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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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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599
추천수 :
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7.02 00:35
조회
52
추천
3
글자
12쪽

24화.

DUMMY

더미드는 그럼에도 여전히 의심이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답이 들려오지 않자 리베리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장에라도 널 죽일 수야 있다. 대신 나도 죽겠지만, 그 정도 각오야 늘 준비되어 있어. 하지만 난 그러지 않을 거다. 왜인지 알아? 다니엘레의 말대로 너무 쉽게 죽으면 내 분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난 네가 법정 앞에서 네 죄가 너를 발가벗길 때까지 털끝 하나 건들지 않을 거다.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겠어. 그때까지 기꺼이 인질이 되어주지.”


“젠장, 이딴 놈이랑 같이 다녀야 한다니 구역질이 나는군. 넌 뭘 보고선 이놈을 믿는 거지? 같이 좀 다녔다고, 챙겨줬다고 같은 편이라는 착각하는 거냐?”


“믿는다고? 그래, 하지만 네가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믿음은 때때로 강함에서 나오지. 거기에 동반되는 자신감은 그것을 굳혀주고. 어떻게 확신하냐는 표정이군. 그냥 난 진심을 봤을 뿐이다. 그리고 애초에 나에게 선택지는 없다.”


다니엘레는 팔꿈치로 살짝 루치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녀가 돌아보자 그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그녀를 응시했다.


“들었지, 내 진심?”


익살스러우면서 귀여운 그의 표정과 행동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정말 선배는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다친 동료들을 데리고 빠져나가는 그들 사이로 손가방을 들고 허겁지겁 노인이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작은 안경을 코에 걸친 노인의 머리는 백발이었고 이마에는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자글자글한 주름은 그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지냈는지 알려주었다. 인자함과 꼿꼿함이 동시에 보여지는 두 눈이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이윽고 버나드에게 고정되었다.


“저 애인가!”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버나드에게 다가간 의사는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가져온 가방을 열어 기구를 꺼내 몸 상태를 확인했다. 다니엘레는 그 모습을 보더니 손을 흔들어 종업원을 부르더니 종이와 펜을 가져다달라 했다. 이곳저곳 몸을 살핀 의사는 고개를 들며 주변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보호자가 누구요?”


“저요.”


버나드를 알아본 의사는 혹시나 싶어 물었고,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는 유심히 다니엘레를 살펴봤지만, 이 마을에서 처음 보는 이였다. 건네받은 종이 위에 뭔가를 적으며 답한 그는 의사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고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쪽 엄지는 부러졌고 얼굴도 말이 아니야. 구타가 잦았는지 곳곳이 멍투성이군. 보나 마나 그 녀석들 짓이겠지···. 자네는 누군가? 친척이라도 되는가?”


“그건 아니고, 이제 곧 선배 될 사람입니다.”


“설마···.”


펜을 놓은 그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의사에게 돈뭉치와 함께 건넸다. 그리고는 옆에서 놀라고 있는 루치아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는 다시 의사를 바라봤다.


“거기서 치료비 빼고 남은 거는 종이랑 같이 아이에게 줘요. 넉넉히 넣었으니 욕심내지 마시고.”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말게.”


“아, 그리고···.”


일어서서 짐을 챙기던 그는 무언가 생각난 듯 의사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더미디를 가리켰다.


“저놈들이 또 날뛰거든 더미드 프라이스가 직접 찾아올 거라고 말해요. 얘가 걔니까.”


종업원을 포함해 남아있던 모두 흠칫 놀라며 더미드를 바라봤다. 익숙한 풍경인지 그는 민망해하지않고 그 상황을 즐기기까지 했다. 의사가 뭐라 더 말하기도 전에 다니엘레와 그들은 서둘러 인사를 하고 여관을 나왔다.


찌뿌등한 몸을 기지개를 켜며 푼 다니엘레는 고개만 슬쩍 돌리더니 리베리오를 향해 말했다.


