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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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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604
추천수 :
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6.20 00:43
조회
44
추천
3
글자
11쪽

16화.

DUMMY

붉게 탄 하늘에 비춰진 프라이스 가문은 더욱 음침했다. 겨우 불을 끈 자리는 까맣게 타버린 것들만 남았고 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불에 그을린 정문을 지나 대로로 빠지는 길로 접어든 울리세는 그것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챙이 긴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그는 가장 큰 술집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경첩이 오래돼서인지 문을 여는데 삐걱이는 소리가 퍼졌다. 덕분에 시끄러웠던 술집은 아주 잠시 잦아들었다가 이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는 주변을 휙 둘러보며 사람들 틈에 있는 좁은 자리에 앉았다.


“뭐로 드릴까요?”


이제 갓 성인이 된 듯싶은 소녀의 얼굴엔 풋풋함이 묻어 있었다. 생글생글한 눈웃음으로 기다리는 그녀를 보며 그는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맥주 하나 주세요.”


돌아가는 종업원을 보며 그는 인상을 팍 구기며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술집 안은 술 냄새로 가득했다. 가게 안을 넓었지만, 그만큼 사람도 많았고 게다가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에 앉았기에 알코올 냄새에 익숙하지 않은 그에게는 꽤나 고역이었다.


역한 냄새를 맡으며 그는 다른 이와 마주치지 않으려 탁자만을 내려다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위기에 익숙해진 그는 주변에서 떠드는 얘기를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어디 계신지 모른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그러네. 건물 안에서는 발견 못 했다니까 죽은 건 아닐 테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그보다 범인은 찾았대?”


“자네 못 봤나? 벌써 몽타주가 그려진 수배지가 내려왔다고. 이름이 뭐였더라? 울···. 하여간에 현상금이 어마어마해. 자네 식구 이 년은 먹여 살릴 정도 되겠더만.”


울리세는 모자 챙을 더욱 깊게 내렸다. 맥주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종업원에게 고개를 까닥인 그는 준비한 돈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참에 다 때려치고 잡으러 가?”


“아서라. 혼자서 백 명을 넘게 상처하나 없이 죽였다는데 어림도 없지.”


장난스럽게 호기를 부리던 남자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더미드님을 왜 공격했을까? 그래도 우리 같은 서민들 생각해주는 건 그분밖에 없는데.”


울리세는 거기까지 듣고 의자를 끌며 일어섰다. 입조차 대지 않은 맥주가 찰랑댔다. 사람들을 헤치고 종업원에게 간 그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필요한거 있으세요?”


“아뇨. 혹시 정보 길드가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그녀는 기억을 헤집는 듯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음, 아마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신 다음에 두 번째 길목에서 왼쪽으로 빠지시면 좁은 골목길이 하나 있을 거예요. 거기서 왼쪽이었나? 아마 맞을 거에요.”


“감사합니다.”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온 그는 그녀가 일러준 길을 따라 걸었다. 길을 조금 헤매서인지 도착했을 때 하늘은 보라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잔뜩 헤진 간판이며 먼지 묻은 창은 골동품가게처럼 보였다. 문 앞에 선 그는 이곳이 맞는지 긴가민가해 하며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다행히도 골동품을 팔지 않았다. 단출하게 갈색 원형 나무 탁자와 의자가 두 개씩 놓여져 있었다. 벽은 검은색에 가까워 천장의 전구의 빛으로는 전부 밝히지 못했다. 계산대로 보이는 곳에는 인상이 차가운 남자가 서 있었고 양쪽으로 빠지는 문은 전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만.”


“누구죠?”


“더미드 프라이스.”


남자는 이름을 받아 적으려다 일순간 멈칫하고 울리세를 바라봤다. 하지만 챙을 깊게 내렸기 때문에 둘의 시선은 마주치지 못했다.


“이곳의 영주 더미드 프라이스를 말하는 겁니까?”


“예.”


짧게 대답한 그는 거북한 시선을 느끼며 남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검을 손잡이로 가져갔다. 하지만 남자는 묵묵히 이름을 적을 뿐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값이 꽤 나갑니다. 일단 저희도 아직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틀쯤 뒤에 다시 오시죠. 값은 절반을 선금으로 내고 남은 절반은 다음에 오시면 그때 받겠습니다.”


절반의 값이었음에도 울리세는 가진 돈 모두를 내야했다. 자신의 이름을 가명으로 알려준 그는 그곳을 나와 리베리오와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 다시 찾아갔다. 급격히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기에 그는 속도를 냈다. 울리세가 나가고 나서도 참을성 있게 기다린 가게 안의 남자는 깃털 펜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없었다. 그는 턱을 매만지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성 밖에 있는 작은 숲이었기에 주변에 사람은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동생을 걱정하지 않았다. 더미드를 놓친 직후 곧장 동생의 집으로 갔을 때 널브러진 시신들을 보며 그는 동생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일전에 다니엘레에게 들은 게 떠올랐다. 그가 사실은 자신의 동생이었다는 것이 그 당시에는 다행이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얼마나 힘들게 지내왔을지, 자신 때문에 꼬여버린 인생에 대해 한없이 미안했다. 십 년 만에 만나자마자 다시 이렇게 떨어져 있으려니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소리지르면서 찾아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모한 짓이었다. 그저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는 이틀 동안 이곳에 있을 작정으로 땅을 평평하게 다듬었다. 여름이었기에 추위는 없었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니 많은 별이 뿌려져 있었다. 언제봐도 가슴 벅차게 아름다우면서도 어색했다.


