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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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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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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
추천수 :
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6.07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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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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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3쪽

6화.

DUMMY

“요새 그 녀석들 보이지 않으니 아주 살겠네!”


과일가게 앞에서 기분이 좋은 듯 얘기하는 남자는 그 가게의 주인으로 보였다. 그곳에서 산 것인지 과일 여러 개가 담겨있는 바구니를 든 여성은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저는 아직도 걔네 애비가 돈 떼먹고 나른 것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니까요? 근데 그러면 애들이라도 좀 예뻐야 하는데 맨날 가게 기웃거리다 훔치기나 하고···불쌍하다가도 하는 짓이 제 아빠 닮은 것 같아서 한 대 쥐어박고 싶다니까요.”


“내 말이. 수도원장님이 뒤봐주셔서 그나마 이렇게 잠잠한 거지 한 번만 더 그 짓거리 했어 봐, 내가 아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놓으려 했는데···. 참나, 제 말하면 온다더니.”


남자의 말에 그녀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 사이로 울리세가 동생을 업은 채로 뛰고 있었다. 업힌 동생은 입술이 하얗게 질려있었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 채로 얼굴이 창백했다. 그래서 그런 지 울리세의 숨은 턱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어머, 애가 많이 아픈가 보네.”


과일가게 남자는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발로 비볐다.


“하여간 제 동생은 끔찍하게 아낀다니까. 가족이다, 이거냐? 에이, 기분 잡쳤네.”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휙 돌아 바구니에 과일 몇 개를 주섬주섬 담았다.


“어디 가시게요?”


“······과일이나 좀 주려고.”


의원에 다녀온 뒤 울리세는 침대에 누운 동생을 극진하게 간호했다. 남는 게 시간이었기 때문에 옆에 의자를 끌어놓고 앉아 물수건을 갈아주고 물을 먹여줬다. 열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동생은 이불 속에 있는 것을 더워하다가도 추워했다.


그는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해줬지만, 안절부절 했다. 과일가게 아저씨가 준 과일을 작게 깎아 먹여도 주고 물에 배를 넣고 끓여 배 즙을 만들어도 줬지만, 효과는 없었다. 고통에 신음하던 동생은 고개를 돌려 형을 바라봤다.


“형, 나 과자 먹고 싶어.”


“과자? 사다 줄게. 무슨 과자?”


그에게 돈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과 튀긴 거. 수도원에서 들었는데 먹어보고 싶어.”


들어본 적 있다. 설탕을 버무려 튀겨진 음식으로 서민들이 먹기에는 비싼 음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난감해했다. 비싼 것은 둘째 치더라도 이곳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고 큰 도시로 나가야 했다. 갔다 올 수야 있었지만, 동생을 두고 며칠 나갔다 와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게 먹고 싶어? 다른 거는?”


티 나지 않게 다정하고 잔잔하게 물어봤지만, 동생의 대답에는 다른 건 괜찮다는 말이 새어 나왔다. 돈도 없고 도시는 이름만 들어봤고 가본 적도 없는 데다가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상황에서 그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거절 해야 하나 싶던 그는 동생의 간절한 표정을 보고선 다시 말을 삼켰다.


“······좀 걸려도 괜찮아?”


“응, 상관없어.”


“알았어. 형이 금방 사가지고 올게.”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집에서 나온 그는 막막함을 가지고 일단 수도원으로 갔다.


“······하는데 돈 좀···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수도원장은 돈과 함께 가는 동안 먹으라고 음식까지 가방에 넣어주었다.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표한 울리세는 그대로 도시로 향했다. 원장이 일러준 대로 길을 따라가 큰 탈 없이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꼬박 다섯 날이 지나고 나서였다.


도시의 크기가 주는 압도적인 면에 울리세는 시골에서 온 소년답게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걸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몰라 한참을 헤맸고 사람으로 꽉 막혀 이리저리 치여야만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도착한 울리세는 가게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


돈이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잡히는 것이 없었다. 지금껏 한 번도 꺼내본 적 없었기에 다른 곳에 있을 리는 없었다. 깜짝 놀란 울리세는 가방 속까지 뒤져봤지만, 돈은 흔적조차 없었다.