“네 말마따나 난 진심이야.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아야할게 하나 있어. 난 지금 많이 참고 있다는 거야. 울리세가 마티아를 죽인 건 반드시 돌려줄 거다. 그게 법이 됐든 내 손이었든 간에 말이야.”


리베리오는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맞붙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적당히는 없을 거라는 얘기다.”


“그런 건 알고 있으니 걱정 마라.”


다시 고개를 돌린 그는 목걸이를 매만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바로 옆에 있던 루치아만이 그의 다짐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나마 있던 정도 이젠 없어. 널 만난다면 지금 이 감정이 폭발하겠지. 다시 만날 그때까지 되새기며 기다리겠다. 지금 네가···네가 아니길 바란다.”


---------------------------------------------------------


길었던 여름의 낮이 꺾이고 보랏빛의 하늘이 짙어지더니 이내 어두워졌다. 하늘에는 별이 하나씩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더웠지만, 낮에 비하면 시원한 수준이었다. 늦은 밤이었기에 거리에 사람은 없었지만, 술집은 붐볐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술집은 그 크기만큼이나 인기가 제법 좋았다. 공급해오는 술부터 신선했고 싸구려 안주가 아닌, 전문 조리사를 고용해 식사를 하기에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음식을 제공했다. 체스터는 붐비는 사람들 틈 속에 껴 그들과 하나가 되어 몸을 감추었다.


그는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대는 것과 동시에 눈동자만 굴려 혼자 앉는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 더위에도 모자를 푹 눌러쓴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아까 전부터 술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했다.


‘정보단체에서까지 블랙리스트라···.’


울리세에 대한 정보를 구하던 중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는 벨한다의 수도에 있는 정보단체의 일원들을 살해했고 그것을 계기로 그쪽에서는 울리세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체스터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무력으로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어내고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안전하고 정확하게 그를 찾을 수 있었지만, 여간 예민한 게 아니어서 뒤를 밟는 데 애를 먹었다. 나름 이쪽 업계의 독보적인 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모양을 구기니 자존심이 상했다.


가게에 들어온 지 십 분이 지났다. 울리세는 얘기가 끝났는지 값을 치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스터는 자연스럽게 맥주를 입안에 넣었다. 그를 지나쳐 문밖을 나갔을 때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맥주를 도로 잔에 뱉고선 천천히 뒤따라 나갔다.


방향을 오른쪽으로 꺾는 것을 봤기에 자연스레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바로 앞에 있는 골목길로 들어갔나 싶어 슬쩍 그곳으로 고개를 내밀었지만, 역시 없었다. 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뒤로 돌리려는 순간 등에 날카로운 감촉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그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체스터는 앞을 본 채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그건 알 필요 없고, 머리 위에 깍지 끼고 안으로 들어가.”


칼이 압박해오는 것에 마지못한 체스터는 골목길로 들어갔다. 밖에서 둘이 분간이 거의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야 울리세는 멈추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오던 녀석들이랑은 다른 것 같은데 넌 누구지?”


체스터는 이 상황에서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했다.


“체스터 콜.”


“누가 보냈지?”


“그건 알려줄 수 없지.”


앞을 보며 익살스럽게 답하는 그의 표정에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손에 많은 피를 묻혔기에 덤덤해진 것인지, 아니면 자신도 자기가 죽인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고 있었던 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호랑이와 연관됐나?”


“호랑이? 그건 무슨 얘기지?”


“···아무것도 아니다.”


적막이 찾아왔다. 뒤를 볼 수 없는 체스터로서는 그가 지금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생기자 그는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떠올랐다.


“너의 동기는 무엇이냐?”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주변에서 당신보고 악마라고 하는데 제정신인 걸 보니 정신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사람을 죽이는 이유가 궁금해서 말이지.”


“난 그저 한 사람에게 받은 걸 돌려주려 하는 것뿐이다. 그들이 죽은 건 나 때문이 아니라 그 하나 때문이야.”


