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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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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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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6.1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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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3화.

DUMMY

전력질주로 뛰어가는 그들 뒤로 불길이 일렁였다. 의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프라이스 가문의 건물은 불타고 있었다. 둘은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며 입을 굳게 닫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일은 그들의 예상 범주를 완전히 빗나갔다.


완벽한 패배. 전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처참하게 깨져버렸다. 다니엘레가 판단을 하기 까지는 일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마티아와 단체 인원들의 신성력을 단번에 부순 그 순간 그는 지체없이 루치아를 끌고 뒤돌아 달렸다.


루치아 역시 충격을 받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니엘레는 마티아가 빠져나갔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걱정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리베리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그는 대충 시간을 어림잡아 계산해봤다.

더미드를 쫓다 돌아올 시간은? 아마도.


‘많아야 이십 분.’


그는 오히려 과대평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데다가 인간의 속도를 뛰어넘는다면 오히려 부족할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말씀하신 거랑 너무 다르잖아요!”


루치아는 숨을 헐떡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그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 이상일 줄이야 알았겠냐?”


쉬지 않고 달린 덕분에 그들은 금방 리베리오의 집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반기고 있었다. 머리칼을 쥔 그는 망연자실했다. 남겨놓았던 최소한의 인원들이 전부 그의 집 주변에 피를 쏟은 채 쓰러져 있었다. 다니엘레는 재빨리 다가가 살아있는지 한 명 한 명 확인했다.


“이건 또 무슨 개같은 상황이야?”


혹시나 싶었다. 하지만, 두 명 세 명 확인할수록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나같이 칼로 그어진 손등의 표시. 그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전에 울리세에게 해줬던 이야기.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던 이름이 이제야 떠올랐다.


“그게 너였냐?”


어처구니를 넘어 말도 안되는 지금의 상황이 어이가 없어 그는 실소를 흘렸다.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선배, 여기!”


루치아는 쓰러져 있는 사람의 상체를 받쳐 들고 있었다. 미약하게 가슴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아직 살아있었다. 다니엘레는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갔다.


“파비오.”


“······다니엘레님, 그 자입니다. 동명이인이 아니었습니다. 우욱···.”


파비오는 눈알이 반쯤 뒤집힌 채 피를 토해냈다. 불규칙적으로 헐떡이는 호흡은 금방이라도 멈출 기세였다. 파비오는 피로 젖은 손을 뻗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신성력을 묻혔으니 쫓을 수 있어요. 저기, 저쪽으로······.”


뒷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호흡을 내뱉지 못하고 계속 들이마시더니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루치아는 눈을 감더니 그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다니엘레의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그는 입을 꽉 문 채 일어섰다.


“가자.”


피를 씻을 틈도 없이 둘은 파비오가 알려준 방향으로 내달렸다. 쉬지 않고 한참을 내달렸음에도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젠장!”


“어떡할까요?”


홧김에 나무를 발로 찬 다니엘레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루치아는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집중해 느껴보려 했지만, 역시나 실패했고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뱉었다. 어느 하나 성공한 것이 없다.


“주변을 밝혀도 너무 늦겠어. 돌아간다. 일단 마티아를 만나야겠어.”


***********************************


작은 램프 하나는 오두막을 전부 밝히진 못했지만, 앉아있는 그들의 얼굴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은 서로 침묵을 고수했다. 분노를 삭이거나 초조해 하거나 제각각이었다. 침묵 안에서 다니엘레는 전부터 계속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티아, 혹시 한 몸 안에 영혼이 두 개가 들어있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침묵을 갈랐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심상치 않은 질문에 마티아는 기억나는 것을 모두 헤집었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그렇다는 얘기더냐?”


“헤어지기 전에 악수를 했죠. 오히려 확 느껴지니까 긴가민가하더군요. 그 알 수 없는 이질감이 아직도 느껴져요. 밀림에 저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다니엘레는 악수를 했던 손을 내려다봤다. 마티아도 그의 시선을 따라 그것을 바라봤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더미드가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끼어들었다.


“지금 이게 다 무슨 얘기지? 영혼이 두 개라니?”


