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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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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609
추천수 :
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7.15 21:18
조회
31
추천
2
글자
11쪽

31화.

DUMMY

그는 저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루치아는 불안한 눈빛으로 사마라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저희는 그런 거 한 번도 타보지 못했거든요.”


“아, 괜찮습니다. 꽉 붙잡기만 하면 생각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삽시간에 낯빛이 어두워진 그녀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한숨을 내쉰 다니엘레는 체념한 듯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마라스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신지 얼마 안 돼서 다시 돌려보내는 게 죄송스럽군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도움을 드릴 수 없고 이곳에서 나갈 수도 없어서 고생만 시켜드렸군요.”


다니엘레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지친 몸을 욕조에 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가볍게 눈을 감았다 뜬 그는 코로 한숨을 내뱉었다.


“솔직히 조금 짜증이 나기는 하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감내해야죠. 그나저나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씀하시죠.”


의자를 밀어 넣으며 그 위에 팔을 올린 루치아를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밀림은 사라지지 않는 겁니까?”


“그의 몸 안에 있는 영혼의 힘이 아주 강한 편이니 못해도 고위직에 있는 사람의 것일 테지요. 이 사건을 처리하신다면 여러분들의 힘으로 밀림을 없앨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 전제는 다니엘레 씨가 제단에서 힘을 얻어야 가능한 일이죠.”


“그럼 됐습니다. 왔던 길로 돌아가면 되는 거죠?”


“제가 마중을···.”


“아, 괜찮아요. 그나저나 그 친구는 어떻게 다룹니까?”


“그쪽으로 가시는 동안 제가 위치를 말해두겠습니다. 그냥 올라타시기만 하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니엘레는 집을 나왔다. 뒤이어 루치아가 따라 나왔고 어느 정도 집에서 멀어지자 그녀가 불쑥 물었다.


“왜 굳이 나오지 말라고 하신 거에요?”


“재수 없어서.”


잠시 생각에 빠진 그녀가 다시 말했다.


“무책임해서 그렇죠? 하긴 그러실 만도 해요. 겉으로는 위하는 척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며 도움 주는 것처럼 하는데 결국 처리는 저희가 다 해야 하니까요. 지켜만 보는 게 아니꼬우신 거죠?”


“잘 아네. 신을 등에 업었다고 자기들까지 같은 위치라고 착각하는 모양이야. 더 짜증 나는 건 그런데도 내가 그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한다는 거지.”


“일을 만들었으면 못해도 뒤처리는 해야 하는데 웃기지도 않네요. 신 때문에 개입이 안 된다면 밀림은 어떻게 있는 거고 울리세는 어떻게 저리 활보하고 다닐 수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가요.”


어느덧 신기루의 끝에 도달한 다니엘레는 나지막이 뱉었다.


“그거야 우리가 알 수는 없겠지. 그 잘난 신들의 기준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냐? 꼭두각시가 된 것 같아서 기분 더럽네.”


새는 처음 있던 자리에 여전히 그대로다. 거부감은 여전했지만, 다가갈 마음은 생겼다. 조심스럽게 몸통 쪽 앞에 서자 새는 슬쩍 쳐다보더니 몸을 낮게 깔았다. 루치아와 다니엘레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니엘레가 먼저 등 위에 올라탔다. 뒤이어 루치아가 올라왔다.


막상 올라오니 잡을만한 데가 없다. 형태는 새가 분명하지만, 털이 없다. 단단하고 질긴 피부가죽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니엘레는 목 뒤쪽을 바라봤다. 삐죽 튀어나온 털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균형을 잃지 않으려 무릎으로 기어 갈기를 움켜잡았다. 어느새 따라온 루치아 역시 그가 하는 모양 그대로 따라 했다. 자세를 고쳐잡고 기다리자 새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세상에···.”


새가 엎드린 상태에서 내려다 봤을 때도 높았는데 몸을 완전히 일으키자 땅이 아찔할 정도로

멀게 느껴졌다. 루치아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날개를 좌우로 활짝 핀 새는 그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그것을 펄럭이더니 땅에서 몸을 띄웠다.


천천히 하늘을 향해 제자리에서 올라간 새는 한참이나 올라간 뒤에서야 앞으로 나아갔다. 엄청난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강타했다. 둘은 재빨리 신성력으로 몸 주변에 막을 만들었다. 잡은 갈기를 더욱 꽉 쥐었다. 서로 소리높여 뭐라 말을 했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말을 거는 것을 포기한 루치아는 용기를 내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름답다. 그녀가 보자마자 느낀 감상이다. 푸르른 초원과 넓은 숲, 사이에 길고 좁게 뻗어있는 강줄기는 마을까지 이어져있다. 떨어져 있는 마을들이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그들이 왔던 사막은 아득히 멀게 보였다.


한참이나 낙타를 타고 횡단했던 사막이 손바닥보다 작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사막은 빠르게 멀어지더니 이내 곧 눈에서 보이지 않게 됐다. 마치 하늘에서 배를 탄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빠른 배를.


대륙을 대각선으로 횡단하는 새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잠깐 보였던 것은 이내 곧 사라졌고 새로운 모양의 지형이 다시 눈에 들어오고 사라진다. 얼마나 높은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벌써 바다가 보였다. 하지만 사마라스가 말한 섬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신기함에 둘은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적응이 되고 벅차오른 감정도 잦아드니 지루함이 찾아왔다. 분명 빨랐지만, 땅도 그만큼 넓다. 세 시간이 넘어가자 허리가 결린 듯 고통스러웠고 손은 계속 힘을 주고 있어서 하얗게 변해있었다.