-------------------------------------------------


“이거야 원 사막에서 바늘 찾기군.”


며칠 내내 강행군을 했음에도 리베리오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더미드는 시선을 멀리 던진 채 한숨 토하듯 그렇게 내뱉었다. 다니엘레와 루치아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동의하는 듯했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 본 적이 있다며 길을 일러줬을 때만 해도 수월하게 풀리는구나 했었지만, 벌어진 거리가 생각보다 컸던 건지 아니면 리베리오가 경로를 바꾼 것인지 깜깜무소식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모닥불을 끄지도 않았고 잠을 청하지도 않았다. 셋이 둘러앉아서 말없이 있었다. 인상을 구긴 채로 생각에 빠져있던 다니엘레는 도무지 생각해봐도 이곳을 지나지 않았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마을을 가려면 이곳이 거쳐야 했다. 다른 길은 크게 돌아가야 했기에 엄청난 시간 낭비였다.


“분명 다 낫지도 않았을 텐데 우리가 발견도 못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되네.”


“그러니까요. 저희 생각이 틀린 걸까요?”


이쯤 되자 그는 슬슬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추측들이 오갔다. 깃털의 존재를 너무 간과한 것이 아닌가부터 시작해 울리세와 이미 만났을 수도 있다는 것까지.


“일단은 가봐야지 뭐.”


조금은 심술이 난 듯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쑤시던 그는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있기에는 마음이 좀 쑤셔서 그는 볼일을 보고 온다고 말하고는 짧게 산책하러 다녀올 요량으로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낮게 자란 풀을 밟을 때마다 잠에서 깬 곤충 몇 마리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머릿속을 환기시킬 필요를 느낀 그는 좀 더 서늘한 곳을 찾아다녔다. 오 분가량을 천천히 걷자 어느새 모닥불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까지 지나와 있었다.


“역시 너 칼 같은 거 쓰는 놈이 아니구나?”


다니엘레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맞은 편을 바라봤다. 시야를 서서히 확장하니 리베리오가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이 오고 있는 것을 알기라도 했듯이 검날에 진흙을 발라두었다.


“응, 맞아.”


“재수 없는 놈.”


리베리오는 이제 신성력을 쓰지 않아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앞에 다가왔다. 여전히 다니엘레는 무심한 표정과 자세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천히 검을 세우고 자세를 잡은 리베리오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보이며 여유를 보였다.


“마지막 남길 말 정도는 들어주지.”


다니엘레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리고는 아랫입술을 앞으로 내밀더니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그만, 거기까지.”


리베리오는 그의 말이 시간을 벌려는 목적이라 생각하고는 들을 가치가 없다 생각하고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그리고 다니엘레의 팔에 막혀버렸다. 가볍게 팔로 쳐낸 그는 씨익 웃어주었다.


“놀랐어?”


“너···도대체 이게···.”


너무 놀라 말조차 더듬는 그를 보며 다니엘레는 천천히 다가가며 아까 끊겼던 말을 이어서 해줬다.


“맨손이 전문이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있는 힘껏 리베리오의 얼굴에 주먹을 후렸다. 화들짝 놀란 리베리오가 두 손으로 검을 세워 막아냈지만,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검날의 윗부분은 부서져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주먹을 막아낸 충격으로 손이 덜덜 떨렸고 한쪽 무릎마저 꿇게 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반쪽이 된 칼을 내려다보던 리베리오는 실소를 흘렸다. 다니엘레는 덤덤한 표정으로 다가가 앞 머리채를 잡고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윽!”


“그냥 기절시키기에는 우리도 피해가 좀 있어서. 같이 다니려면 네 정신 개조부터 해야겠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그 상태로 주먹을 방망이 휘두르듯 내리쳤다. 위험한 급소를 교묘하게 피하고 팔이나 다리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충격이 누적될수록 리베리오의 정신은 점점 아득해져 갔다. 일곱 번의 공격이 끝나고 나서야 그는 멈췄다.


“······죽여라.”


다니엘레는 짐짓 놀라는 척하며 손사래를 쳤다.


“오, 벌써 포기하는 거야? 생각보다 근성이 없네. 아쉽게도 네 명이 좀 길어서 당분간은 우리랑 좀 같이 가야겠어.”


“원하는 게 뭔데 이러는 거지?”


“선배, 잠깐 나와봐요.”


어느새 다가온 루치아는 다니엘레를 슬쩍 밀며 리베리오 앞에 섰다. 그녀는 단단히 화가 난 채로 그를 한차례 노려보더니 냅다 따귀를 후려쳤다.


“······.”


다니엘레는 흠칫 놀라며 그녀를 바라봤다. 리베리오 또한 어안이 벙벙해져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 봤다.


“야, 너 뭐해?”


“가만히 있어봐요. 나도 당한게 있잖아요!”


“그래서 패줬잖아.”


샐쭉한 눈이 다니엘레에게 꽂혔다.


“그거랑 이거랑 같아요?”


“아니.”


저도 모르게 대답한 다니엘레는 한 발 물러섰다. 그녀는 더 때릴 것처럼 굴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미친놈들, 적당히 하고 가자. 죽일 참이야?”


보다 못한 더미드가 중재에 나섰고 겨우 분이 풀린 루치아는 물러났다. 다니엘레는 리베리오에게 다가가 뒷목을 후렸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리베리오는 고꾸라졌다. 기절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는 리베리오의 몸 곳곳을 더듬었다.


“다행히도 깃털은 없네.”


무릎을 짚으며 일어난 그는 턱을 문지르더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입으로 뱉었다.


“그런데 얘는 누가 업고 가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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