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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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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596
추천수 :
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7.03 00:17
조회
48
추천
3
글자
10쪽

25화.

DUMMY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시각의 항구는 열기로 가득했다. 구릿빛 피부의 선원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디며 배에 실을 물건들을 나르고 있었고 장부를 확인하며 고래고래 소리 지리는 선장. 위험한지도 모르고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시장에 내놓을 생선을 옮기는 아낙네들.


콘크리트 회색 바닥은 마를 날이 없어 보였다. 꼭대기에 오른 태양이 암만 빛을 쏘아대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곳곳마다 파라솔이 놓여 있었고 그 주변으로 그물과 물고기를 잠시 담아두는 물 담긴 상자가 놓여 있었다.


배가 줄지어 놓여있는 육지 끝자락에 다다를수록 리베리오를 제외한 셋은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점점 진동하는 비린내가 코끝을 두드리다 못해 찔러댔다. 북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배를 타고 질러가거나 옆으로 크게 돌아가는 두 가지 길뿐이었다.


시간에게 쫓기는 그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곳으로 왔고 이미 태워줄 배를 구해놓은 상태였다. 이제 그쪽에서 준비만 끝나면 타고 건너가면 되는 일이었다. 다니엘레는 조금은 한시름을 덜었다. 배에 올라 타 출발하기만 하면 제아무리 울리세라 하더라도 격차를 좁히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한쪽에서 준비를 하던 선장이 끝마쳤는지 그들에게 다가왔다. 바다 사나이답게 잔 근육으로 다져진 몸과 탄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제법 능력이 있었는지 이제 막 서른이 됐나 싶은데도 선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스님보다 조금 더 길 것 같은 짧게 친 머리가 제법 잘 어울렸다. 부리부리한 눈은 그의 직책이 그냥 얻은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날렵한 코 옆에는 팔자주름이 옅게 보였다. 무표정일 때의 그는 사나운 인상이었지만, 그의 성격은 사글사글해 입꼬리가 웬만하면 내려가지 않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준비 다 끝났으니 타시죠.”


배 안은 선원 셋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출항하길 원했고, 더미드는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가고 싶지 않았기에 배를 통째로 빌려버렸다. 그 덕분에 그들은 비교적 쾌적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루치아가 가장 먼저 올랐다. 그다음은 더미드, 그리고 리베리오가 탔다. 마지막으로 다니엘레가 배에 발을 디뎠다.


“멈춰라!”


공기를 찢을 정도로 거칠고 거대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어찌나 위협적인지 시끌벅적한 곳이었음에도 주변에 있던 모두가 하던 것을 멈추고 소리를 친 이에게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완전히 올라탄 다니엘레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울리세.”


더미드를 발견하자마자 울리세는 지체하지 않고 배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니엘레는 더 망설일 것도 없이 뒤에 있던 리베리오를 앞으로 끌어내는 것과 동시에 검을 뽑아 그의 목에 가져다 댔다. 그 모습에 울리세는 점점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멈추었다.


“다니엘레?”


“더 다가오면 죽일 거다.”


“다니···지금 뭐 하는 거야?”


믿기지 않은 상황에 울리세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이곳에 있지 말아야 할 사람이, 그것도 자신의 동생을 인질로 삼고 협박하자 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떨리는 두 눈동자로 그 모습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날 그따위로 부르지 마라.”


“네가 어떻게······.”


당혹감이 사라진 자리엔 차가움이 채워졌고 차가움은 배신이란 분노에 녹아버렸다. 그는 이제 눈이 아닌 손을 떨고 있었다. 꽉 쥔 주먹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듯 힘이 들어갔다. 울리세는 무너져내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친구 한 명은, 자기 편이 한 명은 있다고 위안 삼았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고독과 외로움으로 밀려나는 상황에서도 그는 그것 하나를 생각했다. 가능성. 결국 끝에는 모든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하지만 그것은 지금 산산이 부서졌다. 그것도 믿었던 이에게.


울리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분노가 터질 듯이 타오르는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뛰어들어 더미드의 목을 베고 동생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손 하나, 발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다니엘레가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쫓아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동물의 울음소리처럼 울부짖었다.


“네가 어떻게 날···다니엘레!”


“형, 난 괜찮아!”


육지에 묶어두었던 밧줄이 풀렸다. 서서히, 서서히 배가 바다로 밀려갔다. 그리고 리베리오의 외침이 퍼졌다. 울리세는 대답도 못 하고 그를 바라봤다.


“내가 돌려놓을게. 걱정하지 말고 피해있어, 형! 더 이상 무의미한 짓은 그만둬!”


아니···. 그렇게 말한다 해서 날 속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동생아. 내가 구해줄게.


