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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611
추천수 :
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6.25 23:38
조회
43
추천
3
글자
11쪽

21화.

DUMMY

자신만만한 태도에 더미드는 그가 더 말하길 기다렸다.


“사막의 신기루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 그건 언제든지 불미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를 염두한거라 보면 되겠지.


“너무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듣다못한 리베리오가 참견했다. 더미드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레는 손을 휘 내저었다.


“나한테 너무 공격적인데? 그럼 말해봐.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방법 말고 무슨 수가 있지?”


“군대를 동원하면···.”


“아니, 개죽음일 뿐이야. 이미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이 신성력이라는 것도 먹혀들지가 않는데 군대? 말도 안 되는 얘기야.”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흘깃 쳐다본 루치아는 어느새 어두워진 것을 깨달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선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확신에 차 얘기해서 넘어갈뻔 했는데 말이지. 신기루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뭐지? 그리고 넌 그들과 만나지도 않았음에도 밀림이 생겨난 이유를 알고 있어.”


“그건 당연히···.”


“그래, 네가 속해있는 곳의 윗사람에게 들었겠지. 근데 그것만 들었을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영토의 적은 부분이 아닌 데다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걸 협박이 아니고서야 받아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너는 긍정적으로 얘기하고 있었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야. 그건 강제적으로 된 일이 아니라는 얘기가 되지.”


더미드의 머리 위로 굵은 빗방울이 하나 툭 떨어졌다. 이윽고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거센 소나기가 퍼부어졌다. 그는 가방에서 후드가 달린 얇은 겉옷을 꺼내 입었다. 여전히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말해, 무슨 거래가 있었던거지?”


“말할 수 없어.”


“내가 한 번 맞춰볼까?”


“그러지 않는게 좋을걸.”


“협박이라도 할 셈인가?”


다니엘레는 조금은 화난 얼굴로 더미드와 리베리오를 번갈아봤다.


“밀림에 관한 내용을 누설하면 사형이야. 일이 마무리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냉랭해진 마차에 천장을 두드리는 빗소리만 일순간 남았다. 한차례 가래를 끓은 다니엘레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신기루로 가야 하는 이유를 중요하지 않아. 거기 말고는 답이 없어. 그리고 리베리오.”


고개를 돌린 둘은 서로를 마주 봤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이제 도와준다 해도 받아줄 수 없어. 마티아를 죽인 순간부터 개인적인 감정이 섞여버렸거든. 게다가 피해가 상당해서 누가 먼저 그랬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 아, 그렇다고 너한테 불똥이 튀는 건 아니니 걱정 마.”


“형을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얘기인가?”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그들의 판단에 따라 결정지어지겠지.”


말을 맺으며 그는 팔짱을 낀 채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빼곡하게 쏟아지는 소나기 때문에 주변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문득 앞을 바라보니 더미드가 초라하게 비를 맞으며 말없이 마차를 몰고 있었다.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쉰 그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확실하지 않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울리세 안을 지배하고 있는 영혼이 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싸울 때만큼은. 그래서 그는 생각을 굳히기로 마음먹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울리세를 죽이기로. 그래야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이 해소될 것만 같았다.


동시에 그는 진한 회의감을 느꼈다. 지금껏 일말의 동질감이 밀림의 영혼에게 느꼈다는 게 소름이 끼치고 스스로가 역겨웠다. 자신조차 괴물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두 눈을 질끈 감은 그는 어서 이 일이 마무리되길 간절히 바랐다.


**************************************************************


줄곧 허허벌판을 달리다보니 넷 모두 이젠 같은 풍경에 진절머리가 났다. 매 끼니마다 먹는 말린 음식도 물리는 것을 넘어 도저히 입속으로 넣어지지가 않았다. 더미드는 가끔 식사 때마다 얼굴을 구기며 거르곤 했다.


보따리 속의 음식이 드디어 바닥을 보일 쯤, 그들은 적막한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오며 제일 지루한 사람은 다니엘레와 리베리오였다. 당연하게도 다니엘레의 얼굴이 팔린 상황이라 말을 교체하기 위해 들린 마을을 그는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 덕분에 리베리오 또한 같이 들어가지 못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다니엘레는 그를 자신의 옆에 두었다. 안 그래도 손이 묶인 상태라 불편했는데 통제당하는 기분마저 들은 리베리오의 기분은 영 말이 아니었다.


참다못한 다니엘레는 가는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마을과의 거리가 먼 곳을 택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는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채 땅만 보고 걷겠다고 말했다.


리베리오와 다니엘레의 마음을 대변하듯 마을 안은 조용했다. 그리고 건물들은 멀쩡한 것을 찾는 게 더 빠르다고 느낄 정도로 허물거나 색이 바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애당초 수도에서 꽤 떨어진 곳이었고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물건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자원을 상납할 수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마을 어린아이들 몇몇은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채 동냥을 하러 다녔다. 그리고 그건 다니엘레의 일행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먹을 것 좀 주세요. 먹다 남은 거라도 상관없어요.”


