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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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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600
추천수 :
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7.21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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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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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34화.

DUMMY

“서두르자.”


울리세가 더미드를 다시 어깨에 짊어지는 것을 보며 그는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말을 뱉었다. 착잡한 표정의 루치아를 뒤로한 채 그는 엘리후를 재촉했다.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 정문에 도착하자 그곳을 둘러싼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연장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둘은 자연스럽게 엘리후를 바라봤고 그들의 뜻을 알아차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에요.”


둘러싼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엘리후는 그가 이 마을의 대표라고 말해줬다. 모인 사람 중 가장 나이 든 사람으로 연륜이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어딘가 불편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건 비단 그만이 아닌 주위의 사람들 모두에게도 있었다. 다니엘레는 그가 말하길 기다리지 않았다.


“곱게 보내줄 상황도 아닌데 루치아, 네가 얘 업고 뒤에서 따라와. 숲길은 엘리후가 잘 아니까 왼쪽으로 뚫는다.”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서 다니엘레는 왼쪽으로 냅다 뛰었다. 그러는 것과 동시에 다가오는 자들을 향해 신성력으로 빚은 막대기를 휘둘렀다. 허공을 휘두르는 줄 알았던 그들은 갑작스런 둔탁한 물건에 무방비하게 맞고선 주저앉았다. 단숨에 세 명을 제압한 그는 나머지 두 명을 눕히고선 곧장 숲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제 어디로 가?”


바짝 붙어 쫓는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가르는 바람 사이로 답이 들려왔다.


“저 큰 나무에서 왼쪽으로 꺾으세요!”


쓰러진 나무둥치를 뛰어넘은 그는 엘리후가 말한 대로 방향을 틀었다. 엘리후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시기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다니엘레와 루치아는 머릿속을 비운 채 그의 말에 움직이는 것을 집중했다.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서도 뛰던 다니엘레는 슬슬 지쳐갈 때쯤 뛰는 것을 멈추었다. 엘리후는 조금만 더 간다면 처음 왔던 바닷가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놀라지 않더라.”


“네, 뭐가요?”


“마을 사람들 말이야. 모르긴 몰라도 밖에서 이곳에 온건 우리가 처음 아니야? 그런데 전혀 놀라지 않았어. 이것도 네가 말한 미래를 보는 그런 거 때문이야?”


곧바로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다니엘레는 고개만 슬쩍 돌렸다가 다시 앞을 바라봤다.


“네, 맞아요.”


“그 얘기는 너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네.”


“네.”


다니엘레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행동이 예측됐다는 건 기분이 썩 좋은 겪어보니 썩 좋은 게 아님을 깨달았다. 마치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루치아가 넌지시 물었다.


“그러면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었던 거 아니야? 아니, 그전에 마을 사람들이 미리 우리를 막을 수 있었잖아. 왜 그러지 않은 거야?”


엘리후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올려다봤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응?”


“미래가 보이는 건 그대로 벌어져야 하는 일이잖아요.”


“거스르면 안 된다는 얘기니?”


엘리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의 의심도, 불평불만도 느껴지지 않았다. 좋지 않은 미래가, 자신의 죽음이 보이는 미래를 본다 하더라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꼭 미래를 따라가는 것처럼 말하네.”


“말 그대로 미래니까요. 현재보다 앞서있잖아요.”


“그럼 당장 내일 네가 몇 시에 일어나 무슨 행동을 할지까지도 알 수 있는 거니?”


“그건 아니에요. 그렇게 자세하게는 알 수 없고, 어떤 상황이 보여져요. 제 생각에는 어떤 중요한 일이 연관되어 있으면 보이는 것 같아요.”


앞에서 조용히 걷던 다니엘레가 나지막이 말했다.


“네 입장에서는 우리가 불안해 보일 수도 있겠네.”


“제가 두 분이었다면 두려웠을 거예요. 한 치 앞을 볼 수 없으니까요.”


“반대로 돌리면 우리가 널 볼 때도 똑같이 느낄 거다.”


더 이상 말이 들려오지 않았고 수풀을 밟는 소리만이 숲에 퍼졌다. 몇 걸음 걷던 다니엘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 미래를 볼 수 있어서 상황을 나에게 무조건 유리하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너를 보니 그건 내 착각인 것 같아. 바꿀 수 없다면 재미없을 것 같아.”


엘리후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씁쓸하게 그 모습을 보며 다니엘레는 굳이 그를 이해시키려 하거나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시작부터 다른 방향으로 뻗었기에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는 가치관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폐쇄된 곳인데도 바깥사람들이 어떤지는 어떻게 알고 있지? 우리가 미래를 볼 수 없다는 거 말이야.”


“마을 사람들에게 들었어요. 그분들 말로는 저희가 신에게 선택받아서 이런 능력을 얻은 거라고요. 그래서 신전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했어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어느새 숲의 끝에 다다랐고 막혀있던 시야는 뚫려 바닷가가 보였다. 그들이 타고 온 새는 처음 있던 그 자리에 있었다. 셋은 조금 더 속도를 내 그곳에 다가갔다.


“확실히 그 물을 먹어서 그런 건지 다르긴 다르네. 루치아 너도 아까 빠져나올 때 느꼈지?”


