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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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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591
추천수 :
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7.17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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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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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32화.

DUMMY

다니엘레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이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고민에 빠졌다. 앞에 이 꼬마는 아직 모든 것이 어렸기에 우연한 일 하나로 자신이 정말 미래를 볼 줄 안다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또 꺼림직한 게 어딘가 모르게 아이의 말투는 굉장히 성숙하고 차분하며 당당했다.


추상적인 말의 범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알 도리가 없다. 단 몇 초 뒤의 상황도 미래라면 미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큰일을 볼 수 있다면? 다니엘레는 생각에 잠긴 채로 엘리후를 내려다봤다.


간과할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보자마자 제단을 찾으러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 거기에 더해 아마 처음일 외부인임에도 당황하거나 공격성을 띠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거짓말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는 말은 나와 얘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얘기겠구나?”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니엘레는 답을 요구하는 얼굴로 엘리후를 마냥 바라봤다.


“밀림에서 나온 자를 막기 위해 여기에 오신 거잖아요.”


“이름도 아냐?”


“그런 자세한 부분까지는 알지 못해요.”


애초에 그역시 기대하고 물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만약 엘리후가 그렇다고 답했으면 정말 기분이 나빴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그는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래, 그건 뭐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부탁이라는 게 뭔데?”


“저를 아스레인으로 데려다주세요.”


상황이 자꾸만 쉽지 않게 나아가는 것만 같아 다니엘레는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쓸어넘겼다. 루치아는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스레인에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아니요.”


엘리후는 그늘이 진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더니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


“······.”


루치아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며 눈높이를 엘리후에게 맞춰줬다. 몇 번 눈을 피하던 그는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풀죽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 이곳에서 쫓겨났거든요.”


“왜?”


이번에 말한 건 다니엘레였다. 엘리후는 체념한 눈빛이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제 미래를 볼 수 없어서요.”


“뭐라고?”


다니엘레는 엘리후 혼자 미래를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미래를 말해주고 그것이 그대로 들어맞자 두려움에 떤 그들이 내쫓은 거라고. 하지만 저 말을 듣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치아 역시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네 말은 그럼 마을 사람들 모두 미래를 본다는 얘기냐?”


엘리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레는 실소를 머금었다.


“미치겠네.”


그는 무의식적으로 루치아를 바라봤다. 루치아 또한 그를 보며 뾰족한 답변을 주지 못한 채 바라만 봤다. 한숨을 깊게 내쉰 그는 그늘로 걸어가더니 커다란 나무에 몸을 기댔다.


“그런데 왜 네 앞을 볼 수 없는 거야?”


그의 모습에 루치아와 엘리후는 다니엘레의 주변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엘리후는 어디부터 얘기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신에게 선택받아서 그렇다고 하셨어요. 남들보다 뛰어나서 그들이 제 미래를 볼 수 없는 거라고요.”


“그러면 좋은 거 아니니? 혹시 두려워해서 그런 거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런 일은 저희 마을에서 처음이라고 했거든요. 아마 제가 낮은 위치의 자식이라 그런 걸지도 몰라요.”


“낮은 위치?”


루치아는 생소한 단어에 물었고 소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각자 위치가 정해져 있어요. 보통 그건 어떤 일을 맡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그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폐쇄적인 이런 곳에서도 계급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다니엘레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래, 뭐 그렇다 치고. 혼자 나가도 되겠냐? 부모님은 어쩌고. 나가선 어쩔 작정인데?”


“부모님을 데리고 나갈 수는 없어요. 저는 이미 잊혀진 존재라 아마 괜찮을 거예요. 아스레인으로 간 후는···.”


엘리후는 침착하게 그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했다. 마지막에 그는 말을 흐리며 다니엘레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것도 잠시 뭔가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다니엘레가 입을 열었다.


“나와 연관이 있다는 얘기구나. 뭐, 좋아. 우리 단체에서 지내게 해줄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다니엘레는 서둘러 제단에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따라오라는 말을 하며 앞장을 선 엘리후는 얽힌 나무들 사이를 가볍게 지나갔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나아가는 것을 보며 그가 얼마나 오래 이곳에서 버려진 채 지내왔는지 함부로 짐작할 수 없었다.


섬의 가운데에 제단과 함께 있다는 마을을 제외하고는 전부 숲이었고, 섬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숲의 범위도 아주 넓었다. 뜨거운 햇빛을 피하는 것은 좋았지만, 울퉁불퉁한 바닥을 걷다 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허리가 한참 꺾인 나무가 무성했고 그들은 서로 섞여 있어 성인이 드나들기에 매우 불편했다. 자칫하면 길을 잃기 십상인, 말그대도 천연요새가 따로 없었다. 엘리후는 가끔 잘 따라오는지 뒤를 슬쩍 돌아보기만 했다. 그의 밝은 길 눈 덕분에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고선 제단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셋은 제단 바로 앞에 길게 자란 풀에 몸을 숨기고 입구를 바라봤다. 큰 사각형의 돌을 쌓아 만들어진 제단이다. 천장은 돔 형태가 아닌 직사각형의 형태였다. 입구 안으로는 희미하게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돌계단이 보였다. 입주 양쪽으로 사람이 서 있었고 다니엘레는 묻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들이라 해도 제단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루치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신성력을 손 위에 공 모양으로 만들고 있었다. 다니엘레는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손바닥을 보고선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따라 했다.