배는 이제 이십 미터 정도 떠나갔다. 아주 조그맣게 그들이 보였다. 이빨이 부서질 듯 다문 그는 아래르 보더니 주먹을 그대로 내리꽂았다.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땅이 박살 났고 그는 거기서 손바닥만 한 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거친 숨을 내쉬며 몇 발자국 뛰더니 그대로 있는 힘껏 배를 향해 돌을 던졌다.


“선배!”


“젠장, 저건 또 뭔데!”


굉음을 내며 날아오는 것은 그들의 눈에 그게 돌멩이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맹렬하게 일직선으로 배로 날아드는 것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다니엘레는 신성력을 순식간에 끌어모아 응축시켜 돌이 날아오는 곳에 사각형으로 결계를 만들었다.


쾅······.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신성력의 결계는 화살이 종이를 뚫듯 허무하게 찢어졌고 돌은 속도 그대로 날아와 배 중간 부분을 뚫어냈다. 어딘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파편이 튀었고 지진이라도 난 듯 배가 흔들려 서 있던 그들은 어딘가에 처박혔다. 그리고 서서히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저 새끼 사람 맞아?”


나뒹굴던 더미드는 절규에 가까운 듯 외쳤다. 리베리오는 반쯤 일어나 자신의 형을 바라보았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루치아는 박살 난 나무 상자를 치우며 다니엘레의 명령을 기다렸다.


겨우 균형을 잡고 일어난 다니엘레는 주변의 살필 겨를도 없이 울리세를 바라봤다. 그는 말을 훔쳐 타고는 해안을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옆쪽으로 길게 난 정박소가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과 제법 가까웠다. 그는 다시 한번 신성력을 끌어모아 바다 위에 직선으로 길을 만들었다.


“이쪽으로 다 뛰어내려!”


가장 먼저 루치아가 뛰었다. 물 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겨를도 없이 둘이 뒤따라 내렸다. 울리세가 있는 곳을 끝까지 확인하며 다니엘레가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곧장 그것을 오른손에 모아 날카로운 창 형태를 만들어 냈다. 반대쪽 손으로는 바닥이 사라지지 않게 버티고 있었다. 그는 뛰어가는 울리세를 신중하게 겨냥하고는 냅다 던졌다.


“계속 앞으로 뛰어! 루치아, 내가 시간을 벌 테니까 잠깐만 길을 만들고 있어!”


무형의 창은 정확히 울리세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울리세는 그것을 검으로 쳐냈다. 보이지 않았음에도 정확히 튕겨냈다. 하지만, 반동은 어쩌지 못했는지 말이 휘청거렸고 그는 낙마했다. 그대로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음에도 울리세는 곧장 일어서 말에 다시 올라탔다.


“···봤다고?”


당황한 그는 그렇게 읊조렸다. 분명 보일 리가 없음에도 정확히 막아낸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그는 다시한번 그것을 만들고는 이번엔 말을 향해 던졌다. 이번엔 막아내지 못했다. 창은 말을 꿰뚫어 벽에 박히더니 사라져버렸다. 몸통이 뚫린 말은 그대로 경직된 채 속도에 앞으로 날아가듯 땅에 처박혔다. 위에 탔던 울리세는 아예 날다시피 붕 떠 바닥에 얼굴부터 떨어지고는 한참이나 뒹굴었다. 목이 꺾여야 정상이었음에도 그는 살아있었다.


“빌어먹을···.”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그는 앞에 뛰어가는 그들을 뒤쫓았다. 간신히 쥐어 짜내며 힘들어하는 그녀를 멈추게 한 그는 앞장서서 신성력을 온통 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최소한의 너비를 유지해 조금이라도 신성력이 고갈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육지는 너무도 멀었다. 그나마 북쪽은 호수 수준으로 거리가 멀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급격하게 몸에서 힘이 빠져나감에 따라 다니엘레에게는 너무도 아득해 보였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을 때마다 루치아가 이어서 만드는 식으로 그들은 바다를 가로질렀다.


얼마나 지났을지 그는 가늠해봤다. 한 시간? 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알 수 없었다. 몇 시간은 중노동에 시달린 기분이었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흰자에 선 핏줄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온몸이 뜨거웠다.


이토록 신성력을 쥐어짜낸 적은 처음이었다. 정신이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두 다리가 어떻게 움직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그러다가 정말 움직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어느덧 육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단내를 느끼며 그는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길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한계까지 몰아치자 코에서 피가 쏟아졌다. 이젠 정말 안될 것 같다고 생각이 들 때쯤, 땅에 발을 디뎠다.


“······.”


어서 빨리 가자고 말을 꺼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주변이 점점 흐려졌다. 뒤를 돌아본 루치아가 경악하며 소리치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균형을 잃고 그는 옆으로 쓰러졌다.


“다니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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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화. 19.06.25 43 3 11쪽
21 20화. 19.06.25 53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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