“저희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밀림에 무언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금 놈이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영혼에 지배당한 것일 수도 있다?”


굳은 표정으로 마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일 뿐입니다. 확신하기엔 이르지요.”


무어라 더 말하려던 더미드는 다시 삼키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일어난 일들 모두가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였다. 눈을 감은 채 계속 생각하던 마티아가 기사단장을 돌아보았다.


“허버트 씨, 여기서 가까운 후미진 마을이 어디에 있나요?”


침묵을 깨는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기사단장 허버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답했다.


“코르 마을이오. 여기서 대략 이틀 정도 걸립니다.”


“거기로 갑시다.”


더미드는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고 마티아는 검지를 세워 탁자에 위치를 짚으며 설명했다.


“남은 병력과 함께 용병을 모집해 거기서 매복할 겁니다. 남은 우리 쪽 인원도 모두 데려올 거고요. 수도에 사람을 풀어 우리가 어디로 갔다라고 정보를 흘려 그를 끌어들인 후 다시 한번 잡겠습니다.”


허버트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전과 다를 바 없는 계획입니다. 분명 실패할 텐데.”


“이번에는 체력전으로 갈 예정이오. 일이 이정도까지 벌어졌으니 소문을 피하기란 어렵다고 봐야합니다. 더미드님과 저는 왕가에 연락 울리세를 신원 미상이라 말하고 일급 수배자로 지명해 달라는 것과 함께 큰 현상금을 걸고 대대적으로 퍼트린 후 울리세가 코르 마을로 갈 때, 그의 위치를 뿌리는 거요.”


“모르겠군. 그 방법 말고는 없습니까?”


마티아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선 시간을 고려한다면 이게 최선일거요. 너희 둘은 그 시간동안 리베리오를 쫓아 잡아야해. 그게 핵심이야.”


더미드가 기분 나쁜 목소리로 물었다.


“내 생각엔 그 말은 우리가 시간 벌이용 미끼가 된다는 얘기 같은데?”


“만약을 대비한 일입니다. 리베리오를 잡아 납치한다면 일은 쉽게 풀릴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그를 잡으려 한다면 몰살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저희야 상황 보고 빠져나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말을 들은 더미드는 헛웃음을 보였다.


“당신, 생각보다 악랄하군. 그렇게 쉽게 같은 편을 버린다고 말하다니 말이야.”


말은 하지 않았지만, 루치아도 마티아의 말에 흠칫 놀랐다. 하지만, 다니엘레는 그의 말에 납득이 가는 표정이다. 버려야 한다면 버려야 하는 것이 옳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마티아는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더미드님은 저 애들과 함께 가시죠.”


“아니, 난 그 자식 잡는 걸 내 눈으로 봐야겠어.”


“안됩니다.”


마티아는 단칼에 거절했다. 완고한 그의 표정에 더미드는 자존심이 상해 그를 쏘아보았다.


“모습을 드러내봤자 좋을 것 없습니다. 폭주해버린다면 위험할 겁니다. 그래서 아까도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한 거고요. 게다가 저들과 함께 가는 게 가장 안전할 겁니다. 그가 노리는 것은 더미드님이니 최대한 거리를 벌려 어디 있는지 모르게 해야 다른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 맞습니다, 주인님.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다니엘레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시선은 이제 그에게로 옮겨졌다.


“좋은 계획이긴 한데 제 생각엔 둘이 다시 만날 거라 생각하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방법이 없을 텐데요.”


마티아는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매만졌다.


“우리에게 올 때는 혼자 올 거다.”


다니엘레는 말 없이 그가 더 말해주길 기다렸다.


“수도원에서 들은 얘기로 동생을 끔찍이도 아꼈다고 하더구나. 거기에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싸움터에 따라오게 할까?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티아는 그의 뒤에 있는 벽난로에 시선을 던졌다. 자주 드나들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벽난로 안에는 쓴지 오래된 나무만이 남아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니 일단은 리베리오를 쫓는 걸 최우선으로 하고 만약 둘이 함께 있다면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하면 된다.”


“만약 둘이 같이 온다면 어떡하죠?”