다니엘레의 앞에 선 아이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헤진 옷이며 어디서 언제 묻었는지 모를 검은 얼룩이 얼굴과 몸에 묻어 있었다. 머리는 감은지 오래 됐는지 떡이 져 있었으며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몸 또한 앙상했다. 다니엘레는 무릎을 굽혀 앉아 아이의 눈높이에 맞췄다. 그리고는 안 주머니에 굴러다니는 동전 몇 개를 꺼내 소년에게 내밀었다.


“이것밖에 없어. 우리도 형편이 좋지 않아서 말이야.”


두 손을 모아 동전을 받아 든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달려들어 와락 껴안았다. 깜짝 놀란 다니엘레는 얼굴이 보일까 봐 고개를 더 숙였고 어색하게 소년을 등을 토닥여줬다. 속으로 몇초간 센 그는 힘을 뺀 채 천천히 소년을 자신에게서 떼어냈다.


“잘 가.”


인사를 건넨 그는 일어나 가던 길을 향해 걸기 시작했다. 얼마간 걷던 루치아는 고개를 슬쩍 돌려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다니엘레의 옆에 다가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나도 모르겠다. 우린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루치아.”


“저도 알아요. 그냥···궁금해서 그렇죠.”


미련이 남은 듯 그녀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다시 뒤를 돌아봤다. 소년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여관에 도착한 그들은 계산대 앞에 멈춰 섰다. 가장 앞에 있던 다니엘레는 주머니를 뒤적여 돈이 들어있는 왼쪽 뒷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


심장이 덜컹하는 기분을 느끼며 그는 꼼꼼하게 주머니 속을 만져봤지만 역시 잡히는 건 없었다. 침을 삼킨 그는 앞주머니로 손을 옮겼다. 만져져야 할 것이 만져지지 않았다. 마티아에게서 받은 것이.


“선배, 왜 그래요?”


“꼬마···.”


“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다니엘레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밖으로 뛰쳐나갔다.


“꼬마가 갖고 튀었어!”


밖으로 나온 그는 쏜살같이 달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혹시 모르는 마음에 주변을 살피며 떨어트린 것이 아닌지 확인했지만, 희망은 산산히 조각났다. 바닥엔 흙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꼬마를 만난 지점까지 도착했음에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좌우를 살폈다.


마을 자체가 크진 않았지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옆은 웬만하면 전부 좁은 골목길이었고 그 골목길 안에 또 가게며 집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뛰어다닌다고 찾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양손을 허리에 얹은 그의 얼굴은 빨개질 대로 빨개졌다.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 그의 숨은 거칠었다.


그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일단 제일 먼저 보인 사람에게 다가갔다.


“아주머니, 말씀 좀 물을게요. 혹시 아까 여기 있던 꼬마 못 봤어요? 키는 이 정도 만하고 회색 반소매에 검정 바지를 입었고 입이 좀 크고 눈썹이 옅은데.”


“버나드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그 애가 무슨 일을 저질렀나요?”


“그 애를 아세요?”


“그럼요, 우리 마을 아이니까요.”


다니엘레는 최대한 급해 보이는 티를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녀석···아니, 꼬마가 제 돈을 훔쳐서 찾으려고 하는데 어디 사는지 알려주시겠어요?”


“저런!”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짧게 놀람을 표출한 그녀는 자기 일인 양 걱정을 해줬다. 그 모습에 뭔가 좋은 답을 얻을 거라 생각했던 다니엘레는 그녀의 다음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버나드는 고아에요.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잠을 자서 저도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맥없이 몸을 돌린 그는 처진 발걸음으로 여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일 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들은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답지 않게 불안해하는 모습에 그들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고 보다못한 루치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배,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잖아요.”


“어차피 웬만한 거는 다 내돈으로 내고 말야.”


옆에서 더미드가 거들었다. 줄곧 다니엘레의 얼굴을 바라보던 리베리오는 그가 돈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다니엘레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목걸이도 같이 훔쳐갔어.”


“예, 목걸이를요? 아니 그걸 왜 지금 말해요!”


의자를 밀어 뛰쳐나가려는 그녀에게 다니엘레는 손을 뻗어 진정시켰다.


“늦었어. 해도 지고 있고, 무엇보다 골목길이 너무 많아서 찾을 수 있는 구조가 아냐.”


루치아의 반응을 보며리베리오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더미드는 오두막에서 마티아가 목걸이를 건네준 것을 봤기 때문에 그것이 그의 유품임을 알았다.


“목걸이가 뭔데 이러는 거지?”


최대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말을 건넨 리베리오에게 루치아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해줬다.


“목걸이가 없으면 신기루로 갈 수 없어요. 그건 신기루에 도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종의 장치 같은 거예요.”


“뭐?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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