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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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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593
추천수 :
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6.14 01:01
조회
66
추천
3
글자
11쪽

12화.

DUMMY

짧게 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는 현재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남은 병력은 밖에서 일반인인 척 돌아다니며 감시하고 있었고 현재까지 리베리오 모레티의 집에서 들어간 사람도 나간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알겠다고 하며 빈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곤함에 찌든 지 오래다. 그는 길게 한숨을 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때 끝내 답을 얻지 못했던 질문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것은 옳은 일인가?


‘동생을 인질로 삼자고? 그가 뭘 했길래 그 정도로 극악무도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 녀석에게 죄를 묻는다면 그 마을에서 영주를 죽인 그 죄를 물어야겠지. 처벌이라 해서 죄를 아무거나 붙인다는 건 옳지 않아.’


그는 이미 범죄자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직접 목격한 증인이기도 하다. 그는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분명 그럼에도 그는 가슴이 얹힌 것처럼 영 무거웠다. 이 모든 건 더미드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그래도 죄를 울리세에 물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는 옆으로 돌아누웠다. 잠을 자려고 했지만, 머릿속에 어지러워 오히려 점점 정신이 멀쩡해졌다.


‘그에게 죄를 물을 거라면 어릴 적 훔친 물건에 대한 것을 물어야겠지. 더미드에게도 죄를 물어야 할 것이고.’


그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도 알고 있다. 이 일이 마무리된다면 더미드는 아무 피해 없이 평소처럼 지낼 것이고, 피해자였던 울리세는 결국···.

죽을 것이다.

그럼 동생은?

이게 맞는 일인가?


자신의 어리광으로 죽었다고 생각한 채 괴로워 살다 기적처럼 십 년 만에 살아 돌아온 형을 며칠 만에 다시 잃는다. 그것도 복수를 하러 갔다가 당하는 것으로. 다니엘레는 입술을 핥았다.


‘나는, 우리는 위험해질지 아닌지 모르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가해가자 되어야 하는 걸까?’


“울리세 모레티가 나타났습니다.”


작고 강한 전달이 그의 귀에 닿았다. 그는 창가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울리세는 문 앞에서 멈추더니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멀리서 봤음에도 한눈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이내 마음을 다잡았는지 울리세는 천천히 손을 올려 문을 두드렸다.


여관방 안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숨죽인 채 그곳에 향했다. 시간 초 하나하나가 아찔할 정도로 긴 기분이었다. 목이 타는 껄끄러운 기분이 들 때쯤, 집에서 문이 열렸다. 얼굴을 보고 의심하는 눈빛, 서서히 확신으로, 그리고 경직된 채 굳은 것도 잠시 형제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리베리오의 울음소리는 그들에게까지 닿았다. 서러움과 미안함. 반가움과 놀람, 기쁨, 그리고 안도가 한데 섞인 그의 울음은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구슬펐다. 커튼 옆에 숨어 지켜보던 한 명이 다니엘레를 바라봤다.


“이 정도면 확실하다고 봐야겠군요.”


“······밖에 나가 있는 사람들 전부 저 집을 기준으로 자리 잡고 교대로 감시하라고 해. 건너편에 있는 애들에게도 그렇게 전해라. 나는 장로님께 연락할 테니.”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탁자에 앉았다.


‘그래, 내가 언제 정의감 따지며 살았나.’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아니, 그렇게 하려 노력했다.


‘너무 오래 같이 있었나.’


그는 자기답지 않게 정든 것을 비웃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 냉혈한. 남 깔보는 재수 없는 놈. 남들이 평가한 자신의 정의를 다시 떠올리며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펜과 종이를 꺼낸 그는 현 상황을 써내려갔다.


답장은 곧장 왔다. 알겠다는 말과 함께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리베리오를 납치해 어느 장소에서 만나자는 말도 덧붙여 있었다. 혹시 모를 실패를 염두한 일종의 비상 탈출 장소였다. 그는 적혀있는 위치를 머릿속에 각인 시키고는 종이와 펜을 다시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경계는 삼엄하게 하지 않았다. 그의 판단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저녁을 넘어 밤이 지나 새벽이 됐을 때까지 그 집의 문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세 시가 되자 다니엘레는 내일 일을 치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왔습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이 주변으로 다가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다니엘레는 몸집을 보고 단번에 그가 울리세임을 알아챘다. 서둘러 그는 장로에게 연락을 돌렸고, 이곳에 남아있을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 주변과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쫓아가라는 말을 전했다.


“우리는 어떡하죠?”


바짝 붙어 따라오는 루치아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다. 그는 장로에게 전달받은 것을 알려줬다.


“상황을 보고 도울지 말지 결정하시란다. 만약 실패한다면 너랑 나는 곧장 리베리오를 납치한 후 가문 뒤쪽 정원으로 난 길을 기준으로 북서쪽에 있는 작은 오두막으로 간다.”


울리세는 예상대로 프라이스가 쪽으로 향했다. 구름이 껴 달빛조차 제대로 비치지 않았다. 그들은 넓게 포진해서 놓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만 유지했다. 다니엘레는 세밀하게 지시를 하지 않았는데, 뒤를 밟히고 있다는 것쯤은 그가 이미 눈치채고 있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울리세는 멈춰 섰다. 건물을 앞에 두고 어둠에 몸을 숨긴 그는 주변을 순찰하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잠깐의 망설임도 잠시, 병사들이 교차하며 지나간 틈을 놓치지 않고 단번에 뛰어올라 벽을 넘었다. 다니엘레는 신호를 줘 멈추게 한 다음 모이게 했다.