루치아는 만약에 대한 답을 물었다. 마티아는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을 때는 다니엘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그렇다거나, 이번 일도 실패한다면 지체없이 그곳으로 가거라.”


이야기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마티아는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지금 당장 출발하거라.”


더미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티아는 천천히 자신의 목걸이를 풀어 그에게 건넸다. 일순간 다니엘레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껏 한 번도 요동하지 않았던 그의 눈빛이. 목걸이를 건네는 의미를 그는 모르지 않았다. 더미드에게 아니라고 했지만, 마티아는 자신이 미끼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한 것이다.


그는 한참을 마티아의 손을 내려다봤다. 받아야 한다. 이게 최선임을 그는 안다. 하지만, 손이 가지 않는다. 다니엘레는 시선을 올려 그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마티아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아주 조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


목걸이를 주머니에 넣자마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루치아를 내려다봤다. 루치아 역시 목걸이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기에 한껏 어두워진 표정이었다. 다니엘레는 리베리오의 정체를 말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울리세에게 느껴졌던 두 개의 영혼이 떠올랐지만, 아무래도 시기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 그는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갑니다.”


“···그래.”


“주인님, 조심하십시오.”


오두막을 나온 다니엘레는 파비오가 일러줬던 방향을 가늠했다.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리며 그는 리베리오가 어디로 갔을지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떠올렸다.


“갈 길이 바쁘니 힘들어도 참으쇼.”


주머니에 손을 넣어 목걸이를 만지며 그는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걸음을 뗐다.


“야, 너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난 너랑 같은 위치의 사람이 아니야.”


불량한 자세로 돌아본 다니엘레는 그를 내려다봤다.


“그래서? 우린 그냥 같은 배 탄거야. 그것도 대포 한 대 얻어맞은 상황이라고.”


“뭐, 말 다했어? 너 어디 집안이야!”


“고아다, 새끼야. 하여튼 나는 비위 맞춰 줄 생각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그는 뭐라 한마디 더 쏘아붙일 것처럼 굴었다가 이내 돌아서더니 먼저 앞서 나갔다. 더미드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대응에 뭐 이런 정신 나간 놈을 다 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루치아는 상황을 진정시키려 하다가 그냥 더미드에게 쓴웃음를 보이고는 다니엘레의 옆으로 다가갔다.


“나빠져 봐야 좋을 것 없잖아요.”


“난 잘 모르겠다.”


“네? 당연한 거잖아요.”


그는 힘 빠진 얼굴로 그녀를 슬쩍 쳐다봤다.


“이 정도면 그를 잡는데 명분이 서는 걸까?”


“그게···무슨 말이에요?”


“······아니야, 아무것도.”


방금 말한 것을 후회한 그는 화제를 돌렸다. 더미드는 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그를 뒤에서 노려만 보고 그들의 대화에 끼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침착하네?”


“그럴 리가요. 그냥 그럴 여유가 없을 뿐이죠.”


숨을 거둔 동료들을 다시 떠올리자 그녀는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니엘레는 문득 불타고 있는 건물 쪽을 바라봤다. 아득하게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왜인지 머릿속이 맑아진 기분이다.


꽤 걸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자, 다니엘레는 고개를 뒤로 돌려 사무적으로 물었다.


“여기로 가면 어디가 나오지?”


“절벽.”


“뭐?”


짜증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귀 먹었나? 절벽이라고. 물소리도 안 들려? 나가려면 왼쪽으로 돌아야 한다.”


“그럼 너는 벙어리냐? 주둥이 닫고 왜 말을 안 해?”


“뭐······.”


다니엘레는 급하게 손가락 세워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웅엉거리다시피 작은 목소리로 루치아에게 말했다.


“···너도 느껴지지?”


“가까워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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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화. 19.06.25 43 3 11쪽
21 20화. 19.06.25 53 3 10쪽
20 19화. 19.06.23 39 3 10쪽
19 18화. 19.06.22 44 3 12쪽
18 17화. 19.06.21 38 3 10쪽
17 16화. 19.06.20 44 3 11쪽
16 15화. 19.06.18 5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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