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세친님의 서재입니다.

용사가 검을 뽑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원로드
작품등록일 :
2019.06.20 20:48
최근연재일 :
2019.10.23 07: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6,024
추천수 :
232
글자수 :
244,858

작성
19.07.20 17:00
조회
76
추천
4
글자
9쪽

세 번째 마을

DUMMY

나는 용사가 아니다 23.


매우 푹신한 침대였다. 고급스러운 이불이 노을의 붉은 빛을 머금어 예쁘게 반짝였다. 커다란 베개는 무엇으로 채워졌는지 하늘에서 구름 한 움큼 뜯어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이대로 이 침대에서 평생 자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로엘은 그런 익숙지 않은 감각에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장식품과 그림으로 장식된 방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려고 얼굴을 찌푸렸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자신을 덮치는 검은 손, 그리고 땅으로 떨어지는 라드의 모습이었다.


로엘이 일어난 기척을 읽었는지 건너편 방에서 책을 읽고 있던 흑발의 남자가 일어나 다가왔다. 편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허리춤에는 제국의 문장이 고급스러운 금박으로 그려져 있었다. 금색이 섞인 붉은 눈이 초승달을 그리며 미소지었다.


“안녕, 나 기억해?”

“네...”


로엘은 이 자를 시작의 마을에서 보았다. 그는 용사의 탄생 축제 때 제일 처음으로 용사의 검을 뽑았던 황태자, 켄드릭 베르티스였다. 어깨까지 내려온 곱슬머리를 간단히 뒤로 묶은 그의 모습에서, 그날의 위엄있는 황태자의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편한 인상은 아니었다.


로엘은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급히 주변을 확인했다.


“용사의 검은 여기 있어.”


황태자가 검을 들어 보이며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시작의 마을에서 이 검을 뽑은 적이 있으니 나도 용사인 건가?”


검집의 작은 기스, 울퉁불퉁함을 손끝으로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물었다. 수많은 용사의 역사를 머금은 용사의 검에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넘쳐흘렀다.


“네.”


스르릉. 푸른 날이 시퍼렇게 반짝이며 검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로엘의 대답에 황태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네가 광장에서 말한 ‘용사’는 무엇이지?”

“끝의 신전까지 함께 갈 분이요.”

“그 ‘용사’는 네가 고르는 거고?”

“네.”

황태자가 재밌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대답에 망설임이 없었다. 광장에서 모두에게 선언을 한 일도, 대놓고 288번째 용사들의 일행을 보여준 것도 일부러임이 분명했다. 미리 다 생각하고 움직인 걸까?


이 사내를 제국 감옥 어딘가에 가둬두고 용사 행세를 할 생각이었던 황태자에게 광장에서 한 선언은 골칫거리였다.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특히 용사의 일처럼 몇백 년을 이어 내려온 전통은 변화가 있으면 모두 혼란스러워한다. 그래서 황태자가 용사로 나서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지한 자들에겐 자비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자는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어필하였다. 그가 용사를 선택한다고 했다. 그 광장에는 공신력이 있는 기자들도 몇몇 있었다. 사내가 한 이야기는 이미 여러 나라에 퍼져나갔을 터. 지금 상황에선 황태자가 검을 들고 있어도 사람들은 사내를 찾겠지.


“‘용사’를 어떻게 고를 거지?”

“용사의 자질이 있는지 확인할 겁니다. 만약 용사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경우, 제가 거부할 겁니다.”

“산적의 일을 말하나 보군.”


황태자는 촌장이 보내온 편지의 내용을 떠올렸다. ‘용사가 아니다’라고 하니 산적은 더는 용사의 검을 들지 못했다. 흥미로운 일이었다.


“실험을 해보지 않겠나? 이 자는 내 수호기사, 제이콥이다. 아까 만났지?”


수호기사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엘은 자신이 납치당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라드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의 움직임. 인간의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는 황태자의 수호기사였다.


황태자는 수호기사의 양어깨를 감싸고는 나른하게 웃으며 그를 로엘의 앞으로 살짝 밀쳤다. 제이콥은 황태자의 의도대로 앞으로 나섰고, 흔들림 없이 섰다.


“이 자가 검을 뽑은 후 용사가 아니라고 해보겠어?”