“느낌이 아니라 아예 달라진 것 같아요.”


“그래···.”


그는 주먹을 쥐며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그것이 이제는 주저앉을 정도로 누르지 않았다. 새의 등에 올라타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은 천천히 날개를 펴며 하늘로 올라섰다. 섬이 점점 작아짐에 따라 다니엘레는 마을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선 엘리후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았다. 그는 그것을 말없이 바라만 봤고 다니엘레 역시 딱히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새는 다니엘레가 원하던 목적지로 데려다줬다. 이제 몇 남지 않은 사람이 지키고 있는 단체의 건물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인적이 없는 곳에 착륙했다. 다니엘레가 먼저 내려 엘리후가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는 품 안에서 둘둘 말린 종이를 꺼내더니 깃털 펜으로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글씨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그는 천천히 운을 뗐다.


“여기서 저쪽으로 쭉 가면 외딴 건물이 하나 있어. 정문을 두드리면 사람이 나올 거고 너는 네 이름만 말하면 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했으니까.”


“감사합니다.”


“그렇게 멀지 않아서 먹을 거는 필요 없을 거야. 나중에 보자고.”


그는 할 말이 끝났는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새에 올라탔다. 그걸 지켜보던 루치아는 싱긋 웃으며 엘리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혼자서 갈 수 있겠니?”


“네, 걱정 마세요.”


“그래.”


천천히 손을 뗀 그녀도 그를 따라 올라탔다. 다시 새가 하늘에 떠 사라질 때까지 엘리후는 자리를 지키며 그 모습을 마냥 지켜봤다.


“우리가 아무리 빨리 왔다지만, 이미 밀림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커.”


“밀림으로 가는 방향이 맞지만, 거기에 갔다고 어떻게 확신하시는 거예요?”


“너도 알잖아. 아까 제단에서 본 곳부터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우리가 본다는 걸 알고 있는 게 아닌 이상 밀림 말고는 수가 없겠지.”


“저희가 모르는 리베리오의 집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다니엘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더미드를 죽였겠지. 만약 잔인하게 죽이려고 데려가는 거라 하더라도 거기까지 가는 동안 보는 눈도 있고, 시체를 치우는 것도 쉽지 않겠지.”


잠시 말이 멈췄다. 밀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둘은 그곳을 바라봤다. 다니엘레는 다시 입을 열었다. 긴장이 살짝 묻어있었다.


“아니면, 다른 데를 찾아봐야지.”


밀림 바로 앞에 내린 그들은 안을 바라봤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빼곡한 나무 사이로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고 언제와도 불길하고 음흉한 기운이 바깥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새마저 그 기운을 느꼈는지 그들이 내리자마자 도망가듯 날아가 버렸다. 더 가만히 있기도 뭐해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부터 달라졌다. 분명 나무가 가득한데 전부 죽은 나무라 그런 것인지 공기가 무겁다. 둘은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서서히 나무가 적어지며 시야가 트이자 긴장은 한풀 꺾였다. 하지만 여전히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죽은 나무지만, 나뭇가지에 걸린 나뭇잎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은 채 죽은, 혹은 죽은 채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둘이 이곳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마티아에게 수없이 들었었지만, 막상 들어오니 모든 것이 낯설다. 하늘은 빛 한 줌 없이 가려져 새까맣다. 의문인 것은 그런데도 주변은 잘 보였다.


어딘가 다른 색. 흰색도 아닌 회색의 빛이 주변을 밝히고 있다. 그 빛이 어디서 만들어지고 들어오는지 루치아와 다니엘레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흐르지 않는 강물도, 땅도 모두 죽은 회색이었다. 이상리라 만치 조용하다.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릴 법도 했지만, 그런 기척은 전혀 없었다.


“으악!”


고요를 찢는 소리가 오른쪽에서 들려왔다.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듣자 단번에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더미드였다. 둘은 말할 것도 없이 그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고통의 신음은 끊길 듯 말 듯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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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2화. +2 19.07.17 39 2 11쪽
32 31화. 19.07.15 31 2 11쪽
31 30화. 19.07.12 50 2 10쪽
30 29화. 19.07.11 34 2 10쪽
29 28화. 19.07.10 44 3 9쪽
28 27화. 19.07.08 36 3 11쪽
27 26화. 19.07.04 37 3 9쪽
26 25화. 19.07.03 49 3 10쪽
25 24화. 19.07.02 53 3 12쪽
24 23화. 19.06.30 59 3 13쪽
23 22화. 19.06.27 45 2 11쪽
22 21화. 19.06.25 43 3 11쪽
21 20화. 19.06.25 53 3 10쪽
20 19화. 19.06.23 39 3 10쪽
19 18화. 19.06.22 44 3 12쪽
18 17화. 19.06.21 38 3 10쪽
17 16화. 19.06.20 44 3 11쪽
16 15화. 19.06.18 51 3 13쪽
15 14화. +2 19.06.16 68 3 13쪽
14 13화. 19.06.15 52 3 13쪽
13 12화. 19.06.14 67 3 11쪽
12 11화. 19.06.13 57 3 10쪽
11 10화. 19.06.12 60 2 11쪽
10 9화. 19.06.10 55 3 11쪽
9 8화. +2 19.06.09 58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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