다니엘레는 고통을 참아내며 속으로 욕하고 있는 도중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루치아가 그를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말을 걸었다.


“저 끝에 보여요?”


눈을 찡그리며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집중해서 바라보자 조그맣게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섬이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해 신경 써서 바라보지 않으면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였다. 거기서 한참 떨어진 곳에는 밀림이 있었다. 다니엘레는 그것이 제단이 있는 섬이라고 생각했다. 이 속도라면 금방 도착할 듯싶었다.


‘여기서 봐야 겨우 확인이 가능할 정도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이 땅의 역사가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닌데도 저곳을 찾지 못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항해술은 나날이 발전했고 바다를 떠도는 해적도 있는데 저곳까지 나아가지 못한 배가 과연 한 척도 없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누가 봤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뭐 어쩔 것인가. 다만 그는 신을 속으로 조용히 욕할 뿐이다. 대부분의 일을 자신의 피조물에게 맡긴 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사달이 났는데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그럼에도 지켜보겠다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바람을 찢으며 날아가던 새는 날개를 곱게 폈다. 바다 위를 지나기 시작한 지도 오래되지 않아 작은 점이었던 것은 이제 제법 윤곽을 드러냈다. 실로 엄청난 속도다. 그리 크지 않을 거라 여겼던 섬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커졌다.


새는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는 모래사장을 보고 있자니 어지럼증을 느껴 그는 살포시 눈을 감았다. 앞이 캄캄해지자 새를 타고 온몸에 전해져오는 진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새는 크게 날갯짓을 하며 천천히 해변 위에 착륙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내릴 수 있게 몸을 엎드렸다. 멈췄음에도 루치아와 다니엘레는 여전히 진동이 남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 쥐었던 손을 풀며 그들은 차례대로 바닥에 착지했다. 두 발이 땅에 닿자 알 수 없는 어지럼증에 주저앉았다.


“괜찮냐?”


겨우 내뱉은 다니엘레 역시 썩 괜찮은 표정은 아니었다. 루치아는 무릎을 모으고 거기에 고개를 박은 채 대답도 하지 못했다. 모래 위에 뜨거운 햇빛까지 쏟아지니 죽을 맛이었다. 그들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몸 상태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왜 이런 생고생을 해야 할까요?”


바다 너머를 응시하던 루치아가 혼잣말하듯 나지막이 말했다. 누워서 뜨거운 햇빛을 받고 있던 다니엘레는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러게. 미행도 하고 용병질도 해보고 괴물도 만나고 평생 가보지 못할 신기루랑 여기도 다 와보고.”


다니엘레는 고개만 돌려 루치아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 그녀가 다니엘레를 마주 봤다. 피식하고 그가 웃었고 그 모습에 그녀도 빙그레 웃었다.


“아무래도 우리는 이런 팔자인가보다.”


“그런가 봐요. 그런데···꼭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런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어요. 물론 이런 상황에서 태평한 말이긴 하지만요.”


이상한 기합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 다니엘레는 옷을 털고서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주 잡은 그녀를 일으켜 세워준 다니엘레는 바로 옆에 보이는 숲을 바라봤다.


“슬슬 가자.”


모래사장을 걷던 다니엘레는 별안간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한 나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루치아는 그를 올려다보고는 그의 시선을 따라 나무를 바라봤다. 우거진 풀 위로 얼굴이 보였다.


“······.”


둘은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은 이곳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순간 사고가 정지됐던 다니엘레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


움직임은 없다. 조금의 시선도 흔들리지 않고 풀숲의 사람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다니엘레는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숲 안에서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더욱 청량하게 들릴 정도로 가까워지자 풀숲에 몸을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


웃자랐다지만, 그래 봐야 다니엘레의 허리 밑까지였다. 그 풀 바로 위에 얼굴이 있다는 건 키가 아주 작은 사람이거나, 어린아이 둘 중 하나다. 다니엘레는 그 사람의 고운 피부와 눈망울을 보고는 후자라고 확신했다.


목덜미까지 기른 머리는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마구잡이로 자란 게 제때 자르지 못한 듯싶었다. 솔직히 그는 아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어렸고 곱상한 얼굴이다. 하지만 옷은 며칠이나 빨지 않았는지 더러울 대로 더러워져 있었다. 짙지는 않지만 정갈한 눈썹과 선한 눈망울 작고 귀여운 코와 입술. 한번 꼬집어보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하는 볼을 가진 아이는 여전히 말이 없다. 다니엘레는 조심스럽게 루치아를 바라봤다. 무언의 강요를 느낀 그녀는 몸을 살짝 숙인 채 아이를 향해 말했다.


“저, 꼬마야···.”


“제단을 찾으러 오셨군요.”


“어? 그걸 어떻게 알았니?”


아이는 나이답지 않은 걸음으로 그들 앞에 다가와 섰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미래를 볼 줄 알아요. 저는 엘리후 린든이라하고 열 살이에요. 제가 두 분을 제단까지 데려다드릴게요. 그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래요?”


너무나도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느라 루치아와 다니엘레는 하마터면 그냥 수긍하고 넘어갈 뻔했다.


“뭔 약속? 아니, 잠깐만 방금 뭐라고 했어?”


“제단까지 데려다 드릴 테니 부탁···.”


“그거 말고. 뭘 본다고?”


“미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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