서둘러 왔던 길을 되짚어 가봤음에도 역시나 없었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눈물이 고인 울리세는 필사적으로 뛰어다녔다.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돌아다니던 그는 그늘진 나무 밑에 주저앉았다. 툭, 하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어떻게 해···.’


그는 해가 질 때까지 망연자실한 채로 그대로 있었다. 멍해진 눈으로 일어선 그는 터덜터덜 걸어 아까 도착했던 가게 앞까지 갔다. 조금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무언가 다짐한 듯 눈빛을 반짝인 그는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렴.”


깔끔하게 뒤로 묶은 머리의 체격이 좋은 아주머니가 주변을 정리하며 그를 반겼다. 꾸미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지 차림새는 단조로웠다. 그는 고개만 숙여 인사하고는 주변을 둘러보는 척했다. 사실 들어오자마자 튀긴 사과를 찾았지만, 괜히 여유로운 척, 고심하는 척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졌는지, 아주머니는 계산대 아래로 고개를 숙였고 울리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것을 집어 들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갔다. 문 안쪽으로 무어라 소리가 들렸지만,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긴장해서인지 숨은 평소보다 빨리 차올랐다. 한참을 뛰어가던 그는 꺾는 곳에서 돌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사내와 부딪혔다.


“괜찮아?”


넘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난 그와 달리 상대편은 코를 부여잡은 채 일어나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도련님!”


소년의 뒤에서 비서로 보이는 마흔 줄의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치안을 담당하는 병사가 그를 향해 쫓아오고 있었다. 사과할 여유도 없어 몸을 돌려 곧장 뛰어가려던 울리세를 소년이 팔을 잡아챘다.


“너 뭐야!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팔을 뿌리치자 소년은 그의 멱살을 잡았고 촉박함으로 오는 분노에 울리세는 소년을 밀치고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비명과 함께 뒤로 날아간 소년을 뒤로한 채 울리세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앞에서 기다리는 경비병을 마주했고 그는 잡히고 말았다.


“젠장.”


병사들에게 잡혀 끌려가던 도중 그의 앞에 아까 부딪혔던 소년이 길을 가로막았다.


“프라이스 소속입니다. 이쪽은 그분의 아드님인 더미드 프라이스님이고요. 저 녀석이 도련님에게 해를 가했기 때문에 저희가 데려가야겠습니다.”


가문 배지를 보여줘 신분을 확인시켜준 비서는 더미드가 시킨 대로 울리세를 양도받았다. 가문 이름을 들은 병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넘겨줄 뿐이었다. 관광차 온 프라이스가는 그쪽 나라에서도 입지가 탄탄해 극진하게 대하라고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었던 걸 기억하는 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따로 얘기하지는 않을 테니 그만 가보세요.”


살았다는 표정과 함께 그들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비서는 더미드를 내려다봤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도련님?”


“이 나라에서 사형 다음인 벌이 뭐야?”


더미드는 빠진 이빨을 손에 쥔 채 울리세를 노려봤다.


“전에 말씀드렸던 밀림 기억하시죠? 그곳으로 보내는 겁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


“······가족도 없었고 연이 닿는 사람도 없어서 제대로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가게 된 거요.”


“그렇군요.”


모든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마티아는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이 얘기대로라면 밀림에서 10년 동안이나 있었던 것이고 거기서 멀쩡히 살아 나왔다는 얘기는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는 가능한 일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각 그 이상으로 꼬인 얘기는 그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이제 어쩔 작정이요?”


무엇을 말하는지 말하진 않았지만, 울리세를 뜻하는 얘기임을 알 수 있었다.


“일단 데려와서 확인해 봐야겠지요.”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반지는 그의 손바닥 안에 놓여 있었다.


“이 반지는 별 거 아닌데도 직급을 나타낸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는 귀하게 여겨지지요. 누군가의 손가락에 들어가야 하는지 정해져 있기도 하고요.”


마티아는 나가기 전 앨버트를 바라봤다.


“별일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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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먹구름이 껴 있던 하늘에서는 어둠이 자리잡기 시작할 때 쯤 기어이 비를 한 방울 떨어트리더니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억세게 내리는 비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언제 변덕을 부릴지는 모를 일이었다. 다니엘레는 언제나 울리세와 같이 움직였다.


