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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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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613
추천수 :
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6.1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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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9화.

DUMMY

울리세의 속도에 맞추어주다 보니 일주일을 하고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국경을 넘었다. 다니엘레와 울리세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 마을 앞에 도착했다. 그들이 그동안 나눈 대화는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다니엘레는 얻을 것은 전부 얻었다고 생각해 깊숙이 더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나라의 지리적인 부분이나 풍습같은 부분들을 알려주었다.


주로 말을 거는 쪽은 그였고 울리세가 반응하는 형식의 대화가 주였다. 가끔가다 울리세가 궁금한 것을 물어볼 때도 있었지만, 그 역시 의심이 될만한 질문이 아닌 정말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들이었다. 그런 일상적이고도 여유로운 모습이 다니엘레에게는 복잡한 기분을 일으켰다.


다니엘레는 돈이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를 흔들어 보았다. 제법 묵직했다. 그간 작은 마을을 들러 사치를 부리긴 했어도 돈은 꽤나 많이 남아있었다. 둘은 거리낌 없이 마을로 들어갔다. 지나왔던 마을보다는 더 컸다. 그래도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있을 건 다 있어 보였다.


여관을 찾아다니던 중 대로를 점령하다시피 아주 큰 마차가 위험하게 속도를 제법 내며 달려왔다. 마부는 사람들이 치이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앞만 보며 몰았고 시민들은 익숙한지 아예 벽 쪽으로 붙어 걸었다. 마차 뒤쪽으로는 말을 탄 병사 몇 명이 말을 몰고 따라오고 있었다.


마차는 마을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했다. 크기도 크기지만 세공한 것을 보면 큰 마을에서도 보기 힘든 그런 것이었다. 마차는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한 가게 앞에 멈췄다. 과일 가게였다.


마차의 바깥쪽 문에서 말끔하게 빼 입은 사내가 나오더니 반대쪽으로 가 문을 열었다. 다니엘레는 거기서 나오는, 살집이 제법 있는 사내를 보며 그가 영주임을 알아차렸다. 날카로운 눈매에 내려간 입꼬리는 딱 봐도 한 성질 할 법해 보였다. 반지며 목걸이와 휘황찬란한 옷들은 결코 이 마을에서 나올 수 없는 옷들이었다.


“아이고, 영주님 여기에는 어쩐 일로······.”


큰 마차가 천천히 달리다 멈춘 것도 아닌, 속도를 내다 멈췄기에 가게 앞에 진열해놓은 과일들은 흙먼지를 뒤집어써 더 이상 팔 수 없을 지경이 되었지만, 가게 주인은 그거에 대해 일체의 언급도 없었다.


울리세와 다니엘레는 그 풍경에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가던 길을 아예 멈추었다. 주변 사람들도 하던 일을 하는 척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내가 온 이유는 너도 알겠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게주인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영주는 눈에 쌍심지를 켜며 말했다.


“내 식탁으로 들어오는 과일, 네 담당이지 않나? 그래도 모른다고? 좋아, 설명해주지. 아까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는데 말이야 달지가 않더라고. 깜짝 놀랐지 뭐야? 이건 명백한 반항으로 봐도 되겠지. 나한테 보내는 과일인데 이따위 정성이니 말이야.”


주인이 억울한 표정으로 당장에라도 무릎 꿇을 자세로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영주가 한발 빨랐다.


“가게에 있는 과일 싹 다 내버리고 다시 들여놔.”


“말도 안 됩니다! 당장 먹고살 돈도 없는데···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풀썩 주저앉아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주인은 애걸복걸하며 영주에게 매달렸다. 영주는 콧방귀를 끼며 거칠게 뿌리쳤다.


“못할 거면 때려 치고 여기서 나가! 과일집이 여기만 있는 줄 알아? 어디서 신파극이야!”


볼품없이 엎어진 주인은 기어코 눈물을 흘렸다. 먼지를 뒤집어 쓴 과일들과 그의 처량한 모습은 마차에 올라타는 영주와의 이질감을 일으켰다. 마차는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주인은 그 자리에서 한참동안이나 그러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워주며 위로를 했다. 어떤 이는 영주를 욕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기운을 내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럼에도 주인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다니엘레는 바닥에 붙은 발을 떼었다.


“그만 가자.”


아주 잠깐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울리세가 따라와 그의 옆에 마주 걸었다. 그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원래 다 저런가?”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겠지. 뭐, 전자가 더 많기는 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니 잘 모르긴 하지.”


다니엘레는 기분이 좋았다. 물론 방금 일어난 상황 때문이 아니었다. 울리세가 점점 경계를 풀고 이런 기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그는 저런 장면들을 숱하게 봐왔지만, 느끼는 바가 전혀 없었다. 불쌍하다거나 연민 같은 감정 또한 들지 않았다. 그냥 바라볼 뿐이었다. 능력이 있으면 인정해주는 사회에 그는 불만이 없었다. 그는 남들보다 뛰어났고, 마음에 들었으며, 당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잊어버린 채 앞에 보이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방을 잡고 들어가서 둘은 일체 나오는 일이 없었다. 전 마을과 거리가 꽤 있었기에 다니엘레는 곧장 씻고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걱정할 일은 없었다. 울리세가 나갈 일도 없었고 나간다 해도 자신을 놔두고 간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는 금세 곯아떨어졌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건 깊은 새벽이었다. 부스스 일어난 다니엘레는 갈증에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컵을 잡고 들려던 그는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침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화장실 문을 열었다. 역시나 비어있었다. 잠이 달아나고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


‘언제 나간 거지?’


