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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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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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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6
추천수 :
95
글자수 :
182,684

작성
19.06.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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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9쪽

프롤로그

DUMMY

이곳에 갇힌 지 며칠이 지났고 몇 시간이 지났는지 그는 여전히 몰랐다. 몇 끼를 아니, 며칠째 음식을 먹지 못한 그는 허기짐에 더해진 긴박함과 초조함으로부터 오는 압박감에 그는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다.


며칠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러워진 옷과 더벅한 머리는 제멋대로 뻗쳐 있다. 아홉 살의 그는 빼빼 말랐고, 그것과 어울린다면 어울릴 수 있는 곱상한 외모를 가졌다.


긴 속눈썹과 단정한 눈썹, 어린아이다운 깨끗하고 때가 타지 않은 살은 하얗다. 마른 것의 영향인지 턱은 날렵한 전체적인 미소년 상이다. 그런 외모와 대조되게 그는 속으로 알고 있는 욕지거리란 욕은 전부 쏟아내고 있었다.


밀림은 지독하게 색이 없었다. 이야기로만 듣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의 차이는 실로 놀라웠다. 상상으로 그려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 땅도, 나무, 돌. 심지어 물조차도 밝아야 짙은 회색일 뿐, 빛나거나 어떤 밝은색이라고는 없다.


극도의 긴장 상태로 숨어지내는 것의 원흉은 저 멀리 보이는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으로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맞닥트린 그로서는 저들을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은 죽은 것이 아닐까 싶은 나뭇잎들로 가려져 있어 밤인지, 낮인지조차 구별이 가지 않았다.


세상의 것들을 거부한다는 듯이 밝은 빛 한 줌조차 들어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주변은 잘 보인다. 그는 어렸고 공부를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왜 그럴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없다. 그저 이 안의 표현 못할 빛이 있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꼬여가는 배를 부여잡으며 그는 긴 풀숲 사이로 보이는 것들을 봤다. 사람의 모습을 했지만, 절대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들. 소문에 소문이 더해져 탄생한 줄 알았던 밀림 속에 사는 생명체. 강조차 썩어 먹을 거라곤 없는 이곳에서 다들 어떻게 저리 멀쩡히 살아있는 건지 그것 또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식인종인가 싶어 그는 지금까지 숨어다니며 그들을 봐왔지만, 그들끼리는 살육을 벌이지 않는다. 서로 말을 하지도, 그런 신호조차 주고받지 않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다는 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지나쳐간다. 오직 그 자신에게만 반응했다. 마치 마왕을 지키는 괴물처럼 외부인에게 극도로 적대적이다.


육체적인 면이 인간의 세 배 이상으로 높고 감각기관 또한 뛰어나다는 것이 어릴 적 기억으로 어렴풋이 떠올랐다. 생각을 억지로 떠올리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뜨겁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그는 숨을 골랐다. 숨을 내쉴 때마다 심장이 아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저들에게 들킬까 봐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자꾸만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무릎으로 기다시피 웃자란 풀의 보호받으며 빙 돌아 생명체들이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 그의 눈앞에 동굴이 들어왔다. 그는 잠시 말설였다.


‘들어갈까? 혹시 안에 먹을 동물이 있을까? 박쥐라던가, 하다못해 바퀴벌레라도. 아니면 물이라도.’


불현듯 그의 머릿속으로 불안감이 스쳤다. 만약, 안에 저들이 있다면···?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 눈을 간지럽혔다. 생각이 서서히 멈춰진다.


“가야만 해.”


들릴 듯 말 듯 읊조리며 스스로에게 명령한 그는 천천히 좌우를 살폈다. 이제는 입으로 밖에 숨이 쉬어지지 않아 거의 헐떡이는 수준이었다. 긴장으로 폭주하는 터지기 직전의 심장을 부여잡고 풀숲에서 나온 그의 다리는 뼈가 도드라지게 보였고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얼굴마저 살이 없어 보기 흉할 정도였다.


굽어진 허리로 한쪽 손은 배를 부여잡고, 낮은 자세로 그는 빠르게 동굴로 다가갔다. 다행히도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오염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무튀튀해진 땅바닥 말고는.


입구에서 올려다본 동굴은 풀숲에서 봤을 때보다 더 컸다. 고개를 한참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위압감마저 들었다. 안은 어둠으로 칠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안에 무엇이 있든 없든 들어가서 일단 자야만 했다.