“알면서 뭘 묻냐? 내가 왼쪽.”


둘은 거의 동시에 그것을 그들에게 던졌다. 뒤통수에 정확히 날아가 박히자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픽, 쓰러졌다. 그 모습을 확인하며 셋은 조용하지만,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각자 한 명을 맡아서 업은 루치아와 다니엘레는 숲으로 끌고 가 보이지 않게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입구 앞에 섰다. 다니엘레는 들어가려다 멈칫하고는 엘리후에게 고개를 돌렸다.


“길 안내 좀 해줘. 내가 듣기로는 안에 물그릇이 있다는데 우리는 그게 어떤 거고, 어디 있는지 모르거든.”


설명을 해주려던 엘리후는 숨과 함께 도로 삼켜내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알았어요.”


아까와 다름없이 엘리후가 앞장을 섰다. 그의 말로는 자기도 이곳에 들어와 본 것은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이라고 했다. 루치아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어릴 때라고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다.


아래로 이어진 계단은 원을 그리며 지하로 뻗어있다. 마땅한 기술자가 없어서인지 계단의 간격은 일정하지 않고 바닥이 고르지 못해 자칫하면 굴러떨어지기 십상이었다. 한참을 내려가서야 계단이 끝이 났다.


원형의 공간은 생각보다 협소했다. 어디서 들어오는지 푸르스름한 빛이 공간을 감싸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맞은편 끝 벽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바로 아래는 돌로 만든 석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것을 기준으로 좌우로 기둥이 두 개씩 세워져 있었다. 가운데에는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작은 기둥과 함께 그 위에 물그릇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놓여 있었다. 엘리후는 그들이 묻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가셔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 그릇 안에는 물이 담겨 있어요. 그런데 물이 액체가 아니라 고체로 되어있어요. 한 방울씩요. 사람마다 먹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보이는 것이 한계고 그걸 다 먹으면 끝이에요.”


“그래? 너도 똑같지?”


“아뇨. 저는 볼 수 있어요. 두 분이 드셔도 다시 채워져요. 다만 보시지 못할 뿐이에요.”


“루치아 너는 얼만큼 담겨있냐?”


뒤에 서 있던 루치아는 옆으로 비켜서며 그것을 내려다봤다.


“반 안 되게 채워져 있어요. 선배는요?”


“그것밖에 안 돼? 하긴···.”


다니엘레의 말에 묘한 자만감이 섞였고, 그녀는 그의 말에 기분이 언짢아져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 선배는 얼마나 채워져 있는데요?”


“당연히 가득 채워져 있지.”


“그래요? 좋겠네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낀 다니엘레는 눈동자만 굴려 눈치를 슬쩍 보더니 두 발 물러섰다.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 먼저 할래?”


“······.”


그녀는 말없이 다니엘레의 어깨를 툭 치며 앞으로 나가 그릇 앞에 섰다. 고체로 되어있는 물방울을 하나 집어 들자 왠지 망설여졌다.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든 채로 서 있던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는 그것을 입안으로 넣었다. 혀에 닿았음에도 변화가 없자 조심스럽게 씹어봤다. 그러자 고체였던 그것은 순식간에 녹아버려 식도를 타고 몸 안으로 들어갔다.


“···어?”


목구멍을 넘어 들어가 몸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전부 느껴졌다. 이윽고 한 곳에 멈춘 순간, 말할 수 없을 느낌이 배를 중심으로 퍼졌다. 시야가 밝아지고 없던 힘이 솟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그릇 안에 있는 물방울을 빠르게 집어삼켰다.


“어때? 뭔가 달라진 것 같아?”


초롱초롱해진 눈빛으로 다니엘레를 바라보는 그녀는 좀 전의 나빠진 기분도 잊은 모습이다.


“어, 이거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하죠? 드셔보시면 아실 거예요.”


무안해진 그는 쭈뼛쭈뼛 다가가 물방울을 한가득 집었다. 그리고는 거리낌 없이 그것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게걸스럽게 씹어 넘기며 그는 그릇 속이 변화가 없다는 것을 보고는 며칠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처럼 허겁지겁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물배가 차 배가 불러올 지경이 돼서야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됐다.


잠시 눈을 감자 몸 안으로 흐르는 어떤 기를 느꼈다. 얇지만 응집된, 거세고 힘찬 줄기가 몸 전체를 휘감았다. 포악한 야수의 호흡처럼 날뛰는 것을 참아내는 듯 날 선 기가 몸 안에 가득했다. 감은 눈을 다시 뜨자 그의 그것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맞은편에 있는 엘리후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자.”


엘리후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물그릇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멀어지는 발소리도 듣지 못한 채 있던 그는 루치아의 부름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허둥지둥 그들을 따라갔다. 잰걸음으로 걷던 그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 그릇 안을 봤다. 안은 텅 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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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화. 19.06.25 53 3 10쪽
20 19화. 19.06.23 39 3 10쪽
19 18화. 19.06.22 43 3 12쪽
18 17화. 19.06.21 38 3 10쪽
17 16화. 19.06.20 44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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