“안에서 싸움이 시작되면 지체 없이 공격한다.”


안쪽은 조용했다. 달빛이 거의 없어 앞이 잘 보이지 않은 탓인지는 몰라도 바깥에 비해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울리세는 발소리를 죽이며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멈춰라!”


외침과 함께 울리세를 중심으로 사방에 횃불이 켜졌다. 건물 이 층 발코니에는 장로와 기사단장이 서 있었다. 그리고 장로의 지시대로 더미드는 그 뒤로 보이지 않게 서서 상황을 지켜봤다. 둘러싸였음에도 울리세는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내가 오길 기다렸나, 더미드?”


“아니, 기다린 건 나일세.”


마티아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울리세는 그를 지그시 바라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내 이름은 마티아 도나티일세. 울리세 자네가 어디서 왔는지, 과거는 어땠는지 앨버트에게 전부 들어 알고 있다네. 지금 순순히 멈추고 나와 같이 가 몇 가지 조사를 받는다고 약속하면 이 일은 없던 일로 해주겠네. 어떤가?”


“협조하면 더미드를 죽여도 되나?”


“그건 안 되네.”


울리세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협상 결렬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오른쪽으로 파고들어 앞에 있는 병사 넷을 베어 넘겼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기사단장의 외침과 함께 주변에 있는 병사들이 모두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입구가 열리면서 바깥에서 대기하던 병사들도 합세했다.


장로와 단체 인원들은 마티아의 지휘 아래 신성력을 울리세에게 집중시켜 움직임을 저하시켰다. 움찔, 하며 순간적으로 느려진 그는 인상을 구기며 무의식적으로 마티아를 바라봤다. 둘의 눈이 마주쳤고 울리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비웃었다.


“읍···.”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삼킨 마티아는 뒤로 물러났다. 울리세의 알 수 없는 기운이 한 번 몰아치자 신성력은 종이처럼 갈가리 찢겨나갔다. 힘을 더하던 단체 인원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마티아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올려 벽을 부여잡았다.


삼 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은 상황이 정리되기에 충분했다. 마티아는 서둘러 기사단장의 부축을 받아 사전에 약속한 탈출 경로로 빠져나갔다. 더 이상의 공격은 무의미했다. 완벽한 패배에 비참함을 느끼며 그는 일말의 안일함을 가졌던 것을 자책했다.


다니엘레가 말한 수준 그대로, 아니 그 이상이다. 엄청난 신성력을 쏟았음에도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파괴되었다는 것과 병사들을 도륙하는 몸놀림. 뒤쪽으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그는 빠르게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봐, 당신.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더니 이게 뭐야! 그리고 저놈은 도대체 뭐고?”


더미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에게 화를 냈다.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그의 얼굴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하던 존댓말도 그의 심정에 따라 사라져버렸다. 마티아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조사했던 것 이상입니다. 아무래도 새 대책을 세워야겠습니다.”


“대책이고 나발이고 우리 지금 다 죽게 생겼어!”


“그건 걱정 마시지요.”


마티아는 부축을 풀며 숨을 골랐다.


“뒤의 병사들에게 반대 길로 우리를 엄호하는 척하며 뛰라고 했습니다. 금방 잡히겠지만, 우리가 도망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겠죠.”


“저자는 무엇입니까?”


말이 없던 기사단장이 그에게 물었다. 마티아는 뭐라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다 그냥 자신이 느낀 것을 말해주었다.


“···아직은 사람입니다.”


“아직은?”


“그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겠죠.”


정신없이 뛰던 더미드의 목소리는 울분에 차 떨렸다.


“젠장, 빠져나가자마자 왕국에 연락해 지원을 요청해야겠어.”


혼잣말이었음에도 마티아는 그를 제지했다.


“그건 안 됩니다.”


“뭐?”


더미드는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무슨 자신감인지 몰라도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워!”


“더미드님이나 저희나 손해입니다.”


이마를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뜬 더미드가 그를 바라봤다.


“이미 많은 희생이 생겼죠. 게다가 저 자의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나면 필히 바실리오 국왕에게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더미드님과 그 자와의 있었던 일도 밝혀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미드님의 평판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책임도 면할 수 없을 겁니다.”


어느덧 그들은 오두막 지척에 도달했다. 기사단장은 주변을 꼼꼼히 살피며 소리나지 않게 조심히 문을 열었다. 안에 들어온 마티아는 그제서야 입가에 묻은 피를 닦을 수 있었다. 입안에서 올라오는 피맛을 느끼며 그는 하던 말을 이어서 했다.


“그리고 저 또한 이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비밀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저희 단체는 와해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타 나라들의 개입이 있을 것은 불 보듯 뻔하고 그렇게 된다면 지금 겨우 유지되는 나라끼리의 평화 균열에 금이 갈 것입니다.”


마티아는 그 뒤를 말하지 않았지만, 더미드는 알아들은 눈치였다. 이미 그는 자신이 입을 피해를 들었을 때 자신이 말했던 것을 취소했다.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맞는 얘기였다.


“젠장, 다음에는 무조건 잡아야 해. 지원은 내가 대줄 테니 확실하게 하라고.”


“맡겨 주시죠.”


마티아는 램프를 당기고는 펜을 꺼냈다. 그것은 이미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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