돌바닥은 흠칫 놀랄 만큼 따뜻했다. 자연으로 만들어진 동굴인 듯 인간의 손길이 닿은 흔적은 없었다. 처음에 어둠으로 덮여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졌다. 끝이 보이진 않았지만, 뭔가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주 작은 빛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며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그것을 확신했다. 어쩌면 여기서 나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머릿속은 제발이라는 간절함이 요동쳤다.


착각이라 생각할 만큼 작았던 빛은 점점 커져갔고 이윽고 그는 그것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동굴의 끝은 크지 않은 크기에 돔 형태로 되어있었고 가운데에 높은 비석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비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옅은 보랏빛은 비교적 넓은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앞까지 다가갔다. 어쩐지 아까보다 추워진 느낌이 들었다.


비석에는 처음 보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도 비석 전체에 빼곡하게. 길이로 보나 쓴 형태로 보나 그는 아마도 이름을 새긴 것이 아닐까 했다. 하지만 이내 흥미를 잃었다. 다시 한번 배가 뒤틀리는 고통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최대한 배를 감싼 채 웅크린 그는 서서히 옆으로 몸을 뉘였다.


눈동자를 굴려 사방을 바라봤지만, 먹을 건 없었다. 목을 축일 웅덩이조차 없다. 작은 희망을 비웃어 버리듯이 아무것도. 옅은 숨을 몰아쉬며 그는 그간 이루지 못한 잠에 밀려 서서히 눈을 감았다.


‘자면 배는 고프지 않겠지. 그다음은 일어나서 생각할래······.’


“일어나라, 꼬마야.”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꿈인가. 생생한···.


“어떻게 여기를 들어왔지?”


그는 눈을 번쩍 떴다. 꿈이 아니야!

아픈 것도 잊은 채 상체를 벌떡 일으킨 그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하지만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답해라.”


그는 경직된 고개를 천천히 비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석에서 들린다 생각했지만, 머릿속에서 말이 들려왔다. 마른 입술을 핥은 그의 입에선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누구세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답은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신에게 버려진 자.”


“네?”


“말하라 했을 텐데.”


들려온 말에는 이제 노기가 띄어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압감에 눌려 눈을 내리깔았다.


“죄에 비해 가혹한 벌을 받아 이곳에 버려졌어요.”


“여기서 나가고 싶은가?”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빠르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나가고 싶어요. 아니, 나가야만 해요! 복수를 해야 해요. 그리고 또 동생을 만나야만 해요.”


아주 낮고 작은 음침한 웃음소리가 깔렸다. 곧이어 웃음이 멈추고 정적이 돌아왔다. 그는 전부 환청이 아닐까 의심했다. 정신과 육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아니면 사실 이미 나는 잠들었고 죽은 게 아닐까라고. 하지만 그런 의심은 다시 들려온 목소리에 깨져버렸다.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너에게 내 힘을 주겠다. 대신 들어줘야 할 것이 있다.”


그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채 가만히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긍정이라 생각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복수를 하고 나서 나에게 새로운 육체를 구해다 주어라.”


무슨 의도일까, 저 말은. 뭘 어떻게 한다는 거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다는 듯 갑자기 흐르기 시작하는 코피를 닦으며 그는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이 됐던 간에 지금 앞 뒤 잴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뭘 어떻게 하려는지도 묻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할게요.”


“그래.”


또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비석의 빛이 점점 옅어져 갔다. 옅어짐에 따라 그는 몸에 생기가 도는 기분이었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그것이 몸에 옮겨오듯 배고픔이 사라졌고, 졸음이 달아났다. 충분하다 느꼈음에도 점점 더···. 이윽고 어느 때보다 겪어보지 못한 몸 상태가 되었다. 힘이 넘치고 오감이 예민해졌다.


“웁···,”


가슴이 순간적으로 울렁여 그는 헛구역질을 연달아 했다. 무언가 입 밖으로 나오려 하자 머릿속에서 삼켜내라고 화를 냈다. 아까 들려왔던 목소리와 같다. 억지로 삼켜낸 그는 알 수 없는 극한의 추위를 맞은 듯이 고통이 밀려와 몸을 바르르 떨었다. 눈알이 자꾸만 뒤집히려는 것을 억지로 막아냈다. 꽉 다문 이 사이로 뜨거운 피가 새어 나왔다.


결국 그는 입안에 머금던 것들 게워냈다. 나온 것은 전부 피였다. 검붉은 피 한 움큼을 쏟아낸 그는 서서히 정신을 잃으며 옆으로 쓰러졌다. 아득해지는 정신 사이로 말이 들려왔다.


“온전히 받으려면 십 년은 걸리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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