수호기사의 어깨가 살짝 움찔하는 것을 황태자는 놓치지 않았다. 용사의 검은 인간이 만든 검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 검을 다루는 자라면 한 번이라도 잡아보고 싶어 할 게 분명한 명검이었다.


로엘은 갈등하였다. 사실 한 번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정말로 자신이 안 된다고 소리쳐서 그가 검을 못 잡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황태자가 겁을 먹었으면 해서 말했던 거였는데 이렇게 곧바로 시도해보라고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어차피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실히 모르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다. 로엘은 자신 있게 행동하기로 했다. 천천히 칼자루를 제이콥에게 향했다.


황태자가 뒤로 물러나자 수호기사는 천천히 용사의 검을 꺼냈다. 예상했던 대로 용사의 검은 이제까지 잡아 본 적 없는 경이로운 검이었다. 검에서부터 작은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강한 자의 손에 들어온 사실에 기뻐하는 야생의 동물이라도 된 마냥.


수호기사는 당장이라도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버리고 싶었다. 제국 제일의 기사인 자신에겐 이런 검이 어울렸다. 이것만 있으면 황태자 밑에 있을 이유도 없었다.


수호기사는 황태자의 눈치를 보았다. 앞으로 이 검을 평생 잡지 못할지도 모르는 실험을 하게 된다니. 너무나도 아까운 일이었다.


“엄청난 검이지? 이런 검은 이 세상에 둘도 없어. 내가 내 수호기사에게 아까운 짓을 하는군. 대신 최대한 좋은 검을 마련해주지.”


수호기사는 표정을 굳힌 채 로엘이 다음 행동하기를 기다렸다. 황태자는 제이콥의 마음을 다 읽고 있었다. 그가 용사의 검을 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도 모두 계획된 일. 검의 실력으론 황태자를 이길 수 있는 제이콥이었지만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읽고 조종하기에 그의 밑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로엘은 떨리는 목소리로 수호기사에게 말했다.


“당신을 용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용사의 검이 땅에 떨어졌다. 제이콥도 자세를 바로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를 꽉 다물고 검을 들어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30년간의 기사 생활 동안 누군가에게 져본 적도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인생을 살았던 수호기사에겐 굴욕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황태자가 작게 탄성을 질렀다.


“정말이군. 난 또, 날 겁주려고 거짓말을 한 줄 알았지. 그럼 강제로 이 검을 뺐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겠군.”


제이콥의 손에서 검을 빼낸 황태자가 황홀한 표정으로 용사의 검을 바라보았다. 들고 있는 것만으로 탐하게 만드는 이 느낌. 이 검을 직접 들어 볼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황태자가 미소를 지으며 검의 칼자루를 로엘에게로 향했다.


“... 저는 용사의 검을 들 수 없습니다.”

“그렇군. 실례했네.”


황태자는 천천히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검집 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사내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로엘의 눈빛에 답하듯 황태자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럼 용사의 자질은 어떻게 시험받으면 되지?”

“저와 함께 끝의 신전에 도착하면 됩니다.”


로엘의 대답에 황태자가 눈썹을 올렸다.


“어불성설이군. 끝의 신전까지 같이 갈 용사를 선택하는 방법이 끝의 신전에 가는 거라니.”

“그런가요?”


사내가 사람 좋은 미소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간단합니다. 함께 여행하면서 제가 용사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용사가 되시는 거죠.”


황태자가 웃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간단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다.


“시오니아나 라드는 그래서 같이 있는 건가?”

“아니요. 그들은 저를 도와주고 계실 뿐입니다.”

“그래. 그 키 큰 분홍 머리의 기사는?”


로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토니오는 287번째 용사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함께하는 일행 중에 아무도 용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아직 용사를 희망하는 자가 없다는 거군. 입후보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저를 제 일행에게 데려가 주실 수 있으신가요?”

“글쎄?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로엘이 대답 없이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켄드릭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용사로서 제명당하지 않으려면 원하는 대로 해드려야지. 하지만 명심하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를 죽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황태자는 일행에게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하며 방을 나갔다. 수호기사는 미련이 남은 눈빛으로 한 번 더 용사의 검을 바라보고는 뒤를 따라 나갔다.


둘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로엘은 떨리는 손으로 검을 품에 안았다.