같이 다닐 사람이 없기도 했거니와 언제 이곳을 두고 도망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니엘레는 점점 애가 탔다. 서서히 선전포고를 한 날짜가 다가오건만 기억을 하는지 모르는지 울리세에게 다른 어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먼저 도망칠 거냐고 묻는 것도 이상했다. 세상 여유로워 보이는 울리세를 지켜보며 그는 점점 불안했다. 외곽을 순찰하며 그들은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애초에 울리세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고, 다니엘레 또한 원래는 오지랖이 넓은 성격이 아니었다.


그들은 저택 뒤쪽에 있는 산을 순찰하는 일을 맡았다. 산은 꽤 넓었고 나무들이 울창한 데다가 가문의 사람들이 사냥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길이 제대로 닦여있지 않아 대부분이 꺼려했다. 다니엘레는 의문을 가지고 자원했다. 그 모습에 울리세도 따라 자원했다.


“좋은 여건의 근무는 아닌데 왜 지원했어.”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아서. 알고 있는 너는 왜?”


“나도 똑같지 뭐.”


그가 생각하기로 탈출 경로를 짠다면 이곳만 한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빼곡하고 울창한 나무가 시야를 충분히 가려줄 것이고 길이 닦여있지 않아 흔적을 찾기에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최적의 조건인데도 지원이 없는 것이 그는 의아했다.


‘그게 그렇게 무서운 건가?’


그는 이해가 좀 가지 않았다. 용병 세계에서도 규율이 있는데 아무래도 거칠대로 거친 사람들이 득실대는 곳이다 보니 계약을 어기는 자들에 대한 처벌의 수위가 상당했다. 이쪽 세계에 다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용병들에게 현상금 실린 수배지를 배포하기도 했다.


어떤 류의 계약을 깨트리는 것에 따라 금액이 천차 만별이었고, 아예 그들을 잡는 전문 사냥꾼들도 있을 지경이었다. 다니엘레는 왠지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혹시 모른다는 거지.’


붙어보지도 않았지만, 누가 봐도 패색이 짙은 전투에서조차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희망에서 떨어져 나온 혹시라는 단어는 매우 달콤하고 본능적인 것이다. 계약을 어기면 확실한 처분이 있지만, 이 전투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것이다. 그건 당연했다.


승패를 논하는 것이 아닌 패배한 직후의 상황이다. 급전 또는 빚에 의해 이곳에 온 이들은 모르긴 몰라도 전투 중 죽지만 않는다면 용병인 자기들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그렇게까지 적대적인 이유는 없을 것이고 죽이진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그는 그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 전제는 순전히 리카르도 쪽에게 달렸겠지만.’


그는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앞의 나뭇가지에 걸린 헝겊 조각을 바라봤다. 숲의 정찰 범위를 나타내기 위해 나뭇가지에 묶어놓은 것이었다. 그는 울리세를 바라봤고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이대로 쭉 가다가 중간에 다른 정찰조를 만나 그들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면 이번 근무는 끝이었다.


바스락거리는 풀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순찰은 지루하다면 지루했고, 평화롭다면 평화로웠다. 다만 길이라고 표시된 게 전무하기도 하고 평평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여서 걷는 것이 꽤 힘들었고 지치는 것도 금방 지쳤다. 하지만 고통으로 인해 얻은 것은 그것을 잊을 만큼 충분했다.


숲이 넓은 만큼 빠져나갈 곳은 여러 갈래다. 교대하며 이곳의 병사에게도 들었기에 틀린 정보는 아니었다. 어디로 빠질지 퇴로도 확보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중요한 건 울리세와 함께 최대한 뒤에서 싸우는 척 하다 전세가 확 기우는 시기에 데리고 빠져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울리세의 존재를 반 확신하고 있었다. 혼자 냅둔다 해서 눈 먼 칼에 죽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대충 시간을 가늠해본 다니엘레는 조만간 다른 순찰조와 교차하는 지점에 다다를 거라 예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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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화. 19.06.25 53 3 10쪽
20 19화. 19.06.23 39 3 10쪽
19 18화. 19.06.22 45 3 12쪽
18 17화. 19.06.21 38 3 10쪽
17 16화. 19.06.20 44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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