냐, 루치아?”


“아뇨?”


루치아는 대답해놓고 아차 싶었다. 너무 빠르게 대답해 버린 탓에 오히려 반대의 의미를 전한 것만 같았다. 알면서 모른 체 하는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둘은 그 이야기를 더 이어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얘기는 나중에 나랑 따로 얘기 하자꾸나, 루치아.”


“아니라니까요···.”


마티아는 짓궂게 미소를 보이고는 과자에 손을 가져다대며 주제를 바꾸었다.


“다니엘레, 왜 불렀는지는 너도 알겠지. 이미 소문이란 소문은 다 났으니 말이다.”


다니엘레는 고개를 끄덕이며 불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더 일찍 달았어야 하는 건데.”


“네놈의 그 성격만 괜찮았어도 진즉에 달고 남았어.”


악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마티아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빼더니 그에게 넘겨줬다.


“오늘부터 끼고 다니던지 해라. 이제 나한테는 필요 없으니. 그리고 루치아 너는···.”


마티아는 자신의 주머니 안이 빛나는 것을 보더니 말을 끊었다. 그는 탁자에 놓인 종이 하나를 집는 것과 동시에 주머니에 있는 것을 꺼내었다. 깃털로 만들어진 펜이었다. 깃털은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티아는 펜을 세워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펜은 스스로 살아있는 듯 혼자서 세워진 채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빠르게 쓰여지는 글씨를 같이 보던 다니엘레는 내용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조금씩 자리를 문 쪽으로 옮겼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히. 그는 이제 소파에서 일어나 자세를 낮춰 걸으려는 참이었다.


“다니엘레, 네가 가봐야겠다.”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힘들겠는데···.”


“없는 거 다 안다.”


딱 잘라 말하는 그를 바라보며 다니엘레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털썩 앉았다.


“대충 보니까 밀림에서 누군가 나왔다는 것 같은데.”


“그래, 지금 바로 준비해서 가라.”


“이제 저도 대우 좀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이 친구도 일 잘해요.”


칭찬 따위 하지 않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듣고 루치아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티아는 눈동자만 굴려 그를 흘깃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루치아는 따로 시킬 일이 있다.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다녀와라.”


“약속 지켜야 해요.”


펜을 건네받은 그는 뒷목을 주무르며 마지못해 일어나 나갔다.


“루치아, 너는 라데일 근처에 있는 타람 마을로 좀 가야겠다. 산적이 날뛰는데 거기 마을 병사들로는 버겁다고 하는구나.”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왕국 쪽에 연락하지 않고 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대요?”


마티아는 그저 어색하게 미소 지었고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떠넘긴 거군요?”


“그래.”


하여간에, 라는 표정을 지어보인 그녀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마티아는 왔던 서신을 다시 훑어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뜬금없이 말했다.


“저 녀석만큼이나 너도 머리가 좋지. 신성력도 손에 꼽을 정도로 크고 활용도도 뛰어나고 말이다.”


“네? 아니에요.”


낯간지러운 칭찬에 그녀는 어설픈 반응을 보였다. 마티아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 다녀오면 너도 진급할 거다.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물론 그녀는 자신이 다니엘레를 동경하고 따라가기 위해 열심히 한 것은 분명했기 때문에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 침묵으로 답했다. 그녀는 화제를 돌렸다.


“저···보려고 본 건 아닌데요. 거기서 나온 사람이 멀쩡한 건 처음 아닌가요? 너무 태연한 게 아닌가 싶어서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해도 어찌 됐든 평범하다 하니까요.”


마티아는 기억을 더듬는 듯 시선을 창 너머로 멀리 두었다.


“저 안에 사는 사람을 본 적은 커녕 밀림의 구조조차 모르니 경각심을 가지기에는 무리겠지. 하지만 그렇다 해서 대충 넘어가는 건 없어야 할 일이야. 루치아, 너도 알겠지만, 다니엘레가 저렇게 행동해도 일 처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 않니?”


“그렇죠.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선배만 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래, 금방 돌아오길 바라야겠구나. 그게 아니라면 우린 처음으로 우리의 일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


필요한 물건들만 대충 쑤셔 넣은 작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짊어진 다니엘레는 준비된 말에 올라탔다. 여름의 끝에 내리쬐는 햇빛은 따가울 지경이다. 달리는 말 위에서 미적지근한 바람을 받으며 끈적끈적한 기분 나쁨을 느꼈다.


마을을 빠져나오자 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마을 자체가 교류가 많은 곳이 아니었던 탓에 길이 제대로 닦여있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다닌 경험으로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소파에 앉아 받았던 햇살을 전혀 다른 기분으로 받으며 그는 점점 속도를 올렸다. 그럼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나갔다.


‘말 상태가 나쁘지 않아. 밀림에 있는 지부까지 도달하려면 빠르면 닷새.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바테. 평균적인 보폭이라면 어림잡아 나보다 빠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큰 차이는 아닐 테고··· 내가 빨리 도착해서 따라간다면 늦지는 않겠어.’


계산을 마치며 그는 말의 속도를 더 올렸다.


“어느 마을로 갔을까. 아니, 애초에 마을에 갈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건가? 마을이 어디 있는지 모를 수도 있어. 아냐. 안드레아에게 물어봤을 수도 있겠군. 아니면 먼저 말해줬을 수도 있겠어. 그렇다면 역시 바테인가? 그다음으로 가까운 마을은 먹을 것 없이 가기에는 무리고.”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는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줄여갔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상황들이 오갔다.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린 다니엘레는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 작은 숲으로 들어갔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야영을 준비했다. 모닥불을 피웠을 때, 이미 하늘은 푸르스름해진 지 오래였다.


그는 식사를 잠시 미뤄두고 깃털 펜을 먼저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달려오며 생각해뒀던 질문들을 빠짐없어 적었다. 그가 펜을 놓자 종이에 써진 글자들이 스르르 사라지더니 이내 종이는 다시 백지가 되었다.


펜을 다시 가죽 주머니에 넣은 그는 주변을 대충 치우고 바닥을 평평하게 다진 그는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찜찜한 기분에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이나 뒤척인 뒤에야 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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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화. 19.07.03 49 3 10쪽
25 24화. 19.07.02 5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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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화. 19.06.27 45 2 11쪽
22 21화. 19.06.25 44 3 11쪽
21 20화. 19.06.25 54 3 10쪽
20 19화. 19.06.23 40 3 10쪽
19 18화. 19.06.22 45 3 12쪽
18 17화. 19.06.21 39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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