“시오니아님, 라드님, 안토니오님-”


그의 부름에 검에서부터 빛의 문자가 빠르게 나타났다. 걱정으로 가득한 문장들을 보며 그제야 사내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용사가 검을 뽑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6 여섯 번째 마을 +1 19.10.23 9 2 12쪽
55 여섯 번째 마을 +1 19.10.21 10 3 11쪽
54 여섯 번째 마을 19.10.18 8 2 12쪽
53 여섯 번째 마을 +2 19.10.16 12 4 12쪽
52 여섯 번째 마을 19.10.14 13 4 11쪽
51 여섯 번째 마을 19.10.11 15 2 12쪽
50 여섯 번째 마을 가는 길 - 고블린 소굴 19.10.09 17 2 12쪽
49 여섯 번째 마을 가는 길 - 고블린 소굴 19.10.07 19 2 12쪽
48 여섯 번째 마을 가는 길 19.10.04 22 3 12쪽
47 여섯 번째 마을 가는 길 19.10.02 26 3 11쪽
46 다섯 번째 마을 +1 19.09.02 35 3 12쪽
45 다섯 번째 마을 - 티티치카 산맥 +1 19.08.30 37 3 12쪽
44 다섯 번째 마을 - 티티치카 산맥 +1 19.08.28 40 3 11쪽
43 다섯 번째 마을 - 티티치카 산맥 +1 19.08.26 48 2 12쪽
42 다섯 번째 마을 - 티티치카 산맥 +1 19.08.23 54 2 12쪽
41 다섯 번째 마을 - 티티치카 산맥 19.08.21 54 3 12쪽
40 다섯 번째 마을 - 티티치카 산맥 +1 19.08.19 46 4 12쪽
39 다섯 번째 마을 +1 19.08.16 54 2 12쪽
38 다섯 번째 마을 +1 19.08.14 53 3 12쪽
37 다섯 번째 마을 가는 길 +1 19.08.12 57 3 12쪽
36 다섯 번째 마을 가는 길 +1 19.08.09 54 2 13쪽
35 네 번째 마을 +2 19.08.07 65 2 12쪽
34 네 번째 마을 +1 19.08.05 60 2 12쪽
33 네 번째 마을 +2 19.08.02 61 3 11쪽
32 네 번째 마을 +3 19.07.31 66 2 11쪽
31 네 번째 마을 +1 19.07.30 63 4 11쪽
30 네 번째 마을 가는 길 +3 19.07.29 68 2 11쪽
29 네 번째 마을 가는 길 +2 19.07.27 62 3 8쪽
28 네 번째 마을 가는 길 +2 19.07.26 78 4 8쪽
27 세 번째 마을 +3 19.07.25 74 5 9쪽
26 세 번째 마을 +3 19.07.24 73 4 8쪽
25 세 번째 마을 +1 19.07.23 82 3 8쪽
24 세 번째 마을 +1 19.07.22 78 4 8쪽
» 세 번째 마을 +1 19.07.20 77 4 9쪽
22 세 번째 마을 19.07.19 77 3 8쪽
21 세 번째 마을 +1 19.07.18 77 3 8쪽
20 세 번째 마을 +4 19.07.17 83 4 9쪽
19 세 번째 마을 가는 길 +1 19.07.16 85 4 7쪽
18 세 번째 마을 가는 길 19.07.15 83 3 8쪽
17 두 번째 마을 +2 19.07.13 96 3 7쪽
16 두 번째 마을 19.07.12 105 5 8쪽
15 두 번째 마을 19.07.11 107 5 7쪽
14 두 번째 마을 19.07.10 113 5 8쪽
13 두 번째 마을 19.07.09 123 4 10쪽
12 두 번째 마을 19.07.08 143 6 8쪽
11 두 번째 마을 19.07.06 178 5 8쪽
10 두 번째 마을 +2 19.07.05 194 8 9쪽
9 두 번째 마을 가는 길 19.07.04 193 5 8쪽
8 두 번째 마을 가는 길 19.07.03 214 6 7쪽
7 시작의 마을 +2 19.07.02 211 7 7쪽
6 시작의 마을 19.07.01 258 7 9쪽
5 시작의 마을 +1 19.06.24 362 8 7쪽
4 시작의 마을 +1 19.06.23 348 10 7쪽
3 시작의 마을 +2 19.06.22 371 11 8쪽
2 시작의 마을 19.06.21 418 9 7쪽
1 시작의 마을 +3 19.06.20 591 1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