그는 다시 침대로 가 황급히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무 바닥 널이 기이하게 우는 방 안 구석까지 흘려들어왔다. 끼익···끼익···.


천천히 다시 옷을 내려놓은 그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는 선에서 빠르게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문이 보이는 쪽으로 누운 그는 실눈을 뜨고 기다렸다. 발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마치 산책을 다녀오기라도 했듯 가벼운 걸음으로 들어온 울리세는 천천히 옷을 벗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그는 다니엘레를 바라봤고 깜짝 놀란 다니엘레는 눈을 감았다. 여름이었음에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늘했다. 바싹 마른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다시 시선을 거둔 울리세는 마저 옷을 다 벗고 소리가 나지 않게 정리하고는 침대에 누웠다. 다니엘레로서는 입술이 바짝 마르며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라고 머릿속으로 외치며 그는 뒤척이는 척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얼굴이 보이지 않게 했다.


끔찍한 침묵속에 그는 귀에는 이명이 들려왔다. 쿵쿵 뛰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그는 자신의 호흡 소리가 이상하게 들릴까 집중했다. 잠은 오지 않았고 그는 밤을 꼴딱 새우며 아까 자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다니엘레는 일어났다. 그들은 씻고 거리에 나와 필요한 것들을 샀다. 먹을 음식과 닳고 해진 옷이나 신발을 새로 사 입었다. 마을이 좁다 보니 그들은 어제 그 일이 벌어졌던 그곳을 다시 지나치게 되었는데 과일 가게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지나가며 보니 안에 진열된 물품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이 텅텅 비어있었다. 그렇게 그는 지나갔다. 필요한 것들을 다 사고 보니 그는 뭔가 이상한 점을 알 수 있었다. 거리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럼에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껴있었다. 거리에 보이지 않던 병사들도 오늘따라 더 많이 보였다. 그것도 중무장을 한 채.


“슬슬 갈까? 아무래도 오늘 분위기가 영 이상한데.”


방향을 돌려 나가는 출구로 가는데 그는 아무래도 이상했다. 병사들이 점점 많아지는 기분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 주변으로 병사들 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거리가 조금씩 좁혀졌다. 마치 포위망을 좁혀오듯이. 결국 다니엘레는 걸음을 멈췄다.


한쪽 눈썹을 올린 채 그는 사방을 둘러봤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확 나빠졌다. 알 수 없는 대치를 하고 있는 도중 병사들 틈을 뚫고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다가왔다. 여전히 거리는 아슬아슬하게 유지한 상태였다.


“잠깐 따라와야겠다.”


초면에 반말을 들은 그는 입꼬리가 떨렸다. 천천히 팔짱을 낀 그는 여유롭게 지휘관의 눈을 마주 보았다.


“이유는?”


단장은 몇몇 지나가는 사람들을 의식하며 작게 말했다.


“그건 가면 알게 될 거다.”


그의 말이 끝나자 병사들이 조금씩 다가왔다. 다니엘레는 일그러진 얼굴로 콧방귀를 뀌었다.


“너희, 거기서 더 오면 뒤진다.”


자연스럽게 팔짱을 풀어 한손을 칼집에 얹어놓은 그는 짝다리를 짚으며 단장을 바라봤다.


“말해.”


“···오늘 새벽 영주 님이 살해당하셨다. 유력한 용의자는 너희 둘이다.”


소란이 나지 않길 바랐는지 단장은 한발 물러섰다. 다니엘레는 울리세를 바라봤다. 울리세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한숨을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는 따라갈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은 안 될뿐더러 울리세 또한 죽은 사람으로 되어있을 것이 분명했다.


“외부인이 우리만 있는 게 아닐 텐데?”


“너희가 마지막 차례다.”


“죽일 만 해서 죽였는데 문제 있나?”


다니엘레는 고개를 휙 돌렸다. 울리세가 한 발 나와 말했다. 단장은 갑작스런 자백에 순간 당황했다.


“···뭐라고?”


“나 혼자 한 일이니 이 친구는 보내줘라.”


단장의 눈 밑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이제 주변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고함을 내질렀다.


“뭐하나 다들 잡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병사들은 일제히 둘에게 공격해왔다. 다니엘레와 울리세는 동시에 검을 뽑았다. 저번처럼 죽이는 것을 피하려 신성력으로 검을 뭉툭하게 만드는 사이 울리세가 뛰어들었다. 아주 잠깐. 찰나의 사이에 세 명의 병사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다니엘레는 입을 벌린 채 세웠던 검을 천천히 내렸다. 말 그대로 학살이었다. 그때의 일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다시 실감했다. 병사들은 다가가지도 못했다. 오히려 울리세가 덤벼들어 단 한 번 휘두른 검이 그대로 몸이며 목, 팔, 다리를 뚫거나 잘라버렸다. 삼 분도 안 되는 사이에 스무명이 있던 병사들이 피를 뿌린 채 엎어졌다.


“어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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