체스터는 그의 말에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당신 의도가 그렇다 해도 결과는 전혀 아닌걸. 어쩔 수 없다기에는 너무 많은 피를 묻힌 거 아냐?”


“나도 최대한 피해 보려 했는데 맘처럼 되지 않았어. 이젠···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 다짐 감당할 수 있겠어?”


체스터가 볼 수 없음에도 울리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 악마가 되어주지. 그놈을 내 손으로 죽일 수만 있다면 양심이나 도덕성 따위 모두 버리겠어.”


“그럼 역시 나도 살기는 어렵다고 봐야 하나?”


“유감이다.”


“아니, 그런 동정 좋지 않아. 나도 나름 손에 피 많이 묻혔어서 이런 일이 올 거라고는 언제고 생각했었지. 이렇게 빠를 줄 몰랐지만 말이야.”


언제 목이 잘릴지도 모를 상황에서 그는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칼을 쥐고 있는 울리세는 그런 그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봤다. 그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당신도 꽤 억울한 일을 당했나봐. 이렇게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쫓고. 소문은 늘 과장되지만, 대부분 내용의 절반은 들어맞지. 듣자하니 밀림에서 왔다던데 사실이야?”


“···.”


“어차피 떠날 사람인데 시원하게 말 해줘.”


“그래.”


체스터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동네 나이많은 어르신이 들려주는 무용담을 듣는 아이처럼 그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를 상대하고 있었다.


“안에 정말 괴물들이 있었어?”


“그래.”


“신기하네 그저 부풀려진 얘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거길 살아서 나온 그쪽도 만만찮은데? 괜히 악마라는 얘기가 나온 게 아니야. 아니지, 이미 당신도 악마일 수도.”


“그럴 수도 있겠지.”


울리세도 모르고 있던 건 아니었다. 가면 갈수록 자신에게 칼을 들이미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들을 그저 따돌리기에는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최대한 피해가던 그는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걸까?


‘내가 뭘 잘못했길래 더미드가 아니라 피해자인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지?’


그 생각을 계기로 그는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베어 넘기며 차라리 공포심을 줘 함부로 자신을 쫓지 못하게 했다. 실제로 그의 생각대로 자신의 목을 노리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것과 동시에 우연히 보게 되는 수배지의 금액은 날이 갈수록 치솟았다.


아름다워 보였던 세상이 탁해져 갔다. 평범한 이들에게조차 말을 걸기가 어려워졌다. 혹여 알아보기라도 하면 몰래 신고를 해버렸기에 울리세는 믿음이란 것에 신뢰할 수 없어졌다. 결국, 그는 내려놓았다.


세상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는다면 차라리 더 날뛰기로 작정했다. 오직 하나의 목표로 살아남았고 살아가기에 자신이 기대했던 것들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더미드만 죽일 수 있다면, 죽어가며 애원하는 표정을 볼 수만 있다면······그걸로 충분했다.


“즐거운 대화였어. 나만큼은 목표를 이루길 바랄게.”


더 물어볼 것이 없는지 체스터는 그렇게 말했다. 더미드는 등을 누르던 칼을 서서히 위로 들어올렸다.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 늘 해왔던 동작을 서서히 옮기고 있을 따름이었다. 범상치 않은 그에게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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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 19.07.08 36 3 11쪽
27 26화. 19.07.04 37 3 9쪽
26 25화. 19.07.03 49 3 10쪽
» 24화. 19.07.02 53 3 12쪽
24 23화. 19.06.30 59 3 13쪽
23 22화. 19.06.27 45 2 11쪽
22 21화. 19.06.25 43 3 11쪽
21 20화. 19.06.25 53 3 10쪽
20 19화. 19.06.23 39 3 10쪽
19 18화. 19.06.22 44 3 12쪽
18 17화. 19.06.21 3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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